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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518화 (1,275/2,000)

1518화. 예상 밖

*

공격 능력이 없는 대신 방어력이 뛰어나 한구와 그가 데려온 다섯 진선들이 협공해도 파훼하는데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한립은 어느새 은은한 금빛 액체가 찰랑이는 옥병을 들고 맞은편 지기화신의 미간에 액체를 붓고 있었다. 그러자 한구 무리가 공격을 재개하지 않고 한구를 쳐다보았다.

“한구 수사의 이야기와 달리 평범한 현선이 아닌 듯합니다. 이렇게 강력한 진법으로 방어를 해서야 뚫기가 쉽지 않겠어요.”

노란 수염 노인이 어두운 얼굴로 따졌다.

“그건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저자는 겨우 팔천년 된 탄혼화를 가지고 분혼을 안정시키려 하고 있어요. 하루 온종일은 걸릴 텐데, 그동안 이 많은 인원이 금제 하나 어쩌지 못하겠습니까?”

“만년 된 탄혼화라고 해도 두세 시진을 허비할 테고요.”

곡골부인의 말에 청포 도사 중 한 명도 동조했다.

“두 분 말씀이 맞습니다. 신속하게 저놈을 처리하고 오몽도 자원이나 나눠 가지시지요!”

한구는 다시 한번 소리치며 하얀 낫을 다시 날리는 동시에 남색 수정검을 불러내 전방을 향해 휘둘렀다.

촤악!

거목 크기의 남색 검빛이 은은하게 법칙의 힘을 머금고 보호막으로 날아갔다. 보호막의 마지막 층이 불안정하게 번쩍거리다 얼어붙었고, 하얀 연꽃이 그 틈에 보호막을 찍어 산산조각 냈다.

나머지 수사들도 각자의 방법으로 몇 겹의 보호막을 더 제거했다. 그걸 보고 조소를 머금은 한구는 남색 수정검을 계속해서 휘둘렀다.

채챙! 쨍강!

순식간에 십여 겹의 보호막이 깨져나갔다.

복원 능력이 있는 천중명도진이라도 여섯 선인의 전력이 담긴 공격이 연달아 쏟아지자 회복할 시간을 벌지 못했다.

그런데 보호막을 더 많이 깰수록 한구 무리는 안쪽 보호막이 더 단단하고 제거하는데 시간이 더 많이 걸린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결국 아껴둔 강력한 수법까지 사용해가며 물의 장막을 깨는데 공을 들였다.

시간이 흘러, 한 시진이 훌쩍 지나갔다.

수십 겹의 보호막이 대부분 깨져 이제 일고여덟 겹 밖에는 남아 있지 않았다. 그만큼 남은 보호막들이 단단해서 여러 차례 공격해도 물결만 넘실거리고 깨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왜 이렇게 불안하지?’

조급해진 한구는 보호막이 얇아져 점점 또렷하게 보이는 한립의 모습을 보며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다.

그는 문득 공격을 멈추고 붉은 줄무늬가 있는 달걀 크기의 암홍색 구슬을 꺼내들었다.

“전부 비키세요!”

“혈강음뢰(血罡陰雷)!”

한구의 외침에 암홍색 구슬을 본 곡골 부인이 놀라 중얼거렸다. 다른 수사들도 흠칫 놀라 물러선 다음 각양각색의 보호막을 펼쳤다.

구슬은 한구의 손을 떠나 사납게 물의 장막과 충돌했다.

쿠콰콰쾅!

바다 속 지반이 흔들릴 만큼 심한 진동이 일었다. 산만한 혈홍색 태양이 그 자리에 떠올라 삽시간에 핏빛 안개로 변해 나부꼈다.

한립을 보호하던 물의 장막이 눈 깜짝할 사이에 거의 다 깨져 마지막 남은 보호막만 불안하게 물결치고 있었다.

폭발의 위력으로 해저에 광활한 구덩이가 파였고 적홍색 용암이 분출되었다. 인근 바다의 온도가 급격히 상승해 거의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대비하고 있던 한구 무리는 용암과 고온을 차단하고 얇은 보호막 안의 한립을 주시했다.

