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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479화 (1,236/2,000)

1479화. 영영검부(靈嬰劍符)

*

“제길, 서두르십시오!”

단인리의 외침에 동인악도 조금 창백해진 얼굴로 서둘러 수결을 맺었다.

그러자 허공에서 맴돌던 현황색 영패의 회전 속도가 급격하게 빨라졌고, 그에 따라 황건도병에게서 방출되는 빛은 한층 더 강해졌다. 이에 지면에서 솟아나는 현황의 기운도 밧줄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거원은 잠시 몸을 떠는 듯했지만 다시 힘껏 팔을 당겼다.

“질(疾)!”

마침내 장검의 형태가 완벽하게 갖춰지자 합산도인이 크게 외쳤다.

10장도 넘는 길이로 커진 금빛 장검이 그대로 거원에게 날아들었다.

장검이 지나간 곳에는 뇌성 같은 굉음이 울리며 가느다란 회백색 균열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로부터 강력한 파동이 퍼져 나갔다.

검광으로 덮인 구역 안에서는 빛이 왜곡됨은 물론 그 위력적이던 회색 구름조차 일그러졌다. 또한 이, 삼백 마리에 달하던 괴조들까지 파동에 휘말려 짧은 비명과 함께 소멸해 버렸다.

그러나 거원은 아직도 현황의 밧줄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위기의 순간, 거원이 돌연 매섭게 포효하자 전신에 금빛 비늘이 떠오름과 동시에 머리에는 청색 뿔이 하나 돋았다.

그리고 장검이 막 그의 머리 가까이까지 날아들자 거원은 가능한 최대한 머리를 뒤로 젖혔다가 반동을 이용해 장검 쪽으로 들이밀었다.

콰아아아아앙!

거원의 머리에 돋은 뿔과 장검이 강하게 충돌했다.

검신에서 뿜어져 나오던 검광은 순식간에 산산조각 나 마치 황금빛 불똥처럼 사방으로 튀어나갔다.

그 충격으로 저 아득한 곳의 공기까지 거칠게 요동쳤고, 거원 주변의 황건도병들도 몸이 터져 나갔다.

번쩍이는 빛 속에서 장검은 아슬아슬할 정도로 휘었다가, 결국엔 그 반동으로 저 멀리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반면에 거원은 그저 살짝 휘청거렸을 뿐 금세 다시 균형을 찾았고 전신에는 작은 상처 하나 입지 않았다.

“말도 안 돼!”

합산도인이 저도 모르게 소리 질렀다.

동인악과 단인리 역시 충격에 휩싸여 탄성조차 뱉지 못한 채, 경악한 눈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나가떨어지던 장검은 한참 뒤에야 겨우 안정되었다.

하지만 장검은 합산도인이 법결을 운용하기도 전에 스스로 부적문을 크게 번득이며 방금 전보다도 더 강한 기세로 산악거원을 향해 날아갔다.

이에 맞서 한립은 황건도병의 숫자가 줄어들어 몸을 짓누르는 압력이 약해지자 한층 더 편안하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무시무시한 포효를 내질렀다.

우우우우우웅.

엄청난 파문이 거원의 입에서 저 위쪽으로 비스듬히 퍼져 나갔다. 그러자 위쪽 허공이 꼭 운석이 떨어진 것처럼 푸욱 꺼졌으며 그 주위 풍경도 흐릿해졌다.

방금 전 한립이 펼친 건 금강후로 산악거원으로 변해야 쓸 수 있는 신통이었다.

본래도 대단한 위력을 지닌 음공(音功)이기 때문에 지금의 육신의 힘으로 펼칠 경우엔 허공마저 일그러뜨릴 수 있었다.

쿠쿠쿠쿠쿠.

기세 좋게 날아들던 금빛 장검은 금강후로 인한 소리의 파동에 휩싸인 순간 거칠게 검신이 떨렸으며, 그 자리에서 한 치도 더 전진하지 못했다.

소리의 파동이 계속해서 진동하자 결국 눈부신 검광도 유리처럼 깨졌는데, 그렇게 드러난 검신에는 점차 누군가의 얼굴이 조금씩 떠올랐다. 바로 경원관 정명노조와 똑같이 생긴 얼굴이었다.

쩌어엉!

마침내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장검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조각조각 깨져 아련한 빛으로 변해 버렸다.

그 빛 속에서 곧 정명노조 원영의 허상이 번쩍 튀어나왔다.

처음에 비해 색이 어두워진 원영의 허상은 경악의 빛을 띠고서 서둘러 허공의 두루마리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이에 산악거원의 미간에서 돌연 좁고 긴 틈새가 쩍 벌어지더니 검은 기운이 틈새 속에서 맴돌다 커다란 눈동자로 변했다. 바로 허공을 꿰뚫을 수 있는 파멸법목(破滅法目)이었다.

파멸법목은 곧장 검은빛 한 줄기를 방출해 허공으로 사라졌다.

파앗!

