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1513화 (1,270/2,000)

1513화. 미끼

*

육곤은 신념의 힘을 남겨두려는지 여전히 지기화신을 부리지 않고 손을 저어 여덟 개의 남색 비도를 날렸다.

쉬쉬쉬쉭!

각 비도마다 일고여덟 개의 흐릿한 칼날 그림자가 나타나 수십 개의 그림자가 성난 파도처럼 몰아쳤다.

눈처럼 하얀 칼날 빛들이 십여 마리의 해골과 뱀 여인들을 갈라 터트렸다.

교팔, 육곤에 비해 한립의 공격수단은 매우 단순했다. 주먹을 한 번 내지른 것이 다였다.

쿵!

공간이 웅웅 떨리고 그를 향해 달려들던 적들이 한 마리도 예외 없이 부서졌다. 몇 호흡 만에 세 사람은 수백 마리의 해골과 뱀 여인들을 격살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면과 피의 호수에서 부단히 새로운 괴물들이 나타나 그들을 둘러싼 괴물들의 수는 줄어들지 않았다.

“교삼의 행방이 묘연하고, 공수홍이 어디 있을지 모르니 눈앞의 싸움에만 급급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명청영안으로 사방을 관찰한 한립이 가면을 발동해 나머지 두 명에게 전음을 보냈다.

“혹시 탈출할 방법을 찾아내신 겁니까?”

육곤이 희색을 드러냈고, 교팔도 그를 쳐다보았다. 그들은 강력한 법칙의 힘으로 둘러싸여 있는 지하 동굴은 무척 특수해서 쉽게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의심스러운 곳을 몇 군데 찾기는 했습니다. 허나 공간을 깨고 나가려면 시간이 필요하고 저 괴물들이 방해가 되는군요.”

“저 잡것들은 제가 붙들어 두겠습니다. 괴물들을 잠시 가둘 방법이 있으니 교구를 데리고 출구를 찾으시지요.”

침음하던 교팔이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한립은 대답을 마치고는 연달아 주먹을 날려 여덟 개의 주먹 허상으로 뒤쪽 포위를 뚫었다. 그는 푸른빛을 일으키며 빠져나가 지하 동굴 천장으로 날아올랐다.

키아악!

움찔한 해골과 뱀 여인들이 괴성을 지르며 교팔과 육곤을 버려두고 한립을 향해 달려들려 했다. 이에 교팔이 냉소하며 손을 뻗자 지기화신이 눈부신 푸른빛을 내뿜었다.

웅웅!

푸른빛이 닿는 곳마다 천지원기가 진동을 했다. 허공에 가느다란 푸른 실들이 떠올라 해골과 뱀 여인들을 휘감고 멈추게 만들었다.

그걸 본 한립은 속도를 늦추지 않고 천장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팟!

바로 이때, 천장에서 두 명이 나타났다. 달아났던 수염 거한과 못생긴 검은 치마 부인이었다. 거한은 다짜고짜 한립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손에 낀 무시무시하게 생긴 백골 장갑에서 악귀처럼 생긴 거대 주먹 그림자가 뿜어져 나왔다.

검은빛을 머금은 추녀의 손에는 새까만 낭아봉이 거대 몽둥이 허상을 만들어냈다.

쿠쾅!

엄청난 굉음이 울리고, 악귀 주먹 허상과 새까만 몽둥이 허상이 폭발했다. 거한과 추녀는 퍽! 하고 튕겨나가 천장에 부딪히고 놀란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한립과 구오의 일전을 보고 실력이 상당하다는 것은 알았으나 이건 그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한립이 쿵쿵 두 걸음을 물러나 몸을 가누었을 때 남색 빛이 날아들었다.

“교십오, 제가 돕겠습니다.”

육곤과 그가 불러낸 지기화신이었다. 그는 기합을 넣으며 입에서 남색 빛을 뿜어 화신의 몸속으로 흡수시켰고, 남색 빛에 휩싸인 지기화신이 입을 벌렸다.

푸앗!

수많은 남색 주술문자가 반짝이는 쪽빛 두덩이가 강렬한 물의 법칙파동을 발산하며 나타났다.

쪽빛들은 머리와 사지가 자라나 두 명의 남색 소인으로 변해 수염 거한과 검은 치마 추녀에게 날아들었다.

겨우 멈춰선 거한과 추녀는 남색 소인들을 보고 동공을 수축했다. 수염 거한은 장갑을 벗어 뱉어낸 피가 흘러들게 했다.

웅!

흐릿하게 변한 장갑이 집채만 한 혈홍색 악귀 머리로 변하더니 눈을 번쩍 떴다.

검은 치마의 추녀 역시 그와 머지않은 곳에서 연달아 법결을 날렸다.

화륵!

그녀가 들고 있던 새까만 낭아봉에 구불구불 핏빛 문양이 떠올라 혈홍색 화염을 일으켰다.

