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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468화 (1,225/2,000)

1468화. 소나이공간술(小挪移空間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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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각 거울과 흑색 깃발 등 방어용 보물들은 흑색 산에 닿자마자 산산이 부서졌고, 그가 타고 있던 백골조도 수많은 뼛조각들로 변해 사방으로 튀어나갔다.

거한은 더 이상 자신을 보호해 줄 것들이 사라지자 결국 산에 부딪혀 온몸이 터져 나갔고, 그의 원영은 미처 빠져나가기도 전에 산에서 뿜어내는 압력에 뭉개졌다.

그 광경에 제훤은 깜짝 놀라 더욱 속도를 끌어올렸다. 하지만 또 다른 흑색 산이 번개 같이 그를 쫓아와 둘 사이의 거리를 무섭게 좁혔다.

그 순간 제훤의 눈이 붉게 물들며 붉게 물든 피부에서 수많은 핏줄이 불거져 나오더니 몸이 팽창하기 시작했다.

퍼어어엉!

결국 눈 깜짝할 사이에 극도로 팽창한 몸은 어느 순간 터져 새빨간 빛의 덩어리로 변했고, 그 주위로는 피처럼 붉은 파문이 퍼져 나갔다.

빠르게 다가오던 흑색 산은 그 파문에 때문에 속도가 조금 느려졌다.

그 틈에 제훤과 똑같이 생긴 원영이 빛의 덩어리 속에서 튀어나왔는데 어느새 산으로부터 멀찍이 벗어난 원영은 입에서 정혈을 내뿜어 주위에 보호막을 만들었다.

한립은 원영이 빠른 속도로 도망치는 것을 보고는 낙아를 향해 가볍게 손짓했다. 그러자 낙아의 왼쪽 팔이 은빛으로 번쩍이고는 맑은 새 울음소리를 내며 은색 화염이 튀어나와 불새로 응집되었다.

불새는 곧장 한립의 손 위로 날아들었는데, 한립이 곧장 수결을 맺자 크기가 몇 배로 커지는가 싶다가 그 모양까지 교묘하게 바뀌어 어느 순간 은색 활로 변했다. 활 주위에는 수많은 부적문들이 휘감겨 있었다.

한립은 화살도 재지 않고 그저 텅 비어 있는 활시위를 가볍게 당겼다.

화라락!

활에서 눈부신 빛과 함께 이글거리며 솟아오른 화염은 곧 화살로 응집돼 활시위에 걸렸고, 뒤이어 한립이 시위를 놓자 무서운 속도로 제훤의 원영을 향해 날아갔다.

이때 제훤의 원영은 벌써 10리도 넘게 도망가 있었지만, 문득 가슴을 스치는 섬뜩한 느낌에 뒤를 돌아보고는 표정이 확 바뀌었다.

“멈춰라!”

바로 그때, 천둥 같은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하늘에 나타난 작은 점이 눈 깜짝할 새 거대한 흑색 구름 덩어리로 변해 이쪽을 향해 다가왔다.

제훤의 원영은 그 구름을 보자 뛸 듯이 기뻐하며 도망치던 방향을 바꿔 구름 쪽으로 날아갔지만, 한립은 방금 전의 호통 따윈 전혀 신경도 안 쓴다는 듯 다시 은빛 화살을 조종했다.

허공을 가르던 화살은 번쩍이며 방향을 바꾸는 듯하다가 순식간에 제훤의 원영 뒤에 나타나 그 몸통을 뚫고 지나갔다.

“끄아아아!”

처참한 비명 소리는 은색 화염이 원영을 완전히 감싸면서 묻혀 버렸다.

그때 드디어 원영 가까이에 다다른 흑색 구름 속에서 한 줄기 기운이 튀어나와 원영을 구하려 했지만 잡히는 건 산산이 부서진 원영의 빛뿐이었다.

“감히!”

구름 속에서 불같이 노한 목소리가 울렸다.

쌔액!

뒤이어 구름에서 튀어나온 흑색 귀조(鬼爪)가 서늘한 바람을 일으키며 한립을 향해 뻗어 갔고, 그와 동시에 다섯 손가락 끝에서는 각기 시커먼 화염이 잇따라 방출돼 마치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한립은 피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제자리에 선 채 그대로 허공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퍼어엉! 퍼엉!

주먹이 뻗어나가는 곳마다 화염의 빛줄기들이 무력하게 파괴되며 폭죽 터지는 소리를 냈다.

한립에게 향하던 흑색 귀조 역시 공중에서 멈추더니, 얼마 버티지 못하고 터져 역시나 안개로 변해 사라졌다.

휘오오오오오.

귀조마저 없앤 무형의 힘이 곧 매섭게 회오리바람을 일으키자 구름마저 산산이 흩어졌고, 결국 그 속에 있던 흑색 도포 차림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매부리코의 노인은 역시나 구름을 덮친 힘에 몸이 살짝 흔들리긴 했지만 곧 균형을 잡고서 조금 놀란 얼굴로 한립을 바라보았다.