“혈강음뢰 답습니다! 한 알만 더 있으면 마지막 보호막도 쉽게 제거하겠어요!”

흑갑 사내가 흥분해 소리쳤다.

“한 알 뿐이었습니다. 몇백 년 전 흑풍도 경매회에서 어렵사리 구한 것이었고요.”

한구는 혈강음뢰가 아까워서 속이 쓰린 얼굴이었다.

“시간은 아직 충분합니다. 이제 한 겹밖에 남지 않았으니 다들 전력을 다해 부숩…….”

크아악!

곡골부인의 말이 끝나기 전에 남색 보호막 속에서 크게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립과 지기화신이 동시에 남색 빛을 방출해 하늘을 찌를 듯한 빛기둥을 형성한 것이다.

수천 리 내의 물의 원기가 힘차게 흘러들어 거대한 영기의 소용돌이를 이루고 지기화신 속으로 녹아들었다.

지기화신이 방출하는 남색 빛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밝아졌다. 빛 속에서 손발을 움직여 보는 지기화신의 표정은 살아 있는 사람과 다름없었다.

“벌써 끝났다고?”

“말도 안 돼!”

믿기지 않는 장면에 한구 무리가 눈을 부릅떴다. 태연하게 그들을 향해 고개를 돌린 한립이 씨익 웃으며 남색 보호막을 가리켰다.

쉬이이익!

물의 장막이 펑! 하고 흩어져 가닥가닥 가느다란 남색 실로 변해 한구 무리를 향해 쇄도했다.

깜짝 놀란 한구 일행은 감히 맞설 생각도 못하고 서둘러 뒤쪽으로 몸을 날렸다.

바로 그때, 한립 앞의 지기화신이 눈을 번득이고 포효했다. 물의 법칙을 품은 남색 빛이 성난 파도처럼 출렁였다.

주변 바닷물이 커다란 파도로 변해 사방팔방에서 몰려들었다. 피하려던 한구 무리는 불시에 파도에 휩쓸려 괴력에 제압을 당한 듯 순간적으로 몸이 굳었다.

그들도 지선이라 대부분 몸에서 빛을 발해 파도를 가르고 날아갔으나, 곡골부인만 동작이 살짝 느려 남색 실에 따라잡혔다.

그녀가 술법을 부려 벗어나려는데 실들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곡골부인을 돌돌 말아 커다란 고치로 만들어버렸다.

다음 순간, 그 옆에 나타난 한립이 차가운 얼굴로 주먹을 날렸다. 주먹이 닿기도 전에 훼멸의 힘이 갇혀 있는 곡골부인에게 날아들었다.

그녀는 당황하지 않고 주문을 외고 있었다.

팟!

까만 장검이 남색 고치 바깥에 나타나 웅대한 검빛으로 변해 날아들었다. 검빛은 직접 한립을 베지 않고 섬뜩한 새까만 기운을 방출해 정신을 파고들었다.

막 지기화신을 제련하느라 혼백이 손상을 입은 것을 노려 직접 혼백을 공격한 것이다.

한립은 피할 생각도 하지 않고 전신에 투명한 얇은 막을 불러내고는 주먹 끝에서 금색 주먹 허상을 뿜어 남색 고치를 내려쳤다.

퍼억!

고치 안에서 참혹한 비명이 들려오다 뚝 그쳤다. 거의 동시에 까만 검빛이 한립의 어깨를 베었다.

진극막이 바르르 떨리며 검빛을 막아냈고 머릿속으로 스며든 기운도 바다에 빠진 진흙처럼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다른 수사들이 도우려 할 때는 이미 곡골부인의 지기화신의 숨이 끊긴 뒤였다. 천천히 주먹을 거둔 한립은 법결을 날려 고치의 남색 실들이 흩어지게 했다.

안에는 지기화신이 갈기갈기 찢겨 돌조각처럼 담겨 있었다.

