1564화. 중수진륜(重水眞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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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언보륜에 있는 두개의 반투명한 테두리를 진언화륜경에서는 시간도문(時間道紋)이라고 칭하고 일종의 시간법칙이 외부적으로 표현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이런 시간도문이 많아질수록 진언보륜의 위력도 강력해지는 것이다.
진언보륜을 응결해낸 사람은 선규를 하나씩 뚫을 때마다 시간도문을 응결할 기회를 얻게 되는데 성공할 가능성은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
12개 선규를 다 뚫어 진선경 중기에 이르렀을 때 6개 이상의 시간도문을 응결해 내면 진언화륜경 1성을 성공적으로 수련한 것이었고, 진언보륜의 감속 효과도 두 배에 달하게 된다.
운 나쁘게 진언보륜에 시간도문 6개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영원히 진언화륜경 2성을 익힐 수 없었다.
촉룡도에서는 요행히 진언보륜을 응결해 낸 사람이 드물어서 진언화륜경을 2성까지 익힌 이는 정말 손에 꼽힐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진언보륜은 시간도문 6개를 기본으로 해서 6개에 이르기 전까지는 위력이 미미했다.
나중에 고안된 방법으로 법기로 진언보륜을 대신한 이들은 선규를 뚫은 후 도문을 얻을 확률이 크게 떨어져서 보통 12개 선규를 뚫는 동안 시간도문 2, 3개를 응결하면 다행이었다.
물론 이런 위보륜(僞寶輪)들은 재료 자체의 법칙의 힘을 활용해 다른 법칙의 힘으로 도문을 추가할 수 있었는데 얼마나 도문을 늘릴 수 있을지는 각각의 재료와 운에 달렸다.
운 좋게 일고여덟 개의 다른 법칙도문을 추가한 이들은 후천선기 못지않은 위력적인 보물을 얻을 수 있었고, 겨우 한두 개가 추가된 경우에는 버리기엔 아깝고 쓰기엔 부족한 계륵이 하나 생기는 셈이었다.
한립은 진언보륜의 2개의 시간도문을 보고 기쁘면서도 믿기지가 않았다.
원칙대로라면 아무리 운이 좋아도 첫 번째 선규를 뚫어 시간도문 하나를 얻는 것이 최선이었는데 그의 진언보륜에는 시간도문이 2개나 추가되었던 것이다.
어찌 되었든 처음에 두 개의 시간 도문을 얻은 것은 희소식이었다. 한립은 길게 숨을 들이마시고 법결을 날렸다.
등 뒤의 진언보륜이 은은한 금빛 파문을 발산했다. 파문에 둘러싸인 십여 장의 허공이 덜덜 떨리기는 했으나 겉으로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눈을 감고 감응에 집중한 한립은 모든 것이 약간 느려졌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공기의 흐름, 소리의 전달 심지어 천지영기의 움직임까지 모든 것이 약간이지만 느릿하게 흘러갔다.
속도법칙이나 중력법칙의 감속효과와 어딘가 다르면서도 결과적으로 같은 효과를 내고 있었다.
‘이게 시간법칙이로구나! 이렇게 신기할 수가!’
한립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효과가 거의 없어서 인공적으로 만든 위보륜만도 못했다. 그게 대다수의 수련자가 위보륜을 제련하는 방법을 택한 이유였다.
한립은 씩 웃으며 금빛과 등 뒤의 진언보륜을 흩어버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밀실 옆 다른 방으로 걸어갔다.
방안의 탁자 위에는 푸른 전신 원반이 웅웅 떨면서 물처럼 푸른빛을 내뿜고 있었고, 그 빛의 장막 안에 하얀 전신부 두 개가 머리 잃은 파리처럼 마구 돌아다니는 중이었다.
푸른빛의 장막을 열어 전신부를 꺼낸 한립은 내용을 확인했다.
지난 3년간 마지막 수련에 전념한 1년을 빼고는 종명산맥을 두루두루 돌아다니며 청죽봉운검의 행방을 찾아보고 남몰래 본명팔령항으로 감응도 시도했었다.
안타깝게도 청죽봉운검은 마치 완전히 사라진 것처럼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으나 그래도 종문에서 비슷한 신분인 진선들과 안면을 텄고, 특히 그처럼 산수 출신인 집사 장로들과 좋은 관계를 만들었다.
두 전신부에는 그중 두 내문장로가 같이 임무를 수행하러 가자고 보내온 것이었는데 한립은 고민할 것도 없이 빈 전신부 두 장을 꺼내 완곡한 거절 의사를 담아 돌려보냈다.
지금은 임무를 수행하러 갈 기분이 아니었다.
그 후 한립은 동부 안의 약재밭으로 가서 장천병을 살폈고 그의 옆에는 거원 꼭두각시 한 마리가 멍한 눈빛으로 서있었다.
