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4화. 반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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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색 빛들은 손바닥 크기의 작은 진법 깃발 혹은 원반으로 변해 심해에서 주술문자를 뿜어냈다.
주술문자들이 크고 작은 진법들을 형성해 심해 속을 빙글빙글 회전하기 시작했다.
한립의 열손가락에서 푸른빛의 투명한 실들이 뻗어나가 진법 속으로 숨어들었다.
반 시진 만에 여러 주술문자 진법들이 사라지고 한립도 은색 뇌전진법을 이용해 그곳을 떠났다.
20, 30만 리 밖으로 이동한 한립은 아직도 적홍색 바다 위였다.
그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방반과 금포 노인이 푸른빛을 두르고 빠르게 날아가고 있었다.
금색 나침반을 든 노인은 한 손으로 수결을 맺어가며 주문을 외웠다.
잠시 후 비술로 감응을 마친 금포 노인은 현재 한립의 위치를 확인했다.
“휴, 또 이동을 했구만.”
“어느 방향입니까?”
“동북쪽일세! 이번에는 그래도 거리가 멀지 않아 30만 리를 벗어나지 못했어.”
“잘 됐습니다. 슬슬 기력이 달리나 봅니다.”
방반은 눈을 반짝이며 동북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대략 두 시진 후에는 멀리서 한립의 뒷모습을 볼 수 있었다.
콰릉.
창백한 얼굴의 한립은 뒤를 돌아보더니 허겁지겁 수결을 맺어 뇌전진법을 형성하고 번득 사라졌다.
채 20만 리도 벗어나지 못할 만큼 전송거리가 짧았다. 이에 방반은 희색이 가득한 얼굴로 단약을 삼켜 선령력을 회복하고는 더욱 속도를 높였다.
한 시진 뒤, 방반은 또 한립을 따라잡았다.
한립은 속도를 더욱 높였지만 그들의 거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좁아졌다.
파치칙!
이때 한립의 몸에서 은색 뇌전이 떠올랐다. 방반은 두 달 넘게 끌어온 추격전을 계속할 인내심이 남지 않았다.
“봉 형, 어서요!”
청년의 손바닥에서 주술문자를 품은 푸른빛이 날아가 금포 노인에게 흘러들어갔다.
푸른 고리에 둘러싸인 노인은 번득 천리 밖 한립 근처로 이동해 진작 불러낸 핏빛 화염으로 일대에 핏빛을 퍼트렸다.
한립이 뇌진을 발동하기 전에 붙들어 두기 위해서였다. 새하얀 장도를 쥔 방반은 농염한 푸른빛을 일으켜 이전보다 두 배는 빠른 속도로 쏘아져나갔다.
바로 그때, 핏빛 속 한립이 뇌전이 가장 왕성할 때 진법을 형성하는 대신 빙글 돌아 거목 크기의 은색 뇌붕으로 변신했다.
굵직한 은색 뇌전에 둘러싸인 뇌붕은 두 날개를 펄럭여 사라졌다가 천 리 밖에서 나타났다.
“흥, 그런 수작을 부린다고 달아날 수 있을 듯싶으냐!”
방반이 코웃음을 치며 장포 노인 봉겸지 옆으로 가 그를 붙들고 모호한 푸른빛으로 변해 천 리를 이동했다.
뇌붕은 날개를 펄럭여 은빛 뇌전 속에서 또 천 리를 나아갔다. 방반과 봉겸지가 변한 푸른 환영도 거머리처럼 신속하게 그 뒤를 쫓았다.
뇌붕은 뇌둔술을 펼쳐 매번 방반과 아주 근소한 격차를 두고 앞서나가고 있었다.
은빛이 번득이고 푸른 환영이 뒤따르는 일이 바다 위에서 수차례 반복되었다.
푸른 환영은 밝기가 처음과 비슷했는데 뇌붕의 은색 뇌전은 빠르게 어둑해져갔다.
은색 뇌전이 마지막으로 번득인 뒤, 뇌붕은 어느 적홍색 섬 인근에 다다랐다.
뇌전이 부족해 더는 뇌둔술을 펼칠 수 없는지 뇌붕은 한줄기 은빛으로 변해 날아갔다.
은빛이 아무리 속도를 내도 뇌둔술을 쓸 때보다는 훨씬 느렸다.
푸른 환영 속 방반은 웃음을 흘리며 바짝 그 뒤를 따라갔다.
“잠깐…….”
그런데 전방의 해역을 본 봉겸지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의 말이 끝나기 전에 뇌붕에 시선을 빼앗긴 방반은 푸른빛을 더욱 강하게 일으켜 노인을 데리고 상대의 백여 장 뒤까지 거리를 좁혔다.
화앗!
수중에 든 장도에서 겹겹이 도광이 방출되어 뇌붕을 가르려는데, 갑자기 눈앞이 확 밝아지고 주변 풍경이 달라졌다.
뇌붕은 온데 간 데 없고 그들은 어느새 남색 공간 안에 떠있었다.
