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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494화 (1,251/2,000)

1494화. 지선(地仙)

*

쏴아아아.

외뿔 구렁이는 커다란 입을 쩍 벌려 한립을 향해 남색 파문을 분출했다. 남색 파문에서 기이한 냉기가 번져 허공에 얇게 서리가 어리고 있었다.

동시에 도합의 양손에서 남색 광채가 뭉쳐 짧은 창으로 변해 날아갔고, 도중에 수없이 많은 남색 빙염을 일으켜 두 마리의 남색 빙룡을 만들어냈다.

팔자수염 거한 등 네 명의 합체기 이종족들도 분분히 법보를 이용해 한립을 공격했다. 그 모습에 한립은 한 손을 뻗어 남색 파문 쪽을 내리쳤다.

쾅!

무시무시한 괴력이 충격파가 되어 남색 파문과 맞부딪쳤다. 남색 파문은 마른 나뭇잎이 부서지듯 잘게 쪼개져 소실되었다.

크앙!

바로 그때, 뼈에 스며드는 냉기와 함께 두 마리의 남색 빙룡들이 좌우에서 날카로운 발톱을 드러내고 달려들었다. 그러나 한립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다른 쪽 손을 휘둘렀다.

펑! 펑!

이에 두 마리 빙룡들은 마치 무형의 거대 손에 맞기라도 한 듯 구슬프게 울며 터져 남색 단창의 모습으로 한립의 수중에 떨어졌다.

도합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하얗게 질려있었다.

쿠르릉!

다른 네 명 합체기 이종족들의 법보 공격들은 한립의 반투명한 보호막에 전부 튕겨나갔다. 은색 광채가 흐르는 보호막은 작은 흠집 하나 생기지 않았다.

“이럴 수가!”

팔자수염 거한 등 네 명의 이종족 수사들은 기겁했다. 그들은 상황이 불리해졌다는 것을 알았지만 한립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남색 단창들이 그의 손을 떠나 번득! 팔자수염 거한과 또 다른 합체기 이종족의 가슴을 꿰뚫은 것이다.

남색 창에 찔린 순간 그들은 요란한 하얀빛을 발산했지만, 남색 창들이 그들을 휘저어 고깃덩이가 되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두 이종족 수사는 원영도 탈출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나머지 두 합체기 이종족 앞에도 거의 동시에 흐릿한 주먹 허상이 떠올랐다.

역시 하얀 빛으로 공격의 위력을 줄이려 했으나 주먹 허상에 뚫려 핏빛 안개로 터져나가고 말았다.

한립이 네 명의 합체기 이종족을 죽이기까지는 한 호흡 밖에는 걸리지 않았다. 이에 등골이 서늘해진 도합은 곧장 하얀 빛줄기로 변해 달아났다.

그는 팔찌를 만져 여러 겹의 보호막을 만들어냈고 전신은 남색 수정 갑옷으로 빈틈없이 가렸다. 그러나 한립이 낮게 코웃음을 쳤다.

“큭!”

수백 장 밖으로 달아나던 도합은 끔찍한 두통을 느끼고 비틀거렸다. 하지만 그의 목에 걸린 비취색 옥패가 터지더니 푸른 실들이 쏟아져 나와 도합의 머릿속으로 스며들었다.

이에 정신을 못 차리던 도합은 퍼뜩 머리가 맑아졌다.

쉬익!

그러나 그 사이 가슴에서 7개의 남색 빛을 반짝이는 한립도 수백 장을 뛰어넘어 훨씬 두툼해진 팔을 뻗고 있었다.

‘아, 안 돼!’

소스라치게 놀란 도합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남색 장도를 쥐고 앞을 막았다.

쩌저저정!

작은 철탑 같던 사내의 몸이 천 조각처럼 휘적휘적 날아갔고, 손에 들고 있던 장도와 몇 겹의 보호막이 산산조각 났다.

한립은 상대의 남색 수정 갑옷이 갈라지기만 하자 눈썹을 끌어올리고 도합에게 쇄도해 다시 한 번 일격을 날렸다. 이에 상상을 초월하는 괴력이 허공을 갈랐다.

파삭!

도합과 그의 남색 수정 갑옷이 마치 날달걀처럼 으깨지며, 기고만장하던 그는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핏덩이가 되어 떨어져 내렸다.

오직 남색 팔찌만이 번득 날아가 한립의 손에 들려졌다. 그는 의식으로 팔찌를 훑고는 저물탁 속에 던져 넣고 아래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광장과 그 주변 인물들은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서있었다. 한정족은 물론이고 오몽도 병사들도 눈을 부릅뜨고 움직일 생각을 못했다.

