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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463화 (1,220/2,000)

1463화. 말도 안 되는 일

*

한립은 고개를 저으며 마음을 추스르고는 다시 눈을 감고 체내의 상황을 살폈다.

그는 단전을 덮고 있던 짙은 안개가 괘 많이 옅어진 것을 보고는 내심 기뻤지만, 계속해서 황금빛을 따라 원영에게 다가갔지만 원영은 여전히 팔을 늘어뜨린 채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예전과 다를 바 없는 광경에 한립은 여러 개의 가느다란 바늘 형태로 응집시킨 의식의 힘을 원영 쪽으로 날렸다.

파아앗!

원영의 몸에서 순간적으로 검은빛이 강하게 일어나 모든 바늘을 막았다. 단전이 격렬하게 떨렸지만 한립은 물러서지 않고 연신술까지 펼쳤다.

의식의 힘이 단번에 단전을 뒤덮자, 가느다란 바늘의 개수가 순식간에 늘어나 마치 거센 폭우처럼 원영 주위의 검은빛 위로 쏟아졌다.

푸화아아아!

검은빛은 몇 번 점멸하다가 결국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겠다는 듯 희미하게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바늘로 만들어진 한립의 의식이 마침내 금색 소인(小人)의 몸속에 스며들었다.

하지만 한립의 표정은 금세 이상하게 변했다. 원영의 몸속은 어둡게 빛나는 흑색 사슬들이 서로 교차돼 얽혀 있었던 것이다.

이 사슬들은 원영의 사지와 머리 등 거의 전신에 펼쳐져 있었으며 그 둘레에는 기이한 흑색 안개가 휘감겨 있었다.

한립은 사슬에 알 수 없는 법칙의 힘이 담겨 있는 것 같다는 생각에 의식을 응결해 작은 도끼로 만든 뒤 곧장 그 사슬을 내리찍었다.

카아앙!

도끼는 사슬에 닿는 순간 기괴한 힘에 의해 튕겨져 나왔고, 곧 점점의 빛으로 흩어져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한립은 다시 한번 법결을 운용했다.

이번엔 엄청난 양의 법력이 의식의 조종 아래 푸른 연기로 변해서, 당장이라도 사슬을 부식시킬 것처럼 달라붙었다.

그러나 연기가 닿는 순간 사슬을 감싸고 있던 흑색 안개가 확 불어나더니, 곧 푸른 연기를 완전히 삼켜 버렸다.

한립은 이를 보고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법결을 바꿔 계속해서 사슬을 공격해 나갔다.

* * *

그 시각, 선계의 모처.

끝없이 넓은 사막에 갑자기 어둠이 닥치더니 광풍이 휘몰아치면서 매서운 기세로 모래먼지를 말아 올렸다.

마치 귀신이 울부짖는 것 같은 바람소리가 이어지고, 모래가 온 하늘을 가린 가운데 저 먼 지평선에서 수십 개의 용풍권이 하늘과 땅을 잇는 거대한 담장처럼 나란히 합쳐지더니 맹렬하게 앞쪽으로 밀어닥쳤다.

그러나 그렇게 얼마쯤 돌진해 온 용권풍들은 마치 태산에 부딪히기라도 한 것처럼 돌연 붕괴돼 버리더니 먼지가 되어 흩어졌다.

사막 한가운데에 웬 웅장한 대전 하나가 우뚝 서 있었다.

대전은 전체가 황토색이었고, 겉에 아무런 장식이나 문양도 없어서 마치 사막의 모래가 쌓여 만들어진 것처럼 보였으며 꽤나 황량한 느낌이었다.

대전 안 공간은 꽤 널찍했는데, 곳곳에 굵은 사각기둥이 서 있었고 양쪽 벽의 화로에는 어두운 푸른빛이 번져 나와 상당히 으스스해 보였다. 게다가 가장 안쪽엔 새까맣고 커다란 의자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신기하게도 바깥에선 광풍이 휘몰아치고 있었지만, 이 대전 안은 꼭 밖의 소리가 들어올 수 없는 것처럼 지극히 조용했다.

차라랑.

적막을 가르고 약한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가 울렸다.

새카만 의자에 앉아 있는 바싹 마른 체구의 중년 남자가 야윈 손으로 자신의 팔에 감겨 있는 청흑색 사슬을 만지작거려 난 소리였다.

이 남자는 볼이 움푹 꺼져 있었지만 살짝 벌린 입속에 날카로운 이가 언뜻 보였고, 몸에 걸치고 있는 새하얀 창의(氅衣)와는 대조되게 푸르뎅뎅한 피부를 갖고 있어서 꼭 강시 같아 보였다.

