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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563화 (1,320/2,000)

1563화. 진언보륜(眞言寶輪)

*

미간을 좁힌 한립은 본론으로 들어갔다. 당시 상대는 고의로 설명을 누락한 것이 분명했지만 거래 당시 알아채지 못했으니 지금 와서 따져봐야 아무 소용이 없었다.

“아마 없을 겁니다. 대륙 내 전송이 성이자모반의 한계치니까요. 그러나 더 먼 거리에서 물건을 주고받고 싶다면 다른 방법이 있습니다.”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성이자모반은 오래 전에 저의 벗이 어떤 선기를 본 떠 만든 모조품입니다. 진품과 비교하면 그 위력이 50분의 1밖에 되지 않지요! 오랫동안 연구 끝에 그 친구가 간신히 선기의 기력에 10분의 1정도 가는 모조품 개발에 성공해 북두천성반(北斗天星盤)이라 이름을 붙였답니다. 혹시 흥미가 있으신지요?”

“가격은 얼마나 합니까?”

고개를 끄덕인 한립이 직접적으로 물었다. 성이자모반 보다 다섯 배 이상 뛰어나다니 흑풍해역과 물건을 주고받는 데는 충분할 듯싶었다.

“하하, 딱 극품영석 6천 개만 내주시면 북두천성반은 수사의 것입니다.”

“성이자모반의 10배에 달하는 금액이 아닙니까! 너무 욕심을 부리시는 듯싶습니다.”

싱긋 웃는 호랑이 가면 허상을 향해 한립이 얼굴을 굳혔다.

“속세에 싼 게 비지떡이란 말이 있는 것을 모르십니까? 비싼 물건이 제 값을 하는 법입니다.”

“……금액이 비싸 바로 내드릴 수는 없겠습니다. 두 번째 거래인데 약간이라도 값을 깎아주시지요.”

“하아, 저도 그러고 싶지만 워낙 귀한 물건이라서요. 제 벗이 요즘 영석이 궁하지 않았으면 아예 팔지도 않았을 물건입니다.”

호랑이 가면 허상은 처음에는 고개를 저었지만 한립이 계속 가격을 흥정하자 극품영석 5,300개로 가격을 깎아 주었다.

“휴, 7일 내로 확실히 답을 드리지요.”

“알겠습니다.”

한숨을 쉬는 한립의 말에 호랑이 가면 사내가 웃음 지으며 사라졌다. 가면을 벗은 한립은 생각에 잠겨 있다가 저물탁에 의식을 주입했다.

종류별로 정리가 되어 있는 저물탁 안에는 요수 재료, 영초, 광석, 약간의 영석과 단약 그리고 법보, 공법 경전들이 들어 있었다.

흑풍해역을 떠날 때 안 쓰는 물건들은 대부분 영석으로 바꾸어서 지금 있는 것들은 방반의 저물탁에 있던 것들이 많았다.

극품영석이 대량 3천 2백여 개 밖에 남지 않아 북두천성반을 사려면 여러 물건을 팔아치워야 했다.

방반의 물건은 시장에 내다 팔기에는 조금 걱정이 되었지만 무상맹을 통해 거래하면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방반의 저물탁에 있는 영초와 광석 중에는 낯선 것이 많았는데 그 중 절반 정도는 여정 중에 만난 손극 덕에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선박을 타고 이동하면서 잘 모르는 물건은 손극과 대화를 하며 무엇인지 알아내고는 했다.

속도법칙 장악에 첫걸음을 뗀 진선경 중기의 수사였던 방반은 가산이 풍부해서 그의 물건들을 팔면 원하는 물건을 구하고도 영석이 남을 것이다.

저물탁에서 영초와 광석 등을 꺼내 며칠 동안 판매할 몫을 나누다가 한립의 의식이 크기가 다른 두 상자에 이르렀다.

옥돌로 만들어진 큰 옥함에는 커다란 알이 들어 있었고, 작고 기다란 함에는 푸른빛을 반짝이는 깃털이 담겨 있었다.