“조신께서 신위를 보여주셨다! 전부 죽여라, 이종족들을 오몽도 밖으로 몰아내라!”

낙풍이 환희에 차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리고 명을 내렸다.

“우와아아아!”

오몽도 병사들은 하늘을 뒤흔들만한 환호성을 터트리며 한정족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아직도 한정족 병사들이 수적으로 우세했지만 눈앞에서 족장과 네 명의 고계 수사를 잃은 병사들은 전의를 상실하고 퇴각하기 급급했다.

한정족 잔병들을 쫓는데 전혀 관심이 없는 한립은 광장으로 내려가 네 명의 합체기 이종족들이 남긴 저물 법기들을 모았다.

광장 밖으로 달아나는 적병들을 쫓는 병사들을 제외한 인족들은 전부 한립을 우러러보며 크게 소리쳤다.

“조신 대인의 강림을 환영합니다!”

다들 바닥에 엎드렸고 족장인 낙풍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몽도 인족들은 큰 화를 겨우 면하고 기쁨에 차서 몇몇은 숨죽인 채 훌쩍이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숭배와 공경이 담긴 눈빛으로 한립을 바라보았다. 마치 속세에서 범인들이 신을 숭배하는 것과 같은 분위기였다.

한립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들을 훑어보았다.

다들 한 목소리로 자신을 ‘조신’이라 일컫고 있었지만 떠밀리듯 그것을 받아들일 생각은 없었다. 그는 미세하게 입술을 움직여 족장 낙풍에게 전음을 보냈다.

무릎을 꿇고 있던 낙풍은 몸을 부르르 떨고 자리에서 일어나 신중히 주변 인물들에게 명을 내렸다.

“호 장로는 부상자들의 치료와 사상자 파악을 담당하고, 제 장로는 혹시 모를 이족들의 반격을 대비하고 있게. 난 조신 대인을 모시고 조신각(祖神閣)으로 갈 것이니, 따로 분부가 없는 한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하게.”

몇몇 수사들이 그의 명에 따랐다.

“조신 대인, 이쪽으로 가시지요.”

낙풍이 살짝 고개를 숙여 부서진 조각상 뒤쪽을 가리켰고, 그곳에 몰려 있던 족인들이 물러서 길을 텄다.

그들이 광장을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인족들이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살펴 가십시오, 조신 대인!”

맑고 큰 울림이 수차례 반복되다 한립과 낙풍이 산림 속으로 들어간 후에야 멈추었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걸어간 두 사람은 절벽 위에 건축된 고풍스런 양식의 대전 앞에 섰다.

그곳은 암석을 이용해 만들었는지 새까맣고 오돌토돌한 표면을 지녔고 그리 큰 규모가 아니었다. 곳곳에 세월의 흔적이 묻어났지만 창문이나 문틀의 칠이 선명해 정기적으로 보수하고 있는 듯했다.

대전 앞 광장과 계단도 깨끗하게 청소가 되어 있어 나뭇잎 하나 떨어져 있지 않았다.

조신각(祖神閣).

한립은 고개를 들어 검은색 편액에 쓰인 금색 고대 문자를 보았다.

끼이익.

낙풍이 빠른 걸음으로 먼저 계단을 올라 문을 열고 한립을 안으로 청했다.

대전 안으로 들어간 한립은 검은 석상이 자신과 얼추 비슷한 생김새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곳에는 너와 나 뿐이니 솔직히 말하겠다. 난 너희가 말하는 ‘조신’이 아니라 그저 우연히 이곳에 나타난 것이다.”

한립은 시간을 끌지 않고 곧장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이에 낙풍은 순간 당황한 기색이 스쳤지만 넙죽 엎드렸다.

“조신 대인께서 오늘 강림해 주시지 않았으면 저희 오몽도는 멸족의 화를 입었을 것입니다. 제발 저희를 버리지 말아주십시오! 저희가 만년 동안 성심을 다해 봉양한 것을 아시지 않습니까.”

“그들이 내게 덤비지 않았다면 나도 굳이 나서지 않았을 것이니 오늘 일로 감사할 것 없다. 내가 너희의 조신인지 아닌지는 족장인 네가 더 잘고 있을 텐데? 그러니 내가 너희를 비호해 줄 거란 망상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한립의 목소리가 차가워졌다. 이에 낙풍은 겁에 질렸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쓴웃음을 지었다.

