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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490화 (1,247/2,000)

1490화. 이상한 기포(氣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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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각색의 빛이 거친 강물처럼 흐르다가 서로 휩쓸리고 부딪치며 귀청이 터질 듯한 굉음을 냈고, 그런 빛의 흐름 속에서 무서운 흡인력을 가진 공간균열까지 불시에 나타났다.

대승기 수사라든가 불멸에 가까운 육신을 지닌 고계 요수라 해도 자칫 윤회의 기회마저 놓칠 것 같은 광경이었다. 이런 위험천만한 곳이 바로 경계 간 공간이었다.

이런 곳에서 한립은 사나운 바닷속으로 던져진 것처럼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고 있었다. 위험할 거라 예상은 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기 때문에 한립도 조금은 당황한 표정이었다.

사방에 가득한 공간 폭풍은 예전에 한립이 인계에서 영계로 비승하면서 거쳤던 것보다도 훨씬 더 위협적이었다.

한립은 만약 자신이 진극의 몸을 이루지 못했거나, 환골탈태를 위해 수없이 많은 공법을 수련하고 귀한 영약을 복용하지 않았다면 자신 역시 이곳에 들어오자마자 가루가 돼 버렸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한립의 몸은 어느새 갑옷으로 덮여 있었는데, 바로 영환계의 수많은 천재지보를 모아 만든 팔보영롱갑의였다.

여기저기서 끝도 없이 생겨나는 흡인력 때문에 몸이 절로 흔들렸지만, 한립은 침착하게 갑옷을 자극했다. 그러자 갑옷에 새겨져 있던 방패, 보산(寶傘), 법륜(法輪) 같은 문양들이 강렬한 빛을 발산하며 갑옷으로부터 떨어져 나왔다.

문양들은 실제 법보처럼 변해서 한립을 에워싸고 돌다가 서로 융화돼 두꺼운 보호막으로 변해서는 주위의 공간파동을 차단해 주었다.

뎍분에 흔들리던 몸은 겨우 안정을 찾았고, 한립은 흰빛을 내뿜고 있는 갑옷을 내려다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 팔보영롱갑의를 제련한 원래 목적이 바로 공간 폭풍을 막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이에 사용된 재료들도 공간 속성을 지닌 팔보영롱옥처럼 그런 목적에 가장 적합한 재료들뿐이었다.

지금 보니 역시 공들여 갑옷을 만든 보람이 있었다.

한립은 곧 앞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공간 폭풍이 쉼 없이 밀려들었지만, 모두 갑옷에 가로막혀 한립에게 별다른 영향을 주진 못했다.

하지만 얼마쯤 지난 후 한립의 미간이 다시 찌푸려졌다.

이동 속도가 생각보다 너무 느려, 이곳에 처음 들어와서부터 지금까지 고작 100리 정도밖에 움직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이곳은 상당히 약한 공간접점이었으므로 이대로 천천히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선계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문제는, 갑옷이 폭풍을 한 번씩 막을 때마다 그 안에 담겨 있던 영력이 빠르게 소모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혹시 몰라 힘을 좀 남겨 두려고 했더니, 아무래도 안 되겠군.’

한립은 속으로 중얼거리고는 전신에서 태양만큼 눈부신 일곱 색깔 빛을 발했다. 그러자 봉황의 울음소리가 울리더니 한립의 몸이 빙글빙글 돌다가 거대한 새로 변했다. 바로 경칩십이변 중 천봉(天鳯)으로의 변신이었다.

한립이 원래 입고 있던 갑옷은 저절로 조각조각 분해되어 천봉의 몸 곳곳에 옮겨붙었고, 갑옷 위에 떠올라 있던 흰빛도 천봉의 전신을 안정적으로 감쌌다.

천봉은 두 날개를 활짝 펼쳐, 방금 전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빠르게 앞으로 날아갔다.

사방에서 공간 폭풍이 밀려왔지만, 일단 천봉의 몸 가까이에 접근하는 순간 천봉에게서 발산된 일곱 색깔 빛에 의해 그대로 미끄러져 지나갔다.

천봉은 공간을 조종하는 신통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공간 폭풍 속에서도 마치 물 만난 물고기처럼 자유롭게 움직였다.

한립은 조금 흥분한 눈빛으로 한층 더 속도를 끌어올려 전진했다.

이곳에는 밤낮의 변화가 없었으므로 정확한 시간은 알 수 없었지만 한립은 계속해 날아가는 동안 얼추 하루 정도의 시간이 지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체감으로는 1년보다도 더 긴 하루였다.

이곳엔 공간 폭풍만이 아니라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각종 위험들이 숨어 있었고, 심지어는 희한한 생명체들이 도사리고 있다가 몇 번이나 그를 습격하기도 했다.

