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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531화 (1,288/2,000)
  • 1531화. 소산삼살(韶山三煞)과의 전투

    *

    쨍강!

    얼음 깨지는 소리가 들리고 마른 청년의 모습이 드러났다.

    검은 의복은 다 터지고 찢어진데다 머리카락에서는 아직도 검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형님, 누님! 저 놈의 껍질을 벗겨 북 가죽이나 새로 바꿔야겠습니다!”

    마른 청년은 급히 단약 몇 개를 꺼내 입안에 털어 놓고는 이를 갈았다.

    웅.

    그의 손에서 검은 북이 떠올랐다.

    담황색 가죽을 팽팽하게 씌운 둥근 북은 별 다를 것 없었는데 왠지 보고 있으면 모골이 송연해졌다.

    북을 본 한립은 검은 장검을 불러내 마른 청년 쪽으로 휘둘렀다. 수백 개의 검은 검기가 나타나 겹겹이 떨어져 내렸다.

    둥…….

    그 순간 청아한 북소리가 울리더니, 파문이 부드럽게 퍼져나가 검은 검빛들을 하나씩 부수었다.

    거한은 어느새 마른 청년 앞을 막아서고, 한 손에는 괴수가 새겨진 구리 절굿공이를 다른 손에는 검푸른 사발을 들고 있었다.

    그들 가까이에 있던 흑사 부인도 품에 하얀 백골 비파를 안고 현을 뜯는 중이었다.

    “심상치 않은 자니 얕보아선 안 된다. 그 방법을 쓰자.”

    둥둥둥…….

    거한은 다른 두 사람의 대답을 듣기 전에 북을 빠르게 치기 시작했다.

    해수면이 요동치고 풍랑이 일었다. 고공의 구름들이 몰려들어 먹구름을 이루고 주변 수백 리가 황혼이 찾아온 듯 어둑해졌다.

    쨍쨍쨍…….

    비파 소리와 함께 먹구름 속에서 두 줄기의 하얀빛이 거탑처럼 떨어져 내렸다.

    한립은 먹구름이 요동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 안에서 방대한 무언가가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는 고개를 돌려 놀란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는 육우청을 보고 소매를 펄럭였다.

    휙!

    푸른 기류가 날아가 백의 소녀를 휘감고 날아가더니 그녀를 천리 밖으로 이동시켰다.

    한립은 소녀를 옮겨두고는 검을 쫙 펴고 허공을 박차 삼살들을 향해 날아올랐다.

    댕!

    맑은 울음이 울리고, 고공의 먹구름이 양쪽으로 갈라져 거대한 틈을 만들어 냈다. 그 틈에서 곧 홍수와 같은 재앙이 강림할 것 같았다.

    그러나 틈 속에서 하얀 빛이 번득이며 거대한 백골 장도가 내려와 힘차게 허공을 베었다.

    도신을 타고 흐르는 하얀 화염이 너무 뜨거워서 주변 공기가 지글지글 소리를 냈다.

    이에 한립은 움직임을 멈추고 자세를 바꿔 비스듬하게 검을 들고 고공을 갈랐다. 뿌연 검은색 검빛이 나타나 백골 장도를 향해 쇄도했다.

    쿠쾅쾅쾅!

    하늘과 땅이 요동치고, 검빛들이 부서져 하얀 불길 속에서 검은 꽃잎처럼 흩날렸다. 백골 장도도 충격을 받아 먹구름 속으로 튕겨 돌아갔다.

    먹구름과 백골 장도를 회수한 소산삼살은 나지막한 신음을 흘렸다. 반대편의 한립도 몸이 묵직해져 추락하다 해수면을 백 장 남겨두고 몸을 가누었다.

    해수면 위는 하얀 화염이 연꽃처럼 피어올라 뜨거운 설원이 펼치진 것처럼 보였다.

    한립은 손에 들고 있는 검은 장검에 묻은 화염을 내려다보았다. 마치 끈끈이처럼 검신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이것 봐라?’

    그는 입 꼬리를 올리며 손바닥에 금색 비늘을 일으켜 검신을 문질렀다. 그러자 하얀 화염이 그의 손길에 깨끗이 닦여 나갔다.

