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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508화 (1,265/2,000)

1508화. 실마리

*

한립은 잠시 후에 점포에서 걸어 나왔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그는 예의 바르게 모두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는 섬의 지리에 관한 책을 모두가 보는 앞에서 챙겨 넣었다.

서둘러 용호성을 벗어난 그들은 다양한 방법을 펼쳐 날아올랐다.

교구는 다시 남색 수정 선박을 불러내 원기를 아직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교십육과 한립만 태워 다른 수사들의 눈총을 받았다.

뱃머리에 선 한립은 잠시 용호성 인근의 큰 강을 내려다 보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구입한 서책들을 하나씩 넘겨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호기심 어린 시선을 보내던 교십육도 곧 운공을 하느라 신경을 껐다.

하늘이 점점 어두워지고 하늘엔 별이 가득 떠오르고 있었다.

* * *

총 7명의 무상맹 수사들은 반나절 후에 어느 거대 성 앞에서 둔광을 거두었다.

이곳이 난주의 홍월성이었다.

용호성보다 훨씬 규모가 컸고, 강폭이 수백 장에 이르는 커다란 강이 굽이굽이 흘러가고 있었다.

성 전체를 남색 금제가 보호하고 있었는데 수시로 물결이 치듯 파문이 일어 퍽 신비해 보였다.

성의 동서남북, 성문이 위치한 자리에만 남색 금제가 뚫려 있어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네 성문은 핏빛 초승달 자수가 놓인 혈월남포(血月藍袍)를 걸친 수사들이 서서 행인들을 검문했다.

“제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저건 천광환파금(千光幻波禁) 아닙니까! 방어능력은 그리 강하지 않아도 의식 감응이 대단한 금제라고 알고 있습니다.”

교팔이 남색 금제를 알아보고 탄식했다.

“이렇게 엄중하게 방어를 하다니 이곳이 홍월도 도주의 소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옆에서 교이십일이 희색을 드러냈고 다른 이들도 표정이 달라졌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 살펴봅시다. 다들 최대한 의식을 거둬들여 금제를 촉발하지 않게 주의해 주십시오.”

교팔은 낮은 목소리로 당부했다. 명령조의 말투에 교구는 불쾌했지만 딱히 무어라 하지는 않았다.

일곱 수사들은 성 밖 한적한 곳에 내려서서 다른 범인들과 섞여 성 안으로 들어갔다.

성 안의 넓은 청석대로는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길 양쪽으로 상점들이 가득 들어서 무척 번화했다.

성문을 연결하는 두 개의 널찍한 대로가 성의 네 구역으로 갈렸고, 각 구역에는 커다란 광장과 거대한 조각상이 서있었다.

성으로 들어선 모든 이들이 경건한 몸가짐으로 광장으로 몰려가 지기 조각상을 향해 참배를 했다. 아주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였다.

“이건…….”

한립은 대형 사찰 같은 성 안의 풍경에 할 말을 잃었다.

눈앞의 광경이 바로 조성일 것이다. 눈동자 깊은 곳에서 남색 빛을 일렁인 한립이 주위를 살피고 인상을 찡그렸다.

성 안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대부분 법력이 없는 범인이었고 간혹 보이는 수사들도 연기기나 결단기 등의 저계 수사였다.

혈월남포를 입은 수사들도 수행이 그리 높지 않아 대부분이 원영기이고 화신기 수사가 몇 명 끼어 있는 정도였다. 이곳은 아무래도 그들이 찾는 곳이 아닌 것 같았다.

“어찌 되었든 성을 샅샅이 뒤져 단서를 찾아봅시다.”

교팔은 다른 이들과 상의해 각자 흩어져 행동하기로 했다. 성의 규모가 상당한 데다 의식을 사용하기 어려우니 따로 조사해야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었다.

한립은 일행과 떨어져 어느 골목을 걸어가며 남색 빛이 반짝이는 눈으로 주변을 세밀하게 관찰했다. 지금 그는 거의 보일 듯 말 듯한 풍경에 녹아들어 있었다.

다들 앞 다투어 광장으로 참배하러 갔기에 대놓고 이리저리 골목을 살피고 다니면 주의를 끌까봐 은신술을 펼친 것이었다.

그는 조성으로 인해 손님이 하나도 없는 서책 점포 안으로 들어갔다 금방 다시 걸어 나왔다.

홍월성이 워낙 컸기에 그들은 반나절이 지나서야 겨우 그들이 맡은 구역을 수색하고 한적한 곳에서 다시 모였다. 안타깝게도 이상한 점을 발견한 사람은 없었다.

“이곳은 아닌 가 봅니다. 다음 곳으로 이동해…….”

“교팔 수사, 잠시만 기다려 주시지요! 이곳 지하가 뭔가 이상합니다.”

