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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472화 (1,229/2,000)

1472화. 경칩결(驚蟄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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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립은 곧 명청령안 신통을 시전 했다. 덕분에 아까보다 몇 배 정도 더 깊이 혈해 속을 들여다볼 수 있었지만, 그보다 더 아래쪽은 여전히 흐릿하게만 보일 뿐이었다.

한립이 운학초를 씹어 삼킨 후 체내의 영력을 동공에 응집시켜 다시 한 번 명청령안 신통을 시전 하려던 순간,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한립에게서 멀찍이 떨어진 곳의 혈해가 갑자기 거칠게 날뛰더니 진득한 핏물이 빙글빙글 돌면서 거대한 소용돌이를 형성한 것이다.

소용돌이 안에서 엄청난 굉음이 들려왔다.

한립은 즉시 상공으로 몸을 날려 피한 뒤에야 다시 아래를 내려다봤다. 소용돌이의 중심에서는 곧 거센 물보라와 함께 거대한 해골이 솟아올랐다.

이 해골은 높이가 무려 일백 장에 달했고, 혈옥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선명한 붉은색을 띤 뼈대 표면엔 부적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었다.

게다가 언덕만 한 두개골 위에는 암홍색 원영이 눈을 감고 가부좌를 하고 있었는데 그 생김새가 단인리와 무척 비슷했다.

한립이 가만히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데, 원영이 갑자기 눈을 뜨더니 정혈 일곱 덩어리를 뿜어내 수결과 동시에 섬뜩한 주문을 외웠다.

정혈은 곧 안개로 변해 뱀처럼 원영의 사지와 목덜미를 휘감다가 요사스러운 빛을 내뿜으며 돌연 해골의 머릿속으로 녹아들었다.

그러자 거대한 해골의 눈구멍에 두 개의 혈광이 나타나면서 온몸의 뼈대에 새겨져 있던 부적이 번쩍 빛났다.

그와 동시에 아래쪽 혈해에서는 핏물이 세차게 빙글빙글 돌더니 피의 기둥을 이뤄 허공의 해골을 덮쳤다. 핏물 너머로 어렴풋이 비치는 해골의 몸집은 점점 더 부풀어 올랐다.

피의 기둥이 썰물처럼 아래로 내려앉자, 원래 거대한 해골이 있던 자리에는 해골 대신 그와 비슷한 크기의 귀물이 나타났다.

이 귀물은 푸르죽죽한 얼굴에 날카로운 이빨, 한 쌍의 굽은 뿔과 뻘건 눈을 갖고 있었으며 전신이 핏빛 털로 덮여 있었고, 유난히 긴 팔다리와 흑자색 박쥐 날개까지 갖고 있었다.

귀물의 모습이 나타난 순간 그 엄청난 기세에 주변 공기마저 전율하듯 요동쳤다. 하지만 한립은 그런 귀물의 모습을 보고도 흥미로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게 유명(幽冥)에서 왔다는 적혈천귀(赤血天鬼)인가? 재밌군.”

그 순간, 적혈천귀가 한쪽 팔을 들어 올리더니 한립을 향해 매섭게 내리쳤다.

적혈천귀의 손에서는 붉은 화염이 이글거리고 있었고, 그 거대한 손이 내리치자 주위 혈해에서 거센 파도가 일었다.

한립은 적혈천귀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콰콰콰콰쾅!

주먹의 힘과 충돌한 순간 적혈천귀의 손을 휘감았던 화염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한립은 몸을 약간 휘청거리며 몇 걸음 물러선 후에야 겨우 균형을 잡고 서서 적혈천귀를 바라봤다. 적혈천귀의 손에 담긴 힘은 한립의 예상보다도 대단했던 것이다.

적혈천귀의 손에서 터져 나간 화염 조각들은 사라지기는커녕 근처에서 서로 뒤엉키더니 순식간에 핏빛 고리로 변해 한립의 몸을 조였다.

적혈천귀는 한립을 결박한 혈환(血環)을 자신 쪽으로 불러들이더니 한립의 머리만 남겨 둔 채 그의 몸을 꽉 움켜쥐었다.

