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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530화 (1,287/2,000)
  • 1530화. 청우도(靑羽島) 수사들

    *

    뇌전 빛이 흩어진 자리에 한립이 나타나 노인과, 각진 얼굴 사내가 데리고 있는 육우청을 보았다.

    다행히 그녀의 생명에는 지장이 없어 보였다.

    “당신은 누굽니까? 청우도의 일을 방해하다니 담도 크십니다!”

    “청우도?”

    노인이 창백해진 얼굴로 소리치자 한립도 노인 소매에 수놓아진 푸른 깃털 도안을 확인했다.

    청우도면 흑풍해역에서 유명했다. 흑풍도를 제외하고 가장 큰 세력 중 하나로 도주인 청우진인의 위명도 흑풍도주 육균에 못지않았다.

    아주 오래전에 진선 중기 최고봉이었으니 지금은 어떤 경지에 이르렀을지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흑풍도에게 가장 위협적인 세력도 청우도였다.

    특히 근래에는 청우도에서 다른 세력들을 끌어들여 지속적으로 도발하고 있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이른 한립은 몸에서 은색 뇌전 빛을 번득이고 사라졌다.

    다음 순간, 한립은 은빛 뇌전을 두른 채 나타나 손을 뻗었고, 은색 뇌전으로 이루어진 거대 손은 어느새 노인과 사내의 머리 위에 나타났다.

    쿠쿵!

    무시무시한 힘이 거대 손에서 흘러나와 바다를 뒤집어 놓았다.

    이때, 깃털 노인의 피부가 보라색 마문(魔紋)으로 뒤덮이고 검은색과 보라색 마염이 화르륵 일어나 그를 거대한 불기둥으로 보호했다.

    콰앙!

    은색 뇌전 거대 손이 자흑색 불기둥 위에 떨어져 격렬한 파동을 일으켰다. 바로 그 순간 각진 얼굴 사내가 13자루의 붉은 단도를 불러냈다.

    바람을 타고 나무 크기로 커진 장도들은 적홍색 화염을 두르고 있었다.

    휘휘휘휙!

    13자루 화염 장도가 불기둥에 막혀 있는 뇌전 거대 손을 깊숙이 파고들었다.

    쿠르릉!

    거대 손이 터져 무수히 많은 은색 뇌전이 흩어져 뇌전 바다를 이루었다. 폭발이 만들어낸 거센 바람에 깃털 장포 노인과 각진 얼굴 사내는 뒷걸음질 쳤다.

    그러나 뇌전 빛과 강풍 모두 육우청은 공격하지 않고 물고기처럼 유연하게 움직였다. 이에 깜짝 놀란 소녀는 겨우 긴장을 풀었다.

    그런데 흩어지던 뇌전 빛이 순식간에 은색 뇌진을 이루고 소녀를 감쌌다.

    “당했다!”

    물러나던 사내가 팔을 휘둘러 붉은 도광을 뿜었고, 보라색과 검은색이 섞인 마염도 방향을 틀어 뇌진 쪽으로 몰려갔다.

    하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은빛을 반짝인 진법과 함께 육우청은 감쪽같이 사라졌다가 한립 옆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 모습에 각진 얼굴 사내가 딱딱하게 굳었다.

    자흑색 불기둥이 돌아간 자리에 모습을 드러낸 노인도 잔뜩 열이 받아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류석이라 하네. 소저 부친의 명을 받아 구하러 온 사람이지.”

    “아버지께서…….”

    소녀가 말하기도 전에 한립이 불쑥 손을 뻗었다. 그리고 은색 뇌전 진법이 떠올라 그들을 휘감고 번득 사라졌다.

    콰쾅!

    화염에 휩싸인 거대 장도들이 하늘에서 떨어져 그들이 있던 곳을 난도질했다. 그 여파로 바다가 크게 출렁였다.

    머지않은 곳에 다시 나타난 육우청은 방금 벌어진 일에 간담이 서늘해져 한립만 보고 있었다.

