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3화. 중수뇌주(重水雷珠)
*
고계 진선 공법 중에서도 위력이 뛰어난 뇌전 속성 공법이라는 말이 여러 수사들의 관심을 끌었다.
흑풍해역에서는 지선도 많았지만 산선은 더욱 널렸고 어딜 가나 부족한 것이 고계 수련 공법이었다.
수련 조건을 듣자 적잖은 이들이 실망스런 기색을 비쳤지만 반대로 몇몇은 눈빛이 더 뜨거워졌다.
수련 공법이 필요하던 한립도 낙찰을 고려하다 수련 조건을 듣고 아쉽지만 고개를 저었다.
“510개.”
“520!”
“극품영석 580개.”
한립이 나서지 않아도 치열한 경쟁으로 공법의 가격은 금방 극품영석 700개에 이르렀다.
“800개!”
3층 독실 중 하나에서 나른한 목소리가 단번에 극품영석 100개를 올렸다. 아까 600개를 불렀던 2층의 중년 유생이 움찔하다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
“전 극품영석 850개를 내놓지요!”
“900개!”
나른한 목소리가 성가시다는 듯 바로 또 가격을 올렸다. 누군가 경쟁하기를 원한다면 극품영석 천 개를 내도 상관없다는 태도였다.
그걸 본 한립은 입이 벌어졌다.
청우도 산선 두 명과 소산삼살이 지니고 있던 금품영석과 도주에게 받은 보상까지 합해도 그의 전 재산은 극품영석 천 개 정도였다.
한립은 모설에게 이번 경매에 대해 알아보라고 하였고, 그가 얻은 정보에 의하면 자신이 원하는 물건이 필시 나올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다.
그의 수중에 있는 자산으로 원하는 물건을 여유 있게 낙찰 받을 수 있을 거라 판단했는데 이제 보니 우물 안 개구리마냥 이곳 물정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오랜 세월 수련만 해 온 늙은이들의 가산은 물론 그들의 씀씀이는 그의 예상을 초월했다.
나른한 목소리가 900을 부른 후, 2층의 중년 유생은 달갑지 않은 티를 팍팍 내며 포기했다.
자소정뢰결의 출현을 분수령(分水嶺)으로 경매 분위기가 무척 고조되었다.
다음에 나온 경매품은 자소정뢰결보다 못했는데도 열기에 사로잡힌 이들이 앞 다투어 가격을 올렸다.
그 다음 경매품은 어두운 금색의 망치였다.
사람 머리통만한 팔각형 망치는 보기만 해도 거산에 압도당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했다.
“이번 보물은 후천선기, 경산추(擎山錘)입니다. 만년 동정(銅晶)을 현금한철(玄金寒鐵)과 혼합해 주조한 금속성 법칙의 힘을 함유한 보물이지요. 날카로운 기운을 품고 있어 한 방에 산을 흔들고 강을 가르는 위력을 발휘합니다! 이 보물은 너무 무거운 탓에 보통 수사들은 자유롭게 다루기 어렵다는 점을 참고해 주십시오. 그럼 시작 경매가 600개, 10개씩 가격을 올릴 수 있습니다!”
온화의 선포에 한립이 주먹을 단단히 쥐었다. 이게 바로 그가 낙찰 받기로 작정한 후천선기였다.
청죽봉운검 등 보물을 되찾는 일이 얼마나 위험할지 모르니 쓸 만한 보물 한두 개는 확보를 해놓아야 했다. 경산추가 함유한 금속 속성 법칙을 발동하지 못해도 현선인 그에게 무척 잘 맞는 무기였다.
“610개!”
“620개!”
“660!”
사용하려면 그만큼 힘에 세야 하는 무기인데도 경산추를 눈독 들이는 이가 한둘이 아니었다. 한립이 입을 떼기도 전에 가격이 극품영석 700개까지 치솟았다.
“900!”
한립은 주저 없이 200개를 올렸다. 야금야금 최고가를 올리다가는 군중 심리에 휩쓸려 가격이 얼마나 오를지 알 수 없었다.
놀란 주변 수사들이 분분히 그를 보았다.
“1000!”
3층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디서 나타난 늙은이 인지 목소리가 노쇠했다.
한립의 눈빛이 흔들렸다. 하지만 그는 영석 말고 저당 잡힐 보물도 준비를 해왔고 그중 가장 귀한 것은 3만 년 된 농익은 탄혼화였다.
“1200개!”
한립이 아직 가격을 올리지 않았는데 또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아까 들었던 나른한 목소리가 200을 올린 것이다.
“1500!”
노쇠한 목소리가 코웃음을 치고 놀랍게도 단번에 300을 올렸다.
“1800!”
나른한 목소리도 전혀 물러서지 않았다.