교팔의 말을 끊은 것은 교이십오였다. 그는 한쪽 무릎을 땅에 대고 눈에 보일 정도로 진한 노란 파문을 일으켜 서서히 땅속으로 내려보내고 있었다.

“교이십오, 지하에 뭔가 있습니까?”

“모두 백 장 아래의 지하를 감응해 보시지요.”

교팔의 물음에 몸을 일으킨 교이십오가 말했다.

이에 수사들이 의식을 지하로 침투시키고 희색을 드러냈다. 땅속에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넓은 공간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정말 세심하게 주변을 살피십니다. 교이십오가 아니었으면 이런 의심스런 곳을 그냥 지나칠 뻔했어요!”

“세심은요, 특수한 공법을 익혀 땅속 상황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었습니다.”

교팔의 칭찬에 교이십오는 겸손하게 웃어 보였다.

“지하공간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내려가 봅시다!”

교팔은 바로 땅속으로 내려갔고, 그의 무리인 두 명의 수사와 교이십오가 그 뒤를 따랐다.

한적한 공터에는 이제 교구, 한립, 교십육 뿐이었다.

교구는 불만스런 얼굴로 바로 지하로 내려가지 않았고 그걸 본 교십육과 한립도 눈짓을 주고받고 그 자리에 남았다. 일곱 명이 동행하고 있지만 처음 나뉘었던 무리들끼리 함께 행동했기 때문이다.

“우리도 가십시다.”

침묵하던 교구가 남색 둔광을 일으켜 내려가자 한립과 교십육도 각자 술법을 시전해 지하공간으로 향했다.

지하공간은 굉장히 넓었다.

원형의 지하 광장은 청석 돌판이 깔려 아주 평평했고 누군가 드나든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석실 어딘가를 바라보던 한립이 가볍게 코를 킁킁거렸다.

공기 중에 흐릿하게 피비린내가 섞여 있어 왠지 음산한 기분이 들었다. 몸을 굽혀 맨손으로 석판 하나를 들어 올리자 아래쪽의 암홍색 토양이 드러났다.

붉은 흙 속에 흐릿하게 검은빛이 돌았다. 한립은 흙을 한 줌 쥐어 살피다가 손을 털어냈다.

“교십오, 무언가 이상한 점이라도 있습니까?”

교십육이 다가와 물었다.

“그건 아니지만 석실의 기운이 심상치 않습니다. 피비린내가 나고 음기가 감도는 것이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간 것 같군요. 석판 아래쪽의 흙도 음기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이곳은 전문적으로 적들을 처리하는 곳인가 봅니다.”

교십육은 별생각 없이 말했지만 한립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적을 발견했으면 그 자리에서 죽이면 그만이지 굳이 지하에 석실을 만들어 둘 필요가 없었다.

의심스런 마음이 들었지만 당장은 그도 명쾌한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다른 수사들도 각자 지하공간의 용도를 추측하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다들 너무 고민할 것 없습니다. 이곳에 어째서 지하공간이 있는지는 아무나 잡아다 물어보면 알겠지요.”

교구가 이렇게 말하고 노란 깃발을 석실 천장으로 날려 보냈다.

깃발이 사라지고 홍월성 광장을 순찰하던 혈월남포의 원영기 중년인 하나가 거대 손에 붙들려 땅으로 쑥 빨려 들어왔다.

주위 사람들은 전부 조성에 정신이 팔려 그가 사라졌는지 눈치도 채지 못했다.

꽈당!

지하광장에 노란빛이 반짝이고 중년인이 바닥에 떨어졌다.

사내는 한립 등 낯선 수사들을 발견하고 안색이 달라졌지만 이미 노란 빛에 제압을 당해 움직이기는커녕 목소리도 내지 못했다.

교구는 사내의 머리를 쥐고 손바닥에서 검은 실을 내뿜었다. 얼굴을 일그러트린 중년인은 곧 눈, 코, 입에서 핏물을 줄줄 흘리며 정신을 잃었다.

그러나 교구는 냉정한 얼굴로 검은 실에 정신을 집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중년인의 머리에서 퍽!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또 금제가 발동해 혼백이 터진 것이다.

“추혼술이 성공했다고 해도 원영기 수사는 아는 것이 많지 않았을 겁니다. 오래 머물 것은 아닌 듯하니 다음 홍월성으로 가시지요.”

안색이 어두워진 교구를 보고 교팔이 조소했다.

* * *

며칠 후, 일곱 수사들은 거대한 남색 금제로 둘러싸인 또 다른 성에 도착했다. 성 옆에는 거의 바다처럼 보이는 거대한 호수가 이웃해 있었다.

성 밖으로 난 부두에 수백 수천 척의 선박들이 드나드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이곳은 봉주(奉州) 홍월성이자 그들이 들른 여섯 번째 홍월성이었다.

