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5화. 선원석(仙元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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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문 뒤로 이어진 길은 청옥이 깔려 있었는데 굉장히 넓었다. 마차들의 왕래가 잦고 범인들은 물론 법력을 지닌 수사들도 지천에 깔려 고개 수사들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길옆으로 들어선 넓고 쾌적한 상점들은 기본적으로 각종 수도 재료들을 팔고 있었다. 성 내에는 금공금제가 없는지 너무 높게만 날지 않으면 아무도 무어라 하는 이가 없었다.
한립도 공중으로 날아올라 성을 돌아보았다. 바깥에서 볼 때와 다름없이, 아주 번화하고 수사와 범인들이 섞여 왁자지껄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흑풍성에 오신 이유가 물건을 구입하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따로 처리할 일이 있으셔서인지 여쭈어도 될지요?”
모설이 공경스런 표정으로 조심스레 물었다.
“듣자니 흑풍해역 바깥으로 통하는 전송진이 이곳에 있다지?”
“그렇습니다. 전송진은 성 중앙 천성탑(天星塔)에 있습니다. 저, 혹시……. 흑풍해역을 떠나고자 하십니까?”
망설이던 모설의 물음에 한립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할지……. 선배님, 매년 수많은 이들이 흑풍해역을 떠나려 흑풍성에 오지만 성공하는 이는 거의 없었습니다. 전송진을 이용해 바깥으로 나가는 것이 너무 어려운 일이라서요.”
모설은 곤란하다는 듯 말했다.
“오, 어째서 그렇지?”
“바깥으로 통하는 고대 전송진은 성주 대인께서 장악하고 계신데, 백년 마다 딱 한 번씩만 개방해서 제한된 인원만 이용할 수 있습니다. 전송 명단을 성주 대인께서 직접 뽑으시는 것은 물론이고 명단에 올라도 지불해야할 비용이 엄청나서, 선인이라고 해도 전송진을 이용하기가 어렵습니다.”
“다음 개방일이 언제더냐?”
모설의 말에 한립의 표정이 미미하게 달라졌다.
“얼마 남지 않았을 겁니다. 똑같이 백년에 한번 열리는 대경매회 이후에 개방되곤 했는데, 이번 경매회가 임박했으니까요. 그래서 성 안이 평소보다 더 북적이는 것이고요.”
“그럼 어찌해야 전송 명단에 들 수 있지?”
“아……. 그 일은 비공개적으로 진행이 되는데다 소인은 수행이 너무 낮아 잘 알지 못합니다.”
“방금 말한 엄청난 비용은 영석으로 따지면 얼마나 되느냐?”
한립은 모설을 탓하지 않고 다른 질문을 했다.
“성주 대인께서는 비용을 영석이 아닌 선원석(仙元石)으로만 받으십니다. 그것도 다섯 개나요.”
“선원석? 그게 뭐지?”
“음, 선원석은 선인이 체내의 원기를 특수한 수정 속에 주입한 것으로 선인들끼리 사용하는 화폐의 일종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선원석이 그렇게 비싸단 말이냐? 화폐의 일종이라면 어찌 되었든 충분한 영석이 있다면 구할 수 있을 텐데?”
“선원석은 평범한 화폐가 아닙니다. 선인들도 굉장히 중히 여겨 거의 거래를 하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수십 년 전에 흑풍성의 한 부유한 상회가 어느 선인에게서 선원석 하나를 구입하느라 성 안의 모든 점포를 팔아 겨우 그 값을 치렀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모설은 한숨을 쉬듯 답했다. 그러나 한립은 이야기를 들을수록 선원석에 대해 흥미가 생겼다.
한립은 더는 질문을 하지 않았다. 어차피 흑풍해역을 그리 쉽게 떠날 수 있을 거라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가 호기심을 가지고 성 중심부로 날아가자 모설이 그 옆에 바짝 붙어 곳곳을 소개해 주었다.
거의 반나절을 구경하고 다니던 한립은 마지못해 멈춰 섰다.
반나절 동안 보고 들은 것만으로도 완전히 딴 세상을 알게 된 기분이었다. 특히 흑풍성 중심가의 단약 상점, 재료 상점, 법보 상점들은 보기만 해도 눈이 어지러웠다.
그러나 모설의 말에 따르면 이게 흑풍성의 1할도 구경하지 않은 것이라 했다. 흑풍해역 제일의 거대성이라는 명성이 아깝지 않은 규모였다.
그는 문득 걸음을 멈춰 서서 길가의 5층 누각을 올려다보았다. 화려하지만 또 너무 상스럽지 않게 장식된 누각에서 약재향이 물씬 풍겼다.
“이곳 천약재(千藥齋)는 흑풍성 최고의 단약 상점입니다. 소문으로는 흑풍 도주와도 연관이 되어 있어 진귀한 각종 단약들을 판매하고 가격도 합리적이라고 하더군요. 고객에게 사기를 치거나 악행을 벌였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습니다.”