3층 독실 두 개에서 번갈아 가며 극품영석 수백 개를 올리는 것을 본 수사들은 기함을 했고, 1층은 물론 2층의 인물들도 헛바람을 들이키며 할 말을 잃었다.
한립도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두 목소리가 경쟁을 하다 결국에는 노쇠한 쪽이 극품영석 2,300개에 후천선기를 가져갔다.
그렇게 반나절이 흘러갔다.
대경매회도 거의 끝물에 접어들어 더욱 진귀하고 이상한 보물들이 등장했다. 각종 법칙의 힘을 함유한 재료, 고계 지선 공법, 선초(仙草), 신기한 짐승이 경매에 올랐다.
심지어 그 중에는 머리가 9개 달린 구수한룡(九首寒龍)의 알도 있었다.
진령 구수한룡은 선천적으로 물의 법칙을 조종해서 성체가 된 후의 실력이 진선 중기 수사와 비슷했고, 한립이 예전에 마주쳤던 태비보다도 강력했다.
경매품이 비범한 만큼 낙찰에 성공한 이도 평범하지 않았다.
3층 독실의 인물 중 하나가 2천 개가 넘는 극품영석을 내놓고 구수한룡의 알을 가져갔다. 이것들이야 말로 진정한 보물들이었다.
이제 1층의 일반 수사들이 구경만 하는 것처럼 2층의 수사들도 대부분 그냥 마음을 편하게 먹고 지켜보았다.
한립은 아예 정신을 딴 곳에 팔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강력한 보물이 몇 개 있기는 했는데 그와 잘 맞지 않아 낙찰할 의지가 없었다.
“다음 보물은 중수뇌주(重水雷珠) 세 알입니다! 물 속성 법칙에 정통한 고인이 3성 중수를 정련해 얻은 물건이지요. 소모성 보물이기는 해도 위력이 대단해서 뇌주에 정통으로 맞으면 진선 중기 수사도 멀쩡할 수 없습니다.”
온화가 설명을 하면서 남색 옥함 세 개를 꺼내 놓았다. 검은 안개가 드리운 용 눈알 크기의 검은 구슬이 하나씩 들어있었다.
“중수뇌주 세 알은 최저가 극품영석 500개로 10개씩 가격을 올릴 수 있습니다.”
최저가를 밝힌 온화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중수뇌주의 등장에 흥분해 관심을 보였다.
소모성 보물치고 비싸기는 해도 진선 중기 수사에게 중상을 입힐 수 있는 위력이라면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중수뇌주!’
한립은 허리춤의 진수대를 매만졌다.
그가 생각에 잠긴 동안 2, 3층 수사들이 각축전을 벌여 가격은 극품영석 700개까지 올라 있었다.
“750개!”
한립이 손을 들어 경쟁에 뛰어들었다. 이미 꽤 오른 가격이라 원래 가격을 높이던 이들도 침묵했다.
“760!”
그와 머지않은 곳에 앉은 적발(赤髮) 청년 나섰다.
“800개!”
한립은 힐끗 청년을 보고는 주저 않고 가격을 올렸다. 이에 적발 청년은 잠시 멈칫하더니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
“850개!”
또 다른 목소리가 불쑥 끼어들었다. 2층의 대머리 거한이었다.
“900개!”
한립은 바로 더 가격을 올렸다.
“1,000개!”
사납게 생긴 눈으로 한립을 쳐다보던 대머리 거한은 유유히 자신의 입찰 가격을 알렸다.
그는 경산추 경매 때 주위 수사들이 부르는 최고가를 기억해 대충 얼마 정도 지니고 있을 거라 예상을 해놓고 있었다.
물론 한립도 그의 관찰 대상 중 하나였다.
중수뇌주 세 알의 가격이 극품영석 천 개까지 오르자 회장이 고요해졌다. 다들 그 이상의 영석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만한 가치는 없다고 본 것이다.
보통 극품영석 천 개면 소모성 보물을 얻기 보다는 그럭저럭 평범한 후천선기를 노려보는 것이 현명했다.
그래서 다른 수사들은 재미난 구경을 보듯 한립과 대머리 거한 사이의 경쟁을 지켜보았다. 그 중 가장 신이 난 것은 당연히 경매 진행자인 온화였다.
경매품이 고가에 낙찰될수록 그가 가져갈 대가와 경매 진행자로서의 명망은 높아졌다.
“더 높은 가격을 부르실 분 없으십니까?”
온화는 목청을 가다듬으며 대놓고 한립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한립은 찌푸린 얼굴로 침묵하고 있었다.
대머리 거한의 얼굴에 득의양양한 기색이 스쳤고 다른 이들도 가격을 올리지 않아 낙찰이 코앞이었다.