    둥둥둥둥…….

    갑자기 공중에서 커다란 북소리가 울리더니, 연이어 비파 튕기는 소리와 사발 두들기는 소리가 한데 어우러졌다.

    이에 먹구름 속에서 산봉우리 크기의 거대 백골 발이 뚝 떨어져 한립을 짓밟으려 들었다.

    그러나 검을 치켜든 한립은 쾌속으로 천원검결을 운용해 푸른 장포가 바람도 없이 펄럭였다.

    그가 발끝으로 허공을 박차자 거대한 압력에 아래쪽 해수면이 움푹 들어갔고, 그 반동으로 한립은 엄청난 기세로 솟구쳐 올랐다.

    휘휘휘휘휘!

    그를 중심으로 주변 십리에 광풍이 일어 작은 산 크기의 검 그림자들이 우후죽순처럼 튀어나와 하늘로 칼끝을 겨눴다.

    하얀 화염이 치직거리는 거대 백골 발과 칼날이 충돌했다.

    쿠콰콰콰쾅!

    경천동지할 폭음이 들리며 돌연 천여 장 높이의 백골 거인이 먹구름 속에서 고꾸라져 바다로 떨어졌다. 그 충격으로 하늘을 찌를 듯한 거센 파도가 미친 듯이 넘실거렸다.

    하늘을 뒤덮은 새까만 검 그림자들도 붕괴해서 하얀 화염 속으로 흩어졌다. 그 일대는 뜨거운 수중기가 자욱하게 퍼져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수중기 속에서 번득 뛰쳐나온 한립은 칼날이 절반 쯤 잘려나간 검은 장검을 쥐고 있었다. 그는 망가진 검을 넣어두면서 더욱 청죽봉운검들이 그리워졌다.

    크아아!

    돌연 노호성을 터트린 그의 몸이 급속도로 부풀어 백골 거인과 엇비슷한 크기의 금털 거원으로 변했다.

    안 그래도 안색이 하얗게 질려있던 소산삼살은 거원을 보고 놀라 악기 법보의 연주 속도를 높였다.

    빠른 장단의 기괴한 악기 소리에 물 위로 올라온 거인이 백골 장도를 들어 금털 거원을 공격했다.

    거원은 맨 주먹을 불끈 쥐고 펄쩍 뛰어올라 맞상대를 해주었다.

    쿠쿠쿵.

    장도와 주먹이 맞부딪히며 거원과 거인이 본격적으로 육박전을 시작하자 그곳을 중심으로 산만한 파도가 퍼져나갔다.

    비교적 멀리 벗어나 있던 육우청도 천지원기가 극심하게 떨리는 것을 느끼고 경악하고 있었다.

    이때, 백골 거인이 급작스럽게 두 눈에서 굵직한 하얀 화룡을 분출해 금털 거원의 얼굴을 노렸다.

    거원은 짧게 포효하며 두 주먹을 쳐들어 두 화룡을 냅다 후려쳤다.

    퍽! 퍽!

    두 화룡의 머리가 터져 하얀 화염이 거원의 상반신을 덮쳤다.

    화염의 온도가 어찌나 높은지 수화불침(水火不侵)의 거원의 가죽과 털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금털 거원은 전혀 뜨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불길에 휩싸인 채 뛰어올라 오른 주먹으로 백골 거인의 머리통을 내리쳤다.

    이에 백골 거인은 얼른 몸을 굽혀 허겁지겁 백골 장도로 주먹을 막았다.

    캉!

    괴력이 담긴 거원의 주먹에 백골 장도는 금이 갔고, 전력으로 백골거인을 조종하던 소산삼살은 몸을 바들바들 떨며 왈칵 피를 토해냈다.

    금털거원은 쉴 틈을 주지 않고 양팔을 굽혀 백골 거인의 가슴에 연타를 쏟아 부었다.

    퍽퍽퍽퍽퍽…….

    연달아 충격음이 들리고, 백골 거인의 몸에 자잘한 균열이 가 뼛조각들이 떨어졌다.

    “어서 분천혈염(焚天血焰)을 발동해!”

