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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529화 (1,286/2,000)

1529화. 실종된 도주의 딸

*

“또한 이번 임무에 대해서는 결코 외부에 누설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흑풍해역에서 내가 죽이고자 마음먹은 이가 숨을 곳은 없다는 것을 명심해 주세요.”

육균은 돌연 차갑게 정색을 하고는 한 글자 한 글자를 강조했다.

“절대 발설하지 않을 것이니, 마음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몇몇 수사들이 안색이 변해 서둘러 답했다.

“딸아이만 안전히 데려와 주시면 미리 언급한 대로 한 가지 요구를 들어드릴 것입니다. 다들 최선을 다해주세요.”

“그렇다면 저희는 먼저 조사를 하러 가보겠습니다.”

육균의 약속에 대살이 공수하고 이살, 삼살과 같이 그곳을 나갔다. 한립과 다른 수사들도 분분히 자리를 떠나 대청 안에는 육균만 남게 되었다.

팟.

이때 그 옆이 밝아지면서 흑포 노인이 나타났다.

하얀 수염과 머리카락을 늘어트린 노인은 진선 중기의 강대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우청을 구하는데 저들로 되겠습니까? 그러지 말고 저나 셋째를 보내지요?”

“안 되네. 청우도(靑羽島) 쪽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서 우리 중 누구도 흑풍도를 떠나선 안 돼. 후한 사례를 약속했으니 우청은 저들에게 맡겨 봐야겠지.”

“허나…….”

“우선 순위를 생각해야지. 우청의 일은 일단 이렇게 하는 것으로 하세.”

육균이 흑포 노인의 말을 막고는 피로한 어조로 손을 저었다.

“하아, 우청 그 아이도 참! 어쩐다고 하필 이런 시점에 섬을 뛰쳐나간단 말입니까.”

“다 내가 너무 오냐오냐 키운 탓이야. 이번에 돌아오면 단단히 교육을 시켜야겠어!”

“그렇다고 우청 탓만 할 일은 아닙니다. 몇 년이 지났는데 묵이가 어찌 죽었는지도 밝혀내지 못했으니 그 아이도 속이 답답해 벌인 일이겠지요.”

흑포 노인의 말에 육균은 생각이 많은 얼굴로 벌떡 일어나 제자리를 빙빙 돌았다.

“잠깐 동안 연락이 끊긴 것은 상관없지만, 신분이 노출되어 우청도 그자들의 손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어쩐단 말인가.”

“아이가 순진하기는 해도 영민한 구석이 있습니다. 또 지닌 보물도 많으니 큰일을 당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나도 그러기만을 바라고 있네.”

* * *

도왕부를 떠난 수사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다 같은 방향으로 날아갔다. 잠시 후 그들은 푸른 벽돌을 쌓아 만들어진 마름모꼴 건물 앞에 내려섰다.

건물 1층에는 크기가 제각각인 전송진 십여 개가 희미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각 진법 옆에선 흑풍도 인근 십여 개의 섬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걸 본 한립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흑풍도에 와서 며칠 동안 다른 일을 처리하면서 틈틈이 인근 해역 상황도 파악해 두었다.

흑풍해역에서도 구석진 곳에 위치한 오몽도와 달리 흑풍도는 본섬 외에 인근의 작은 섬들과도 연맹을 형성하고 있었다.

직접 외부로 통하는 전송진 덕분에 유리한 입지조건으로 번영을 이루었지만 이를 시기하는 다른 섬 연맹 세력들도 많아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다행히 이곳에는 이미 진선 후기에 이른 흑풍도 도주가 버티고 있었고 객경들도 많아 오늘날까지 흑풍도와 흑풍해역의 안정이 유지가 되고 있었던 것이다.

한립은 곧 쓸데없는 생각을 지웠다. 어차피 육우청을 찾아 흑풍해역을 떠나면 그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육우청의 행방에 대해 아무런 실마리가 없는 다른 수사들과 달리 그는 짐작 가는 곳이 있었다.

그는 보일 듯 말 듯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전송진들 중 하나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자료에 육우청이 이용했다고 적혀 있는 응췌도(凝萃島)로 통하는 전송진이었다.

다른 이들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그쪽으로 다가왔다.

“선배님들 이 전송진을 이용하려 하십니까?”

전송진 옆에 선 회백발 노인이 그들을 향해 예의 바르게 물었다.

“쓸데없는 소리! 안 그러면 왜 여기까지 왔겠느냐? 바쁘니 서두르거라!”

대살이 냉소하며 흑풍령을 꺼내 보이고 진법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다른 이들도 흑풍령을 보이고 진법 위에 섰다.

“예, 예!”

노인은 그들의 흑풍령을 하나씩 확인하고 서둘러 법결을 날렸다.

웅웅!