방반이 소중하게 보관했을 물건이라면 평범한 물건은 아닐 텐데, 손극도 무엇인지 알아보지 못했다. 아무래도 무상맹에 이것들의 정체를 알아보는 임무를 등록해야할 것 같았다.

* * *

7일 후, 밀실 안.

푸른 가면을 쓴 한립은 호랑이 가면 사내에게 연락을 취했다.

“하하, 결정을 내리셨습니까?”

“극품영석 5천 3백 개입니다. 진법원반을 갖고 계십니까?”

한립은 품에서 저물대를 꺼내 보였다.

“그럼요!”

그들은 빠르게 거래를 진행했고 한립은 새로운 진법원반 두 개를 손에 쥐게 되었다. 짙은 남색의 북두천성반은 성이자모반보다 복잡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고 7개의 점이 북두칠성 모양으로 그려져 있었다.

두 진법원반에 박힌 이성석(移星石)은 똑같이 8개인 대신 밝기가 훨씬 밝아 더욱 품질 좋은 이성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립은 진법 원반들을 흡족하게 만지작거리다 문득 얼굴이 찌푸려졌다. 새로운 전송보물을 구하긴 했지만 촉룡도에 있는 그가 흑풍해역에 있는 지기화신에게 어떻게 나머지 한쪽을 전해준단 말인가?

“왜 그러십니까?”

그걸 본 호랑이 가면 사내가 입을 열었다.

“물건은 좋습니다만, 성이자모반은 딱 한 번이라도 성능을 높일 방법이 전혀 없는 것입니까?”

“아, 북두천성반 중 하나를 성이자모반을 이용해 전송하려 하시는 군요! 그거라면 가능할 겁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간단합니다. 성이자모반에 2품 짜리 이성석을 끼워 강제로 힘을 증폭시키면 한 번이지만 전송 거리를 몇 배로 늘릴 수 있습니다. 전송이 끝나면 성이자모반은 완전히 못쓰게 되겠지만요.”

“2품이요?”

“북두천성반에 쓰인 이성석이 2품이고, 성이자모반에 쓰인 것은 1품입니다.”

호랑이 가면 사내의 설명을 들은 한립은 그 방법을 쓰기로 했다. 어차피 흑풍해역까지 물건을 옮길 수 없다면 성이자모반은 망가져도 상관없었다.

그는 바로 상대에게 여분의 2품 이성석을 구매해 두었다.

호랑이 가면 사내와 거래를 마친 한립은 하얀 알과 푸른 깃털 감정 임무를 무상맹을 통해 등록해 두고 소머리 가면을 벗었다.

곧바로 성이자모반의 이성석을 떼어내고 8개의 2품 이성석으로 교체해 술법을 펼치자 확실히 이전과는 다른 강렬한 공간파동이 느껴졌다.

호랑이 가면 사내의 조언대로 한립은 북두천성반과 여분의 이성석 절반을 꺼내들고 법결을 던졌다.

웅!

성이자모반은 더없이 밝게 빛났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뿜는 공간파동이 불안정해졌다.

펑!

진법원반은 겨우 두세 호흡을 버티다 깨져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고 동시에 북두천성반도 사라졌다. 그러나 한립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거의 전 재산을 털어서 구한 새로운 전송보물이 공간파동 속에서 망가지기라도 하면 한동안 속이 쓰릴 것이다. 그는 바로 주문을 외워 나머지 북두천성반을 발동했다.

각인된 현묘한 문양에 반짝반짝 빛이 돌고 웅! 하는 듣기 좋은 진동이 들려왔다. 진법 원반 위로 무수히 많은 하얀 점들이 뿌려진 남색 빛의 장막이 펼쳐졌다.

마치 파란 하늘에 하얀 별이 뜬 것 같았다. 남색 빛의 장막 중앙으로 검은 액체 한 덩이가 둥실 떠올랐다.

바로 중수였다.