남색 공간에 들어선 방반은 아래쪽에서 강력한 흡인력이 소용돌이치는 통에 이동 속도가 급격히 느려졌다.
그는 금색 장포의 봉 노인을 두고 흐릿한 잔영으로 변해 전방으로 쏘아져나갔다.
쾅!
천 장 밖 허공에서 기이한 파문과 함께 물빛 장벽이 나타나 그와 충돌했다. 방반은 검은 장도를 불러내 장벽을 향해 커다란 도광을 날렸다.
쿠쾅!
장벽의 물빛이 요란하게 번득이다 쩍! 하고 기다란 균열이 생겼다. 방반이 끝장을 보려 장도를 들어 올리는데 물빛이 촤르륵 흐른 장벽이 복구되었다.
뒤늦게 그의 곁으로 온 봉 노인의 이마에 주름이 깊어졌다.
“고계 물 속성 금제진법일세! 만 리 해역의 물의 힘을 모아 끊임없이 진법을 보수해서 견고하기로 유명하지. 무력으로 강제로 깨기는 어려울 것이야.”
“빌어먹을 자식이 3백 년 전보다 더 지긋지긋하게 버티는 군요!”
표정이 서늘해진 방반은 부득부득 이를 갈았다.
“그래도 뇌전의 힘이 다해 어쩔 수 없이 궁여지책으로 진법을 설치해 시간을 끄는 것 같으니 이곳을 벗어나기만 하면 따라잡는 것은 시간문제일 걸세.”
“그럼 봉 형만 믿고 있겠습니다.”
봉겸지의 말에 방반이 고개를 끄덕였다.
남색 공간의 중앙으로 되돌아간 봉겸지는 두 손으로 수결을 맺고 중얼중얼 주문을 외웠다.
그의 몸에서 핏빛 화염이 화륵 타올랐다.
파칫!
아무도 예상치 못한 그때, 노인의 머리 위에서 은색 뇌전 빛과 함께 한립이 나타나 기습 공격을 가했다.
뇌전의 힘을 많이 소모하기는 했지만 솔직히 꺼져가는 등불 같은 상황은 아니었다.
고의로 뇌전의 힘이 다한 척해 청년과 노인이 최선을 다해 그를 따라잡도록 유도한 것이었다.
그는 한 손으로 수결을 맺고 다른 손으로는 진수대를 집어 들었다.
주머니 입구에서 검은 중수가 꿀렁꿀렁 흘러나와 검은 교룡이 되어 금포 노인에게 달려들었다.
바위산만큼 묵직한 중수 교룡이 구불구불 움직일 때마다 허공은 막대한 압력에 진동했다.
노인은 비술이 중간에 방해를 받자 정혈은 정혈대로 날리고 반서를 당해 중상을 입고 말았다.
그는 다급히 의식과 연결된 검푸른 고대 갑옷을 걸치고는 방반을 향해 소리쳤다.
“방 아우, 날 좀 도와…….”
그의 말이 끝나기 전에 방반의 분신 중 하나가 들고 있던 검은 장도를 날렸고, 나머지 두 분신은 허상들을 만들어 한립을 향해 몰려갔다.
한립은 방반의 공격을 무시하고 중수 교룡을 재촉해 봉 노인을 공격하는데 몰두했다.
중수문뢰를 제련할 때 아주 소량의 중수를 미세 조종하던 것과 달리 개울물 절반에 상당하는 중수를 조종하려면 더 많은 선령력과 의식 집중을 필요로 했다.
방반의 검은 장도와 닿은 중수 교룡은 퉁! 하고 둔탁한 충돌음을 내며 장도를 그냥 집어삼켜버렸다.
홱 고개를 처든 교룡은 거칠 것 없이 봉 노인이 들어있는 핏빛 태양 속으로 날아 들어갔다.
쿠앙!
핏빛이 흩어진 노인은 추락하기 시작했고 대신 고대 갑옷이 검푸른 주술문자들을 비처럼 날려 중수 교룡을 공격했다.
푸푸푸푸푹!
검푸른 주술문자에 둘러싸인 중수 교룡의 몸이 퍽하고 터져 흩어졌다.
그걸 본 한립은 뜻 모를 미소를 남기고 뇌전 빛을 번득여 코앞까지 온 방반 분신을 피해 뒤로 물러났다.
방반은 순간 불길한 예감이 들어 세 분신을 동시에 남색 공간 외곽으로 이동시켰다.
흩어지던 중수 교룡의 몸에서 아무 조짐도 없이 스무 개 정도의 검은 구슬이 빠져나와 둥실 떠올랐다.
영력 파동이 느껴지지 않아 아무것도 대비할 수 없었다.
남은 중수들은 한립 쪽으로 신속히 날아들어 종적을 감추었고, 밝은 은색 문양을 빛낸 구슬들은 세밀한 은빛 뇌전을 번득이고 있었다.
봉겸지는 뇌전 빛을 반짝이는 구슬의 등장에 가슴이 철렁했다.