“크크크크크…. 이대로 으스러뜨려 주마!”

적혈천귀는 흉악한 웃음을 터뜨리며 손에 꽈악 힘을 주었다. 그 엄청난 압력에 한립의 뼈에서 우두둑 소리가 울렸다.

한립은 지금의 육신으로는 적혈천귀를 이기기가 조금 힘들었지만, 그래도 꽤 잘 버텨 내고 있었다. 단숨에 한립을 으스러뜨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적혈천귀는 그 모습을 보고 조금 놀라면서도 곧 매섭게 으르렁거렸다.

“흥, 어디까지 버틸 수 있나 보자!”

적혈천귀는 나지막이 주문을 외워 두 팔의 근육을 더욱 부풀리고는 다시 있는 힘껏 한립을 조였다. 하지만 아무리 힘을 줘도 한립은 얼굴을 약간 찡그릴 뿐 몸은 멀쩡했다.

그러던 중 한립의 전신에 돌연 눈부신 빛이 폭발하듯 일어나더니 금색 비늘들이 잇따라 피부에 떠올랐고, 적혈천귀의 손에 붙잡혀 있는 가슴에서는 은은한 푸른빛 다섯 개가 반짝였다.

한립은 전보다 몇 배나 강해진 힘으로 두 팔을 바깥쪽을 향해 벌렸다. 적혈천귀가 놀란 눈으로 보고 있는데, 한립의 몸을 조이고 있던 적혈천귀의 열 손가락이 조금씩 펴지기 시작했다.

압력이 느슨해진 순간, 한립은 순식간에 적혈천귀의 손에서 벗어나더니 몸집까지 빠르게 팽창시켰다. 그와 동시에 한립의 전신에는 황금색 빳빳한 털이 돋아났고 입 밖으로는 날카로운 송곳니 두 개가 삐죽 돋아 나왔다.

눈 깜짝할 사이에 한립은 10장도 넘는 크기의 황금색 거대한 원숭이로 변했다. 포악해 보이는 원숭이의 몸에는 섬뜩한 검은색 기운까지 휘감겨 있었다.

“이건 설마…. 산악거원(山岳巨猿)…!”

적혈천귀가 흠칫 놀라 중얼거렸다. 거원으로 변한 한립은 몸속의 충만한 힘을 느끼려는 듯 두 손으로 가슴을 치며 길게 포효했다.

비록 원영이 봉인된 상태긴 했지만, 그의 체내에 연화돼 있던 여러 진령혈맥의 힘은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에 육신이 회복된 뒤 경칩결도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신통을 다시 시전하게 되자 한립은 감격을 금할 수 없었다.

“어쩐지 실력이 대단하다 했더니, 사실은 진령 때문이었군. 정말 뜻밖의 수확 아닌가. 내 적혈천귀번을 네 피로 다시 제련할 수 있다면 위력은 어마어마하게 커질 것이다!”

적혈천귀는 흉악하게 웃으며 몸을 날렸다. 적혈천귀의 주먹이 붉은빛을 휘감은 채 쇄도해 오자, 산악거원은 황금빛 주먹으로 똑같이 응수했다.

다른 크기의 두 주먹이 강하게 충돌했다!

콰아아아앙!

엄청난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아래쪽 혈해에서 일어난 물결이 하늘까지 치솟았다.

적혈천귀는 몸을 비틀거리면서 뒷걸음질 쳤고, 그의 오른팔도 살점이 터져 나가며 그 속의 붉은 뼈대가 드러났다.

풍-덩!

적혈천귀가 갑자기 혈해에 뛰어들자 다시 한 번 물보라가 높다랗게 일었다. 황금색 거원은 방금 전의 충돌에도 큰 타격이 없었는지 안정적인 자세로 아래쪽을 내려다봤다.

물보라가 가라앉고 난 바다는 그저 조용하기만 했다.

촤아아아!