그래도 다행히 한립은 명청령안으로 미리 전방을 탐색하며 움직인 데다 천봉이 갖고 있는 공간 조종 능력의 도움도 받은 덕분에 결국은 별다른 문제없이 위험들을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천봉의 몸에 어려 있던 빛은 많이 어두워졌고 눈동자도 피곤함으로 인해 흐려져 있었다. 오랜 시간 동안 천봉의 몸을 유지하느라 상당한 힘이 소모됐던 것이다.

그러나 한립은 이보다도 갑옷이 더 걱정이었다. 갑옷 표면에는 벌써 균열이 여러 개 생겨 있었고, 갑옷을 휘감고 있던 흰빛도 원래의 3분의 1에도 못 미칠 만큼 얇아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시간을 좀 들여서라도 법보를 더 만들어 올걸.’

한립은 쓴웃음을 지었지만 곧 이 생각을 지워 버렸다. 한번 쏘아진 화살은 되돌리지 못하듯 이제 와서는 무슨 후회를 해도 소용없었다.

깊이 숨을 들이마신 한립은 다시 힘껏 속도를 올렸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한립이 눈을 반짝이며 작은 탄성을 뱉었다. 저 앞의 공간 폭풍 속에서 작은 점 같은 희미한 흰빛 하나가 보였던 것이다.

‘설마…….’

문득 머리를 스치는 생각에 한립은 속도를 또 한 번 끌어올려 흰빛을 향해서 날아갔다. 앞으로 날아갈수록 그 흰빛은 점점 밝고 커졌으며, 빛에서부터 성스러운 기운이 강하게 느껴졌다.

이런 기운은 한립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다. 이건 바로 선계의 기운이었다!

‘드디어……!’

한립은 가슴이 벅차올랐다. 정말 운이 좋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만약 여기서 조금만 더 시간이 흘러 자칫 갑옷이 깨지기라도 했다면, 자신 혼자만의 힘으로는 결코 이곳에서 살아나갈 수 없었을 것이다.

비록 몸은 상당히 피곤했지만, 한립의 눈은 기대감에 반짝였다.

선계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자신에게 수배령을 내린 조직을 찾아내서 그로부터 근원을 더듬어 올라가, 자신이 기억을 잃게 된 이유도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엇!”

얼마쯤 더 날아가던 한립은 갑자기 속도를 확 줄였다. 멀지 않은 곳에 웬 거대한 노란색 물체가 떠 있는 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 물체는 웬만한 마을 몇 개를 모아 놓은 것보다도 더 너비가 넓었는데, 둥그런 형태를 띠고 천천히 굴러다니는 것이 얼핏 기포 같아 보이기도 했다.

시시각각 밀어닥치는 공간 폭풍조차 그 기포에 닿으면 즉시 튕겨져 나갔고, 기포엔 흠집 하나 나지 않았다.

이 신비한 기포 속은 텅 비어 있는 게 아니라 그 안에 뭔가 들어 있었다. 그러나 한립이 아무리 명청령안을 펼쳐 봐도 기포 속 기이한 힘이 그의 탐색을 막아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이 정확히 뭔지는 알 수 없었다.

한립은 호기심이 일었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괜한 말썽을 일으키는 것보다 빨리 선계에 도착하는 게 옳은 일이었다.

결정을 내린 한립은 천봉의 날개를 활짝 펴, 기포 옆을 비껴 지나갔다. 하지만 그 순간, 한립 주위의 공간 폭풍이 갑자기 몇 배나 거칠어졌다.

홰애액 퍼억!

폭풍 속에서 강력한 힘이 나와, 천봉의 몸을 강타했다.

‘뭐지!’

한립은 깜짝 놀랐다. 방금 전의 힘은 자신이 전력을 쏟았을 때의 힘에 맞먹을 정도의 위력을 갖고 있었다. 예기치 않은 강한 힘에 부딪힌 천봉은 휙 뒤로 밀려나 기포와 충돌하고 말았다.

공간 폭풍마저 쉽게 밀어내던 그 황색 기포는, 기이하게도 천봉이 표면에 닿자 그를 밀어내기는커녕 오히려 기포 속으로 끌어당겼다.

한립은 잠시 하늘이 빙글빙글 도는 듯 느껴졌지만 재빨리 날개를 펼쳐서 겨우 균형을 되찾았다. 다행히 워낙 강한 육신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폭풍 속 신비한 힘에 가격당하고도 별다른 부상은 입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던 한립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기포 안쪽은 지극히 고요한 공간으로 바깥의 혼란도 이곳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

기포 바닥에서 좀 떨어진 곳에는 거대한 섬이 떠 있었다.

기포를 가득 메운 공기는 노란빛을 띠고 있었는데, 전체적으로 이곳의 천지영기는 영환계 최고의 영지에 어려 있는 것보다도 수십 배는 더 짙었다.

