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1532화 (1,289/2,000)
  • 1532화. 대경매회

    *

    그 시각, 도왕부를 떠난 한립은 흑풍성을 나와 유양산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임시 거처로 돌아간 그는 동부의 후원으로 가서 진법으로 가려놓은 작은 약재 밭을 살폈다.

    밭 중앙에 홀로 피어난 어두운 자줏빛 새싹은 평범한 들풀과 별 차이가 없어 보였으나 사실 그가 이번 임무를 맡기 전 무상맹을 통해 구한 탄혼화 종자의 새싹이었다.

    싹을 트는 확률이 낮은 종자여서 손에 넣은 씨앗을 절반 가까이 날리고서야 겨우 키워냈다.

    한립은 탄혼화가 잘 자라고 있는 것을 보고 안심하고는 다시 겹겹이 진법을 발동해 밭을 가려두고 실내로 들어갔다.

    흑풍도주에게 받은 저물대는 급히 열어보지 않고 의식으로 찬찬히 내용물을 검사했다. 이상한 점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물건들을 꺼내보았다.

    저물대 안의 물건들은 딱 두 종류로 손바닥 크기의 검은 영패와 극품영석 한 무더기가 전부였다.

    세어보니 2백 개 정도 되었다. 꽤 쏠쏠한 수확이었다. 그는 극품영석을 넣어두고는 검은 영패를 자세히 관찰했다.

    크기에 비해 묵직한 영패는 한쪽에는 ‘흑풍(黑風)’ 다른 쪽에는 ‘나이(挪移)’라는 글자가 각인되어 있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국 목적을 달성해 전송진 이용권을 얻은 것이다.

    * * *

    봄과 겨울이 오가는 사이 3년이란 시간이 지나갔다.

    최근 흑풍성 내의 수사, 특히 합체기 이상의 고계 수사의 수가 대폭 증가하고 있었다. 백년에 한 번 열리는 흑풍성 대경매회가 임박했기 때문이었다.

    매번 경매회에는 각종 진귀한 재료와, 고계 공법, 극품 단약 등이 등장했기에 고계 수사들에게는 축제나 다름이 없었다.

    흑풍해역의 거의 모든 고계 수사들이 모여 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고, 흑풍도와 적대 관계인 세력 일부도 휴전 협정을 맺고 수사를 파견해 경매회에 참석했다.

    * * *

    유양산(酉陽山) 정상의 한적한 동부.

    천천히 눈을 뜬 한립은 무상맹에서 지급한 가면으로 새까만 얼굴에 붉은 수염을 지닌 거한으로 변해 거처를 빠져나왔다.

    유양산 동부에서도 흑풍성의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한립도 백년에 한번 열린다는 대경매회에 기대감이 컸다.

    그는 씩 웃으며 날아올라 성 쪽으로 향했다.

    흑풍성 중앙 구역에 웅장한 금색 궁전이 둥실 떠서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산만한 높이에 어마어마한 면적을 지닌 궁전은 금색 옥석으로 지어져 번쩍번쩍 광채가 났다.

    그리고 궁전 정문의 편액에는 금운각(金雲閣)이라는 세 글자가 유려한 필체로 적혀 있었다.

    정문을 제외하고 나머지 방향에 궁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세 곳 더 있었고, 수시로 둔광이 궁전으로 연결된 네 개의 황금 계단 위에 내려서 금운각 안으로 들어갔다.

    금운각이 바로 대경매회가 열리는 장소였다.

    푸른 빛줄기가 날아들어 금운각 측면의 계단에 내려섰다. 그는 위용이 대단한 궁전을 훑고는 큰 보폭으로 걸어 들어갔다.

    궁전 입구에는 검은 장삼을 입은 시종들이 서서 다가오는 수사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선배님, 대경매회에 참석하러 오셨습니까?”

    한립을 향해서도 검은 장삼을 입은 시종이 웃는 얼굴로 다가왔다.

    “경매에 참석하려는 것이 아니면 내가 이곳까지 왜 왔겠나?”