진법이 요란한 하얀빛을 머금자 한립과 다른 진선들이 모두 사라졌다.

눈앞이 하얗게 변하고 다시 밝아진 순간, 한립은 또 다른 푸른 석전 안에 도착해 있었다.

쉭! 쉭! 쉭!

거한 삼인조를 포함한 다른 수사들은 전송진을 나서기 무섭게 둔광을 일으켜 석전을 벗어났다. 딱 한 명만 성공할 수 있는 임무라 경쟁이 무척 치열했다.

남은 이들은 서로 눈치를 살피다 묵묵히 석전을 나섰다.

고지대에 위치한 선전에서는 사람들이 오가는 모습이 전부 내려다보였다. 번화한 성이었지만 흑풍성에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류 형의 차분한 모습을 보니, 왠지 뭔가 단서를 찾으신 듯 보입니다.”

관영이 하하 웃으면서 다가왔다.

“육 소저가 어디로 갔을지 생각해 보고 있었을 뿐 아무런 단서도 없습니다. 관 형이야말로 뭔가 아는 바가 있으십니까?”

“전혀요! 하아, 천천히 찾아봐야지요.”

그들은 몇 마디를 나누다 흩어졌고, 다른 이들도 각기 다른 방향으로 날아갔다. 한립은 흑풍해역의 상세한 지도가 담긴 옥간을 꺼내 응췌도의 위치를 확인했다.

“역시!”

뭔가 계획이 섰는지 그는 쾌속으로 응췌도를 벗어나 인근을 빙 돌았다.

치지직!

아무도 따라오는 이가 없자 그는 수결을 맺어 몸에서 수많은 은색 뇌전을 방출했다.

뇌전들이 형성한 원형의 진법은 커다란 천둥소리를 남기고 소실되었다.

며칠 뒤.

흑풍해역 모처에 뇌전 빛이 반짝이고 은색 뇌전진법이 나타났다. 진법이 흩어진 자리에는 피곤한 얼굴의 한립이 있었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다 멀리 지평선에 걸린 검은 점을 보고 섬이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드디어 찾았어.”

그는 더 이상 전송뇌진을 사용하지 않고 푸른 둔광을 일으켜 날아갔다. 쾌속으로 다다른 섬은 괴이하게도 사방팔방이 붉은 색이었다.

이 섬은 지난번 임무를 수행하러 왔었던 홍월도로 지면은 물론 풀과 나무까지 붉게 물들어 있었다.

흑풍도 세력 범위에서 이동할 수 있는 곳 중에 홍월도에서 가장 가까운 섬이 바로 응췌도였다.

거기다 육곤의 가면까지 더하면 모든 실마리가 홍월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육곤이 정말 교십육이었고 그걸 알아낸 육우청이 오라버니의 행방을 찾고자 이곳까지 왔을 가능성이 높았다.

여기까지 오긴 했지만 전방의 홍월도를 본 한립은 골치가 아팠다. 면적이 너무 넓어서 강대한 의식을 지닌 그도 이곳을 다 뒤지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생각을 정리하고 푸른 빛줄기로 변해 교십육이 죽은 곤주의 홍월성 방향으로 출발했다. 동시에 의식을 넓게 퍼트려 가는 길을 수색했다.

단서가 얼마 되지 않아, 가능성이 높은 곳부터 살피는 수밖에 없었다.

수행을 회복한 한립은 반나절이 못되어 경로의 절반 이상을 날아갔지만 어떤 흔적도 찾지 못했다.

“뭐지?”

뭔가를 발견한 듯 둔광이 아래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울창한 숲 속, 지면이 길게 파여 불길에 그을리기라도 한 듯 검게 타있었다.

“얼마 되지 않은 흔적이야.”

아직도 땅 속 깊은 곳에 은근하게 온기가 남아 있었고, 흔적으로 보아 대승기 이상의 수행을 지닌 자가 한 짓이었다.

한립은 그곳에 오래 머물지 않고 날아올라 가던 방향으로 쏘아져 나갔다. 주의 깊게 살피니 비슷비슷한 전투 흔적이 곤주 홍월성 방향으로 이어졌다.

* * *

반 시진 후, 초원에 도착한 한립은 검게 타들어간 커다란 구멍들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휙!

그는 의식을 퍼트려 손짓해 구덩이 속에서 검은 천 조각을 불러들였다. 흑풍도의 시종들이 입던 옷과 같은 천이었다. 그는 서둘러 푸른 빛줄기로 변해 전방으로 사라졌다.

두세 시진 후, 구덩이들 위로 은빛 뇌전이 번득이고 한립이 나타났다. 이곳 이후로는 어떤 전투의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이 말은 육우청의 적이 누구든 그녀 일행을 이곳에서 완전히 격파시켰다는 뜻이었다. 육우청이 아직 살아있을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한립은 빠르게 머리를 굴려 두 눈에서 남색 빛을 방출하는 동시에 미간의 파멸법목을 뜨고 검은 빛을 쏘아 보냈다.

