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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478화 (1,235/2,000)
  • 1478화. 세 사람의 합공

    *

    한립은 황건도병들의 협공을 가볍게 피한 후 오른 주먹을 날렸다. 일고여덟 개의 권영(拳影)은 곧 상대의 머리에 정확하게 꽂혔다.

    펑! 펑펑!

    도병들의 머리가 터지면서 그 몸뚱이까지 ‘푸확’ 소리와 함께 황색 안개로 변했다.

    잠깐 사이에 한립은 물 흐르듯 순식간에 스무 명 가까운 도병을 없앴다.

    도병들에 완전히 익숙해진 한립은 점점 더 쉽게 적들을 없애 나갔고, 오히려 황건도병들이 밀려드는 속도가 한립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주변의 도병 숫자가 절반으로 줄어들자 한립은 위쪽의 회색 구름을 올려다보며 구름 자체를 없앨 기회를 엿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던 금색 빛이 멈추더니 구름 가운데가 쩍 갈라지며 둔광 세 줄기가 내려와 허공에 멈춰 섰다.

    둔광이 걷히자 세 사람의 모습이 드러났다.

    한립은 이미 만난 적이 있던 합산도인과 단인리 외에 처음 보는 왜소한 체구의 노인까지 찬찬히 훑어본 후 말했다.

    “합산 수사, 천귀종과 손을 잡았나 보군. 유감이오.”

    “너무 원망 마시오. 그건 다 수사가 죄를 지어서는 안 되는 상대에게 죄를 지은 탓 아니겠소. 빈도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오.”

    “그렇소? 단 수사의 위세가 내 생각보다 더 대단했던 모양이오.”

    합산도인의 말에 한립은 뭔가 생각하는 듯하면서도 표정은 담담하게 단인리를 보며 비꼬았다.

    “한 수사 정도의 고수라면 이 영환계에서 마음껏 활개치고 살 자격이 있지. 그러니 그저 음진석 좀 원한 걸로 우리가 이런 고생을 할 리 있겠소?”

    왜소한 체구의 대머리 노인이 건조하게 웃으며 말하자 한립의 시선도 다시 그에게 향했다.

    “아마 수사께서 바로 그 천귀종 제일 수사라는 동(童) 수사시겠군. 그럼 내가 대체 누구에게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세 분께서 직접 나셨단 말이오?”

    “흥, 쓸데없는 질문으로 시간을 끌 생각이라면 꿈 깨시오. 합산 수사, 단 수사. 출수하시오!”

    동인악은 명령과 함께 고서(古書) 한 권을 꺼내 허공에 던졌다.

    파라라락!

    빠르게 빙글빙글 도는 고서의 책장에서 회백색 빛이 수백 가닥 튀어나와, 귀매(鬼魅)의 머리에 독수리의 몸, 전갈의 꼬리를 가진 괴조들로 변했다.

    커다란 괴조들은 하늘을 선회하며 금방이라도 공격을 펼칠 것처럼 날카롭게 눈을 빛냈다.

    “한 수사, 미안하오!”

    합산도인은 슬쩍 미소 지으며 사과하더니 남색 원반 모양의 법보를 꺼내 구름 쪽으로 던지고는 정신을 집중했다.

    쿠르르르릉!

    두꺼운 구름이 뇌성과 함께 거칠게 요동쳤고, 곧 수백 가닥의 흑색 번갯불이 구름 사이에서 번뜩이기 시작했다.

    이와 동시에 단인리도 주문을 외워 끝없이 호리병 속 황색 콩들을 내보냈다. 콩들은 잇따라 황건도병으로 변해 한립에게 쇄도했다.

    세 사람은 미리 약속해 둔 것처럼 절묘하게 각자의 공격을 펼치고 있었다.

    황건도병이 호리병 속 콩들이 변한 것이라는 걸 알게 되자 한립은 감탄한 표정을 지었지만 금세 다시 냉정해지더니 주먹을 뻗어 도병들을 날려 보낸 뒤 단인리 쪽으로 다가갔다.

    저 세 사람이 애써 자신을 함정에 몰아넣은 건 이런 표면적인 공격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속셈 때문일 거라 판단하고 선수를 칠 생각이었던 것이다.

    바로 그때, 하늘을 선회하던 괴조 중 10여 마리가 한립을 향해 급강하하면서 전갈 꼬리를 뻗었다. 엄청난 속도 덕분에, 아래로 쏟아지는 괴조의 꼬리들은 꼭 검은 소나기처럼 보였다.

    하지만 한립은 가볍게 몸을 움직여 괴조들의 공격을 모두 피하더니 뒤이어 달려드는 황건도병까지 주먹으로 날려 버렸다. 그러자 하늘에서 또 다른 괴조들이 몰려왔으며 구름에서는 굵은 흑색 번개까지 내리쳤다.

    이를 본 한립은 피부에 금빛 비늘들을 띄우고는 번개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콰콰콰콰쾅!

    엄청난 굉음과 함께 터져 나간 번개는 무수한 불꽃들로 변해 사라졌다. 한립은 조금 휘청거리며 뒤로 물러섰지만 부상은 입지 않았다.