서로 눈치를 살피며 머뭇거리기 시작한 네 수사들은 한구를 향해 노기 어린 시선을 던졌다. 상대가 일격에 지기화신을 박살 낼 수 있는 현선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절대 따라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든 말든 한립은 곡골부인 화신의 저물법기와 검은 장검을 챙겼고, 그의 지기화신은 남색 빛으로 변해 본체로 흡수되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고는 남은 이들을 훑다 한구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평범한 눈길에도 한구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별안간 한립이 흐릿하게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조심!”

긴장한 한구는 크게 소리치고 주문을 외며 두 소매를 펄럭였다. 대량의 하얀 안개가 흘러나와 그를 둘러싸고 운해를 이루었다.

나머지 네 수사도 깜짝 놀라 각자의 법보와 비술을 이용해 철통같이 방어했다.

팟.

한립은 한구 위쪽 허공에 귀신처럼 나타나 금색 털이 북슬북슬 난 굵직한 주먹을 내질렀다.

휘이잉!

한구 머리 위로 금색 소용돌이가 일며 미친 듯이 회전했다. 그 안에서 거대한 금색 주먹 허상이 빠져나와 무시무시한 괴력으로 압력을 가했다.

한구 주변의 하얀 운해는 격렬하게 요동치다 못해 흩어지기 시작했다. 방금 전보다 훨씬 강력한 주먹의 위력에 한구는 혼비백산했다.

급한 마음에 수결을 맺고 괴성을 터트린 그에게서 극도로 차가운 기운이 폭발했다.

촤륵!

주위 바닷물이 꽁꽁 얼어 머리 위로 하얀 빙산을 형성하고 희미하게 법칙의 힘을 발산했다. 빙산 꼭대기가 아주 뾰족해 거대한 빙검처럼 금색 주먹 허상과 맞섰다.

양자 간의 충돌로 땅이 꺼질 듯한 폭음이 울렸다.

하얀 빙산은 얼음조각으로 변해 무너져 내렸고, 금색 주먹 허상은 여전한 기세로 한구를 향해 떨어졌다.

그 순간, 먹색 철패가 한구의 몸에서 튀어나와 정체 모를 법칙파동을 일으켜 검은 빛으로 주먹 허상을 막으려 했다.

주먹 허상은 마른 장작을 쪼개듯 검은 빛을 뚫었지만 그 찰나의 틈에 남색 그림자로 변한 한구는 멀리 달아나고 있었다.

권풍(拳風)에 스쳐 왼쪽 팔이 뜯겨 나간 한구는 겁에 질려 감히 뒤쪽을 쳐다볼 생각도 하지 못했다.

“끄악!”

그러나 한구는 서늘한 코웃음 소리가 귓가에 울리자, 칼날이 머릿속을 헤집는 것 같은 극통을 느끼며 멈춰 서서 머리를 부여잡고 비명을 질러댔다.

그 옆으로 한립이 번뜩 이동해 가볍게 주먹을 날렸다.

퍽!

한구의 지기화신도 곡골부인처럼 갈라져 부스러기가 되었다.

나머지 네 사람은 그것을 보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났다. 한립은 그들이 사라진 방향을 보았지만 쫓지 않고 그저 한구 화신의 저물법기와 법보만 챙겼다.

단숨에 수만 리를 달아난 이들은 한립이 쫓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멈추었다.

“한구, 이 개자식! 이번에 제대로 당했습니다. 저런 인물을 공격하자고 우리를 불러 모으다니요?”

노란 수염 노인은 노기를 가라앉히지 못해 씩씩거렸다.

“신통으로 보아 현선은 맞는 것 같은데 실력이 상상을 초월하더군요.”

아직도 간담이 서늘한지 흑갑 사내가 두려움을 드러냈다. 조신이 된지 수만 년밖에 되지 않아 실력이 약한 청포 수사들도 불안한 눈빛을 했다.

“그리 죽고 싶으면 혼자 죽을 것이지! 한구, 그놈 때문에 우리만 물벼락을 맞은 꼴입니다. 저런 실력자와 척을 졌으니 앞으로 보복이라도 하려들면 어쩐단 말입니까!”

노란 수염 노인은 근심이 가득했다.