고개를 들어 노인을 올려다보던 한립의 표정은 담담했지만 입가에는 비웃음이 걸려 있었다. 이에 노인은 발끈한 기색으로 손을 펼쳐 은빛으로 반짝이는 뭔가를 꺼내더니 한립을 향해 던졌다.

푸화아아아아!

한립에게 날아가던 물체는 허공에서 터져, 한립과 낙아를 포함해 사방을 온통 자욱한 은색 안개로 뒤덮었다. 안개 속에서 수많은 부적문들이 어지럽게 날아다니며 꼭 불경 읊는 소리 같은 범음(梵音)을 냈다.

‘이건….’

한립이 뭔가를 떠올린 순간, 갑자기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안개 속에서 검은빛 한 줄기가 낙아를 향해 날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즉시 몸을 날려 낙아에게 다가가면서 손을 흔들었다.

타아앗!

그러자 낙아에게 향했던 검은빛이 바로 튕겨 날아갔는데, 빛의 정체는 바로 흑색 비도(飛刀)였다.

그때 안개가 갑자기 눈부시게 번쩍이며 한립의 시야를 가렸고, 동시에 한립의 몸이 어떤 기묘한 힘에 휩싸이며 주위 풍경이 빠르게 변했다.

잠시 후, 한립이 다시 눈을 뜨자 낯선 곳에 와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소나이공간술(小挪移空間術)…!”

한립이 있는 곳은 먹구름으로 뒤덮인 거대한 골짜기로 양옆에는 흑색 산봉우리들이 높이 솟아 있었고 그 속에는 전각들도 언뜻 보였다.

방금 전 노인이 허공에, 낙아와 한립은 골짜기의 어느 광활한 광장 위에 서 있었다. 광장은 흑옥(黑玉)에서 뿜어져 나온 기운이 검은색 안개를 형성하고 있어서 꼭 먹빛 구름바다처럼 보였다.

광장 앞에는 웅장한 궁전이 우뚝 솟아 있었는데, 가장 큰 대전 위에는 ‘천귀전(天鬼殿)’이라 쓰여 있는 새까만 현판이 걸려 있었다.

한립과 낙아가 광장에 전송돼 오자마자 사방에서 굉음이 울리며 새까만 돌기둥 9개가 지면을 뚫고 솟구쳐 나와 원형 구역을 만들었다.

기둥들은 전부 사람이 두 팔로 간신히 안을 수 있을 정도로 굵었으며 높이는 15~16장에 달했다.

꼭대기에서 아래까지 수많은 글자들과 진법 무늬들이 새겨져 있었고, 기둥 표면에는 흑색 돌들이 꽤 많이 박혀 있었는데, 특수한 영석인 듯 검은빛을 반짝이고 있었다.

그 외에도 각 돌기둥 꼭대기에는 긴 혀를 내밀고 있는 것, 등에 날개가 돋아 있는 것 등 다양한 형상의 귀물 조각상이 달려 있었다.

모양은 제각각이었지만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생생했으며 보기만 해도 가슴이 서늘해질 만큼 흉악한 모습이었다.

게다가 조각상에서 방출된 검은빛은 서로 연결되어 기둥들로 만들어진 원형 둘레에 빛의 장막을 형성하고 있었고, 표면에서는 흑색 부적문들과 함께 흐릿한 귀신들의 환영이 날아다니며 섬뜩한 귀곡성을 내고 있었다.

그 광경에 낙아는 잔뜩 겁먹은 얼굴로 한립의 옷자락을 꽉 움켜쥐었다.

그녀는 더 이상 예전의 세상 물정 모르던 어린 소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런 기괴한 광경 앞에선 어쩔 수 없이 겁이 났다.

한립은 그런 낙아를 보고는 은빛 불새를 보호막 형태로 변형시켜 그녀 주위에 덮어 주었다.

“그 안에서 기다리거라. 무서워할 필요 없다.”

낙아는 한립의 말에 한결 편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때, 사방에서 파공음이 울리며, 주위 산봉우리에 있던 건물들에서 흑색 도포 차림의 천귀종 제자들이 잇따라 날아와 순식간에 한립 주위를 에워쌌다.

얼마 되지 않아 커다란 광장의 상공은 수백 명에 달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게 됐지만 그 후에도 사람들은 계속해서 몰려들었다.

하지만 한립은 오직 자신을 둘러싼 9개의 돌기둥과 빛의 장막만 침착하게 살펴보았다.

천귀종 제자들은 엄청난 적이 침입했다고 생각했다가 광장의 대진 가운데에 고작 스무 살 남짓으로 보이는 평범한 청년과 어린 아가씨가 있는 걸 보고는 당황해서 서로를 쳐다봤다.

그러나 진법 위에 서 있는 매부리코 노인의 표정이 어두운 걸 보고는 누구도 감히 투덜대거나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노인 역시 제자들은 신경 쓰지 않고 곧장 돌기둥 위에 사뿐히 올라서서는 주문을 외우며 흑색 진법 원반 9개를 꺼냈다.