그리고 잠시 후, 그 검은빛은 두루마리에서 고작 한 걸음쯤 떨어진 곳에 갑자기 나타나더니 두루마리에서 막 튀어나오던 원영의 허상에 매섭게 꽂혔다.

원영의 허상은 처량한 비명과 함께 빛으로 흩어졌으며, 두루마리도 덩달아 불에 타 재가 되어 버렸다.

“말도 안 돼……. 파멸법목이라니!”

동인악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단인리 역시 경원관의 선인이 특별히 하사한 보물이 한립에 의해 무력하게 파괴됐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그 속에 담겨 있던 원신까지 깨끗이 소멸되는 걸 보고는 안색이 새파래졌다.

“어떻게 저런 신통까지 갖고 있을 수 있지?”

합산도인은 겁에 질린 나머지, 정명노조가 하사한 법보가 망가진 것에는 신경 쓰지 않고 그저 얼빠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런데 그때, 이들이 더 정신을 잃을 만한 일이 벌어졌다!

산악거원의 몸이 번쩍이나 싶다가 갑자기 은빛 화염이 화르르 일어나 전신을 감싼 것이다.

거원의 몸에서 갑자기 황색 연기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그 연기는 한립을 조이던 단단하고 질긴 현황(玄黄)의 밧줄들이 화염에 녹으면서 생긴 연기였다.

밧줄이 화염에 녹아 잇따라 끊어지자, 마침내 속박에서 벗어난 황금색 거원의 몸에서 화염이 사라지고 그 대신 맘껏 날뛰던 번갯불들이 그를 덮었다.

수많은 번갯불 줄기가 휘감겨 있는 가운데, 거원은 어느새 은빛 거대 새로 변해 날개를 펴고 날아올랐다.

새는 강철과 같은 깃털에, 갈고리처럼 크고 날카로운 발을 가진 것이 곤붕(鯤鵬)의 모습과 흡사했다.

바로 경칩십이결(驚蟄十二決) 중 또 다른 진령인 뇌붕(雷鵬)으로 변한 것이다.

“큰일이군……!”

동인악은 굳은 얼굴로 중얼거리면서 빠르게 수결을 맺었다. 이에 현황영패가 엄청난 속도로 뱅글뱅글 돌자 지면에서 다시 한 번 솟아오른 현황의 기운이 뇌붕에게 날아갔다.

단인리도 즉시 법결을 바꿔, 호리병에서 새로 나온 황건도병들이 진법에 끼어드는 게 아니라 바로 뇌붕에게 돌진하도록 조종했다.

그러나 뇌붕은 날개를 펄럭이며 바람처럼 사라졌고, 한발 늦게 밀려든 현황의 밧줄과 도병들은 빈자리만 스치고 지나갔다.

동인악 등 세 사람이 미처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하늘에서 갑자기 빛이 번쩍이더니 뇌붕이 돌연 호리병 위쪽에 나타나 갈고리 같은 발로 병을 휙 낚아챘다.

거대하던 뇌붕과 호리병은 뿌연 빛과 함께 크기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잠시 후, 다시 사람으로 돌아온 한립의 손에는 팔뚝만 하게 축소된 호리병이 들려 있었다. 이를 본 합산도인은 안색이 완전히 어두워져서 이를 악물고 말했다.

“우리로는 상대가 안 될 것 같습니다. 돌아갑시다!”

합산도인이 말을 마치자마자 동인악도 허공에 떠 있는 현황영패를 챙길 여유도 없이 단인리와 함께 서둘러 떠났다.

한립은 호리병을 흘긋 보더니 푸른빛을 일으킨 손으로 표면을 문질렀다. 그러자 표면에 새겨져 있던 금색 부적문들이 곧 희미해지더니 결국 완전히 없어지고 말았다.

그 순간 지면에서 포진 중이던 도병도, 한립에게 공격을 퍼붓던 도병도 일제히 몸에 힘이 빠진 것처럼 쓰러지더니 황색 콩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당연히 황건도병들로 구성돼 있던 대진 역시 한순간에 사라졌다.

한립은 호리병을 거둬들이고는 저 멀리 도망치고 있는 세 사람을 보며 냉소했다.

파츠츠츠.

몸에 번갯불이 번뜩임과 동시에 다시 한 번 뇌붕으로 변한 한립이 날개를 쳤다.

그 무렵, 필사적으로 도망치고 있던 단인리는 입 안이 타들어 가는 느낌에 미간을 찌푸렸다.

나중에야 합공하기 시작한 합산도인, 동인악과 달리 단인리는 처음부터 호리병과 황건도병을 조종하느라 엄청난 양의 법력을 소모해 버려서 그 둘보다 비행 속도가 현저히 뒤지고 있었다.

두 사람에 비해 뒤쳐진 단인리가 나직이 신음하고 있을 때, 귓가에 이상한 소리가 들려와 전신이 오싹해졌다.

츠츠츠츠츳.

그리고 그때, 단인리의 위쪽 하늘에서 갈고리 같은 발 두 개가 튀어나왔다.

발에서는 가느다란 번갯불들이 수도 없이 튀어나오더니 곧 거대한 번개 그물을 만들었다.