    한립은 인상을 찡그리며 불쾌한 티를 냈다.

    “아,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이번 대경매회는 이전과는 다른 점이 있어 잠시 설명해드리려고 한 것입니다.”

    시종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무슨 소리지?”

    “이번에 워낙 많은 분들이 참가해 주셔서 인원수를 조정하기 위해 소정의 입장료를 받고 있습니다. 대경매회에서 어떤 보물이든 낙찰 받으시면 입장료를 돌려받으실 수 있고요.”

    “그런 규칙이 생겼다고? 그래서 영석을 얼마나 내면 된단 말이냐.”

    한립이 대수롭지 않게 물었고 시종은 착실히 답하려 했다.

    “어리석은 것! 어디 선배님께 그런 망발을 하느냐! 어서 물러나지 못할까!”

    그때 관사 복장을 한 중년인이 어디서 나타났는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시종을 쫓아 보냈다. 중년 사내는 합체기 수사였다.

    “저 아이가 잘 몰라서 실수한 것이니 용서해 주십시오. 입장료 규정은 일반 참석자에게 적용되는 것이고, 선배님과 같은 진선경의 대수사께서는 별도의 입장료 없이 귀빈통로로 따로 입장을 하시면 됩니다. 어차피 이곳도 안으로 통하니 제가 안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중년인의 말에 한립이 빙긋 웃음 지었다. 어딜 가든 수행이 곧 힘이자 권력이었다. 상대를 따라 궁전 안으로 들어선 그는 넓은 공간을 보고 흠칫 놀랐다.

    궁전은 총 3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궁전의 1층은 광활한 대청이었다. 거대한 광장을 통째로 집어넣은 것처럼 도저히 실내라고는 믿기지 않는 규모였다.

    대청 앞에 설치된 넓은 무대는 아직 텅 비어있었지만 그 주변에 계단 형태로 만들어진 좌석들은 대부분 자리가 차서 수사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었다.

    “1층은 일반 수사들을 위해 준비된 좌석이고, 선배님께서는 2층의 귀빈석을 이용하시면 됩니다.”

    중년인은 한립을 계단으로 인도해 2층으로 올라갔다.

    드문드문 배치된 수백 개의 좌석에는 크기도 클 뿐만 아니라 옆에 과실과 차가 놓인 찻상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2층 자리도 적잖은 이들이 미리 도착해 앉아 있었고, 그런 진선경 수사들 중에 성주부에서 보았던 얼굴도 몇 보였다.

    중년 사내의 안배에 따라 자리에 앉은 한립은 탁 트인 시야에서 무대를 내려다 볼 수 있었다. 확실히 오밀조밀 모여 있는 일반 수사들보다 우월감이 느껴지는 자리였다.

    한립은 고개를 들어 2층을 응시했다.

    “3층은 어떤 이들을 위한 곳이지?”

    3층에는 금제가 펼쳐져 있어 안을 들여다 볼 수 없는 독립된 방들이 존재했다. 그곳에 자리잡지 못한 것이 불만스러운 것은 아니었고, 그저 순전한 호기심이었다.

    “3층은 각 섬의 도주 분들을 위한 곳입니다.”

    중년 사내의 대답에 한립은 눈길을 돌리고 더는 아무 질문도 하지 않았다. 사내는 바쁜 듯 서둘러 아름다운 시녀를 그의 곁에 불러다 놓고 물러났다.

    시간이 지나자 대청 안은 만석이 되었고 2층도 빈자리가 거의 없어졌다. 한 시진이 훌쩍 지나 댕댕댕! 웅장한 종소리가 세 번 울렸다.

    종소리에 고요해진 대청 안으로 백발의 혈색 좋은 노인이 들어와 무대에 올랐다.

    “온 대사!”

    노인을 알아본 대청 안 수사들이 웅성거렸다.

    ‘저 노인이 온화? 흑풍도의 3대 지단사(地丹師) 중 한 명이자 흑풍도주의 객경이라 들었는데.’