“지니고 있는 영석이 부족해서 이게 얼마나 할지 봐주셔야겠습니다.”
한립은 곧 낙찰 결정을 내리려던 온화를 막았다. 회장이 소란스러워지자 대머리 거한이 같잖다는 듯 냉소했다.
한립은 기다란 옥함을 꺼내 곁의 시녀에게 주었다.
시녀가 옥함을 받아들고 수만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서둘러 무대로 올라 그것을 회의 노인 등 세 명 앞의 탁자에 올려두었다.
남삼 거한과 중년 부인은 앉은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한립이 내놓은 물건에 별 흥미가 없어 보였다.
워낙 견식이 넓은데다 경매회가 지금까지 진행되는 동안 수많은 보물을 감정했기 때문이었다.
경매에 저당 잡히기 위해 내놓은 물건들은 그저 그런 게 많아서 가장 값어치가 나갔던 물 속성 법칙을 약간 함유한 해혼석(海魂石) 가격이 극품영석 480 개로 측정된 것이 최고가였다.
회의 노인은 동료들의 그런 태도를 신경 쓰지 않고 대수롭지 않게 옥함을 열어보았다.
“아…….”
노인은 옥함 틈 사이로 내용물을 보자 하얗게 센 눈썹이 솟아올랐다. 그는 한립이 앉은 곳을 슬쩍 살피고 옥함을 옆의 남삼 거한에게 넘겼다.
노인의 반응에 거한도 호기심을 가지고 옥함을 살짝 열어 안을 확인하고는 놀란 얼굴로 중년 부인에게 건넸다.
마지막으로 내용물을 본 중년부인도 말없이 한립을 힐끗 보았다. 전음으로 논의한 뒤 회의 노인이 헛기침을 하며 말문을 열었다.
“큼, 대략 극품영석 천 개의 값어치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저당 잡히기를 원하십니까?”
그 말에 대머리 거한은 웃음기가 싹 가셨고 회장의 다른 수사들도 깜짝 놀라 시끄럽게 떠들어 댔다.
“지금 뭐라고 했는지 들으셨습니까?”
“와, 뭐 길래 극품영석 천 개의 값어치가 있다는 걸까요?”
“후천선기 같은 건 아닌 것 같은데…….”
“설마 귀한 단약일까요?”
경매회 규칙상 감정하는 이들이 저당 잡힌 물건의 정체를 밝힐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이론이 분분한 1층 수사들은 물론 2층의 수사들도 친분이 있는 이들끼리 전음으로 물건의 정체를 추측하고 있었다.
“백 개를 더해서 극품영석 1100개로 하겠습니다.”
한립은 얼굴을 펴고 회의 노인에게 살짝 고개를 까딱이고는 당당히 가격을 올렸다.
옥함에 든 것은 그가 키운 3만 년 된 탄혼화였다.
흑풍해역에서는 없어서 못 팔 인기 상품이라지만 가격에 전혀 불만이 없었다. 일단 극품영석이 급히 필요한 것은 그였고, 어차피 그에게는 이제 무용지물인 영약이었다.
“……1150!”
순간 망설이던 대머리 거한이 가격을 불렀다.
“1200개.”
“……1300개!”
“1500개.”
한립은 상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거침없이 가격을 높였다.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하던 거한은 결국에는 콧방귀를 뀌고 팔짱을 껴버렸다.
“중수뇌주 세 알, 극품영석 1500개에 낙찰 되었습니다!”
온화는 만면에 웃음꽃을 피우고는 최종 낙찰을 선언했다. 이어서 검은 옷의 젊은 부인이 한립에게 다가와 싱긋 웃음 지었다.
“선배님, 바로 거래를 진행 할까요 아니면 경매가 끝난 후에 거래를 하시겠습니까? 지금 거래를 하시려면 뒤쪽으로 자리를 옮겨야 할 듯싶습니다.”
“지금 가지.”
자리에서 일어난 한립은 흑의 부인을 따라 경매장 옆길로 들어섰다.
3층 독실 중 한 곳에는 흑풍도 도주 육균이 앉아 있었고, 그 옆에는 아름다운 자태를 지닌 백의 소녀 육우청이 자리했다.
육우청은 붉은 수염으로 얼굴을 바꾼 한립을 쳐다보면서 고개를 꺄웃거렸다.
“우청아 무슨 일이냐?”
“아, 아무 것도 아닙니다. 왠지 어디서 본 적 있는 사람 같아서요.”
“저 자가?”
육균이 딸아이의 시선을 따라 한립을 보려는데 공교롭게도 그가 경매장 옆의 다른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냥 착각인 것 같아요.”
육우청은 고개를 저으며 길게 고민하지 않았다. 다음 경매품이 그녀의 시선을 사로잡아서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