모설이 눈치 있게 소개하자, 한립은 곧바로 안으로 들어갔다.
회복용 단약이 얼마 남지 않았고, 치유용 단약과 해독용 단약은 더욱 남은 게 거의 없었다. 흑풍해역을 떠나 청죽봉운검과 해 도인을 찾으러 떠나기 전에 반드시 보충해둬야 했다.
넓은 점포 안에는 각종 단약이 쌓인 진열대가 수십 개 놓여 있었고 몇몇 진열대에는 연단용 재료도 보였다.
수많은 손님들이 진열대 앞에 서서 물건을 고르는 중이었다.
“천약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어떤 종류의 단약을 구하십니까?”
한립과 모설이 안에 들어서자 노란 의복을 입은 시종이 다가왔다. 한립은 진열대 위 물건들을 훑고 미간을 좁혔다. 품질이 나쁘지 않았으나 그의 눈에 들 만한 것은 없었다.
“더 좋은 단약은 없는 것이냐?”
그 말에 시종은 한립을 위아래로 훑으며 입을 열었다.
“흑풍성 최고의 단약 성점인 본점에 더 좋은 단약이 없을 리 없지요. 그저 가격이…….”
“무엄하다. 이분은 내가 모실 것이니 너는 물러나 있거라!”
그때 새하얀 눈썹을 지닌 황포 노인이 총총걸음으로 다가와 시종을 혼냈다. 복장으로 보아 점포의 관사인 듯했다.
영민한 시종이 한립을 향해 예를 올리고 고분고분 물러났다.
“아래 것들이 뭘 잘 몰라 무례를 범한 것이니 나무라지 말아주십시오, 선배님.”
황포 노인이 공수하며 한립을 향해 사죄를 했다.
“괜찮다. 고급 단약들이 있는 곳으로 가지.”
“물론입니다. 위층으로 올라가시지요.”
노인은 한립이 크게 신경 쓰지 않자, 모설에게까지 공손하게 말했다. 이에 당황한 모설은 서둘러 그를 향해 꾸벅 인사를 했다.
“저는 천약재 관사 노평이라 합니다. 선배님의 존함을 알 수 있겠습니까?”
계단을 오르며 황포 노인이 말을 붙여왔다.
“류석.”
“아, 류 선배님. 천약재 아래층들은 인계(人階) 연단사가 제련한 평범한 단약들입니다. 다음번에는 바로 꼭대기 층으로 와주시면 학 대사가 제련한 쓸 만한 단약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노 관사는 친절하게 설명했다.
“선배님, 학 대사는 흑풍해역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연단사로 연단 상의 조화가 지계(地階) 을(乙) 등급에 이르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모설이 한립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대화를 나누는 동안 5층에 이르자 그들 앞에 섬세하게 세공된 진열대 3개가 나타났다.
시종 몇 명이 대기하고 있을 뿐 손님은 한 명도 찾아볼 수 없었다.
“저희 천약재는 학 대사님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 그분이 제련한 단약 대부분을 취급합니다. 이쪽은 수행 증진용 단약, 저쪽에는 회복류 단약, 그리고 저곳에는 치유용 단약과 해독 등 여러 용도의 단약들이 있습니다.”
노 관사는 차례대로 진열대 위의 단약들을 대략적으로 소개했다.
‘이거야!’
단약을 본 한립의 눈이 밝아졌다. 흑풍성 최고의 상점답게 품질이 무척 좋았다. 그곳에는 무상맹에서 거래한 단약들과 엇비슷한 수준부터 그보다 뛰어난 수준의 단약까지 구비가 되어 있었다.
관사의 말을 듣자니 진선이 되려는 수사 혹은 진선이 사용하는 단약을 제련하는 연단사를 지계연단사라 부르고, 평범한 수사들을 위해 연단을 하는 이들을 인계연단사라고 부르는 듯했다.
한립은 우선 회복 단약이 놓인 진열대로 걸어갔다. 단약 아래 효능과 가격이 상세하게 적혀 있어 보기 편했다.
천천히 단약을 훑던 그의 시선이 귀원단(歸元丹)에서 멈추었다.
원기를 크게 보하고 기혈을 왕성하게 해준다는 이 단약은 시간법칙을 함유한 수정 알갱이를 응결할 때마다 기혈을 크게 상하는 그에게 안성맞춤이었다.
“일단 귀원단 다섯 병을 내오지.”
단약은 겨우 3알씩 밖에 들어있지 않았지만 가격이 높아 극품영석 30개가 필요했다. 하지만 그는 지선과 산선 몇 명을 죽이고 빼앗은 극품영석이 있어 그다지 아깝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이에 노 관사가 희색을 드러내며 영패를 꺼내 진열대에 하얀빛을 쏘아 보냈다.