    한립도 노인을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허허허! 예, 제가 온화입니다. 오늘은 흑풍해역에서 백 년에 한 번 열리는 가장 성대한 경매일입니다. 이렇게 많은 분들을 모신 자리에서 진행을 맡게 되어 참 영광입니다.”

    노인의 목소리가 낭랑하게 회장을 울렸다. 그 소리에 이곳저곳에서 떠들던 수사들이 입을 다물어 내부가 조용해졌다.

    “낯익은 얼굴이 많이 보이는 군요! 이곳의 수사분들 중에는 이전 대경매회에 참석하셨던 분들도 있을 겁니다. 그래도 미리 규정에 대해 말씀드리고 시작하지요.

    경매 가격은 극품영석을 단위로 하고, 극품영석이 부족하면 1대 100의 비율로 선원석을 대신 사용할 수 있습니다. 물품을 저당 잡히시려면 그 가격은 이 세 분께서 판단해 주실 겁니다.”

    온화의 말이 끝나고 세 명의 수사가 표표히 위로 등장했다.

    하얀 수염을 지닌 회색 의복 노인, 남색 짧은 소매 상의를 걸친 기운 좋아 보이는 거한 그리고 우아한 중년 부인 모두 진선경 수사였다.

    세 사람은 말없이 무대 한쪽에 놓인 기다란 탁자 뒤로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세 분을 알아보시는 분이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각각 장흥상회(長興商會), 현월상회(玄月商會), 태백상회(太白商會)의 장로 분들이라 견문이 뛰어나고 가격도 공정하게 책정하실 겁니다.

    안전 문제로 따로 당부드릴 점은 흑풍성은 엄격히 전투를 금하고 있습니다. 일단 발각이 되면 엄중한 처벌을 받게 된다는 것을 기억해 주십시오! 좋습니다, 이제 모두의 시간을 아낄 겸 바로 경매에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온화는 간단히 소개를 마치고 경매 시작을 알렸다. 곧바로 검은 의복을 입은 역사(力士)가 커다란 함을 들고 나와 뚜껑을 열었다.

    안에는 사람 머리통 크기의 붉은 수정돌이 들어 있었다. 불꽃 형태의 무늬가 있는 수정돌에서 발산되는 불 속성 영력파동은 수백 장 밖에서도 분명하게 감지할 수 있었다.

    “상품 화문황옥(火紋煌玉)입니다. 최상급 영보를 제련할 수 있는 재료이지요. 최저가 극품영석 20개로 시작해, 최소 1개씩 개수를 올릴 수 있습니다!”

    “극품영석 20개!”

    “21개!”

    “25!”

    많은 이들이 앞 다투어 가격을 부르고 있었으나 의자에 기대 앉아 아래쪽을 내려다보는 한립의 표정은 차분하기만 했다.

    화문황옥은 그가 탐낼 만한 물건이 못되었다. 가격이 계속 올라 극품영석 50개에 이르렀을 때 더는 가격을 부르는 이가 없었다.

    “낙찰!”

    첫 번째 경매 결과에 온화는 미소를 머금었다. 예상가보다 높게 시작을 한 것은 분명 좋은 징조였다.

    두 번째로 무대로 올라온 3만 년 된 영초도 높은 가격에 낙찰 되었다. 경매가 진행되는 동안 많은 경매품들이 스치듯 무대를 떠나갔다.

    모든 재료, 단약, 보물들이 진귀한 물건이었지만 합체, 대승기 수사들을 위해 준비된 경매품이었다.

    두세 시진이 지나서야 통천령보에 비견될만한 보물이나 도겁에 쓰이는 단약 등이 등장했고 2층 진선들도 슬슬 경매에 참가하기 시작했다.

    이번에 무대에 오른 물품은 암홍색 옥돌로 핏빛 무늬가 화봉(火鳳)의 형상을 이룬 불의 법칙 파동을 함유한 재료였다.

    “다음 보물은 봉혈염옥정(鳳血炎玉晶)입니다. 진선 후기의 진령 화봉이 죽은 뒤 체내의 정혈 일부가 변해 만들어진 옥돌이지요. 불 속성 법칙을 약간 함유하고 있어 후천선기를 제련하기 위한 최적의 재료라 할 수 있습니다! 최저가 극품영석 2백 개, 10개씩 가격을 올릴 수 있습니다.”

