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1559화 (1,316/2,000)
  • 1559화. 영수

    *

    포령전에서 등록도 마쳤겠다, 한립은 몽운귀 남매를 포함한 시종 열 명을 데리고 임전각에 가 전송진을 통해 자신의 동부가 있는 적하봉 근처로 이동했다.

    적하봉은 높이가 수천 장에 달하는 외딴 봉우리로 가장 가까운 임전각과도 거리가 아주 멀었다.

    한립은 봉우리에 도착하기도 전 멀리서 붉은 안개로 뒤덮인 산봉우리를 발견했는데 다른 높은 봉우리와는 달리 눈은 전혀 쌓여 있지 않고 초목이 싱그럽게 자라고 있었다.

    처음 와본 한립도 이상하게 생각해 봉우리를 살피고는 몽운귀 등 시종들에게 말했다.

    “적하봉은 주인 없이 오래 비어 있다 보니 금제진법이 망가져서, 산에 퍼져있는 화독(火毒)이 아직 수행이 낮은 너희에게 적잖은 영향을 끼칠 것이다. 다가가기 전에 청임단(淸林丹)을 하나씩 복용하거라.”

    그의 손에서 백옥 약병 하나가 몽운귀에게 날아갔다. 조심스럽게 약병을 받은 몽운귀는 안에 든 단약을 하나씩 다른 이들에게 분배했다.

    단약을 쥔 시종들은 삼키기 싫어 서로 눈치를 보고 있었다. 청임단이 한립에게는 별 것 아니었지만 결단기에서 원영기에 이를 때 큰 도움을 주는 귀한 단약이었다.

    이걸 무슨 독기를 피하기 위해 여기서 먹으라니 아까운 생각이 드는 것도 당연했다.

    “왜들 그러지? 내 말을 못 알아들은 것이냐?”

    “아닙니다, 선배님!”

    그걸 본 한립의 물음에 몽운귀가 가장 먼저 청임단을 삼켰고, 나머지 시종들도 더는 시간을 끌지 못하고 명에 따랐다.

    “넌 황령결이 화독을 배척해 줄 것이니 복용하지 않아도 된다.”

    한립은 몽천천이 단약을 삼키려 하자 말리고 말했다. 소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단약을 잘 넣어 두었다.

    “너희가 맡은 바 소임만 잘한다면 박하게 대하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동부에 이르는 대로 몽운귀가 시키는 대로 정리를 하고 있거라. 난 다른 일을 처리하고 오마.”

    “존명!”

    시종들은 이구동성으로 답하고 적하봉으로 내려갔고 한립은 홀로 임전각으로 돌아갔다.

    * * *

    환수원은 촉룡도에서 전문적으로 요수들을 길들이는 곳으로 면적이 굉장히 넓어 환수전(豢獸殿)이 위치한 산골짜기를 중심으로 방원 수십만 리가 전부 이곳 관할이었다.

    그 안에는 다양한 지형이 포함되어 있었다.

    높은 산봉우리, 드넓은 숲과 거대한 호수 그리고 습지까지 없는 것이 없어 각각의 요수들을 기르기에 적합한 환경이 조성되어 있었다.

    물론 전부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은 아니었고, 대부분이 촉룡도에서 특별히 개조하고 진법 금지로 크고 작은 지역을 구분해서 일정 수량의 영수들을 나누어 가둬두었다.

    종문에서 선발된 수사들이 전문적으로 기르는 영수들은 기본적으로 특수한 능력을 지녔다.

    이동수단을 대체하거나, 산문을 지키고, 적을 추적하며, 주인을 도와 적을 공격할 수도 있었다. 이런 연유로 적잖은 제자들이 외부로 임무를 수행하러 나가기 전에 이곳에서 임시로 영수를 빌려가고는 했다.

    오직 진전제자와 내문장로들만이 장기간 영수를 보유할 수 있는 특권이 있었다. 환수전이 있는 산골짜기 근처의 임전각은 오늘도 많은 이들이 드나들고 있었다.

    한립은 임전각에서 나와 주변을 휘 둘러보고 골짜기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광활한 광장 한쪽에 위치한 여러 건물 중 가장 큰 대전에 ‘환수원’이라는 세 글자가 적힌 편액이 걸려 있었다.

    “사형, 영수를 빌리러 오셨습니까?”

    그가 골짜기에 들어서자마자 회색 장포를 입은 청년이 다가왔다. 동그란 얼굴에 커다란 귀를 가진 청년은 무척 총명해 보였다.

    한립은 말없이 장로영패를 꺼내 보였다.

    “아, 장로님이셨군요! 제자가 무례를 범했습니다.”

    “막 동부를 얻어 수산수를 고르러 왔다.”

    손을 저은 한립은 용건을 밝혔다.

    “규정에 따르면 내문장로는 공적점을 제하지 않고 첫 영수를 받아 가실 수 있습니다. 송구하지만 제가 대인의 신분을 확인해도 될 지요?”

    동그란 얼굴의 청년이 허리를 꾸벅이며 물었고, 한립은 영패를 던져 주었다.