시종이 쪼그리고 앉아 보호막에 생긴 작은 틈 사이로 비취색 옥병 다섯 개를 꺼냈다.
그리고 한립은 연이어 짧은 시간 동안 천지영기 흡수 속도를 높여주는 망원단(望元丹)과 진선경 후기 수사의 의식도 속일 수 있는 용모를 바꿔주는 정골산(整骨散)도 구입했다.
하나같이 가격이 높아 그가 지닌 극품 영석 대부분을 써야 했다. 노 관사는 거의 웃음꽃이 만개한 얼굴로 그를 보고 있었다. 이렇게 씀씀이가 큰 손님은 드물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다른 단약을 추천하려는데 발소리가 들리며 5층에 두 사람이 올라왔다.
열여덟 살 정도로 보이는 아름다운 소녀는 눈처럼 새하얀 의복을 입고 있어 월궁의 선녀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백의 소녀 옆에 선 20대 청년도 준수한 편이었지만 오만한 기색 때문에 그리 호감이 가는 인상은 아니었다.
“노평, 지난번에 준비해 두라던 재료는 구해뒀겠지?”
남포 청년은 올라오자마자 한립을 힐끗 보고 노 관사를 불렀다.
“아가씨와 방 대사께서 오신 줄 모르고 마중을 나가지 못했습니다. 말씀하신 물건들은 진작 준비를 해두었으니 바로 가서 갖고 오겠습니다.”
노 관사는 급히 그쪽으로 걸어가면서도 한립에게 미안한 마음을 담은 눈빛을 보냈다.
‘대사?’
남포 청년의 옷깃에는 작게 붉은 솥이 수놓아져 있었다.
“선배님, 저건 연단사 특유의 표식입니다. 갑 등급 인단사인가 봅니다.”
옆에서 모설이 작게 말해주었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한립은 그들에게 시선을 거두고 나머지 단약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노평은 시종 둘을 불러 백의 소녀와 남포 청년을 모시게 하고 자신은 서둘러 계단을 내려갔다.
백의 소녀는 수심이 깊은 얼굴로 치유, 해독용 단약이 놓인 진열대로 걸음을 옮겼다.
“묵 형은 운을 타고난 분이고 실력도 뛰어나니 특수한 금제나 공간에 갇혀 원신정이 감지를 못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일이 종종 벌어져 왔고요. 그러니 너무 상심하지 마십시오.”
남포 청년은 그런 소녀를 따라가며 위로했다.
“저도 오라버니가 무슨 일을 당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아요. 그저 어찌되었든 행방을 알아보고 싶은 것뿐입니다.”
소녀의 목소리가 꾀꼬리처럼 듣기 좋았다. 그러나 한립은 그들을 개의치 않고 단약을 둘러보았지만 더 이상 살만한 물건을 찾지 못했다.
“가지.”
그는 모설을 향해 말하고는 몸을 돌려 계단으로 내려갔다. 천약재를 빠져나와 인파로 북적이는 거리에 서서 한립이 모설을 돌아보았다.
“흑풍도에 조용히 쉴만한 임시 동부나 거처가 있더냐?”
“성 밖으로 오백 리만 가면 유양산(酉陽山)이 나옵니다. 성주 대인께서 수사들을 위해 만들어 놓은 동부가 있지요. 가시려면 제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이전에 다른 손님들을 모시고 가보아서 길을 잘 압니다.”
“됐다. 방향을 알려주면 알아서 가보마.”
“아……. 성 중앙의 큰길을 따라 북문으로 나가셔서 쭉 북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모설은 아쉬운 얼굴로 답했다. 그러자 한립이 손을 저어 푸른 수정돌 하나를 던졌다. 수정돌을 받은 모설은 그것이 상품 영석인 것을 보고 크게 기뻐하다 어쩔 줄 모르겠다는 얼굴로 돌려주려 했다.
“이, 이건 너무 많습니다. 정말 중품 영석 다섯 개면 충분한걸요.”
“그냥 주는 것이 아니니 안심하고 받거라. 네가 알아볼 일이 있다.”
한립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떤 일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모설은 손에 든 영석을 품에 넣지 않고 물었다. 한립은 소년의 반응이 마음에 들어 고개를 끄덕였다.
“흑풍해역을 떠날 수 있는 인원이 정확히 몇 명인지 알아보면 된다. 유용한 소식을 갖고 오면 섭섭하지 않게 챙겨줄 것이야.”
“걱정하지 마십시오! 최선을 다해 알아보겠습니다.”
모설은 기쁜 얼굴로 답했다.
그 후, 그들은 각자 헤어져 다른 길로 접어들었는데 한립은 성 중앙 대로를 따라 상점들을 구경하며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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