    입가에 피도 닦지 못한 채 대살이 큰 소리로 외쳤다. 그는 사발 악기에 손가락을 그어 한 마디를 잘라냈다. 손가락 마디가 떨어지자 검푸른 사발은 붉은 빛을 머금었다.

    흑사 부인도 비파 현으로 손끝을 베어 선혈을 흡수시켰고, 마른 청년은 아예 손가락을 북의 구멍 속으로 집어넣었다.

    세 사람 다 악기 법보에 정혈을 먹이고 있었다.

    금털 거원이 망가진 백골 거인의 머리를 내려쳐 끝을 보려는데, 거인의 관절에 붉은 빛이 어리기 시작했다.

    거인을 뒤덮고 있던 하얀 화염이 삽시간에 핏빛으로 변해 거원의 상반신에 붙은 불길도 같은 색으로 물들었다.

    크악!

    극심한 고통에 거원이 뒤로 물러났다. 피부에 금빛 비늘이 겹겹이 나타나 핏빛 화염을 차단하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핏빛 화염의 출현에 해역의 온도가 믿기 어려울 정도로 올라가 바닷물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이에 해수면은 점점 수위가 낮아졌다.

    거원이 핏빛 화염의 기습에 당하는 동안 백골 거인은 원기가 왕성해져 균열이 간 부위가 급속도로 메워졌다.

    손을 뻗어 적홍색 뼈 장도를 불러낸 거인은 그것을 움켜쥐고 거원을 횡으로 베었다.

    쿵!

    복부에 묵직한 한 방을 맞은 금털거원이 수평으로 튕겨나가 해수면에 물보라가 일었다. 그가 몸을 바로 세우기도 전에 혈골 거인은 높이 뛰어올라 장도를 수직으로 내리꽂는 중이었다.

    눈을 반짝인 거원이 뒤로 튕겨나가는 와중에 몸을 틀어 장도를 피했다. 동시에 전신에 눈부신 은빛 화염을 퍼트려 자신을 꽁꽁 둘러쌌다.

    츠츠츠츳.

    놀랍게도 대량의 은색 화염이 핏빛 화염을 파고들어 잡아먹은 것이다. 거원의 화염은 거대한 은색 불새로 변해 혈골 거인의 가슴팍으로 돌진했다.

    화르륵!

    불새는 수많은 은색 불똥으로 변해 거인의 몸으로 퍼져나갔다.

    혈골 거인은 은색 화염 옷을 걸친 것처럼 변해갔고, 핏빛 화염들이 재빨리 수축해 피하려 했지만 은색 화염의 빠른 속도를 당해내지 못했다.

    “무슨 저런 해괴망측한 화염이!”

    은색 화염을 본 거한은 안색이 창백해졌고 나머지 둘도 귀신이라도 본듯한 얼굴을 했다.

    크아앙!

    그들이 당장 달아나려는데 털이 군데군데 타들어간 금털거원이 살기등등한 눈빛으로 복부와 가슴에 7개의 별빛을 밝히고 주먹을 휘둘렀다.

    자욱한 하얀 빛이 어린 금색 주먹 허상이 바람을 가르고 날아가 혈골거인의 가슴을 강타했다.

    쿠아앙!

    거인의 몸에서 뿔뿔이 흩어진 핏빛 뼈 조각들이 해수면을 뒤덮었다. 겨우 하반신만 남은 혈골 거인은 무기력하게 바다로 떨어져 하얀 기포만 남기로 사라졌다.

    이와 함께 소산삼살이 지니고 있던 북, 비파 그리고 사발 악기가 쨍! 하고 깨져 눈에 보이는 파문을 만들어냈다.

    격렬한 충격파를 직격으로 맞은 세 사람은 피를 마구 뿜어대며 튕겨나갔다.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한립은 큰 공을 세운 은색 불새를 소매 속으로 불러 들였다. 의식이 연계된 한립은 정염불새가 핏빛 화염을 포식하고 굉장히 흥분해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당장 달아난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대살이 소리를 지르자 나머지 둘도 겁먹은 얼굴로 모여들었다.

    세 사람은 각각 한 손으로 독특한 수결을 맺고 나머지 팔을 터트려 핏빛 안개로 서로를 감쌌다.

