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1528화 (1,285/2,000)
  • 1528화. 구인

    *

    며칠 뒤.

    도단 약방에 대한 소식은 오래 걸릴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치 못하게 가장 먼저 들려왔다.

    그러나 구체적인 정보가 아니라 도단 약방은 너무 귀해 일반 무상맹 거래에는 등장하지 않고, 더 고위층의 핵심 회원들끼리만 간혹 거래가 되고 교환조건이 무척 까다롭다는 이야기였다.

    정보를 준 사람은 만일 천단사의 칭호를 얻고 담보물이 있다면 도단 약방을 구하기가 훨씬 쉬워진다고 귀띔해 주었다. 심지어 천단사가 되면 다른 회원들이 먼저 약방과 재료를 구해와 제련을 도와준다고도 했다.

    한립은 삼대지존 법칙에 대해서도 알아보았다.

    선계에서 지존법칙을 수련할 수 있다고 알려진 경전은 거의 거대 세력이 보유하고 있었고, 바깥에 나도는 것은 구결이 완전하지 않거나 흠이 있어 함부로 익히는 이가 없었다.

    그밖에 며칠 동안 무상맹에 맡겨둔 법보들도 전부 팔렸다. 이전에 흑풍성에서 소량씩 처분해 얻은 것까지 합하면 극품영석 6백 여 개가 모였다.

    그러나 평범한 수사들에게는 천문학적인 금액인 극품영석 600개도 3년 후의 대경매회를 대비하거나 흑풍해역을 떠나는 비용을 충당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한립은 오래 고민하지 않고 무상맹에 탄혼화 종자를 구하는 임무를 등록했다.

    신비영액만 있으면 경매회 전에 만년 이상이 된 탄혼화를 길러낼 수 있을 것이다. 때가 되면 탄혼화를 맡겨두고 원하는 물건을 교환하면 되었다.

    탄혼화를 기르려면 지기화신의 중수 정련이 차질을 빚겠지만 다 좋을 수는 없는 법이다.

    * * *

    며칠 후.

    동부 밀실에 앉아 수련을 하던 한립이 밀실 밖을 보고 법결을 날렸다.

    쿠쿵.

    밀실 대문이 열리자 까무잡잡한 피부의 모설이 밖에 서있었다.

    “류 선배님, 분부하신 일을 알아보고 왔습니다.”

    한립은 공손히 예를 올리는 모설을 안으로 들게 했다.

    “수집한 정보에 따르면 전송 명단에 들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어떤 것이지?”

    “첫 번째 방법은 진선경 이상인 자가 도왕부(島王府)의 객경이 되어 백 년 간 일을 해주는 것이고, 두 번째 방법은 가끔 도주부에서 발표하는 임무 중에 전송 명단에 오를 자격이 보상으로 걸린 임무를 수행하는 것입니다.”

    모설의 말에 한립은 침묵했다. 첫 번째 방법은 고려할 것도 없었다.

    십방루의 지명수배와 신비한 사슬로 원영을 구속한 자 때문에 변수가 생기기 전에 한시바삐 흑풍해역을 떠나야 하는 그에게 백 년은 너무 길었다.

    임무는 난이도는 조금 있겠지만 두 번째 방법이 그에게 더 적합했다.

    “듣자니 암시장에서도 전송 명단이 거래가 되는데, 가격이 상당하다고 합니다.”

    모설은 한립이 말이 없자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얼마라고 하더냐?”

    “적어도 선원석 5개는 주어야 하고 구하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다고 들었습니다.”

    한립은 고개를 저었다. 나중에 치를 전송비용까지 합하면 총 선원석 10개가 필요하단 말이었다.

    진선 초기 수사가 선원석 10개를 제련하려면 천 년이나 필요했다. 무상맹에서 구해보려고도 했지만 선원석 한 개 당 극품영석 100개 이상이 필요했고 충분한 영석이 있어도 선원석을 거래하려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상황을 보아하니 흑풍도 도주는 이곳 수사들이 떠나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듯했다.

    “알았다. 수고했다.”

    한립은 상품영석을 하나 꺼내 모설에게 주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선배님! 언제든 필요한 일이 있으면 불러주십쇼!”

    모설은 기분이 좋아 입이 귀에 걸릴 것 같았다. 모설을 보내고 동부를 거닐던 한립은 얼마 지나지 않아 흑풍성으로 출발했다.

    * * *

    검은색 건물들이 연달아 서있는 흑풍성 중심가.

    다른 건물들과 달리 벽돌과 기와 하나하나가 세심하게 세공된 검은 건물들 사이로 꽃이 만발하고 졸졸 물이 흘렀다. 건물들 전체가 더없이 광활한 저택을 이루고 있었다.

    검은 안개가 드리운 저택을 행인들은 멀리 돌아서 가거나 걸음을 재촉해 서둘러 벗어났다. 이곳이 바로 흑풍도 도주 육균의 저택, 도왕부였다.

    저택 앞쪽 광장 옆에는 ‘부신전(符信殿)’이라 적힌 검은 궁전이 새워져 있었다.