남색빛 두 줄기와 검은 빛이 뭉쳐져 검은색과 남색이 교차하는 거대 눈알로 변해 사방으로 빛을 퍼트렸다. 그러자 주변 허공의 천지원기가 머릿속에 또렷하게 떠올랐다.

무수히 많은 빛의 점들이 아래위로 오르락내리락하거나 이상한 궤도를 그리며 날아다녔다.

빛의 점들 속에는 붉은 빛 한 줄기가 잔영을 남기면서 어딘가로 날아가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한립은 곧장 붉은 빛줄기가 향한 방향으로 전속력을 다해 날아갔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 멈춰 서서 방향을 틀었다. 앞서간 누군가가 이곳에서 방향을 틀었기 때문이다.

몇 차례 방향을 틀던 기운은 한참 뒤에는 곧게 일직선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콰릉!

한립의 몸에서 천둥소리가 울리고 다시 은색 뇌전들이 방출되었다. 붉은 빛줄기가 극히 빠른 속도로 홍월도 인근 해역을 벗어나고 있었다.

둔광 안에 들어있는 것은 새빨간 선박이었다.

선박 위에는 세 사람이 있었는데, 소매에 푸른 깃털 모양의 수가 놓아진 청포를 걸친 각진 얼굴의 중년사내와, 희끗희끗한 수염을 지닌 노인 그리고 붉은 사슬에 꽁꽁 묶여 잔뜩 화가 난 얼굴을 하고 있는 아름다운 백의 소녀였다.

“속도를 더 높일 수는 없습니까?”

노인은 불안하게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기 형, 이미 용우비주(龍羽飛舟)를 전속력으로 운행하는 중입니다. 더 속도를 높였다가는 배가 망가질 수도 있다고요. 흑풍도에서 나머지 것들을 죄다 처리하고 빙빙 돌아가는 길인데 누가 어떻게 추적을 하겠습니까?”

각진 얼굴 사내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청우도로 돌아가기 전까지는 결코 긴장을 풀어서는 안 됩니다. 속도를 높이세요! 배의 손상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뭐, 그럼 알겠습니다.”

노인의 말에 각진 얼굴 사내가 어깨를 으쓱하고 법결을 던졌다. 이에 배 주위로 수많은 붉은 부적들이 떠올라 나부꼈고, 속도가 3할은 빨라져 잔영이 흐릿하게 남았다.

조금 마음이 놓였는지 품에서 진법 원반을 꺼내 발동하려던 노인이 휙! 고개를 돌렸다.

“기 형, 무슨 일입니까?”

“제길, 누가 따라붙었습니다.”

어리둥절해 하던 각진 얼굴 사내가 노인의 말에 안색이 확 달라졌다. 정말 그들과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은색 뇌전빛이 희미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문제는 뇌전빛이 반짝일 때마다 거리가 무섭게 줄어든다는 것이었다.

“저렇게 빠를 수가!”

노인은 걱정에 동공을 수축한 반면 백의 소녀는 희색을 드러냈다.

“죽고 싶어 환장을 했구나!”

사내가 혀를 깨물더니 피를 뱉어 선박에 흡수시키고 신속히 수결을 맺었다.

화륵!

선박이 적홍색 화염을 분출해 불덩이로 변하더니 거의 배는 빠른 속도로 앞으로 쏘아져나갔다. 하지만 그 뒤를 쫓는 은빛도 속도가 엄청나서 거리가 천천히 좁혀지고 있었다.

깃털 장포 노인이 무언가 하려는데, 뒤쪽의 은빛이 갑자기 밝은 빛을 터트리고 사라졌다.

콰릉!

다음 순간, 선박에 탄 두 사람의 머리 위로 천둥소리와 함께 은색 뇌전이 번득이더니 굵은 은색 뇌전이 느닷없이 선박에 내리꽂혔다.

깜짝 놀란 노인이 검은 깃발을 날리자 깃발에서 방출된 검은 빛이 흉측하게 생긴 악귀 얼굴로 변해 은색 뇌전을 물어뜯었다.

이에 뇌전이 속도를 높여 악귀 얼굴의 입속으로 들어갔다.

그걸 본 노인은 안색이 변해 뭔가 하려 했지만 갑자기 펑! 하고 악귀 얼굴이 터져 검은 안개로 퍼져나갔다.

이에 은색 뇌전은 훨씬 작아진 모습으로 안개를 빠져나와 적홍색 선박으로 떨어졌다.

쾅!

선박은 엄청난 굉음을 내며 폭발했다.

그 틈에 노인과 각진 얼굴 사내는 육우청을 데리고 수백 장 밖 허공으로 내빼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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