폐관해서 수련하는 동안에는 수정 알갱이를 응결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녹액을 낭비할 수 없어 거원 괴뢰를 약재밭에 두고 만년 영초들에 뿌려주라고 시켜두었었다.
오랜만에 직접 약재밭을 찾은 한립이 쪼그리고 앉아 영초에 녹액을 뿌리려는 데 순간 이변이 발생했다.
그의 몸에 느닷없이 은은한 금빛이 반짝이고 등 뒤로 진언보륜이 떠오른 것이다. 그와 가장 가까이 있던 만년 영초 한 그루가 가볍게 몸을 떨면서 수정빛에 둘러싸여 진언보륜에 반응하고 있었다.
깜짝 놀란 한립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금빛과 진언보륜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영초도 원래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 모습에 어안이 벙벙해진 한립은 다시 그 만년 영초 옆에 쪼그려 앉아 보았다.
웅!
다시 가볍게 몸을 떤 영초 위로 은은한 빛이 어렸고 금빛에 둘러싸인 한립 등 뒤로 진언보륜이 떠올라 공명했다.
“이게 어찌된 일이지?”
한립은 아예 약재밭 쪽으로 더 들어가 보았다.
만년 이상 묵은 영초들이 바르르 몸을 떠는 데 오래된 것일수록 더 강렬하게 진동을 했다. 그 순간 그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옥함 두 개를 꺼내 뚜껑을 열었다.
둘 다 만년 이상 된 영초였지만 왼쪽 옥함에 들어있는 흑록색 영초는 부들부들 떨리고, 오른쪽 옥함에 들어있는 붉은 영초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흑록색 영초는 녹액으로 성장을 촉진한 것이고, 붉은 영초는 방반의 저물대에서 찾은 영초였다.
“진언화륜경 수련이 순조로운 것과 한 번에 시간도문을 두 개나 얻은 것이 이것과 연관이 있는 걸까?”
한립은 두 개의 영초를 거두고 작게 중얼거렸다.
* * *
1년 후, 적하봉.
해가 서쪽으로 넘어가면서 주홍빛 석양이 산 정상을 따사롭게 감쌌다. 널따란 장원 곳곳의 누각과 정자가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장원 한쪽, 돌 탁자에 기대앉은 청수한 소녀는 멍한 얼굴로 엎드려 있었다.
소녀는 반나절 전에 막 폐관을 마치고 나온 몽천천으로 금단에 성공해 드디어 결단기에 이르렀다.
출관할 때만해도 이 기쁜 소식을 오라버니와 나누려고 했지만 장원 안 사람들은 하나같이 수련하느라 바빠 약간 풀이 죽은 상태였다.
“려 장로님은 지금 뭐하시려나…….”
소녀가 빼꼼히 고개를 들어 동부 쪽을 바라보았다. 오라비인 몽운귀 다음으로 자신의 금단 성공 소식을 전하고 싶은 것이 바로 려 장로였다.
몽운귀를 포함한 장원의 다른 수사들은 다들 그를 존경하면서도 두려워했지만 그녀는 이상하게 다른 장로들과 달리 려 장로가 친척 오라버니처럼 살갑게 느껴졌다.
* * *
그 시각, 동부 안 밀실.
벽에 박힌 하얀 구슬들이 빛을 발산해 대낮처럼 환한 밀실 중앙에 장로 복색을 한 한립이 방석에 정좌를 하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검푸른색의 네모난 진법 원반이 둥실 떠서 표면에 박힌 이성석이 남색 빛을 발하는 중이었다.
웅!
잠시 후, 진법 원반이 요란하게 빛나고 기이한 파동과 함께 주먹 크기의 검은 중수 덩어리가 전송되어왔다.
손을 뻗어 중수 덩어리를 끌어온 한립은 북두천성반을 회수했다.
눈앞의 중수 덩어리는 양은 적어도 이전 중수들과 달리 특별히 지기화신에게 요청한 물의 법칙의 힘이 담겨 있었다.
한립은 법칙의 힘을 품은 중수로 가짜 진언보륜, 위보륜을 제련할 계획이었다. 자신의 진언보륜과 시간도문이 뭔가 다르다는 것을 안 순간부터 위보륜을 제련할 마음을 먹었었다.
보물의 이상이 장천병 때문이라면 남에게 들켜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가 중수 덩어리를 두고 다른 손을 휘젓자 손바닥 크기의 검은 운철(隕鐵), 물빛 야광주, 요수의 피로 보이는 남색 액체와 검은 광택이 있는 수예(水翳)광석이 줄줄이 떠올랐다.
며칠 사이 여러 경로로 재료들을 구했고, 위진륜을 만드는 방법도 쉽게 알아낼 수 있어서 종류별로 제련법을 구해 놓았다.
