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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550화 (1,307/2,000)

1550화. 새로운 대륙

*

한립은 보랏빛 구슬이 발산하는 엄청난 법칙 파동에 눈빛이 뜨거워졌다. 짐작이 맞다면 구슬은 뇌전법칙을 품고 있을 것이다.

이전에도 법칙의 힘을 함유한 재료들을 보았었지만 태비의 눈알이나 토손과 혹은 응해정도 저 구슬에 비할 수는 없었다.

거대 조개는 헤아릴 수 없는 시간동안 구슬을 품어왔을 것이다. 지켜본 바로 거대 조개는 진선경 초기, 뇌전 고래는 진선경 중기의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저 짐승들처럼 선인급이 된 영수들은 천부적 자질이 엄청나고 체내의 선령력이 동급 인족 수사보다 풍부한 경우가 많아 자신보다 높은 경지의 수사를 만나도 쉽게 밀리지 않았다.

그러니 둘 사이에서 어떻게 원하는 물건을 챙겨 무사히 떠나느냐가 관건이었다.

서서히 접근하던 한립은 거대 조개 주변의 희박한 보라색 안개를 인식하지 못하고 접촉하고 말았다.

싸움에 열중하던 거대 조개가 갑자기 몸을 돌려 조개껍데기 사이로 청록색 눈을 번득였다. 정확히 한립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거대조개 속에서 굵은 보라색 뇌전이 피할 수 없는 속도로 날아들었다.

‘들켰다!’

한립은 얼굴을 굳히고 은색 뇌전 빛으로 변해 보라색 뇌전을 피하고 눈 깜짝할 사이에 두 짐승 사이로 이동해 보라색 구슬을 잡아챘다. 사람 머리통만한 구슬이 어찌나 무거운지 순간적으로 그의 안색이 달라졌다.

괴력을 지닌 그도 그것을 들어 올릴 수 없었다. 그 모습을 보던 거대 조개와 뇌전 고래가 격노해 싸움을 멈추었다.

파칫!

보랏빛 뇌전 두 줄기와 검은 뇌전 한 줄기가 그를 향해 떨어졌다. 그 뿐만 아니라 보라색 구슬을 맴돌던 뇌전 빛도 보라색 뇌전 칼날들로 변해 그의 손을 베었다.

한립은 피하지 않고 전신에서 금빛을 방출해 금털 거원으로 변신했고 몸에 금색 비늘이 자라났다.

콰콰쾅!

보라색 뇌전과 검은색 뇌전이 사납게 금털 거원을 공격했다.

치지직!

뇌전이 떨어진 곳에 비늘 몇 개가 갈라져 피부가 약간 검게 타들어 갔지만 상처가 깊지는 않았다.

보라색 구슬을 쥔 거원의 손은 뇌전 칼날에 베어 피가 튀었다. 그러나 금털 거원은 큼지막한 손으로 보라색 구슬을 꽉 잡아 쾌속으로 물러났다.

요란한 금빛이 거원의 손바닥에서 빠져나와 보라색 구슬과 거대 조개의 연계를 차단했다.

보라색 구슬은 부들부들 떨며 뇌전빛을 번득이고 요동을 치면서 달아나려고 난리였다.

부우우!

노기를 드러낸 거대 조개가 해수면의 소용돌이 속에서 떠올라 거원을 향해 달려들었다.

반들반들한 조개껍데기의 뇌전 빛이 사라지고 한겹의 보라색 광채가 나타난 후, 그 속에서 초승달 모양의 보랏빛 두 줄기가 튀어나와 허공에 물결을 일으키면서 날아들었다.

끼익!

뇌전 고래도 거원을 향해 달려들며 입 안에 무수히 많은 검은 뇌전을 응집했다. 고래의 입이 벌어졌을 때 놀라운 기운을 발산하는 열댓 개의 거대 뇌전구슬이 날아올랐다.

금털 거원은 동공을 수축했다.