    그곳은 드나드는 이들이 꽤 있었고 다들 수행이 낮지 않아 합체기 수사부터 대승기 수사까지 보였다. 머지않은 곳에 떨어진 푸른 둔광 속에서 한립이 나타났다.

    검은 궁전 안으로 걸어 들어간 그는 넓은 공간에 높다란 청석 석벽 하나가 우두커니 서있는 것을 발견했다.

    왼쪽과 오른쪽에 우두커니 서있는 흑포 사내 두 명은 도왕부 사람일 것이다.

    열댓 명의 수사들이 대청 곳곳에 서서 석벽에 줄줄이 적힌 글자를 살피거나 아니면 안면이 있는 이들과 임무의 내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석벽으로 다가간 한립은 고개를 들었다. 2, 30가지 임무가 보상과 함께 적혀 있었다.

    쭉 훑어 내려가자 전송진 사용권이 달린 임무가 두 개나 있었다.

    하나는 청홍비옥(靑虹翡玉)이라는 재료를 찾아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진선 이상의 수행을 지닌 자가 어느 섬에 백 년 동안 머무는 일이었다.

    한립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오몽도의 한 경전에서 본 바로 청홍비옥은 법칙의 힘을 함유한 재료라 아무 때나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누군가 청홍비옥을 찾더라도 겨우 전송진 이용권과 바꿀지 알 수 없을 만큼 귀한 물건이었다. 나머지 섬을 지키며 백 년 간 버티는 임무는 더 고려할 가치가 없었다.

    “호오.”

    울적해지려는데 석벽 가장 위에 따로 적힌 임무가 눈에 들어왔다.

    어떤 사람을 찾는 임무로, 구체적으로 대상이 누군지는 알 수 없어도 임무를 완수하면 도주에게 합리적은 요구를 할 수 있었다.

    얼마 전에 발표된 임무 같았는데 진선경 이상의 수행을 지닌 자만 지원가능하다고 표시가 되어 있었다. 누굴 찾는지 몰라도 나머지 임무들보다는 도전해 볼만했다.

    “선배님 어떤 임무를 수행하려 하십니까?”

    그가 다가서자 흑포 사내 중 한 명이 예를 올렸다.

    “이걸로 하겠네. 자세한 자료는 어디서 확인할 수 있지?”

    “저를 따라오시면 됩니다.”

    한립이 가장 위쪽 임무를 가리키자 흑포 사내가 더욱 공손한 태도로 대청 뒤쪽으로 향했다.

    주변 사람들이 그걸 보고 웅성이기 시작했다.

    “진선경 수사란 말인가!”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저 임무를 골랐으면 당연히 진선이시겠지요.”

    “낮선 얼굴인데 외지에서 온 분일까요?”

    왁자지껄한 소리를 뒤로하고 한립은 흑포 사내를 따라 도왕부로 향했다. 흑풍성에 수사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지만 최상급 존재인 진선을 직접 만나기란 어려웠다.

    그런데 저렇게 평범해 보이는 청년이 진선이라니 소란이 일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곧게 뻗은 길을 따라 또 다른 대청에 이르렀다.

    그곳에는 십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발소리를 들은 몇몇이 시선을 돌렸다가 곧 자기 할 일을 했다. 전부 진선들이었다.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흑풍도에 이렇게 많은 진선이 모인 것을 보니 한립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선배님, 잠시만 기다려 주시면 임무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있을 것입니다.”

    흑포 사내의 말에 한립은 구석 자리를 골라 앉았다. 푸른색 옷을 걸친 시종이 다가와 하얀 김이 어린 차를 내주고 물러갔다.

    다들 그처럼 도주의 임무를 받기 위해 온 것인지 홀로 떨어져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그렇다고 무리를 지어 모여 있는 이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대청에서 눈에 잘 띄는 자리에 세 사람이 나란히 서있었다.

    등치가 큰 거한, 검은 천으로 얼굴을 가린 젊은 부인 그리고 마른 청년이 자기들끼리 웃으며 떠들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관영이라 합니다.”

    한립이 그들을 살피는데 살집이 좀 있는 동그란 얼굴의 청년이 다가와 말을 붙였다.

    “류석이라 합니다.”

    한립이 찻잔을 내려놓고 마주 인사를 했다.

    “아, 류 형이셨군요. 처음 보는 분 같은데 이제 막 흑풍도에 도착하셨군요?”

    상대는 넉살 좋은 성격인지 보자마자 그를 류 형이라 불렀다.

    “정말 며칠 전에야 흑풍도에 도착했습니다. 그걸 어찌 아셨습니까?”

    “하하, 제가 성격이 워낙 활달해서요. 이리저리 사람 만나고 돌아다니는 걸 참 좋아합니다. 흑풍성 안에 진선 수사라면 대부분 안면을 트고 있다고 봐야겠지요.”

    “아, 그러시군요.”