전송과정이 빠르고 순조로워 기다릴 틈도 없었다. 한립은 그제야 마음을 푹 놓고 손을 저어 중수를 회수했다.

북두천성반은 연달아 중수 덩어리를 계속 불러왔다. 그간 지기화신이 정련 해놓고 쌓아둔 중수들을 반 시진 만에 전부 받을 수 있었다.

한립은 허리춤의 두둑한 진수대를 쓰다듬고 퍽 기분이 좋아 보였다. 작은 개울 두 개는 채울만한 양이었으니 이걸로 할 수 있는 일이 더욱 많아졌다.

꽤 많은 금액을 치렀지만 오랫동안 골치 아프던 일을 처리해 마음이 편했다.

북두천성반을 넣어둔 그는 정좌를 틀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진언화륜경 연구에 매진했고, 1부 구결을 처음부터 끝까지 수차례 음미하고 나서야 수련에 들어갔다.

시간이 쏜살처럼 지나가 세 달이 훌쩍 흘러갔다.

조각상처럼 가부좌를 튼 채로 꼼짝도 않던 한립의 몸에 은은하게 금빛이 흘렀다. 오랜만에 천천히 눈을 뜬 그의 눈에 희색이 스쳤다.

진언화륜경을 이해하기가 무척 난해했지만 직접 수련을 해보니 이렇게 순조로울 수가 없었다. 주해경에 고비라고 적혀 있는 대목도 그는 자연스럽게 수련해냈다.

처음 이런 일이 있었을 때는 우연이라 여겼지만 3개월간 막힘없이 수련을 하고 나자 의심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설마 정말 우연히 내 체질이 공법과 잘 맞는 것일까?”

주해경에 적힌 수사들의 경험에 따르면 고비마다 적게는 몇 년, 많게는 수십 수백 년 동안 수련에 진전이 없어야 했다.

무슨 특수한 이유가 없는 한 자신만 고비가 없는 것은 이상했다. 게다가 그는 수도의 길에 들어선 이래 자질이 평범하다 못해 떨어져서 수없는 고난을 이겨내며 여기까지 오지 않았던가!

하지만 어찌 되었든 수련이 잘 되어가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었다.

이 속도면 다른 수사들은 수백수천 년을 노력하고도 응결해 내지 못한 진언보륜을 몇 년 내로 얻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는 잡념을 버리고 다시 수련에 집중했다.

* * *

3년의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구름이 바람을 따라 슬슬 적하봉을 지날 때 동쪽 하늘에서 붉은 해가 떠올라 금빛 햇살을 비추었다.

적하봉은 이전과 다름없었는데 자욱하던 붉은 안개만이 많이 연해져 있었다. 산허리까지는 아직 붉은 화독이 가득했지만 그 위로는 공기가 아주 맑았다.

몽운귀 등 한립의 시종들은 해가 뜨면 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면서 산봉우리 구석구석을 청소했다.

맡은 바 책임이 분명해서 겨우 10명이지만 넓은 장원의 산허리의 수산수 동굴까지 깔끔하게 관리를 해냈다.

적하봉은 종명산맥 전체로 보면 가장 영맥이 뛰어난 곳은 아니었지만 일반적인 고운대륙 다른 산에 비하면 수련 명당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천지영기가 농후했다.

거기다 한립이 하사한 단약의 보조로 그들의 수행은 나날이 늘어갔다. 특히 몽천천은 거의 일취월장해서 몇 년 사이 축기 후기 수사가 되어 있었다.

최근 들어 기운이 왕성한 것이 금단 응결을 한걸음 앞둔 상황이었다. 애티가 많이 가신 그녀는 단정하면서도 미색이 돋보였다.

“려 장로님은 폐관수련도 오래 하시네요.”

영초밭을 정리하던 몽천천이 큰 눈으로 굳게 닫힌 동부 쪽을 바라보았다.