하지만 다음 순간, 혈해에서 갑자기 파도가 솟구치더니 적혈천귀가 날아올랐다. 적혈천귀의 몸은 혈해의 핏물로 붉게 물들어 있었고 방금 전 터져 나갔던 팔은 어느새 멀쩡하게 회복돼 있었다.

적혈천귀의 두 눈은 분노로 매섭게 빛났다. 적혈천귀가 한쪽 팔을 내밀자 혈해의 핏물이 소용돌이치면서 거대한 장창으로 응집돼 그의 손아귀로 날아들었다.

적혈천귀는 곧 장창에 온힘을 실어 거원에게 내던졌다.

쌔애애액!

귀를 찌르는 날카로운 소리에 거원은 커다란 부채를 꺼내 꼭 방패처럼 그 장창을 막았다.

퍼어어엉!

장창은 방패와 충돌하는 순간 그대로 폭발해 다시 빗물처럼 우수수 혈해로 떨어져 내렸다. 회심의 공격마저 아무 소용이 없자 당황해 잠시 멍해져 있던 적혈천귀 앞에 어느새 거원이 나타나 두 주먹을 휘둘렀다.

적혈천귀는 다급히 왼팔로 그 공격을 막았다.

콰아아앙!

적혈천귀의 몸뚱이가 저 멀리 날아갔다. 그 몸통의 왼쪽 절반은 완전히 으깨져, 떨어져 나간 살점 사이로 핏빛 뼈대가 드러나 보였다.

거원이 포효하며 계속 공격하려던 순간, 혈해에 거친 파도가 일어나더니 순식간에 흉악한 생김새의 용머리로 변했다. 용은 입을 떡 벌리면서 맹렬하게 날아들어 거원을 통째로 삼켜 버렸다.

의기양양하게 이빨을 드러낸 채 바다 위를 휘젓고 다니는 혈룡(血龍)의 전신에는 핏빛 안개가 휘감겨 있었다.

그때 근처에 있던 적혈천귀는 혈해의 핏물을 끌어들여 훼손된 반쪽 몸통을 회복시키고는, 재빨리 수결을 맺으며 기이한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혈룡은 기다란 몸을 동그랗게 말아 핏빛 구체로 변했다. 구체 표면에 있는 눈부신 붉은빛이 엄청난 속도로 점멸했다. 사나운 얼굴로 수결을 마친 적혈천귀는 곧 포효하듯 외쳤다.

“파(破)!”

그러나 적혈천귀의 주문이 떨어지기 한발 앞서, 구체 표면에는 이미 금빛 균열이 생겨 있었다. 그 균열의 중심에선 곧 커다란 기포 같은 게 불쑥 솟아오르더니 뒤이어 ‘펑’ 소리와 함께 구체를 완전히 뚫고 나와 적혈천귀에게로 돌진했다.

콰콰콰콰쾅!

산악거원에게서 금빛 기포가 방출되자마자 뒤쪽에서 강렬한 폭발음과 함께 구체가 산산조각 나 사방으로 흩어졌다.

폭발의 여파로 혈해에선 파도가 세차게 일었고 광풍이 단숨에 십 리 밖까지 불어 나갔다. 심지어 폭발이 일어난 곳 근처에는 눈에 보일 정도의 파문까지 생겼다가 사라졌다.

거원은 다행히 구체에서 빠져나오긴 했지만 몸 곳곳의 황금색 털이 퇴색된 걸 봐서 약간의 경상을 입은 듯했다. 사실 공격을 받자마자 빠르게 반응하지 않았더라면 아무리 강한 육체를 갖고 있다 해도 이런 경상으로 그치진 않았을 것이다.

적혈천귀는 상상 이상의 힘을 지닌 거원이 자신을 향해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 걸 보고는 등의 박쥐 날개를 급히 퍼덕였다. 그 날갯짓 덕분에 적혈천귀와 거원과의 거리는 순식간에 거원이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벌어졌다.

이를 본 거원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산악거원으로서 강한 힘을 지니고 있긴 했지만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 멀리까지 도망간 적혈천귀가 기이한 울음소리를 냈다!