    한립이 고개를 끄덕이자 관영은 그 옆에 붙어 재잘재잘 떠들기 시작했다. 어차피 할 일도 없어서 그의 말에 대꾸를 해주다 보니 금세 주변 수사들의 정보와 적잖은 소식들을 알 수 있었다.

    시간이 흘러 거의 반나절이 지났을 무렵, 두 명의 진선이 더 들어왔다.

    그리고 정오가 되었을 때, 대청 뒤쪽에서 발소리가 들리고 머리에 관을 쓰고 검은 비단 장포를 걸친 위엄있는 중년인이 등장했다.

    순간, 대청 안에 정적이 흘렀다.

    심지어 남들은 개의치 않고 웃고 떠들던 세 명도 입을 다물고 있었다. 한립은 눈앞의 사내를 두고 동공을 수축했다.

    그는 사람이 아니라 마치 거산이 우뚝 솟아 있는 것처럼 위압감을 주는 인물이었다.

    “도주님!”

    관영이 일어나 금포 중년인을 향해 예를 올렸다. 그를 따라 다른 수사들도 공수를 하고 예를 취하며 흑풍해역에서 최고의 권력자인 사내를 살폈다.

    “다들 너무 예의 차리실 것 없습니다. 앉으시지요.”

    금포 중년인은 손을 저어 모두에게 자리를 권했다. 물처럼 고요한 얼굴에는 어딘지 모르게 초조함이 어려 있었다.

    “긴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여러분을 모신 것은 제 딸아이 우청이를 찾기 위해서입니다. 이틀 전 일행들과 함께 실종이 되었고 이게 관련 정보입니다. 누구든 딸아이를 찾아주시기만 하면 후한 사례를 약속하겠습니다.”

    육균은 열댓 개의 옥간을 수사들 앞에 놓인 찻상 위로 날려 보냈다. 옥간을 받아 의식을 불어 넣은 한립은 맨 처음 육우청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아름답게 생긴 십대 소녀로 눈처럼 하얀 옷을 입고 있었다. 도주의 딸인 육우청은 그가 얼마 전 천약재에서 우연히 마주친 백의 소녀였다.

    소녀의 초상화 뒤로 동행한 이들의 모습과 신분도 담겨 있었다. 그중 한 명은 천약재에서 소녀 옆에 있던 남포 청년이었고, 이름은 방랭이라 했다.

    인계 연단사인 방랭은 흑풍해역에서 명망있는 지단사의 제자라고 적혀 있었고 나머지 인물들은 육우청의 호위였다.

    이들은 며칠 전 전송진을 이용해 흑풍도를 떠난 뒤 연락이 끊겼다.

    “도주님, 우청 아가씨가 갑자기 실종된 이유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십니까?”

    무리지어 있던 세 사람 중 기골이 장대한 거한이 물었다. 관영이 말해주길, 세 사람은 흑풍해역 소산도(韶山島) 출신의 소산삼살(韶山三煞)이란 자들이었다.

    그들의 본명은 아는 이가 없어 대외적으로 대살, 이살, 삼살로 불렸고, 거한이 바로 대살이었다.

    산선 셋이 뭉친 소산삼살은 고정된 거처가 없고 난폭한 행동을 일삼아 흑풍해역에서 악명을 떨쳤다.

    “아들 녀석인 육묵이 몇 년 전 출타를 한 뒤 돌아오지 못했고, 도왕부 안의 원신정도 꺼지고 말았습니다. 누구의 소행인지도 밝히지 못했고요. 우청은 오라비와 사이가 좋았던 터라 몇 년 간 묵이의 행방을 찾으려 했는데 제가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실종된 게 그 일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짐작하고 있습니다.”

    육균의 눈에 슬픔이 어렸다 금방 사라졌다.

    대청 안의 수사들이 다양한 표정으로 침묵했고, 한립은 천약재에서 만났던 날 육우청이 방랭과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그렇다면 육 공자에 대한 자료도 한 부씩 나눠주시지요. 우청 아가씨를 찾는데 도움이 될지도 모릅니다.”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대살의 요구에 육균이 고개를 끄덕였다.

    ‘엇!’

    또 다른 옥간을 받아 자료를 살피던 한립은 흠칫 놀랐다. 자료 중에 남색 호랑이 가면이 눈에 익어서였다. 무상맹 회원들이 쓰는 가면은 그도 아는 자의 것이었다.

    ‘이건 교십육의…….’

    홍월도에서 함께 임무를 수행하던 교십육이 남색의 호랑이 가면을 쓰고 다녔었다.

    ‘육묵이 바로 교십육이었단 말인가.’

    한립이 이런 추측을 하고 있을 때 도주 육균이 열댓 개의 검은 영패를 날려보냈다.

    “흑풍령입니다.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흑풍도 전역의 전송진을 마음껏 사용해도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영패를 받은 수사들이 희색을 드러냈다.

    흑풍도에는 여러 섬으로 통하는 전송진이 설치되어 있었지만 섬 간의 거리가 워낙 멀고 전송진을 이용하는 비용이 비싸서 곳곳을 누비기가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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