    “멀리 떨어져 있게.”

    “네, 조심하세요!”

    육우청은 서둘러 답하고 뒤쪽으로 물러났다. 장도들이 작열하는 화염 파동을 이끌고 다시 한립을 가르려 했다.

    퇴로를 차단하려는 것 같았다.

    그 모습에 한립은 즉시 두 손에서 굵은 은색 뇌전들을 뿜어냈다. 은색 주술문자를 반짝인 뇌전들은 동그란 구슬처럼 뭉쳐 화염 장도를 향해 날아갔다.

    표면에 주술문자들이 새겨진 뇌전구슬들은 영계에서 익힌 제뢰술이었다. 물론 선령력으로 일으킨 뇌붕의 힘은 이전보다 몇 배는 강했다.

    쿠쿠쿠쿵!

    뇌전구슬은 화염 장도와 맞닥뜨려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굉음을 남기고 터져 은색 태양처럼 떠올랐다.

    쉬쉭!

    폭발 속에서 되돌아온 장검들은 빛을 거의 잃어 상당히 손상된 것 같았다. 이 때문에 각진 얼굴 사내는 울컥 피를 토하고 말았다.

    이 모든 일이 번갯불처럼 순식간에 지나갔다.

    전신에 보라색 빛을 머금은 깃털 장포 노인은 등 뒤에 삼두육비의 자흑색 마물 그림자를 띄우고 있었다.

    정확히 얼굴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보라색 눈동자 여섯 개가 섬뜩하게 번득였다.

    마물 그림자가 포효하며 여섯 개의 손을 움직였다. 사방에서 폭음이 들려오자 한립은 허공이 허물어진 것처럼 6개의 검은 소용돌이에 둘러싸였다.

    이에 한립은 뇌둔술을 이용해 달아나려 했지만 검은 소용돌이에서 흘러나온 안개가 신속히 그를 속박했다.

    뜻밖에도 검은 안개는 한립의 은색 뇌전은 물론 보호막까지 흩어버리고 체내의 선령력 운용 속도도 늦추었다.

    “겁도 없이 남의 일에 간섭하다니 가만두지 않겠다!”

    노인은 서늘하게 외치며 수결을 맺었다. 그러자 거대 마물 그림자에서 자흑색 마염이 기다란 창으로 변해 한립을 향해 날아갔다.

    휘익!

    잔영을 남기며 날아간 불의 창은 그대로 한립의 가슴을 맞추고 폭발했다. 멀리서 그걸 본 육우청은 안색이 어두워졌지만 바로 달아나지는 않았다.

    그때 미소 짓던 노인과 사내의 표정이 오히려 급변했다. 빛이 가신 자리에 한립이 멀쩡한 모습으로 서있었던 것이다.

    가슴이 멀쩡한 것은 물론 몸에 은은하게 빛을 발하는 막이 펼쳐져 있어 검은 안개를 몸 밖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이, 이게 무슨…….”

    노인은 믿기지 않는 듯 한립의 몸을 보고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우리 적수가 아닙니다. 어서 달아나요!”

    각진 얼굴 사내도 황급히 소리쳤다. 그 소리에 배 위로 7개의 별빛이 떠오른 한립은 작게 코웃음 치며 몸에 힘을 주었다.

    퍼퍼퍼퍼펑!

    무시무시한 폭발의 힘에 허공이 부들부들 떨리고 주변의 검은 안개가 여섯 개의 소용돌이와 함께 소멸되었다.

    달아난 지 얼마 되지 않는 노인의 뒤에서 마물 그림자의 여섯 팔이 폭발했고, 마물 그림자 자체도 불안하게 흔들거리다 사라졌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노인은 끙끙 앓으며 비틀거렸다. 바로 그때 뒤에서 한립이 나타나 주먹을 뻗었다.

    이에 노인은 서둘러 복잡한 문양이 새겨진 칠흑 같은 금속 갑옷을 불러냈고, 동시에 손에서 검은빛을 반짝이며 뭔가 하려했다.