뒤쪽으로 쏘아져 나가는 그의 속도도 빨랐으나 두 마리 뇌수들의 공격도 만만치 않게 빨랐다.

거원은 당황하지 않고 등 뒤로 금룡, 채봉, 뇌붕, 청란 등 거대 법상 허상들을 불러내 체내로 흡수했다.

몸이 부풀어 올라 엄청나게 거대해진 거원은 마치 마신(魔神)처럼 변해 비늘이 자금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어마어마한 흉살기를 지닌 마신이 방출한 힘에 몰려들던 보랏빛과 검은 구슬이 멈칫했고, 거원의 손에 든 보라색 구슬은 쩡! 하는 소리와 함께 표면의 뇌전빛이 깨져나갔다.

거대 조개와 구슬의 연계가 강제로 끊긴 순간이었다. 거대 조개는 몸을 부르르 떨며 그 눈에 원한이 어렸다.

부우우!

조개는 미친 듯이 괴성을 지르며 열댓 개의 보라색 뇌전빛을 분사했다. 그러나 한립은 손바닥을 뒤집어 보라색 구슬을 넣어두고는 또 다른 손으로 검은 장도를 들었다.

방반의 후천선기였다.

쿠쿵.

눈부신 검은빛이 어린 장도의 등장에 주변 천지영기가 진동을 하며 몰려들어 영기의 소용돌이를 형성했다.

검은 장도는 빠르게 불어나 산만한 크기로 커졌다. 검은 주술문자들이 잔뜩 떠오른 거대 장도에서 강렬한 법칙 파동이 느껴졌다.

한립은 놀란 눈으로 손에 들고 있던 장도를 보았다. 방반이 사용할 때도 위력적인 보물이었지만 절대 이 정도는 아니었다.

설마 열반성체와 검은 장도의 법칙의 힘이 잘 맞는 것인가? 그는 의아해 하면서도 팔을 크게 돌려 장도로 허공을 내리찍었다.

콰아아!

용솟음치는 검은 주술문자 속에서 수백 장 길이의 검은 도광이 뿜어져 나갔다. 검은 도광은 썩은 나무를 베듯 보랏빛과 뇌전구슬을 일거에 멸했다.

그러나 거의 위력이 줄지 않은 검은 도광은 거대 조개와 뇌전 고래에 이르러서는 법칙의 힘을 극성으로 발산했다.

두 짐승은 공기가 돌덩이로 변한 듯한 묵직한 압력을 느끼고는 우뚝 멈춰 섰다.

그런 다음 거대 조개는 조개껍데기를 단단히 닫고 전신에 보라색 뇌전을 강화해 둥근 뇌전구슬처럼 변했고, 뇌전 고래는 입에서 맷돌 크기의 검은 구슬을 내뿜었다.

방대한 기운을 품은 구슬은 바람을 타고 커져 짐승의 앞을 막아섰다.

쿠아앙!

검은 초승달 도광에 베인 거대 조개와 뇌전 고래 위로 찬란한 검은 태양이 떠올랐다. 태양이 폭발하면서 일으킨 진동이 바다를 뒤흔들고 공간을 왜곡했다.

거의 실체화된 검은 파랑이 넘실넘실 퍼지면서 닿는 모든 것을 재로 만들었다. 한참이 지나 검은 파동마저 가시고 거대 조개와 뇌전 고래가 모습을 드러냈다.

보라색 뇌전이 가신 조개껍데기에는 금이 가있었고 그 사이로 남색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거대 고래는 더 처참해서 앞을 막아주던 검은 구슬에 균열이 일어 원래 크기로 돌아간 것은 물론 머리부터 꼬리까지 상처가 없는 곳이 없었다.

그러나 두 짐승의 피가 바다를 적실 때 전방의 한립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조심스럽게 조개껍데기를 열어 바깥을 엿보는 청록색 눈에는 두려움이 어려 있었다. 귀한 보물을 잃었지만 목숨보다 중한 것은 없었다.

뇌전 고래도 손상된 검은 구슬을 얼른 다시 삼키고 커다란 눈을 굴리며 주변을 경계했다.