    캉! 캉! 캉! 캉!

    괴조의 전갈 꼬리들이 한립의 피부 위 비늘에 잇따라 날아들었지만 꼭 강철을 때린 것처럼 튕겨 나갔고 비늘에는 미세한 흔적조차 남기지 못했다.

    퍼어엉!

    괴조 한 마리가 공격 후 미처 후퇴하기도 전에 한립에게 잡혀, 그대로 어느 황건도병에게로 날려졌다. 황건도병과 강하게 충돌한 괴조는 함께 몸이 폭발해 버렸다.

    쿠르르르르르!

    회색 구름이 아까보다 더 거친 울음소리를 내면서 잇따라 수십 가닥이나 되는 번개들을 내뿜었다.

    거기다 하늘에서 맴돌던 괴조들까지 틈틈이 하강에서 공격을 퍼부었지만 한립은 민첩하게 번개 사이로 몸을 움직였고, 피하기 힘든 번개는 직접 주먹으로 부쉈으며, 동시에 괴조들까지 침착하게 없애 나갔다.

    한립은 아직 큰 문제없이 방어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단인리를 공격할 여유까지는 없었다.

    결국 단인리의 호리병에서 콩이 튀어나오는 속도가 한립이 파괴하는 속도를 훨씬 앞질러, 한립 주위엔 순식간에 3천명도 넘는 황건도병이 모이게 되었다.

    게다가 이 도병들 대부분은 당장 공격을 퍼붓는 게 아니라 뭔가를 준비하는 듯 제자리에 서 있었기에 한립의 불안감은 오히려 더 커졌다.

    ‘진법이군!’

    한립은 마침내 적들의 계획을 눈치 채고는 표정이 조금 굳어졌다.

    한립은 곧장 근처의 황건도병 한 명을 붙잡아 자신을 포위하고 있는 도병 무리로 집어던졌다.

    콰콰쾅!

    엄청난 힘으로 던져진 도병과 충돌하자 외곽의 도병 하나가 함께 몸이 터져 나갔다. 그 충격으로 주위 도병들도 함께 땅에 쓰러졌다.

    이에 한립은 쉴 새 없이 몸을 움직여 닥치는 대로 도병들을 잡아 던졌고, 도병들은 잇따라 바깥의 도병들 무리로 떨어져 같이 폭발했다.

    한립이 번개나 괴조의 공격은 아예 무시하고 황건도병에게만 집중적으로 공격하자, 도병들 대열이 순식간에 흐트러져 버렸다.

    “더 지체하면 안 되겠군!”

    동인악이 중얼거리더니 꼭 녹슨 것 같은 현황 빛깔의 영패를 꺼내 기이한 법결을 운용했다. 그러자 영패 표면에 눈부신 빛이 떠올랐다.

    한립은 이 영패가 정확히 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쩐지 눈으로 보기만 해도 그것이 예사 물건이 아니라는 게 느껴졌다.

    그러나 한립이 뭔가 하기 전에 영패가 그의 머리 위로 날아가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고, 현황색 기괴한 영문(靈紋)이 점점 더 밝게 빛났다.

    이에 한립을 포위하고서 미동조차 없던 수천 명의 황건도병들이 일제히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려 손바닥이 위로 향하도록 양손을 모았다.

    그러자 모든 도병들의 전신에 황색빛이 일어나더니 순식간에 손바닥에 응집됐다가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그 빛줄기들은 공중에서 서로 연결되고 확대되어 빛의 장막을 이루고는 곧장 한립을 중심으로 그 주위를 완전히 뒤덮었다.

    그 순간 한립은 꼭 거대한 산에 짓눌린 것처럼 몸이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푸푸푸풋!

    이번엔 빛으로 덮인 지면에서 현황색 안개가 솟아 나오더니 서로 교차되듯 응집되며 밧줄을 만들었다.

    밧줄들은 꼭 뱀처럼 한립에게 날아들어 허리와 팔다리를 단단히 묶었고 지면에 고정시켜 그가 꼼짝 못하도록 만들었다.

    ‘젠장!’

    한립은 서둘러 소북두성원공을 격발시켜 흉복부의 푸른빛들을 맹렬하게 일으키고는 용솟음치는 힘을 이용해 몸을 비틀고 두 팔을 마구 흔들어 댔다.

    결국 한립의 몸을 휘감고 있던 현황의 밧줄들 중 비교적 가는 밧줄들은 조금 느슨해지고야 말았다.

    그때 단인리가 들고 있던 호리병은 어느새 한립의 머리 위에 날아와 있었는데, 단인리가 정혈을 내뿜고 주문을 외우자 단번에 집채만 한 크기로 커졌다.

    쐐쐐쐐쐐쐑!

    수많은 콩들이 꼭 둑이 터진 강의 강물처럼 쏟아져 내렸다.

    이 콩들이 변해 만들어진 새 황건도병들은 내려서자마자 이전의 도병과 마찬가지로 두 손을 올려 빛의 장막 속으로 눈부신 황색 빛줄기를 주입시켰다.