이전의 성들은 난주의 홍월성처럼 섬 백성들이 조성하러 모여들었고 역시 지하에 이상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일곱 수사들은 성 바깥에서 내려서 조용히 성 안으로 진입했다.

두 개의 대로가 있고 네 구역으로 나뉜 성은 역시 원형 광장마다 조각상이 놓여 있었고, 인산인해를 이루는 사람들이 조성을 드리며 자신의 신앙심을 뽐냈다.

한립은 눈을 가늘게 뜨고 명청령안을 발동했다. 이전 성들과 마찬가지로 고계 수사들은 하나도 찾을 수 없었다.

휙!

교팔이 막 입을 열려는 데 옆으로 가벼운 바람이 스쳤다. 교구가 한립과 교십육을 데리고 쌩하니 먼저 성 안으로 들어가 버린 것이다.

순간 눈빛이 서늘해진 교팔은 별다른 말없이 나머지 세 명을 이끌고 또 다른 길로 접어들었다.

따로 행동하게 된 교구는 인적이 드문 곳에 이르러 한립과 교십육을 향해 말했다.

“맹의 임무에서 큰 공을 세우면 따로 후한 보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아직 이렇다 할 단서가 없지만 교팔 쪽이 모든 공로를 차지하지 못하게 경계해야 합니다.”

한립과 교십육은 그 말에 교구를 향해 공수를 했다.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고개를 끄덕인 교구가 먼저 방향을 정해 이동했고, 교십육도 한립에게 인사를 남기고 다른 쪽으로 급히 뛰어갔다.

한립은 천천히 다른 길목으로 접어들어 길가의 점포를 둘러보았다. 이 성은 조성이 거의 끝날 무렵인지 돌아다니는 이들이 많아 굳이 은신술을 펼칠 필요가 없었다.

한립은 빠른 걸음으로 길가의 전문 서적상으로 들어갔다.

총 4층으로 이루어진 점포는 각 층마다 세 개의 방에서 각기 다른 분야의 서책을 선보였다. 조성 때문인지 상점 내부는 썰렁한 편이었고 손님이 몇 되지 않았다.

“손님, 어떤 서적을 찾으십니까?”

한립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입가에 팔(八)자 콧수염을 기른 뚱뚱한 중년인이 웃는 얼굴로 다가왔다.

“고대 지도나 지리 서적 같은 것을 취급합니까? 오래된 고서일수록 좋습니다.”

한립은 장궤로 보이는 중년인을 향해 물었다.

“지도라면 있기는 한데, 그리 오래된 것은 없을 겁니다.”

뚱뚱한 중년인은 눈빛이 슬쩍 달라졌다가 원래의 웃음기 어린 얼굴로 돌아갔다.

팟!

아주 미묘한 변화였지만 한립의 눈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의 두 눈에서 순간 수정빛이 떠오르고 뚱뚱한 중년인이 눈이 풀려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곳에 있는 고대 지도와 지리 서적을 전부 내오거라.”

“예.”

중년인은 멍한 얼굴로 답하고 점포 안쪽으로 들어갔고, 한립도 그 뒤를 따랐다.

“……역시 내 생각이 맞았어.”

잠시 후, 건물을 나선 한립의 손에는 갈색 가죽으로 된 오래된 서책이 들려 있었다.

반나절 후 일곱 수사가 모였는데 표정들이 그리 좋지 않았다. 이전처럼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고 지하공간도 텅 비어 있었다.

“도대체 공수홍 그 자식은 어디 숨어 있단 말입니까! 아니 우리 같은 진선들이 온 섬을 이리 뒤지고 다녀야겠느냔 말입니다.”

교팔의 무리인 교이십일이 참다못해 분통을 터트렸다.

“조급해 마세요. 공수홍이 숨기는 했지만 어쨌든 이 섬이 그의 소굴인 것은 사실입니다. 홍월성들을 하나씩 뒤지다 보면 언젠가 찾을 수 있겠지요.”

“교팔 수사, 기다려 주시지요. 홍월도 도주가 어디 있는지 단서를 찾은 것 같습니다.”

교팔이 막 몸을 돌려서 떠나려는데 돌연 한립이 말을 꺼냈다. 그 말에 수사들은 깜짝 놀라 전부 그를 돌아보았다.

“그게 정말입니까? 어떤 단서입니까?”

교구가 기쁜 마음에 얼른 물어왔다.

파앗!

한립이 손가락을 뻗어 물빛 속에 거울을 응결해 내자, 그 위에 어떤 그림이 떠올랐다.

“이건 교팔 수사가 지명을 추가한 그 지도가 아닙니까? 진작 살펴보았습니다.”

교이십오가 이전에 보았던 홍월도 지도와 엇비슷한 것을 보고 코웃음을 쳤다.

“엇!”

“이건!”

다른 이들도 의아한 눈빛을 보내는데 교팔과 교구가 동시에 탄성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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