“선배님께서 누구시든 간에, 조신의 신분으로 남아 저희 일족이 이번 고난을 헤쳐 나가게 도와만 주신다면 앞으로 최선을 다해 수도 자원을 바치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너희가 찾는 조신이 누군지 부터 말해 보거라.”

한립은 살짝 안색이 달라져 상대의 요청에 답하지 않고 조신에 관해 물었다.

“저희가 모시던 조신 대인은 수련을 통해 수십만 년 전 선인이 되신 본족의 조상님입니다. 대대로 비호를 해주셔서 저희가 이곳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었지요.”

“……너희를 침략한 이종족들은 다른 조신을 섬기는 모양이지? 그들이 발산하던 하얀 빛이 조신의 비호와 연관이 있는 것인가?”

“그러합니다. 한정족의 한구노조는 겨우 십여만 년 전에 겨우 대도를 이루어 지선(地仙)이 된 자로, 제가 알고 있는 조신들 중에서도 하류에 속하고 심지어 저희 오몽도 조신에게 패했던 전적이 있습니다.”

“지선은 또 뭐지?”

씩씩 거리며 말하는 낙풍의 답을 듣고 한립의 눈썹이 씰룩였다.

“지, 지선을 모르신다고요? 설마, 이제 막 하계에서 비승하신 분은 아니시겠지요?”

이번에는 낙풍도 놀란 기색을 숨길 수 없었다. 한립은 아무런 답 없이 고요히 상대를 마주보았다. 낙풍도 눈치가 있는 자라 더는 질문을 삼가고 서둘러 답했다.

“소위 지선이란, 일정 구역을 비호하며 그곳 신도들의 신념의 힘을 흡수해 수련하는 선인을 뜻합니다. 일반적으로 비호를 하는 구역이 크고 신봉하는 사람들의 수가 많을수록 더 빠르게 강해지지요.”

“이제 한정족에 대해 말해 보거라.”

고개를 끄덕인 한립은 다른 화제로 넘어갔다. 사실 조신이니 지선이니 하는 것에 흥미가 갔지만 당장 눈앞의 사내를 통해 모든 정보를 알아낼 생각은 없었다.

“한정족은 본족과 마찬가지로 흑풍해 변두리에 위치한 소규모 종족입니다. 그들의 섬과 저희 오몽도가 가깝다 보니 자원 등 여러 문제로 마찰이 잦았습니다. 본족이 부흥할 때는 감히 침략하지 못하다 본족의 조신께서 오랫동안 잠에서 깨어나지 않자 나쁜 마음을 먹은 것입니다.”

낙풍은 공손히 답했고, 한립은 생각에 잠겼다. 그 모습에 낙풍은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기다렸다.

“네가 말한 흑풍해와 북한선역은 거리가 멀더냐?”

“그게……. 제가 알기로는 흑풍해도 북한선역의 관할구역입니다. 그저 북한선역 외진 곳의 아주 협소한 지역이라서 문제지요. 아, 제게 흑풍해역의 부분 지도가 있는데 살펴보시지요.”

낙풍은 호두알 크기의 하얀 구슬을 꺼내 바쳤다. 한립은 그것을 받아 의식을 불어넣고는 복잡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내가 오몽도를 비호하는 일이 불가능하지는 않다만 앞서 일러둘 말이 있다.”

“말씀하시지요.”

“네가 말한 대로 난 막 선계에 이르렀고, 정식으로 비선대를 통과하지도 않았다. 이런 사실이 꺼려진다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떠나주겠다.”

“감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선배님께서 사실대로 말씀해 주신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입니다.”

한립의 말에 낙풍은 손을 내저었다.

“그렇다면, 족인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앞으로 너는 나를 조신이라 칭해도 좋다. 사적으로는 류 선배라 부르도록 하고. 만일 한정족이 다시 침략한다면 내 나서줄 터이니, 약속한 공물이나 착실히 바치거라!”

“물론입니다! 당연히…….”

“긴 말 할 것 없이 한적한 곳에 내 거처를 마련하거라. 좀 쉬어야겠다.”

한립은 기뻐하는 낙풍의 말을 끊고 담담히 명했다.

“예, 류 선배님! 저를 따라 가시지요.”

낙풍은 바로 한립을 데리고 조신각 내당을 지나 후원으로 걸어갔다.

후원을 나서자 보라색 안개가 자욱한 대나무 숲 뒤로 하얀 담으로 둘러싸인 검은 기와를 얹은 사합원이 보였다.

“제가 수련의 고비에 처할 때마다 폐관수련을 하던 곳입니다. 아무도 방해하지 않을 것이니 안심하고 쉬셔도 됩니다.”

낙풍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한립은 사합원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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