그들은 조신이라 절간을 떠나지 못하는 중과 다름없었다. 그래서 조신이나 지선들은 매사 신중하게 움직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욕심에 눈이 멀어 한구의 꾐에 넘어가 이 꼴을 당했다.

보잘 것 없는 조신에 불과한 그들은 뒷배도 없었고, 나중에 상대가 보복하러 와도 막을 방법이 없었다.

한립은 저물법기에서 의식을 회수했다. 십만 년 된 탄혼화로 분혼을 응결하는 데는 향 하나가 탈 시간 밖에 걸리지 않았다.

게다가 아주 완벽하게 마지막 단계를 마무리해서 자유롭게 조종도 가능했다.

그가 한 시진 넘게 시간을 끈 것은 다른 이들의 이목을 속이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그들이 보호막을 깨트리며 힘을 빼게 놔둔 것이다.

그동안 그는 지기화신을 제련하며 지친 체력을 약간 회복했고 말이다. 급히 나서지 않았기에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혈강음뢰에 당해 쓴맛을 보았을 것이다.

지기화신도 완성되었고, 이제는 아주 중요한 문제를 처리해야 했기 때문에 별것 아닌 나머지 조신들까지 쫓을 이유가 없었다.

* * *

며칠 뒤, 어슴푸레한 새벽.

아침 햇살이 오몽도에 부드러운 금빛을 드리웠다.

섬 곳곳의 조신 조각상 앞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숙연하고 진지한 얼굴로 기도를 올렸다.

푸른 유생 복장을 한 낙풍도 섬 중앙 광장에 서서 새롭게 새워진 조각상을 올려다보았다.

섬의 주민들과 달리 그는 두 손을 늘어트리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때 멀리서 푸른 둔광이 그의 옆으로 날아들었다.

“류 선배님!”

낙풍은 그를 향해 허리를 굽혔다. 지기화신 제련을 마친 한립이 오몽도로 돌아온 것이다. 다른 오몽도 사람들도 기도를 멈추고 공경스럽게 예를 올렸다.

“나를 따라 오게.”

한립은 담담하게 말하며 사합원 방향으로 날아올랐고, 낙풍이 그의 뒤를 따랐다. 동부의 정원에 내려선 한립은 돌 탁자 옆의 의자에 앉았고, 낙풍에게도 맞은 편 자리를 권했다.

“낙풍 족장, 미리 말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알려 줘야할 사실이 있네. 오몽도 조신 낙몽은 천년도 전에 목숨을 잃었네.”

“선배님께서 말씀해 주지 않으셔도 짐작은 하고 있었습니다. 섬의 다른 장로들도 그렇고요. 다들 쉬쉬한 것은 괜히 불안감을 조성할까봐 걱정됐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류 선배님께서 오몽도를 비호해 주시기만을 진심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낙풍은 창백해진 얼굴로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약속한 것은 지킬 테니 걱정 말게. 지기화신을 제련했고 고계 지선 공법도 얻었으니 자네가 나를 위해 섬에 화신 조각상을 건립해 신념의 힘을 모아 주어야겠네.”

“걱정 마십시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법보와 경전들을 받아두게. 이후 섬의 인재들을 양성하려면 필요할 것이야. 그들이 오몽도 발전의 뿌리가 되겠지.”

한립은 저물탁 하나를 낙풍 앞으로 날려 보냈다.

그것을 받아 내용물을 확인한 낙풍은 기쁨에 몸을 떨었다.

저물탁 안에 든 것들은 양은 물론이고 그 가치도 그의 상상을 초월했다.

이 안에 든 경전과 보물 그리고 단약, 재료 등이 오몽도가 수만 년간 축적해 온 것보다 많았다. 그러나 낙풍은 이게 한립이 홍월도에서 건진 전리품 중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은 꿈에도 몰랐다.

“베풀어 주신 큰 은혜는 저희 오몽도가 대대손손 잊지 않고…….”

“그럴 것 없네. 한동안 폐관수련을 할 테니까, 급한 용무가 아니면 찾지 말게.”

한립은 손을 저어 낙풍을 내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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