    한립은 자신을 묶어 두려는 밧줄의 속박 속에서도 어떻게든 주먹을 내질러 황건도병과 괴조를 차례로 없애 나갔지만 확실히 그의 움직임은 점점 느려지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계속 생성된 도병들이 힘을 보태면서 위쪽 빛의 장막은 더욱 단단히 응고됐으며 지면의 현황색 안개도 더 자욱해졌다. 자연히 그 안개로 이뤄진 밧줄도 한층 튼튼해졌다.

    한립은 여러 개의 큰 산을 짊어지고 있는 것처럼 점점 더 몸을 움직이기 힘들었고, 밧줄은 그런 그를 더 강하게 조여 왔다.

    그런데 그때, 한립의 전신이 금빛으로 번쩍이며 부풀어 나더니 그의 몸은 순식간에 금색 털로 뒤덮인 거대한 원숭이로 변했다.

    한립이 다시 한 번 경칩결을 시전해 산악거원으로 변한 것이다!

    동인악과 합산도인은 놀란 눈으로 이 거원을 바라보았다.

    비록 단인리에게서 한립의 이런 비술에 대해 미리 듣긴 했었지만, 직접 접하게 된 거원의 무서운 기세는 생각했던 것 이상의 충격이었다.

    “합산 수사, 뭘 멍하니 있는 거요!”

    먼저 정신을 차린 동인악이 매섭게 호통 치더니 고서(古書)를 회수한 후 온 정신을 아래쪽의 대진에 집중시켰다.

    합산도인은 계속해서 번개 공격을 펼치는 대신, 또 다른 주문을 외움과 동시에 수결을 맺기 시작했다. 그러자 피부 위로 기이한 부적문들이 떠오르며 전신에 황금색 빛이 강하게 일어났다.

    이때 산악거원으로 변한 한립 주위의 황건도병의 숫자는 벌써 만 명을 훌쩍 넘어 있었다.

    덕분에 현황의 기운은 한립을 휘감고 있는 밧줄에 계속해서 녹아들면서 밧줄을 더 굵고 단단하게 만들었다.

    “크아아아아아!”

    하늘을 찌를 듯한 산악거원의 포효 소리가 울려 퍼졌다.

    뒤이어 ‘투두둑’ 소리와 함께 거원의 전신 근육은 공기를 불어넣은 것처럼 팽팽하게 부풀어 올랐고, 몸을 뒤덮은 털들도 꼭 강침(鋼針)처럼 단단하게 변해 바짝 섰다.

    거원의 몸은 예전의 두 배로 커져 있었지만 밧줄 역시 급속하게 굵어져 여전히 단단하게 그를 옭아맸다.

    그 순간, 거원의 몸이 갑자기 빛을 발하더니 순식간에 방금 전의 절반 크기로 작아졌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밧줄도 거원의 몸집에 맞게 가늘어져 빈틈없이 그를 구속했다.

    거원의 몸이 아무리 커졌다 작아졌다 해도 밧줄은 꼭 그를 위해 일부러 만들어진 것처럼 함께 굵기를 조절하고 있었다.

    “그런 수법이 통할 거라고 생각했다니. 멍청하긴…. 하하하하하하!”

    단인리는 이제야 묵은 체증이 가신 것처럼 웃음을 터뜨렸다.

    “합산 수사, 아직도 멀었소?”

    동인악이 미간을 찌푸리며 재촉하자 합산도인은 말없이 청회색 두루마리를 산악거원 머리 위로 던지고는 손가락을 가리켜 큰소리로 외쳤다.

    “질(疾)!”

    그러자 합산도인의 전신을 휘감고 있던 금빛이 손가락 끝으로 응집됐다가 그의 손짓을 따라 두루마리로 날아들었다.

    파라라락!

    단번에 쫙 펼쳐진 두루마리 표면에서 눈부신 금빛이 번쩍이더니 곧 한 뼘만 한 금색 원영의 허상이 날아 나왔다.

    이 원영의 허상은 머리에 연화관을 쓰고 있었으며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게, 경원관의 정명노조와 상당히 비슷했다.

    합산도인은 멈추지 않고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두루마리에서 금색 문자들이 잇따라 튀어나와 그 원영의 허상 속으로 녹아들었다.

    원영의 허상은 돌연 길쭉하게 늘어나 거대한 장검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검신(劍身)은 기괴한 금색 부적문으로 가득했으며 무서운 파동을 내뿜고 있었다.

    장검의 등장에 심지어 동인악과 단인리마저 조금 놀란 기색으로 서로를 쳐다봤다.

    하지만 산악거원은 자신의 머리 위에서 커지고 있는 장검을 담담하게 올려다보더니 흉복부의 푸른빛 여섯 개를 동시에 번쩍이며 팔의 근육을 부풀렸다.

    뒤이어 장검을 가격하려는 듯 거원이 있는 힘껏 팔을 들어 올리자 밧줄도 더 강한 힘으로 그를 속박했지만, 완벽하게 그를 제압하는 건 불가능했는지 점점 더 거원의 움직임에 따라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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