노인이 빠르게 수결을 맺자 진법 원반들은 돌기둥들 쪽으로 날아가 곧장 기둥이 내뿜는 검은빛 속으로 녹아들었다.

그 순간 검은빛이 한층 더 강하게 반짝였고, 더 많은 부적문들이 세차게 용솟음치면서 빛의 장막이 두꺼워졌다. 또 희미하던 귀신 환영도 더욱 또렷해졌다.

노인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손으로는 쉬지 않고 수결을 맺었다. 그때 저 멀리서 두 줄기 둔광이 날아오더니 백발이 성성하지만 혈색은 좋은 노인과 피부가 거무스름한 거한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 역시 매부리코 노인과 같은 연허기 수사였다.

내문장로가 세 명이나 모이자 천귀종 제자들의 웅성거리던 소리도 뚝 그쳤다.

백발노인은 까무잡잡한 거한과 함께 광장에 도착하자마자 의식으로 한립과 낙아를 살피고는 매부리코 노인에게 물었다.

“강 장로, 대체 무슨 일이기에 고작 저 둘을 상대로 소나이허령반을 쓴 거요? 거기다 구대귀왕천주진(九大鬼王天柱陣)까지 발동시키다니…. 이 진법이 한 번 발동될 때마다 얼마나 많은 재료가 소모되는지 알지 않소.”

백발노인에 이어 거한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자 매부리코 노인은 계속해서 수결을 맺으며 다급히 말했다.

“마침 잘 오셨소. 빨리 진법을 움직여 저 둘을 없애야 하니 두 분께서도 도와주시구려.”

“뭐요? 어이가 없군. 이 진법은 합체기 수사마저도 능히 가둘 수 있거늘, 저 햇병아리들을 상대하는 데 우리까지 힘을 쓰란 말씀이오?”

거한은 조소하며 고개를 저었고, 백발노인도 전혀 출수할 기미 없이 가만히 있었다. 주위에 모여 있던 제자들 역시 수군거리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이들은 매부리코 노인의 눈치를 보며 차마 큰 소리로 떠들지는 못했다.

그들은 겨우 저런 원영기, 결단기 수사들을 상대로 연허기 장로가 구대귀왕천주진까지 이용하려고 했다는 게 밖에 전해진다면 영환계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고 말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매부리코 노인은 여전히 긴장된 얼굴로 외쳤다.

“저자들을 얕보지 마시오. 저 놈은 경지가 낮아 보이긴 해도 실제론 엄청나게 강한 역수(力修)란 말이오!”

“역수? 그게 뭐 대수란 거요.”

까무잡잡한 거한은 여전이 비웃음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지만, 백발노인은 진법 안에서 태연하게 주위를 살펴보고 있는 한립을 보고는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그때 유유히 진법을 살피던 한립이 중얼거렸다.

“마침 여기까지 온 김에 볼일이나 봐야겠군.”

한립은 곧장 빛의 장막 앞으로 다가가 손가락으로 장막 위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 순간.

츠츠츠츠츠!

빛의 장막이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하더니 위협적으로 이빨을 드러내고 움직이던 귀신의 환영이 무력하게 위아래로 흔들렸다.

그 모습에 거한의 얼굴에 걸려 있던 비웃음이 순식간에 사라졌으며, 매부리코 노인은 선혈을 내뿜음과 동시에 수결을 맺어 다시 진법을 안정시키려 애썼다.

“빨리! 빨리 도웁시다! 안 그럼 저놈이 바로 진을 뚫고 나올 거요!”

백발노인은 다급히 외치고는 쏜살같이 어느 돌기둥 위에 내려섰다. 뒤이어 거한 역시 서둘러 또 다른 돌기둥으로 날아가려 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진법의 장막이 기묘한 빛으로 번뜩인 순간 표면에 있던 환영은 모조리 사라져 버렸고, 그 대신 돌기둥으로 형성된 장막 앞쪽에 거대한 귀신 머리통이 하나씩 나타나 날카로운 울음을 토해냈다.

그 울음은 마치 수천 개의 바늘이 귀를 찌르는 것 같았기에 천귀종 제자들은 줄줄이 머리를 감싸 쥐고 비명을 질러댔고, 경지가 약한 이들은 귀와 코 등에서 피를 흘리기도 했다.

곧이어 귀신 머리통에서 수많은 검은색 부적문들이 쏟아져 나오자 진법의 장막이 금세 흐릿해지더니 얼마 버티지 못하고 유리처럼 부서져 빛들로 변해 사라졌다.

퍼어억! 퍼억!

돌기둥 위쪽의 조각상들마저 균열이 생기더니 이내 산산이 터져 나가 버렸다. 순식간에 진법을 파괴한 한립은 뒷짐을 진 채 느긋하게 낙아를 향해 걸어갔다.

낙아는 당장이라도 환호하고 싶은 걸 간신히 참으며 기쁜 얼굴로 한립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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