    “흥!”

    그 순간 서늘한 코웃음 소리가 노인의 귓가에 울렸다.

    그 소리에 노인은 머리를 송곳으로 찔린 듯한 격통에 참혹한 비명을 지르느라 손에 모았던 검은빛이 흩어졌다.

    그리고 한립의 주먹이 닿은 검은 갑옷은 마른 고목처럼 부서져 노인의 가슴이 드러났다.

    뻐억!

    깃털 장포 노인은 몸이 다섯 조각으로 찢겨 피를 흩뿌리며 떨어졌고, 원영 역시 탈출하지 못하고 괴력에 터져버렸다.

    그때 다른 쪽에서는 붉은 둔광이 쾌속으로 멀어지고 있었다. 바로 각진 얼굴 사내가 겁에 질려 달아나는 중이었다.

    한립은 주먹도 회수하지 않고 은빛을 번뜩이며 사라졌다.

    쿠르릉!

    아주 멀리서 요란하게 폭음이 들리고 질주하던 붉은 둔광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뒤로 물러나 상황을 지켜보던 육우청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잠시 후, 날아든 푸른 둔광 속에서 한립이 나타났다. 육우청은 한립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복잡한 시선을 보냈다.

    “육 소저, 아버지께서 기다리고 있네. 그만 출발하지.”

    한립의 말에 육우청은 말없이 홍월도를 돌아보았다.

    “근처에 청우도 수사들이 둘밖에 없을 거라 보는가? 육묵 수사의 일은 소저의 아버지께서 알아서 처리하실 걸세.”

    “그걸 어떻게…….”

    “출발하기 전에 모두가 육 도주님께 들었네.”

    “모두요?”

    육우청은 무슨 소린가 하는 얼굴이었다.

    “나 말도고 열댓 명의 수사들이 육 소저를 찾고 있어. 난 운이 좋아 근처를 지나다 소저를 발견한 것이고. 육 도주께서 소저를 무사히 데리고 오는 조건으로 막대한 보상을 거셨지.”

    “알겠어요. 수사를 따라 돌아가지요.”

    * * *

    끝없이 펼쳐진 바다 위를 두 빛줄기가 더없이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둔광 속 청포 청년과 백의 소녀는 한립과 육우청이었다.

    육우청은 조금 창백한 얼굴로 그녀보다 훨씬 커다란 몸집의 한립을 보고 있었다.

    “걱정할 것 없네. 오송도(吾松島)까지만 가면 흑풍도로 돌아가는 전송진을 이용할 수 있을 거야.”

    할 말이 있는 듯한 그녀를 보고 한립이 먼저 다독이는 말투로 말했다.

    “네……. 류석 오라버니께서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소녀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안 그래도 부상을 입은 데다 무리해서 며칠을 이동하느라 힘이 거의 빠진 상태였다.

    한립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를 태우고 이동할 적당한 비행 법보가 없어서 약간 속도를 늦추는 게 최선이었다.

    다시 천여 리를 날아가는데 한립이 미간을 좁히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잠깐.”

    육우청이 깜짝 놀라 무언가 물어보려는데 하늘 끝에서 세 줄기의 둔광이 날아들었다.

    “저들은…….”

    육우청은 어느새 한립이 차분히 자신 앞으로 나서자 마음이 놓였다. 수백 장 앞에서 멈춰선 둔광에서 두 사내와 여인이 나타났다.

    기골이 장대한 거한, 검은 천으로 얼굴을 가린 젊은 부인, 그리고 마른 청년은 한립이 부신전에서 만난 적이 있는 소산삼살이었다.

    “크큭, 수고 많으셨겠습니다! 이제 육 소저는 우리에게 넘기시지요. 남은 길은 우리가 모시고 흑풍도로 돌아가겠습니다.”

    거한이 한립 뒤의 백의 소녀를 알아보고 히죽거렸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한립은 의아하다는 어투로 물었다.