덕분에 땅 위의 숲은 무척이나 울창했고 나무들은 최소한 천 년은 자란 것처럼 높이 솟아 있었으며 각종 귀한 영초들도 흔히 보였다. 이 섬은 그야말로 보물 창고 같은 곳이었다.

한립은 전경을 잠시 바라보다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간 뒤 푸른빛이 번쩍이는 단약을 꺼내 복용했다.

이 약의 이름은 천성단(天星丹)으로, 성광지력을 흡수한 영초들을 모아서 경원관의 비방에 따라 만든 단약이었다. 소북두성원공을 수련한 한립에게 있어서는 최고의 원기 회복용 단약이라 할 수 있었다.

천성단 약효가 온몸으로 번지며 피로가 풀린 한립은 경솔하게 섬에 착지하는 대신 명청령안으로 주위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왠지 누군가 고의로 만들어 놓은 함정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 순간, 갑자기 폭풍 같은 포효 소리가 아래쪽에서부터 들려왔다.

그러곤 곧 들썩들썩 진동하고 있는 섬의 숲속에서 황색 구름 같은 것이 솟아올라 곧장 허공의 한립에게 달려들었다. 그 구름 속에서 거인으로 보이는 누군가의 신형이 희미하게 어른거렸다.

쐐애액!

커다란 주먹이 구름에서 뻗어 나왔는데, 그 피부는 꼭 나무뿌리처럼 거칠었다.

한립은 몸에서 7개의 푸른 빛점을 번뜩이며 소북두성원공을 전력으로 일으켰다. 그러자 전신에서 은은한 별빛이 발산되며 굵은 빛줄기 일곱 가닥이 몸을 휘감았다.

소북두성원공이 완성된 후로는 굳이 거원으로 변신하지 않아도 황건거인에 필적할 정도의 힘을 주먹에 실을 수 있었기 때문에, 한립은 그대로 거인의 주먹에 맞서 똑같이 주먹으로 응수했다.

콰아아아아앙!

양쪽의 주먹이 충돌했다.

주위 허공이 갑자기 비틀렸고 충격으로 인한 공기의 파문이 사방으로 번져 나가며 거대한 회오리바람까지 일었다.

한립 역시 그 충격으로 저 멀리 날아간 뒤에야 겨우 멈춰 섰다. 하지만 구름 속 거인은 그저 두어 걸음만 물러섰다가 바로 몸을 꼿꼿이 세웠다.

회오리바람이 거인 주위의 황색 구름을 흐트러뜨리자 드디어 거인의 모습이 또렷이 드러났다.

한립은 반투명한 은색 막에 감싸인 채 나타나 신형을 가누었다.

상대가 품고 있는 힘은 어마어마했지만 진극체를 이룬 그에게는 직접적인 타격을 입히지는 못했다.

차분히 시선을 들어 올린 한립은 동공을 수축했다.

그곳에는 산만한 노란 피부의 거인이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신에 기괴한 문양이 새겨진 못생긴 거인은, 납작한 코에 커다란 입 그리고 기다란 동공이 수직으로 나있는 외눈을 지니고 있었다.

외눈박이 거인은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거친 만황의 기운이 풍겨 한립의 눈꼬리를 꿈틀대게 만들었다. 수행의 고하와 상관없이 직감적으로 위협을 느낀 것이다.

크아아!

외눈박이 거인은 한립이 자신의 일격을 맞고도 멀쩡해 보이자 느닷없이 괴성을 지르며 그를 향해 쿵쿵쿵! 뛰어왔다.

그는 이전과 달리 전신에서 강렬한 노란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크앙!

그 모습에 한립도 주문을 외워 언덕 크기만한 금털 거원으로 변했다.

거원의 가슴에 떠오른 7개의 남색별 문양이 반짝반짝 발산하는 금빛과 어우러져 거원의 몸을 더욱 부풀리고 있었다.

거원은 주먹을 단단히 쥐고 달려드는 외눈박이 거인을 향해 팔을 휙! 휘둘렀다.

그러자 허공이 왜곡되고 작은 산 크기의 금빛 주먹 허상이 나타나 반짝이는 별빛 속에서 실체화되었다.

이에 거인 역시 노호성을 터트리며 커다란 주먹을 불끈 쥐고 쾌속으로 내질렀다.

쿠콰쾅!

엄청난 굉음이 터지고 외눈박이 거인이 튕겨나가 아래쪽 섬으로 떨어졌다. 섬은 크게 진동하며 커다란 구덩이가 생겼고, 먼지가 뿌옇게 일어 시야를 방해했다.

휘휘휘휘휙!

번뜩 사라진 금털 거원이 구덩이 위에서 나타나 두 주먹을 연달아 뻗었다. 금색 주먹 허상들이 겹겹이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외눈박이 거인은 바닥에 엎어져 있었지만 딱히 다친 것 같지는 않았는데, 곧바로 머리를 들어 열이 뻗친 얼굴을 하고 힘껏 바닥을 박차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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