서로 시선을 마주친 거대 짐승들은 전의를 잃고 깊은 바다로 들어가거나 다른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수천 리 밖 과해뇌주.

선실 허공에 은색 뇌전이 번득이고 한립이 나타났다. 금제로 둘러싸인 방 안에 주저앉아 검은 장도를 꺼내든 그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오늘 사용해 보니 파괴력이 현천참령검보다는 못해도 선기(仙器)라 칭하기에는 충분했다.

아직 장도와 진정으로 의식 연계를 하지 못했지만 이 정도라면 한동안 연화를 한 후에는 더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한립은 냉큼 입에서 푸른 화염을 불러내 검은 장도를 둘러싼 후 뱃속에 넣어 두었다.

빈손을 뒤집자 이번에는 머리통 크기의 보라색 구슬이 나타났다. 타원형에 가까운 옥돌 구슬이었다. 뇌전이 전혀 보이지 않는 광채가 도는 구슬 안에서 희미하게 법칙의 힘이 느껴졌다.

한립은 살짝 미간을 좁혔다. 원래는 거대 조개의 요핵(妖核)일 거라 생각했는데 그건 아닌 듯했다.

듣기로 진선이 된 요수들은 체내에 요단이 없고 보통 인족 수사와 마찬가지로 원영이 생긴다고 했다.

그리고 법칙의 힘을 깨달으면 대부분의 힘을 체내 어딘가에 모아두는데 태비의 시간법칙을 품은 눈알이 그 중 하나였다.

물론 일부는 법칙의 힘으로 체내에 따로 정화를 응결해 요핵을 형성하기도 했는데 일반 요수들과 달리 요단이 생명과 밀접하게 연관되기 보다는 천연의 보물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런 경우 진선급 요수가 지닌 요핵의 가치는 진귀하기 그지없었다. 고개를 저어 잡생각을 털어버린 그는 두 손으로 구슬을 들고 천천히 선령력을 주입했다.

보라색 구슬 표면이 미세하게 밝아진 것 외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눈썹을 끌어올린 한립은 선령력 대신 손바닥을 통해 은색 뇌전을 주입했다.

치지직!

보랏빛을 터트린 구슬 표면에 굵은 뇌전들이 떠올랐고 구슬 속에도 거미줄처럼 뇌전빛들이 모여 주술문자를 형성했다. 구슬은 분명히 강렬한 뇌전법칙의 힘을 발산하는 중이었다.

“역시…….”

한립은 희색을 드러내며 구슬 안의 뇌전 주술문자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뇌전법칙의 변화를 관찰하며 그 현묘함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이렇게 또 반년이 시나갔다.

파칫! 파치칫!

금제로 둘러싸인 방 안에서 뇌전에 싸인 보라색 구슬이 천천히 회전했다. 그 아래 눈을 감고 앉은 한립은 의식으로 구슬의 변화를 감응하고 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 눈을 뜬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손을 저어 뇌전이 사라진 보라색 구슬을 불러들였다.

반년 동안 뇌전법칙을 살펴봤지만 별 깨달음을 얻을 수 없었다.

“내가 너무 어리석었어…….”

현묘한 법칙의 힘을 장악하려면 기연과 조화가 따라야 했다. 그냥 뇌전법칙의 힘을 가진 구슬을 얻었다고 분명 뭔가를 얻어낼 수 있으리란 법은 없었다.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약간 실망스러웠다.

그나마 아예 소득이 없던 것은 아니라 뇌전의 힘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져서 뇌전을 다루는 솜씨가 한층 정교해졌다.

구슬을 옆에 내려놓은 그는 허리춤의 진수대를 훑어 중수 한 덩이를 불러냈다. 보라색 구슬을 가리키자 뇌전 한 줄기가 올라와 중수와 한 덩이가 되었다.

파치칫!

둘은 서로를 배척하면서 물빛과 보라색 뇌전 빛을 반짝였다.