그러자 거원 근처의 혈해 표면이 불룩거리다가 곳곳에서 커다란 귀물들이 수백 마리나 솟아올라 거원에게로 쇄도했다. 이 귀물들은 머리에 뿔이 하나씩 돋아 있었고 두 눈은 파랬다. 그리고 열 손가락은 도검처럼 날카로웠다.

이를 본 거원은 곧 몸을 빠르게 축소시켜 핏빛 안개 사이로 숨어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더없이 청량한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푸른 빛줄기들이 안개를 뚫고 나왔고 맑은 광풍이 혈무를 밀어냈다.

쐐애액!

안개가 자욱하던 곳에서 번개처럼 날아 나온 건 거대한 청색 새였다.

밝은 청색 깃털을 지닌 이 새는 길이가 7~8장에 이르렀고, 머리엔 역시나 청색 벼슬이 돋아 있었으며 몸보다 긴 날개와 세 갈래의 꽁지깃을 갖고 있었다.

새가 두 날개를 맹렬하게 흔들자 푸른빛을 머금은 광풍이 날아가 귀물들의 몸을 사정없이 베었다.

파앗! 팟! 팟!

새의 공격을 받은 귀물들은 무력하게 조각나 안개로 흩어져 버렸다. 새는 다시 한 번 날개를 펼치더니 교묘하게 나머지 귀물들의 포위를 뚫고 나가 적혈천귀에게 날아들었다.

“성금(聖禽) 청란(青鸞)! 네놈, 대체 정체가 뭐냐?”

적혈천귀는 깜짝 놀라 바로 박쥐 날개를 퍼덕여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청란은 그보다도 빠른 속도로 순식간에 적혈천귀를 따라잡았다.

푸확!

적혈천귀의 가슴에 혈광이 번뜩이더니, 뼈가 보일 정도의 깊은 상처가 세 줄기가 나타났다. 이에 적혈천귀가 반격하려는 듯 두 팔을 들어 올렸지만 청란은 순식간에 그의 뒤로 날아갔다.

촤촤촥!

이번엔 적혈천귀의 등에 세 줄기의 상처가 났으며, 그와 동시에 박쥐 날개 한쪽도 잘려 나갔다.

“크아아아아!”

적혈천귀는 두 눈일 벌게진 채로 미친 듯이 거대한 손을 휘둘렀다. 번개처럼 휘둘러진 손끝에서는 붉은빛이 뿜어져 나왔고, 그 빛은 곧 적혈천귀 앞쪽에 촘촘한 그물을 만들어서 청란의 공격을 막았다.

이에 청란은 돌연 자취를 감추더니, 갑자기 적혈천귀의 오른쪽에서 다시 나타나 그의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픽! 픽픽!

이번에도 세 줄기의 상처가 적혈천귀 오른쪽 팔뚝에 생겨났으며 선혈이 사방으로 튀어 나갔다.

적혈천귀는 노호하며 반격하려 했지만, 그의 속도로는 청란의 그림자조차 따라잡을 수 없었다.

청란은 적혈천귀의 주위를 빙빙 돌면서 연이은 공격을 펼쳤고, 결국 적혈천귀는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됐고 동작도 느려졌다. 그나마 지금은 적혈천귀의 살점들만 찢겨져 나갔지만 만약 그의 뼈대가 단단하지 않았다면 진작 청란의 공격에 뼈까지 조각나 버렸을 것이다.

적혈천귀의 눈에도 마침내 두려움이 스쳤다. 적혈천귀는 곧 두 팔로 머리를 보호하면서 아래쪽 혈해로 몸을 날렸고, 혈해에서도 그런 적혈천귀를 맞이하려는 듯 파도가 높다랗게 일었다.

청란은 다시 맑은 울음소리를 내더니 무서운 속도로 적혈천귀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휘오오오오!

하늘에 칼날 같은 빛줄기들로 가득한 푸른 광풍이 휘몰아쳤다. 이에 혈해에서 솟구쳤던 파도는 솟아오르자마자 수십 가닥의 빛줄기에 의해 갈라져 다시 바다로 떨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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