    그들은 정혈의 힘으로 하늘을 가로지르는 거대 빛줄기를 일으키며 단숨에 천 리 밖으로 날아갔다.

    그들의 행동에 한립의 몸에서 치직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허공에서 종적을 감추었다.

    십여 만 리 밖, 백지장처럼 창백해진 삼살이 나타나 불안한 얼굴로 단약을 삼켰다.

    그들이 한숨을 돌리던 그때, 머리 위에서 천둥소리가 들려왔다.

    굵은 뇌전들이 교차해 커다란 뇌전진법을 이루고 그 중심에서 한립이 나타났다.

    한립은 무표정한 얼굴로 허공을 쥐어 뇌전들로 은빛 찬란한 구슬을 뭉치고는 그것을 떨어트렸다.

    삼살들은 간담이 서늘해지는 엄청난 압력에 혼비백산해 온갖 방어용 보물을 불러냈다. 원기를 크게 상해서 달아날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콰르릉!

    중간에서 터진 뇌전 구슬에서 항아리 굵기의 뇌전 기둥이 뻗어 나와 세 사람을 집어 삼켰다. 굉음과 참혹한 비명이 교차하다 점점 조용해졌다.

    소산삼살은 제뇌술에 당해 그 자리에서 육체와 원영이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 * *

    약 보름 후.

    흑풍성, 도왕부 균천전(鈞天殿) 안.

    금포 사내가 화려하게 조각된 의자에 앉아 미소를 띠고 청포 청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사내의 얼굴에는 진심어린 호감이 어려 있었다.

    “류 수사 덕분에 딸아이가 무사히 흑풍도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후한 사례를 하겠다고 약속하였으니 생각해 둔 것이 있으면 말해 보시지요.”

    사내는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균천전 안 청포 청년은 당연히 한립이었다.

    “육 도주님, 제가 이번 임무를 맡은 것은 오직 전송진 이용 자격을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다음 전송진 개방일에 순조롭게 흑풍해역을 떠날 수만 있으면 족합니다.”

    한립이 차분히 답했다.

    “그게 다라고요?”

    “그게 다입니다.”

    “딸아이에게 그간의 사정은 들었습니다. 솔직히 수사와 같은 인재가 흑풍도에 남겠다면 부도주 자리도 내어줄 마음이 있습니다.”

    “호의는 정말 감사드리지만, 꼭 이곳을 떠나야할 이유가 있어 제안을 거절해야 할 듯합니다.”

    한립은 미안한 마음을 담아 답했다.

    “그렇다면 곤란하게 하지는 않겠습니다. 이번 전송 명단에 수사의 이름이 올라갈 테고, 이건 감사의 뜻으로 따로 준비한 것이니 거절하지 말아주시지요.”

    육균은 손바닥을 펼쳐 물빛 저물대를 날려 보냈다. 한립도 딱히 거절하지 않고 그것을 받고는 감사를 표하고 물러났다.

    그가 나가고 육우청이 뒷문에서 걸어 나와 실망한 기색으로 육균 옆에 섰다.

    “아버지, 어째서 류석 오라버니를 그냥 보내신 거예요. 제 말을 믿지 못하신 거죠?”

    “아니, 그 반대다. 내 생각에 저 자의 실력은 네가 말한 것 이상이야.”

    “예? 그럼 왜…….”

    “첫째, 상대는 남의 밑에서 만족할 자가 아니다. 스스로 원하지 않는다면 흑풍해역에 남겨둘 방법이 없겠지. 둘째, 내가 완전히 신뢰할 수 없는 자라면 곁에 두지 않는 것이 낫다. 알아서 떠나겠다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있겠느냐?”

    “하지만…….”

    육우청은 할 말이 많아보였지만 육균은 딸아이의 말을 끊었다.

    “우청아, 지금 흑풍도가 직면한 상황은 생각 외로 복잡하다. 네 오라비가 화를 당한 마당에 류석이 적시에 너를 구하지 못했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 것 같으냐?”

    “그건……. 정말 죄송해요, 아버지.”

    육우청도 안색이 어두워져 울먹이며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에 육균은 한숨을 내쉬며 더는 아이에게 냉정하게 대할 수 없어 우청을 품에 안고 어깨를 토닥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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