한립은 서두르지 않고 수결을 맺어 그 안으로 법결을 던져 넣어 보라색 뇌전이 검은 중수를 감싸게 했다.

* * *

이틀 뒤.

주먹만 한 구슬에는 보라색 뇌전 무늬가 있었다. 평소 중수 문뢰를 보라색 뇌전으로 만들어본 결과였다.

아직 시험해 보지는 않았지만 이 자흑문뢰(紫黑紋雷)가 뇌붕의 힘으로 제련한 중수문뢰보다 위력이 셀 거란 예감이 들었다.

한립은 미소를 지으며 구슬을 거두고 창밖을 쳐다보았다.

오랜 항해 끝에 과해뇌주는 뇌폭해양 중심부를 벗어나 차츰차츰 먹구름이 옅은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 * *

3년 후.

눈 덮인 절벽이 만 장 고공에 외로이 떠있었다.

절벽 위에 위풍당당하게 선 암홍색 건물에는 금색 글자로 ‘응수도(鷹愁渡)’라 적혀 있었다.

절벽 아래에는 수만 리에 달하는 운해가 펼쳐졌고, 수십 리 간격을 두고 산봉우리 정상들이 구름을 뚫고 나와 마치 허공에 떠있는 작은 섬처럼 보였다.

고공에서 손바닥만 하게 보이던 것들이 사실은 만 장에 달하는 거대 산봉우리였던 것이다.

고운대륙의 명성이 자자한 학려산맥(鶴唳山脈)에 속하는 이 산봉우리들은 거대 산맥의 곁가지에 불과한데도 산세가 범상치 않았다.

막 해가 떠올라 운해가 금빛으로 물들었다.

서늘한 산바람이 구름을 이리저리 떠밀어 금색 파도가 일었고 바람을 타고 마치 소가 우는 것 같은 소리가 전해졌다.

운해 속에서 방대한 물체가 금빛 파도를 뚫고 서서히 응수도 방면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거대 바다거북처럼 보이는 이 방대한 물체는 네 개의 지느러미로 구름을 살살 저어가며 앞으로 전진 했다.

바다거북의 등딱지 위에는 천상의 건축가에 만들어 놓은 듯한 3층짜리 누각이 서있었다. 기둥과 대들보에 화려한 채색이 들어가고 금과 옥을 깎아 만든 화려하고 아름다운 건물이었다.

이때 거북 위에 마련된 갑판에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서서 편안한 얼굴로 운해의 풍경을 감상하고 있었다.

거북 머리와 가까운 곳에 선 평범한 체구의 청의(靑衣) 사내는 거북 등딱지 문양이 새겨진 난간에 손을 얹고 멀리 응수도 방면을 바라보았다.

머나먼 황란대륙에서 바다를 건너 새로운 대륙에 이른 한립이었다. 과해뇌주를 타고오며 알게 된 손극은 고운대륙에 내린 후 헤어져 제 갈 길을 갔다.

지금 그가 타고 있는 거대 거북은 행운원(行雲黿)으로 성질이 온순하고 굴복시키기 쉬운 대형 비행 영수라 대량의 물자와 사람들을 싣고 이동해야 하는 대형 상회가 장거리 운송에 이용하곤 했다.

드넓은 고운대륙도 곳곳에 전송진이 있는 것은 아니라서 한립은 바로 여비를 지불하고 행운원에 앉아 순조롭게 촉룡도가 있는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행운원은 긴 울음소리를 내며 등딱지 옆면을 응수도 입구에 대고 움직임을 멈췄다.

행운원이 실어 나르는 배를 일컫는 행운원주(行雲黿舟)의 관사가 사람을 시켜 나무 계단을 고공의 절벽으로 내려 보냈고, 승객들은 그것을 밟고 천천히 내릴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을 따라 절벽 쪽으로 내려간 한립은 고개를 돌리는 곳마다 높은 산봉우리들이 비죽비죽 운해를 뚫고 나온 것을 보았다.

지도에 따르면 고운대륙 가장자리를 벗어난 이곳은 중심부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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