번개 그물이 자신에게 날아오르는 데도 단인리는 대승기 고수답게 침착한 태도로 혈홍색 작은 깃발을 뱉어 냈다.

깃발은 그의 입에서 날아간 순간 사람만 하게 커졌다.

붉은빛이 휘도는 깃발에선 짙은 피비린내와 함께 지독한 안개가 피어나 단인리의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그러나 단인리의 몸이 완전히 감춰지기도 전에 하늘에서 모습을 드러낸 뇌붕이 두 발을 안개 속으로 꽂아 넣었다.

쿠르르르릉 쾅쾅!

뇌붕의 발이 유성처럼 안개 속에 떨어지자 안개에서 번개가 번쩍이며 거칠게 요동쳤다. 뇌붕은 날카로운 두 발을 앞세워 안개 속에 숨어 있던 사람을 콱 움켜잡았다.

뇌붕에게 잡힌 단인리는 꼭 먹이에 잡혀 온 애벌레처럼 몸부림쳤는데, 두려움이 가득한 얼굴로 눈, 코, 입 등에서 검은 피가 흘러나왔다. 그때 뇌붕이 천둥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단 수사, 그간 굳이 말썽을 일으키고 싶지 않아 손에 사정을 뒀소만. 수사가 이렇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뛰게 될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구려. 나 역시 더 이상은 귀찮음을 감수하고 싶지 않으니, 내 무정함을 탓하지 마시오.”

말을 마치자마자 뇌붕의 발이 한층 더 강하게 단인리의 몸을 조였으며, 발바닥에선 무수한 번개 가닥들이 방출돼 그의 몸에 꽂혔다.

“으아악!”

단인리의 비명과 함께 그의 몸 상반신은 번개에 의해 터져 나가 버렸다.

단인리의 처참한 육신에서는 곧 겁에 질린 표정의 암홍색 소인이 튀어나왔지만, 멀리 달아나기도 전에 다시 날아든 은빛 번갯불에 격퇴된 순간 푸른 연기가 되어 흩어졌다.

그토록 오랜 세월 영환계를 호령하던 대승기 고수가 흔적조차 사라진 것이다.

그 사이 동인악과 합산도인은 동료를 도울 생각 따윈 하지 않고 일찌감치 사라져 있었다.

* * *

선계, 흑수성의 내성(内城) 안.

정명노조와 골염 노조는 여전히 누각 3층에서 차를 마시며 얘기를 나누고 있었지만 그들의 대화 내용은 어느새 수련에 관한 평범한 얘기들로 바뀌어 있었다.

“푸우읍……!”

신나게 얘기를 나누던 정명노조가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정혈을 토해 냈다. 원기가 꽤 많이 손상된 듯했다.

“정명 수사, 왜 그러시오?”

골염 노조가 놀라서 묻자 정명노조는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

“내가 하사한 영영검부가 파괴됐소!”

“그럴 리가! 수사의 영영검부에는 수사가 전력을 다해 일격을 펼친 힘이 담겨 있지 않소. 나조차 영영검부에 정면으로 맞서기는 힘들 거요. 게다가 황건도병들까지 보조해 힘을 보탰는데도 한립을 죽이는 데 실패하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단 말이오?”

골염 노조도 동요하며 되물었지만 정명노조는 잔뜩 얼굴이 일그러진 채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 *

회색 공간.

동인악과 합산도인이 형성한 두 개의 빛이 빠른 속도로 허공을 갈랐다.

두 사람은 원래도 전력으로 날아가고 있었지만 단인리의 기운이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자 원기가 크게 소모되는 촉진(促進) 비술도 마다 않고 펼쳐 미친 듯이 도망치고 있었다.

이들은 이렇게 혼까지 달아나는 듯한 느낌을 느껴본 것이 정말 오랜만이었다.

영환계 안에서 이 두 사람과 적수가 될 만한 인물이 많지 않았던 데다, 그 정도 고수들은 그리 함부로 싸움을 벌이지 않았기 때문에 위험에 처할 일이 별로 없었던 것이다.

“합산 수사, 이 틈에 어서 공간통로를 여시오. 빨리 여길 벗어나지 않으면 우리도 죽고 말 거요!”

“알았습니다!”

동인악이 다급히 말하자 합산도인도 즉시 손바닥만 한 은색 원반을 꺼내, 푸른빛을 일으킨 다른 손으로 원반을 가볍게 내리치며 뭔가를 중얼거렸다.

주문이 이어지자 원반에서는 점점 더 강한 빛이 피어오르더니 곧 십여 가닥의 은색 빛줄기가 튀어나와 두 사람 앞에 모여 얽히면서 흐릿한 문양을 만들었다.

바로 그때, 희미한 천둥소리가 뒤쪽에서 들려왔다.

두 사람이 홱 돌아보자 저 멀리서 은색 점이 점멸하며 다가오는 게 보였다.

점은 한 번 반짝일 때마다 크기가 확확 커지고 있어, 한눈에도 엄청난 속도로 자신들과의 거리를 좁히고 있는 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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