    온화가 천천히 무대 주변으로 시선을 주며 설명할수록 수사들의 시선이 뜨거워졌다. 한립도 혹해서 낙찰 받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지닌 영석이 그리 많지 않아 욕심을 접었다.

    “210.”

    “극품영석 240개!”

    “280개를 내겠습니다!”

    “3백!”

    봉혈염옥정을 마음에 둔 이들은 더 많았지만 거의 2층 진선들끼리의 경쟁이었다.

    1층의 일반 수사들은 감당할 수 없는 수준까지 가격이 치솟고 있었기 때문이다. 2층의 홍포 대머리 거한이 450을 부르자 다들 입을 다물고 분분히 입찰을 포기했다.

    이에 대머리 거한의 얼굴에 희색이 떠올랐다.

    “500!”

    이때 3층 독실에서 여인으로 추정되는 소리가 들려왔다. 산선인 홍포 대머리 거한은 불쑥 화가 치밀었지만 표정을 숨기고 손을 내려 계속 경쟁할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극품영석 500개에 낙찰 됩니다!”

    온화는 밝은 얼굴로 낙찰을 선포했다. 봉혈염옥정은 빠르게 3층 독실 중 어딘가로 전달되었다.

    진귀한 경매품이 등장할수록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이제 가격을 부르는 이들은 거의 2, 3층의 진선경 이상의 수사들이었고 1 층 수사들은 안목이나 넓히자는 생각으로 앉아 있었다.

    이번에는 무대에 보라색 옥간이 담긴 네모난 옥함이 올라왔다.

    “다음 경매품은 고계 진선 공법 ‘자소정뢰결(紫霄正雷訣)’입니다. 보기 드문 뇌전 속성공법으로 완전히 익히면 전신의 36개 선규(仙窍)를 뚫어 진선경을 돌파하고 금선이 될 수 있습니다!

    공법의 내력을 이야기 하자면 아마 대부분 수사들이 알고 있는 이야기가 되겠군요. 수백만 년 전, 흑풍해역 전역에 위세를 떨치던 자소상인이 바로 이 공법을 이용해 진선 후기 수사 셋을 연달아 참했다고 전해집니다.”

    온화는 느긋하게 설명했다. 그의 말에 떠드는 소리가 들리고, 3층의 독실에서도 몇몇이 놀라 인기척을 냈다.

    한립도 온화가 언급한 선규라는 말에 움찔했다.

    비록 수행을 회복하고 진선경 초기의 수행이 되었지만 기억을 잃고 적합한 수련공법도 없어 어떤 의미로는 아직 진정한 수련을 시작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껏 여러 지선공법을 접촉하면서 어렴풋이 깨달은 바로는, 선규와 미래의 수련 경지는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거의 36개 선규를 뚫으면 바로 금선이 되는 것이었다.

    그저 지선이 수련하는 공법은 주로 신념의 힘을 모아 법칙의 힘을 응집하는데 주력해 선규에 대해서는 최소로 언급되었고, 수만 년의 세월이 걸려야 자연스럽게 선규가 뚫린다고 적혀 있었다.

    흑해중수경 역시 그랬다.

    “허허, 자소상인이 실종된 지 백만 년이 넘었지만 지금껏 이 공법은 전해지지 않았지요. 그러나 공법의 수련 조건이 지나치게 까다롭다는 것을 미리 말씀드리겠습니다. 반드시 최상급 뇌전 속성 영근을 지니고 있거나 오뢰체(五雷體), 뇌수진체(雷髓眞體)와 같은 선천인 체질을 타고나야 이 공법을 대성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못한 이들은 익혀봐야 헛수고지요.

    자, 설명을 여기까지 하고 최저가 극품영석 500개, 10개 씩 가격을 올릴 수 있습니다!”

    수사들의 반응에 만족한 온화가 술술 소개를 늘어놓고 경매 시작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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