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1548화 (1,305/2,000)
  • 1548화. 과해뇌주(跨海雷舟)

    *

    뇌명성(雷鳴城)은 황란대륙 동쪽 끝 해안에 위치해 있어서 조금만 더 가면 북한선역에서 가장 유명한 뇌폭해양(雷暴海洋)에 이를 수 있었다.

    굉장히 규모가 큰 인근 해안 지대의 중심부이자 뇌폭해양을 건너 다른 대륙으로 가려는 고계 수사들이 구름처럼 모여드는 장소였다.

    이런 지리적 이점 때문에 황란대륙 제일은 아니어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번화한 성이었다.

    뇌폭해양 때문에 성의 하늘은 늘 먹구름이 가득했고 수시로 굵은 벼락이 내리쳤다. 그래서 성안에는 일정 간격을 두고 어두운 보랏빛의 거목이 심어져 있었다.

    이파리와 줄기에 뇌전 무늬가 있는 거목이 울창하게 자라나 보라색 우산처럼 섬을 가려주었다.

    극뢰수(亟雷樹)라 불리는 보라색 거목이 뇌전의 힘을 끌어당겨 축적하는 덕에 성 안은 안전했다. 안 그랬으면 뇌폭해양에서 인접한 뇌명성은 진작 사라지고 없었을 것이다.

    극뢰수가 축적한 뇌전의 힘을 뇌전 빛으로 전환해 하루 종일 빛을 발산해서 뇌명성 안에서는 밤낮의 구분이 없었다.

    성 중앙, 보라색 거탑에서 십여 개의 전송진이 반짝이고 각각 한 무리의 사람들이 전송되어 왔다.

    거탑 1층은 아주 넓어서 수 백 명이 동시에 나타났는데도 북적이는 느낌도 없었다. 그 중에 누런 얼굴을 한 중년인이 바로 외모를 바꾼 한립이었다.

    사람들을 따라 거탑을 나선 한립은 드넓은 거리를 보고 길게 숨을 내쉬었다.

    몇 달간 여러 성을 거치며 걸음을 재촉한 끝에 도착한 뇌명성이었다.

    이제 뇌폭해양만 건너면 촉룡도가 위치한 고운대륙으로 갈 수 있었다. 극뢰수가 가리고 있는 데도 위쪽에서 수시로 천둥소리가 콰르릉 울렸다.

    길을 거니는 사람들은 일상인 듯 신경 쓰지 않았고, 이제 막 뇌명성에 도착한 이들만이 깜짝 놀라 고개를 쳐들었다.

    한립은 천둥소리에 놀랄 만큼 심약하지는 않았지만 하얀 뇌전 빛을 발하는 거목만은 눈여겨 봐두었다.

    이때 젊은 목소리가 그의 귓가에 울렸다.

    “선배님, 뇌명성에는 처음이신 듯합니다.”

    전음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리자 순박하게 생긴 청년이 그를 향해 공수를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가 대답이 없자 청년은 계속해서 전음을 보냈다.

    “저는 고삼명이라 합니다. 성 안의 길이 워낙 복잡해서 일을 보시기 불편하실 테니 원하시는 물건이나 가고 싶은 장소가 있으시면 소인이 도와드리겠습니다.”

    “길잡이인가? 잘 됐군. 그럼 어디 안전하게 뇌폭해양을 건널 수 있는 방법부터 말해 보거라.”

    한립은 무표정하게 입을 열었다.

    “아……. 뇌폭해양을 건너시려 하십니까?”

    순박하게 생긴 청년이 멈칫했다.

    “왜 그러지?”

    “아닙니다, 아니에요. 뇌폭해양을 건너시려는 것이면 저를 잘 만나셨습니다. 수행은 낮아도 흑우상회(黑羽商會)에서 일했었거든요. 뇌폭해양을 건너는 안전한 방법은 오직 흑우상회의 과해뇌주(跨海雷舟)를 타는 것뿐입니다. 소인이 알기로 두 달여 뒤에 과해뇌주 한 척이 출항하는데 아직 자리가 남아 있을 겁니다.”

    청년은 한립을 유람이나 하는 수사라 생각했던 터라 놀란 기색을 감추고 말을 돌렸다.

    “과해뇌주?”

    “아, 소인의 실수입니다. 뇌명성은 처음이실 테니 이곳 상황을 잘 모르시는 것도 당연하지요.”

    “괜찮으니 과해뇌주에 대해서나 상세히 말해 보거라. 내가 만족할만한 대답을 주면 후하게 값을 치를 것이다.”

    오는 길에 알음알음 뇌폭해양에 대해 주워들어 과해뇌주가 비범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현지에 온 김에 상세한 정보를 알고 싶었다.