힘차게 낭아봉을 휘두르자 혈홍색 화염에 휩싸인 산만한 거대 몽둥이 허상이 나타나 주변 공간을 왜곡시키며 뿌옇게 안개를 만들어냈다.

남색 소인은 거의 동시에 혈홍색 악귀 머리와 몽둥이 허상에 닿았지만 마치 실체가 없는 것처럼 그것들을 통과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남색 소인들이 이전보다 크기가 줄고 오히려 더 빠른 속도로 수염 거한과 검은 치마 추녀를 향해 쏘아져 나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경악한 거한과 추녀 앞에서 남색빛이 폭발했다.

펑! 펑!

남색의 차가운 기류가 그들에게 쏟아져 내렸다.

스스스슷!

거한과 추녀의 몸에 남색 수정얼음이 서서히 퍼져 그들을 봉인했다. 남색 수정얼음은 비범한 구석이 있어 봉인이 되는 동안 그들이 손 하나 까딱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의 몸에서 핏빛이 반짝였다.

촤륵!

남색 수정얼음에 거미줄처럼 균열이 가고 있었다.

얼굴이 창백해진 육곤의 지기화신도 남색 빛이 어두워져 이번 공격으로 적잖은 힘을 소모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수염 거한과 검은 치마 추녀가 얼음을 뚫고 나오려는 찰나 한립이 귀신처럼 그들 뒤에 나타나 금색 비늘이 자라난 두 주먹을 뻗었다.

쿠쿵!

남색 수정얼음과 함께 거한과 추녀의 몸이 조각났다.

핏빛에 둘러싸인 두 원영이 얼음조각 사이에서 빠져나와 아래쪽 섬의 궁전 문 앞으로 순간이동을 했다.

허공에 만연한 푸른 실들도 원영의 이동을 막지는 못했고, 한립이 막으려 했으나 한발 늦고 말았다.

그때 궁전을 휘감은 핏빛 구름이 꿈틀꿈틀 움직여 핏빛 거대 손을 이루고는 두 원영을 낚아챘다.

“성주님! 사, 살려주십시오!”

두 원영은 애처롭게 빌었다.

“우습구나!”

돌연 쇠를 긁는 듯한 기괴한 목소리가 궁전 안에서 들려왔다.

한립 일행은 그 소리를 듣고 안색이 달라졌고, 교팔이 놀라 즉시 법결을 거두고 한립과 교구 옆으로 날아올랐다.

푸른 실들이 사라졌는데도 해골과 뱀 여인들은 그를 쫓지 않고 진득한 핏빛으로 돌아가 궁전의 구름 속으로 녹아들었다.

이어서 키 큰 인영이 궁전에서 걸어 나왔다. 핏빛이 가리고 있어 어렴풋하게만 보였다. 그리고 그의 뒤로 핏빛 화염 덩어리 두 개가 둥둥 떠다니며 치직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 안에 떠있는 얼굴들은 자색 장포의 키 작은 사내와 구오였다.

“실수로 육신을 잃었지만 앞으로도 성주님을 위해 일할 수 있게 살길을 열어 주십시오!”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수염 거한과 추녀의 원영이 키 큰 사내를 보고 다급히 외쳤다.

“그간 고생 많았다. 남은 일은 내가 알아서 처리하도록 하지.”

공수홍이 천천히 말을 마치고 손을 뻗었다. 그러자 핏빛 거대 손에서 참혹한 비명이 들려오고 또 다른 핏빛 화염 덩어리 두 개가 나타났다.

그 안에는 얼굴을 일그러트린 수염 거한과 추녀의 얼굴이 어른거리고 있었다.

공수홍은 이제 보라색, 하얀색, 푸른색, 검은색 기운을 품은 네 개의 핏빛 화염 덩이에 둘러싸였다.

“제물이 흡족하지 않던 차였는데 너희를 더하면 본좌의 귀원혈염(歸元血焰)이 진일보할 수 있겠어. 그때가 되면 더 이상 홍월도에 갇혀 있지 않아도 되겠지!”

느긋하게 고개를 들며 세 수사를 본 공수홍이 입을 열었다. 그가 수결을 맺자 주위를 맴돌던 핏빛 화염 덩어리 네 개가 흔적도 없이 몸속으로 사라져 그의 기운을 북돋았다.

“후기를 넘어서기 직전의 실력입니다. 쉽지 않은 싸움이 되겠군요.”

두 눈에서 남색빛을 반짝인 한립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상황이 이런데 어쩌겠습니까. 죽기 아니면 살기로 싸워봐야지요!”

육곤은 보라색 옥병에서 보라색 단약을 꺼내 삼켰다. 동시에 옆에 선 지기 화신이 대량의 물빛을 뿜어 그에게 물빛 보호막을 만들어주었다.

교팔도 네 개의 보물을 불러내 몸을 보호했다.

“이제 내 차례겠지?”

공수홍이 출렁이던 핏빛 기운을 가라앉히며 천천히 두 팔을 들어 올리는데, 이변이 발생했다.