    길쭉한 사각형 모양에 위쪽이 뾰족한 구슬인 푸른 옥규(玉圭)를 꺼내든 청년은 주문을 왼 뒤 그것을 영패에 가져다 댔다. 푸른빛이 옥규에서 떠올라 대야 크기의 둥그런 빛의 장막을 이루었다.

    “려 장로님, 환수원에서 영수 한 마리를 고르실 자격이 있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제가 안내를 하겠습니다.”

    상대의 신분을 확인하고 공손히 영패를 돌려준 청년이 앞장서 걸어갔다.

    “환수원이 넓어서 일일이 확인을 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 텐데 다른 방식으로 둘러볼 방법이 있느냐?”

    “있습니다. 저쪽으로 가시지요.”

    한립은 청년을 따라 대전으로 들어갔다.

    내부에는 많은 제자들이 영수를 빌리려고 와있어서 소란했는데, 청년은 한립을 데리고 조용한 방으로 들어가 옥간 두 개를 꺼내왔다.

    “환수원은 외원과 내원으로 나뉘는데, 외원에는 1만 6천 3백여 종의 영수가 있고 내원에는 1천 8백여 종의 영수가 있습니다. 이 옥간에 모두 기록되어 있으니 살펴보시면 됩니다.”

    청년의 설명에 한립이 옥간을 받아 의식을 불어넣었다. 조류, 네 발 달린 짐승, 어류, 곤충 등 온갖 영수들이 다 있었다.

    처음에는 얼른 한 마리를 골라 가려고 했는데 보면 볼수록 흥미가 생겨서 목록을 열람하는 데만 반나절을 소비했다.

    동그란 얼굴 청년은 여전히 그의 곁에 서서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다 한립이 눈을 뜨자 입을 열었다.

    “선배님 원하시는 영수는 찾으셨는지요?”

    “몇 가지 관심이 가는 영수들을 보아두었다. 직접 보러 가자꾸나.”

    한립이 고개를 끄덕이며 옥간을 돌려주었다. 목록에 기록된 합체기 영수는 4, 5십여 종에 불과했다. 실력이 강한 요수일수록 굴복시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솔직히 그의 수행에 합체기 요수가 없어도 그만이었지만 공짜로 내준다니 거절하기도 아쉽고 또 견문이나 넓히자는 마음으로 온 것이었다.

    현재 그의 신분으로는 발을 들일 수 없는 구역에는 대승기, 혹은 진선급 선수(仙獸)가 갇혀 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 * *

    얼마 지나지 않아 한립과 둥근 얼굴 청년은 천리에 달하는 금빛 사막 앞에 도착했다.

    청년이 푸른 옥패를 꺼내 사막을 둘러싼 푸른 보호막에 빛을 쏘아 보내자 맑은 지저귐과 함께 사막에 거대한 돌풍이 불었다.

    노란 모래를 사방으로 튕겨대며 나타난 것은 언덕 크기의 금색 깃털을 지닌 거대 새였다.

    “려 장로님, 금시청광조(金翅靑光鳥)는 합체기 중기의 실력을 지녔고 약간이지만 진령 금시대붕조(金翅大鵬雕)의 피를 이어받아 비행속도가 무척 빠릅니다. 수산수로 부리시기에 좋은 영수이지요.”

    청년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인 한립은 거대 새를 잠깐 살피다가 인근의 원형 골짜기 쪽으로 이동했다.

    원형 골짜기에 사는 코뿔소처럼 생긴 커다란 영수는 전신에 옥으로 만들어진 듯 반짝였고 천천히 걸을 때마다 육중한 무게에 바닥이 쿵쿵! 울렸다.

    “역시 합체기 중기의 실력을 지닌 망월옥서(望月玉犀)입니다. 흙 속성 신통에 능한 것이 특징이고요.”

    한립은 거대 코뿔소 영수도 잠깐 구경하다 협소한 골짜기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곳에는 전체적으로 수사자를 닮아 긴 갈기를 지녔지만 네 발에는 매의 발톱 같은 날카로운 칼날이 달린 영수가 돌아다녔다.

    특이하게도 몸통에 붙은 두 머리가 하나는 보라색이고 나머지 하나는 적홍색이었다.

    “쌍수사응수(雙首獅鷹獸)는 합체 초기지만 뇌전과 불 속성을 동시에 지닌 영수입니다.”

    “이걸로 하지.”

    잠시 고민하다 한립은 세 번째 영수로 마음을 정했다.

    “안목이 훌륭하십니다. 쌍수사응수가 지금은 실력이 그리 강하지 않아도 잠재력은 다른 합체기 영수들보다 크다고 생각합니다.”

    둥그런 얼굴 청년은 배시시 웃으면서 말했다.

    “쌍수사응수의 본명패입니다. 영수를 부리실 때 딱히 주의하실 점은 없습니다만, 시종에게 관리를 맡기시려면 아무리 길들여진 영수라도 조심하셔야 할 것입니다.”