    “예! 과해뇌주는 뇌폭해양을 지나기 위해 특수하게 제작된 비행 선박입니다. 무시무시한 뇌전으로 충만한 뇌폭해양은 수시로 구천뇌겁과도 비견되는 거대한 뇌전폭풍이 몰아치지요.

    평범한 비행 법기는 진입하자마자 뇌전의 힘에 산산조각이 나지만 과해뇌주는 제작하는데 쓰인 재료들이 뇌전에 내성을 지니고 있고, 겉면에는 극뢰수에서 추출한 수액을 발라 뇌폭에도 전혀 상하지 않고 안전하게 뇌폭해양을…….”

    후한 값이란 말을 들은 청년은 만면에 웃음 짓고 줄줄 아는 내용을 설명했다.

    “과해뇌주를 타려면 비용이 얼마나 들지?”

    “가장 안전한 방법이라 비용도 저렴하지는 않습니다. 극품영석이 500개나 필요하지요.”

    한립의 물음에 청년은 다섯 손가락을 펼치며 슬쩍 그의 눈치를 살폈다.

    “안내하거라!”

    “예, 저만 따라오시면 됩니다.”

    덤덤한 한립의 답에 순박한 청년은 쾌재를 불렀다. 상대가 선박에 타기로 결정만 하면 그는 상회에서 따로 적잖은 호객 수당을 챙길 수 있었다.

    * * *

    세 달 뒤.

    연한 보랏빛이 도는 새까만 해수면이 끝없이 펼쳐진 해역은 바람이 불지 않아도 파도가 출렁였고 바람이 불면 성난 파도가 말 떼처럼 해수면을 내달렸다.

    하늘의 먹구름 층은 어찌나 두꺼운 지 아주 낮은 곳까지 드리워져 있어서 파도가 거의 닿을 것 같았다.

    먹구름 속에서 시시때때로 굵직한 뇌전이 떨어져 번개가 번쩍번쩍 거리고 콰르릉 하는 천둥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세상의 종말이 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을 정도의 광경이었다. 이곳이 바로 북한선역에서 악명이 자자한 뇌폭해양 이었다.

    쿠르릉!

    또 굵은 뇌전이 어둠을 가르고 해수면으로 떨어졌다. 멀리 먹구름 아래서 흑자색 거대 선박이 더없이 빠른 속도로 날아드는 중이었다.

    길이가 수백 장에 이르고 높이는 십여 장인 거대 선박이 먹구름과 해수면 사이에서 파도를 뚫고 전진했다. 언뜻 보면 평범한 목재로 만들어진 것 같았지만 선박의 목재는 범상치 않은 재료였다.

    금속성의 질감을 내는데다 무척 견고했다.

    보라색 주술문자가 빼곡하게 각인된 선체에는 특이하게 반짝이는 얇은 막이 발라져 있었다.

    선박이 최대한 저공비행을 했는데도 먹구름은 여전히 뇌전을 뿜었는데 그 얇은 막이 바르르 떨며 뇌전을 다 튕겨냈다.

    선박은 승객들을 위한 독립된 선실이 있었고, 각 선실에는 외부로 창문이 나 있어 바깥을 바라볼 수 있게 되어있었다.

    “뇌폭해양의 엄청난 뇌전이 절경이라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직접 와서 보니 과연 명불허전입니다!”

    선실 중 하나에서 말쑥하게 생긴 통통한 청년이 창가에 서서 감탄을 했다. 청년 뒤에 있던 누런 얼굴의 중년인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다가 그 말을 듣고 창밖으로 시선을 주었다.

    “보기 드문 광경이기는 하군요.”

    중년인의 정체는 한립이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려 형은 모르시겠지만 저는 도처에 산 밖에 없는 곳에서 자랐습니다. 게다가 기후도 건조해서 한바탕 비가 쏟아지는 것도 몇 번 못 봤지요.”

    통통한 청년의 들뜬 모습에 한립은 그저 웃고 말았다.

    연허기 수행을 지닌 청년의 이름은 손극으로 그가 말하기로 황란대륙에서 꽤 실력이 있는 세가의 소주(少主)라고 했다.

    두 사람은 약 한 달 전에 만나 알게 된 사이였다.

    뇌명성 인근의 한적한 객잔에서 머물고 있는데, 과해뇌주가 출항하기 전날 누군가 같은 객잔에 묵고 있던 손극을 살해하려는 것을 목격했다.

    원래는 괜한 일에 나서지 않는 성격이었지만 합체기 수행을 지닌 추격자는 증거를 남기지 않으려 객잔의 나머지 손님들도 전부 죽일 작정이었다.

    그걸 본 한립은 그 자리에서 추격자를 죽여 버렸다.

    이에 손극은 한립이 목숨을 살려준 것에 감격해하며 이튿날 선박에서 만나자마자 ‘생명의 은인’ 이라며 허물없이 다가왔다.