    “아, 우리가 그냥 보내줄 때 눈치껏 가시라고요.”

    마른 청년이 나서서 건들건들 말했다.

    “저도 충고 한 말씀 드릴게요. 육 도주가 약속한 조건이 후한 것은 인정하지만 목숨보다 중할까요?”

    마지막으로 흑사(黑紗) 부인이 답했다.

    “육 소저는 분명 제가 먼저 찾았거늘, 이렇게 행동하는 게 옳다고 보십니까?”

    “크큭, 그럼 그냥 남아계셔도 됩니다. 우리가 육 소저와 같이 ‘집으로’ 보내드리지요.”

    그들의 협박에도 한립은 덤덤하기만 했는데, 뒤에 서있던 백의 소녀가 먼저 나섰다.

    “선배님들 류석 오라버니를 곤란하게 하지 말아주세요. 아직 여정이 남았으니 세 분이 같이 저를 호송해 주시면 어떨까요? 제가 아버지께 청을 드려 세 분께도 큰 보상을 드리게 하겠습니다.”

    거한은 고려를 해보는 듯했고, 흑사 부인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러나 그때 마른 청년이 교활한 얼굴로 일행에게 입을 열었다.

    “보상이 아무리 많아도 한 명이라도 받아갈 사람이 줄어야 몫이 커지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거한의 눈빛에 살기가 일었고, 한립은 그저 턱을 쓸어내렸다.

    “류석 오라버니, 잠시 피해 계시는 것이 어떨까요? 제가 흑풍도로 돌아가면 아버지께 사정을 설명 드리겠습니다.”

    한립의 귓가에 육우청의 전음이 들려왔다.

    “도주가 내린 임무는 자신이 딸을 안전하게 데리고 오라는 것이었지. 누구의 수중에서 데리고 오느냐는 밝히지 않았네. 저들이 나를 죽이고 수사를 데려가도 육 도주는 임무를 성공했다 인정하겠지. 게다가 이미 일이 이렇게 된 마당에 수사의 부친이 일면식도 없는 나를 위해 다른 산선 세 명과 척을 질까?”

    한립은 작게 미소를 지으며 소녀를 향해 고개를 저어보였다.

    “더 중요한 것은 저들은 처음부터 나를 그냥 보내줄 마음이 없었네. 소산삼살, 내 말이 맞습니까?”

    한립은 전음이 아닌 육성으로 물었다.

    “쯧쯧, 귀한 아가씨 앞에서 피를 보는 일은 없길 바랐는데 어쩔 수 없구나!”

    거한은 연기를 걷어치우고 그 말이 사실임을 인정했다. 육우청은 난색을 표하며 고민하다 한립 앞을 가로막았다.

    “류석 오라버니는 제 목숨을 구해주신 분이에요! 이분을 해치려면 저부터 상대하셔야 할 거예요.”

    소녀의 말에 거한은 물론 삼살 모두 의외라는 기색이었다. 한립도 자신 앞을 막아선 작은 체구의 소녀를 보고 표정이 어딘가 어색했다.

    “여인 뒤에 숨는 습관은 없어서 말이지…….”

    한립은 소녀의 어깨를 두들겨주고는 가볍게 그녀를 끌어 등 뒤로 보냈다.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는 사라진 후였다.

    다음 순간, 치직거리는 뇌전 소리가 들리며 마른 청년 뒤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널찍한 은색 뇌전그물이 펼쳐져 수천 가닥의 뇌전을 튕겨냈고 흐릿한 푸른 인영이 빠져나갔다.

    뇌전 빛 속에서 마른 청년은 참혹한 비명을 지르며 검은 얼음을 온몸에 두르고 거한 쪽으로 달아났다.

    “셋째가!”

    한립의 과감한 선제공격에 거한과 흑사 부인은 깜짝 놀라 마른 청년을 바라보았다. 육우청도 깜짝 놀랐지만 이전에 한립이 보여준 실력을 떠올리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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