“선인이신 려 장로님은 백년, 천년을 폐관하셔도 이상한 일이 아니지. 왜, 금단을 앞두고 영석이나 단약이 모자라서 그래?”

몽운귀가 그 말을 듣고 누이를 살폈다.

“그런 거 아니거든요.”

“천천아, 려 장로님께서 우리를 시종으로 뽑아주신 건 엄청난 행운이야. 려 장로님이 격의 없이 대해주신다고 시종인 우리가 자신의 신분을 망각하면 안 되는 거라고.”

일을 멈춘 몽운귀가 입을 비죽이고 있는 누이를 향해 걱정스레 충고했다.

“오라버니 말씀이 맞아요.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어요.”

몽천천이 고개를 숙이고 작게 답했다.

“이건 내가 그간 모아둔 영석이야. 일단 이걸로…….”

몽운귀가 얼굴을 풀고 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무슨 말을 하려했다.

쿠쾅쾅!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소음에 적하봉 전체가 흔들려서 새들이 짹짹 날아오르고 산짐승들이 우르르 도망을 갔다.

이어서 구른 한 점 없던 푸른 하늘에 먹구름이 껴서 적하봉이 어둑해지고 천지영기들이 미친 듯이 몰려들어 영기의 소용돌이를 이루고 몰아쳤다.

소용돌이의 중심에는 뒷산의 동부가 있었다. 몽운귀와 몽천천은 갑작스런 기상현상에 놀랐지만 당황하지 않았다.

다른 시종들도 마찬가지였다.

려 장로님처럼 대단한 분이 현묘한 공법을 익히다 보면 이런 일은 다반사였다. 매달 한 번 쯤은 이런 일이 벌어져서 익숙해진지 오래였다.

그런데 먹구름을 올려다보던 몽운귀가 미간을 좁혔다. 이전에 보던 것과는 조금 달라서였다.

‘몽운귀야 몽운귀, 누이에게 한 말을 그새 잊었느냐? 려 장로님 같은 분이 하는 일을 네가 짐작하려 하다니, 시종의 본분을 다하면서 알지 말아야 할 것은 알려 하지 말고 보지 말아야 할 것은 보려 하지 않아야지!’

그는 이상하다는 생각을 지우고 청소를 계속해나갔다.

밀실 속의 한립은 전신이 타오르는 듯한 금빛에 휩싸여서 얼굴이 흐릿해져있었다.

사방팔방에서 천기영기가 흘러 들어와서 금빛은 더욱 짙어져갔고 밀실은 금빛 바다처럼 변해갔다.

강력한 영력 파동이 파도처럼 넘실댔지만 다행히 주변 금제가 그것들이 외부로 흘러나가는 것은 차단하고 있었다.

한 시진이 지나 천지영기의 흐름이 느려지고 적하봉 상공의 먹구름들도 가셔서 맑은 하늘이 드러났다. 조금 전까지 소용돌이가 치고 어둑하던 것이 환상인 것 같았다.

금빛을 모조리 흡수한 한립의 복부에 금빛점이 깜빡깜빡 거렸다. 작은 입이 호흡하는 것처럼 금빛 점은 대량의 천지영기를 빨아들이는 중이었다.

동시에 한립의 등 뒤로 웅! 하고 팔뚝 크기의 옅은 금색 고리가 떠올라 천천히 회전했다.

천지영기와 공명하는 금색 고리에서 기묘하게도 불경소리가 들려왔다.

상서로운 기운이 고리를 재빨리 휘감고 반투명한 실로 변해서 주술문자 두 개를 형성해 고리에 새겼다.

고리 위의 꿈틀거리는 두 주술문자에서 분명한 법칙파동이 느껴졌다.

천천히 눈을 뜬 한립은 자신의 몸을 살피다 금색 빛의 점을 보고 입 꼬리를 끌어올렸다.

3년의 고된 수련 끝에 드디어 첫 번째 선규를 뚫어 진정한 진선경에 한 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그의 등 뒤에 떠있는 은은한 금색 고리가 바로 진언보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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