노인은 재빨리 머리를 굴려 다급히 일고여덟 개의 보호 법보들을 발동해 보호막을 겹겹이 쌓아갔다.
콰르르릉! 콰릉! 콰르릉!
경천동지할 폭음을 시작으로 연쇄 폭발이 일어났다. 이십여 개의 중수문뢰가 폭죽처럼 터지고 있었다.
은색 뇌전들은 둥그런 띠를 이루어 천 장 밖까지 확산되었다.
그 한가운데 위치한 봉겸지의 갑옷에서 주술문자들이 빼곡히 피어올랐다가 순식간에 소멸되고 노인은 다른 보호 법보들과 같이 검은 태양에 매몰되었다.
산만한 파도처럼 기운의 파랑이 퍼져 허공에 섬뜩한 검은 균열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아래쪽 적홍색 해수면은 충격에 파도가 치다 못해 바닷물이 끓어올라 붉은 수증기가 자욱했다.
엄청난 압력에 바닷물이 밀려 거대한 구덩이가 만들어졌고, 그 주위로는 하늘 높이 치솟은 붉은 파도가 발생했다.
그러나 질식할 것 같은 폭발의 여파도 시간이 지나자 점차 약해져갔다.
진동하던 허공이 안정을 되찾고, 작은 섬은 초라한 암초 몇 개만 남기고 가라앉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
암초 중 한 곳에 봉 노인이 선혈이 낭자한 모습으로 쓰러져 있었다.
고대 갑옷은 산산조각이 나고 나머지 방어 법보들도 잔해만 남아 있었는데 노인은 중상을 입었지만 아직 숨은 붙어 있었다.
천장 밖에 나타난 한립은 해역을 훑다 노인을 찾아냈다. 봉 노인도 고개를 들고 악에 받친 눈빛을 보내는 중이었다.
그 모습에 한립은 비웃으며 아래로 내려가려는데, 주위에 방반과 똑같이 생긴 다섯 허상이 나타나 장도를 내리쳤다.
검은 도광들이 진짜인 듯 아닌 듯 겹쳐져 그의 심장을 찌르려 했다. 한립은 방향을 틀지 않고 그대로 하강하는 속도를 높였다.
서걱!
도광은 그의 오른쪽 등을 갈라 진극막이 찢어지고 피가 튀었다. 뼈가 드러날 만큼 깊은 상처가 생겨났다.
한립은 괴력으로 튕겨나가는 김에 봉 노인을 향해 더 빨리 접근해 손에서 용 눈알 크기의 구슬을 떨구었다.
머리 위로 떨어지는 구슬을 본 봉 노인는 미칠 노릇이었다. 쓸 만한 방어 법보는 죄다 파손 당했고 중상까지 입어 제때 피할 수 없었다.
봉 노인은 구슬에 뇌전 빛이 어린 것을 보고는 한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내리쳐 두개골에서 금빛을 빠져나가게 했다.
금색 소인이 튀어 올라 순간이동을 해 달아났다.
콰르르릉!
뒤이어 하늘을 울리는 폭음이 작열했다.
한립이 막대한 대가를 치르고 낙찰 받은 중수뇌주가 아무런 기척도 없이 날아가 폭발한 것이다.
높은 산봉우리처럼 거대한 검은 태양이 떠올라 수백여 장의 청자색 뇌전 수백 줄기를 뿜어냈다. 사람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법칙의 힘이 어린 뇌전들이었다.
파치치치칙!
광범위한 구역을 사정없이 때린 청자색 뇌전 채찍에 맞아 봉 노인의 육신은 물론 원영인 금색 소인마저 재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 이때 재가 된 봉 노인의 육신 뒤에서 푸른빛이 불쑥 튀어나와 순간이동을 하듯 멀리 폭발 범위 밖에 있는 한립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이런…….’
방반은 한립이 봉겸지를 죽일 동안 거리를 벌리는 것이 아니라 어느새 새까만 주술문자가 맴도는 검은 사슬을 불러내 그를 향해 접근하고 있었다.
쿠아앙!
그 뒤로 거대한 검은 태양이 터져 검은 안개가 신속히 퍼져나갔다.
한립과 방반은 검은 안개가 닿지 않는 곳까지 이동해 있었음에도 믿기 어려운 강력한 충격파에 영향을 받아 휘청거려야 했다.
방반은 몸 주위의 푸른빛을 북돋으며 여러 번 허공을 박차 자세를 바로 한 다음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한립을 따라 잡기 직전이었다.
쉭!
그의 손에서 검은 사슬이 날아가 한립의 아랫배로 향했다.
한립은 피하기에 너무 늦었다는 것을 알고는 긴장한 얼굴로 정혈 수 모금을 내뱉어 대량의 핏빛 안개를 만들어냈다.
검은 사슬이 핏빛 안개 속으로 들어선 순간, 그 안에서 핏빛 그림자가 튀어나와 번득 천리 밖으로 이동했다.
핏빛 안개가 흩어진 자리에는 한립도, 검은 사슬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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