그의 뒤쪽에서 파동이 일고 화염을 두른 손바닥이 나타나 그의 등을 노린 것이다. 허공에 떠있던 한립 등 세 명은 얼굴이 밝아졌다.

손바닥의 기운은 연락이 두절됐던 교삼의 것이었다.

퍽!

공수홍은 일고여덟 줄기의 핏빛으로 터져나갔다. 그러나 기이한 일은 그다음부터였다.

핏빛들이 백여 장 밖에서 다시 뭉쳐 사람의 형상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온몸에 주황색 화염을 일으킨 교삼이 나타나 공수홍을 향해 몸을 날렸다.

쿠릉!

교삼 주변의 화염이 화교(火蛟:불교룡)로 변해 핏빛 인영을 삼키려 했다. 화교가 발산하는 난폭한 법칙파동이 핏빛 안개들을 증발시켰다.

“불의 법칙!”

공수홍은 핏빛 속에서 두 손을 합장했다.

두 손 사이에서 핏빛 불 구렁이가 튀어나가 화교를 맞았다.

쾅!

양자가 서로 물고 뜯으며 터져나가 눈부신 빛덩이로 변했다. 교삼은 그 틈을 타 공수홍 머리 위로 이동해 용 문양이 새겨진 적홍색 검을 찔러 넣었다.

어마어마한 영기의 압력을 발산하는 거검은 현천의 보물이었다. 열댓 개의 화염 검빛이 빠져나와 거대 검빛으로 합쳐져 공수홍의 머리를 베려 했다.

팟! 팟!

공수홍의 두 손이 허공을 할퀴고 손톱이 길게 자라난 혈홍색 거대 손 두 개가 나타났다. 거대 손에서 열 개의 반달 형태의 빛이 날아가 거대 검빛과 충돌했다.

카카카캉!

검빛과 반달빛이 부딪쳐 가루가 되었다. 교삼과 공수홍의 격전에 굉음과 빛이 난무했다.

“교삼은 처음부터 우리를 전면에 내세워 미끼로 삼고, 공수홍을 불러낼 속셈이었을 겁니다.”

육곤이 그것을 살피다 쓴웃음을 지었다.

“무상맹이 본래 그런 곳 아닙니까. 혜택을 얻는 만큼 희생도 해야 하는 곳이지요.”

교팔의 목소리도 그리 좋지 않았다.

“그런 말을 할 때가 아닙니다. 교삼을 도와 공수홍을 처리해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 겁니다.”

한립이 그들을 바라보고 충고했다. 이에 육곤과 교팔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지기화신들과 같이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이 버러지 같은 것들이!”

공수홍은 그들을 안중에도 두지 않고 손을 저었다.

후우우우.

진동하는 피비린내 속에서 자욱한 안개들이 핏빛 파편들로 변해 한립 일행과 그들의 지기화신을 덮쳤다.

한립은 진한 피비린내에 머리가 묵직해진 순간, 맑은 기운이 머리를 맴돌아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두 눈에 남색빛을 반짝인 그가 핏빛 안개 속에서 물러나려는데 머지않은 곳에서 절박한 외침이 들려왔다.

서둘러 고개를 돌려 보니 지면으로 추락하는 육곤의 지기화신을 그림자 하나가 쫓고 있었다. 그림자는 육곤이 아니라 벌거벗은 혈홍색 괴인이었다.

얼굴이 모호해 코와 입이 보이지 않는 괴인은 흉흉한 붉은 눈동자를 번득였다.

핏빛 안개를 벗어난 한립이 쾌속으로 하강했다. 발끝이 지면에 닿으려는 순간 표정이 달라진 그는 위쪽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핏빛 인영이 안개 속에서 뛰쳐나와 날카로운 다섯 손톱으로 그의 머리를 노리다 주먹 허상과 충돌했다.

쾅!

손톱과 주먹 허상이 부르르 떨며 흩어지고 팔뚝이 터져나간 혈홍색 괴인이 주먹의 괴력에 물러나 다시 핏빛 안개 속으로 숨어들었다.

안정적으로 지면에 내려선 한립은 다른 곳에서 들려오는 교전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푸른 바람의 칼날들이 나타나 핏빛 안개에 커다란 공간을 만들어 또 다른 혈홍색 괴인과 싸우고 있는 교팔이 드러났다.

바닥에 떨어진 육곤 화신도 어느새 나타난 육곤 본체와 같이 그들을 추격한 첫 번째 괴인과 싸우는 중이었다.

이때, 핏빛 안개가 출렁이고 한립의 일격에 튕겨나간 괴인이 등장했다. 터진 팔이 회복되어 있었다.

달려든 괴인을 주먹으로 쳐낸 한립은 괴인의 상처가 핏빛 실들로 메워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혈홍색 괴인들은 육곤이 소환한 물 거인과 비슷한 점이 있었다.

지리적 이점을 살려 평범한 완력으로는 제거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시간을 끌면 중상을 입은 육곤과 교팔이 먼저 무너질 것이다.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