위진륜 제련은 쉽지 않아도 일단 만들어 놓으면 굉장히 실용적이라 주해경에 여러 수사들이 개발해 놓은 심득이 남아 있었다.
한립 앞에는 위진륜을 제련하는데 필요한 진법이 펼쳐져 있었다. 고대 동전처럼 겉은 동그랗고 내부에 네모난 구멍이 뚫린 진법은 평범해 보였지만 심오한 원리가 숨겨져 있었다.
화르륵!
그는 재료들을 사각형 도안의 네 귀퉁이에 올려놓고 원영의 불길을 일으켜 진법 중앙에 사람 크기만 한 불길을 키웠다.
한립이 주문을 외면서 무상진륜경을 운용하자 진법에서 강렬한 빛이 흘러나와 원영의 불길과 섞여들었다.
휘이이이.
갑작스레 바람이 일고 불길이 빠르게 회전하면서 밀실의 온도를 급격히 올려놓았다.
검은 수예 광석이 바람에 떠올라 불길 속에서 붉게 달아오르다 이제는 거의 투명하게 변해가고 있었고, 그다음으로는 남색 액체가 날아올라 섞여 들었다.
하얀 연기와 함께 수예 광석이 용해되어 액체가 되었다. 그걸 본 한립은 다른 두 재료도 화염 속으로 집어넣었다.
모든 재료를 품은 원영의 불길은 한데 뭉쳐 커다란 구슬처럼 변해갔다.
한립은 원영의 불길이 재료들을 손질하는 동안 화력을 조절하면서 진언화륜경을 꺼내 연구했다.
* * *
그렇게 수일이 흘러갔다.
그간 한립은 밀실에서 한 발자국도 나서지 않고, 오직 불구슬만 뚫어져라 응시했다. 그는 한참 동안 기다린 끝에 두 팔을 천천히 벌려 불구슬을 길쭉하게 변형시켜 타원형으로 만들었다.
새빨간 타원형의 보물은 복잡하고 세밀한 무늬가 가득했지만 그다지 특별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때 한립은 물의 법칙의 힘을 지닌 중수를 휘둘러 적홍색 타원형 위에 떨어뜨렸다.
치직!
작은 폭음은 밀실 안에서 울리는 것 같기도 했고, 한립의 머릿속에서 울리는 것 같기도 했다.
적홍색 원반은 부들부들 떨며 검은색 중수에 둘러싸여서 급속도로 검게 물들었고 표면에 수많은 주술문자가 떠올랐다.
물빛으로 빛나는 주술문자들은 원반 위에서 신기하게도 물의 도문을 형성하고 있었다.
한립은 원영의 불길을 빨아들여 위진륜이 밀실 바닥에 떨어지게 만들었다.
콰쾅!
바닥이 쩍 갈라져 밀실 벽까지 거미줄 같은 균열이 생겼고, 그의 동부와 장원 전체가 흔들려 바깥에 있는 몽운귀 등이 수련을 중단하고 무슨 일인지 내다보는 지경에 이르렀다.
적하봉 전체에서 짐승들이 놀라 뛰어다니고 수많은 새들이 퍼덕퍼덕 거무튀튀한 하늘로 날아올랐다.
외진 곳이라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종문 수사들의 이목을 끌었을 것이다. 밀실 안 한립은 일어나서 바닥에 깊이 박힌 위진륜을 뽑아내고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시간법칙의 기운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지만 물의 법칙의 힘은 꽤 정순했고 중수를 넣은 덕에 중량도 예상보다 더 묵직했다.
“앞으로 이건 중수진륜(重水眞輪)이라 불러야겠다.”
만족스럽게 위진륜을 살핀 한립은 얼마 지나지 않아 동부를 나섰다. 그는 가장 먼저 산자락의 화맥 동굴로 내려가 그 안에서 즐겁게 놀고 있는 정염불새를 만났다.
얼마나 많은 화맥의 영기를 취했는지 기운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는데 너무 짧은 시간 동안 과식을 해서 그런지 기운이 불안정했다.
그러나 의식연계를 통해 불새가 그곳에서 아주 흡족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마음을 놓았다.
후에 장원으로 돌아간 그는 몽운귀 등을 불러 모아 새로운 단약을 나눠주고 몇 가지 수련 상의 궁금증을 해결해 준 다음 다시 청죽봉운검의 종적을 찾으러 적하봉을 떠났다.
며칠 후, 아무런 수확도 얻지 못한 한립은 동부의 밀실로 돌아와 진언화륜경을 수련했다.
어쨌든 지금 가장 시급한 일은 시간법칙의 힘을 장악하는 것이었다.
수련하는 와중에도 그는 일정 기간마다 종명산맥을 한 번씩 수색하면서 꾸준히 청죽봉운검을 찾으려 했지만 어떤 단서도 발견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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