    경험을 쌓기 위해 가문을 나섰다는 그는 죽은 추격자가 자기 가문의 장로라고 했다. 원래 자신을 보호하라는 명을 받은 장로가 배다른 형제의 사주를 받아 쥐도 새도 모르게 그를 암살하려 했다는 것이다.

    다행히 그가 일찍 눈치를 챘고 심복 몇 명이 죽기 살기로 그를 보호해 여기까지 오기는 했는데, 도중에 들은 바로는 가문에 변고가 생겨 당장은 돌아갈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비바람을 피할 겸 아예 황란대륙을 떠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몇 마디 나누다 보니 평소 각종 잡학과 야사(野史)에 관한 경전과 옥간을 두루 읽었다는 청년의 견문이 퍽 풍부했고 한립은 같은 배를 탄 김에 그와 동행하기로 결정했다.

    선계로 돌아와 장기간 폐쇄적인 흑풍해역에만 머물러 있느라 바깥 세상에 대한 상식이 아직 부족했다.

    그에 반해 손극은 거의 경전을 통째로 씹어 먹은 듯 온갖 잡다한 이야기를 알고 있었고, 이야기하는 것도 좋아했다.

    안타깝게도 가문에 있을 때는 제대로 귀 기울여 주는 사람이 없었는데 한립이 배움을 청하니 그의 가려운 부분을 제대로 긁어준 것과 다름없었다.

    안 그래도 목숨을 구해준 것에 고마워하던 그는 한립에 대한 호감이 대폭 높아졌다.

    “뇌폭해양은 안으로 들어갈수록 뇌전도 강렬해 진다던데 벌써 저렇게 강력한 뇌전이 떨어지니 과해뇌주가 끝까지 버틸지 모르겠습니다.”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려 형! 과해뇌주는 십만 년 된 극뢰수로 제작이 된데다 표면에 발라둔 뇌액(雷液)은 적어도 이십만 년 이상 된 극뢰수의 수액을 사용해 제련한 것이니까요.”

    “손 형께서 과해뇌주의 제련법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고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자신 있게 대답하는 손극을 보고 한립이 칭찬을 했다.

    “과찬이십니다. 흑우상회와 저희 가문은 관계가 깊은 편이라 서요. 휴우, 그나저나 언제 다시 가문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가문 이야기가 나오자 손극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한립은 말없이 일어나 창가에 서서 바깥을 바라보았다.

    금제를 사이에 두고도 바깥의 강렬한 뇌전 기운이 체내의 뇌붕혈맥과 공명하고 있었다.

    뇌폭해역은 아주 위험한 곳이었지만 그처럼 뇌전 속성 공법을 수련한 이에게는 보물섬이기도 했다.

    뇌폭해양의 뇌전은 간단하지가 않았다. 이곳에 들어선 순간 한립은 공간압력이 증가한 것을 느꼈다.

    선계는 천기영기가 농후하고 공간압력이 커서 그의 둔술과 의식 감응 범위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했다.

    뇌폭해양은 다른 지역보다 공간압력이 몇 배는 되는 것 같았다.

    “손 형도 이곳의 공간압력을 느끼셨을 겁니다. 어째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지 아십니까?”

    “그건 저도 궁금해서 원인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명확한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누군가는 이전에 도조급 실력자 두 명이 이곳에서 전투를 벌여 이런 결과를 초래했다고도 하고, 또 다른 이들은 뇌폭해역에 방대한 뇌수(雷獸)가 살고 있다고도 하니까요.”

    손극은 조금 멋쩍은 듯 고개를 저었다.

    “하하, 손 형이 모르는 것도 다 있군요.”

    한립은 미소를 지으며 더는 질문하지 않았다. 이에 손극은 바깥에서 시선을 떼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그가 돌아가자 한립은 방 안의 금제를 발동하고 성이자모반을 꺼내 법결을 던져 넣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검은 진법 원반을 거둔 한립은 달걀 크기의 중수 한 덩이를 들고 쓴웃음을 머금었다.

    성이자모반의 전송 능력은 뇌폭해역에 들어선 뒤 대폭 감소했다.

    고개를 저은 그는 중수를 넣어두고 두꺼운 경전을 꺼내 넘겨보기 시작했다. 뇌폭해양은 무척 넓어서 적어도 2, 3년은 지나야 벗어날 수 있었다.

    시간이 흘러 반년이 지났을 때 과해뇌주는 점점 뇌폭해양 심처로 들어가고 있었다.

    창가에 선 한립은 바깥의 먹구름에서 굵은 뇌전 뱀들이 연달아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대부분 뇌전 뱀들은 먹구름 안에서 꿈틀거리고 그나마 떨어지는 것은 일부에 불과했다.

    면적이 큰 선박은 수시로 뇌전을 맞았는데 이전보다 강한 타격에 부들부들 떨리기는 했지만 뇌막은 깨지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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