    한립이 별 말 없이 미소를 짓자 청년은 흑자색 옥패를 꺼내 바쳤다. 핏빛 보광을 머금은 옥패 위에 쌍수사응수의 모습이 아주 작게 떠올랐다.

    크헝.

    머리 둘 달린 영수는 네 눈으로 흑자색 옥패를 뚫어져라 보며 낮게 울부짖었다.

    “오, 엽 사형! 이 쌍수사응수가 괜찮아 보입니다.”

    그런데 골짜기 입구 쪽에서 일고여덟 명이 내려서서 하는 말이 들려왔다. 검처럼 날카롭게 쭉 뻗은 눈썹을 지닌 환수원 외문제자가 다른 내문제자들을 데리고 온 듯했다.

    우두머리로 보이는 새까만 피부의 청년은 허약해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무리 중 유일한 대승기 수사였다.

    방금 말을 한 이는 그 옆에선 보라색 머리카락의 거한으로 새까만 청년에게 잘 보이고자 노력하는 티가 났다. 새까만 청년도 쌍수사응수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군! 뇌전 혈맥을 타고나서 나와 잘 어울리겠어. 저걸로 하지.”

    환수원 외문제자인 검미(劍眉) 사내가 새까만 청년의 말을 듣고 선뜻 대답을 하려다 한립이 들고 있는 옥패를 발견하고는 얼굴을 굳혔다.

    “……엽 사형, 쌍수사응수는 아무래도 저 사형 분께서 이미 빌리신 듯합니다. 그러지 마시고 다른 곳의 영수를 둘러보시는 것이 어떨까요?”

    검미 사내는 한립의 눈치를 살피다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말했다. 새까만 청년은 인상을 찡그리고 한립을 보곤 의아한 얼굴을 했다.

    촉룡도 제자의 복색을 갖추지 않은 청년은 기운이 있는 듯 없는 듯해서 수행을 파악할 수 없었다.

    새까만 청년의 시선이 한립의 손에 들린 옥패로 향하자 곁에 있던 자발 거인이 무슨 뜻인지 알아듣고 공수를 하며 앞으로 나섰다.

    “처음 뵙는 분인 듯한데, 어느 장로 문하의 제자신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내가 누군지는 알 것 없다. 무엇이든 선후(先後)가 있는 법이니 내가 먼저 고른 쌍수사응수는 놔두고 다른 영수를 알아 보거라.”

    담담히 답한 한립은 자발 거한 무리를 상대하지 않고 동그란 얼굴의 청년 쪽으로 돌아섰다.

    “바쁘니 바로 금제를 개방해 영수를 풀어 놓거라.”

    동그란 얼굴의 청년은 새까만 청년 쪽의 눈치를 살짝 살피다가 고개를 숙이고는 푸른 옥규를 꺼내들었다.

    그걸 본 새까만 청년의 표정이 어두워지자 자발 거한은 더욱 울화가 치밀어 날카롭게 소리쳤다.

    “당신이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여기 엽풍 사형의 신분을 알기나 하고 그딴 말을 하는 겁니까! 쌍수사응수를 넘기기만 하면 대여 비용의 두 배를 보상하겠지만, 이래도 내놓지 않겠다면…….”

    “그래, 내놓지 않으면 나를 어찌할 것이냐?”

    한립은 안색 하나 바뀌지 않고 엄청난 기운을 방출해 자발 거한이 뒷말을 삼키게 했다.

    갑자기 종문 안에 새로운 진선이 등장하면 말이 나올까봐 기운을 감추고 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괜히 소란만 일으키는 것 같았다.

    쿠릉!

    그가 한 발을 내딛자 공기가 덜덜 떨리고 눈에 보이는 파문이 엽풍 일행을 향해 퍼져나갔다.

    합체기 수사들은 경악해 두려움에 떨면서 열댓 장을 밀려나고서야 간신이 멈춰 섰고, 자발 거한은 노란 옥여의 형태의 법보에서 보호막이 나와 그들보다 훨씬 덜 밀려날 수 있었다.

    대승기 수사인 새까만 청년은 치지직 거리는 소리와 함께 은색 뇌전이 떠올라 전신을 감싼 덕에 영기의 압력에 밀려나지 않은 대신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한립이 일부러 영기의 압력을 조절해 동그란 얼굴 청년은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기운이 예민한 쌍수사응수가 한립의 기운에 겁을 먹고 엎드려 발발 떨기 시작했다.

    ‘이건!’

    그런데 새까만 청년을 보는 한립의 눈빛 깊은 곳에 예기치 못한 반가움이 담겨 있었다. 아주 희미하게 해 도인의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한립은 영기의 압력을 순식간에 거두었다.

    “지, 진선…….”

    합체기 수사들은 잔뜩 겁먹은 얼굴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특히 자발 거한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가득했다. 엽풍을 믿고 호가호위(狐假虎威)를 하다가 진선에게 미움을 사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새까만 청년도 은색 뇌전을 흩어버리고 어두운 얼굴로 우두커니 서있었다. 스스로의 실력에 자신이 있다한 들 진선급이 아니라는 것은 아주 잘 알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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