남자의 몸은 팔뚝만 한 청흑색 사슬들로 촘촘히 감겨 있었으며, 각 사슬의 끝은 대전 전체를 뒤덮으며 사방으로 뻗어 나가 있었다.

강시 같은 남자가 굳게 닫혀 있던 두 눈을 번득 떴다. 그의 검푸른 얼굴에 묘한 표정이 스쳤다.

“여봐라!”

남자의 음산한 목소리가 울렸다. 꼭 목구멍에 사막의 모래가 가득 차 있는 것 같은 소리였다.

그 소리에 바닥의 사슬이 돌연 들썩이더니 황토색 커다란 빛이 아래쪽에서부터 천천히 팽창하여 떠오르다가 곧 청동 갑옷을 입은 거한으로 변했다.

꼭 녹이 슨 듯 시퍼런 얼굴을 한 거한이 고개를 숙이며 공손히 말했다.

“어르신, 찾으셨습니까?”

“지난 천 년 사이, 혹 본 좌의 제자 중에 내가 하사한 격원법련(隔元法鏈)을 사용한 자가 있더냐?”

강시 같은 남자가 묻자 청동 갑옷을 입은 거한이 즉시 대답했다.

“아뢰옵니다. 300년 전 선궁(仙宮)에서 봉직하고 있던 방반(方磐) 대인께서 강적을 만나 사용하신 적이 있으며, 그 외엔 누구도 사용한 적이 없습니다.”

“그래? 일곱째가 사용했었단 말이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남자는 다시 거한을 향해 말했다.

“방반에게 전하거라. 그때의 적이 아직도 살아 있으며, 거기다 방금 전 법련(法鏈)에 담겨 있는 법칙의 힘을 건드렸다고 말이다.”

“예, 어르신.”

남자는 천천히 눈을 감으며 무표정하게 덧붙였다.

“또한 서둘러 그자를 해결하지 않으면 백년 후에 본 좌가 직접 움직여 법련 속 법칙의 힘을 회수할 것이라고도 전하거라.”

* * *

동부 안.

눈을 뜨고 의식을 단전에서 물린 한립의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한립은 애써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운학초를 씹기 시작했지만 얼굴의 어두운 빛은 사라지지 않았다.

잠시 후, 한립이 긴 한숨을 내쉬더니 입을 열었다.

“마광 수사, 잠시 얘기 좀 할 수 있겠습니까?”

한립의 말이 떨어지자 그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더니 흑색 도포를 입은 까만 피부의 남자로 변해 한립 앞에 섰다.

“마광, 혹시 어떤 법칙의 힘을 담은 사슬로 다른 사람의 원영을 봉인할 수 있는 비술을 본 적이 있습니까?”

“혹, 수사의 원영이 봉인된 것과 관련된 일입니까?”

지난 두해 동안 정양 덕분에 마광도 꽤 힘을 회복했지만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고저 없이 울렸다. 한립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원영의 현재 상태를 대략적으로 설명했다.

한립의 얘기를 들은 마광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제 판단으로는 수사의 경우 일단 법력을 회복해야 비술을 이용해서 원영이 스스로 속박에서 벗어나도록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곤란하게도 수사의 원영이 사슬에 속박돼 있기 때문에 수련하는 것도, 법력을 회복하는 것도 불가능하지요. 결국 계속 같은 얘기가 반복되는 겁니다.”

“수사의 말은 저도 짐작했던 것들입니다. 심지어 수사가 말한 것보다 상황이 더욱 안 좋죠. 설사 자폭해서 육신을 없애고 원영만 빼낸다 해도 이 비술에서 벗어나진 못할 것 같거든요.”

“얼마 전에 장경각에 다녀오지 않았습니까. 거기선 뭐 찾은 게 없었습니까?”

마광의 물음에 한립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꽤 많은 옥간을 살펴봤지만 도움 될 만한 내용은 안 보였습니다.”

“그렇다는 건, 이 세계의 비술로는 한 수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거 아닙니까. 그럼 결국 선계로 돌아가야 뭔가 해결책을 찾을 희망이라도 생긴단 말이군요.”

* * *

선계 어딘가의 이름 모를 숲.

숲속에는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있었고, 눈에 보이는 곳마다 하늘 높이 솟은 고목이 가득했다.

푸르른 것, 시든 것, 줄기 전체가 기이한 검붉은 색을 띤 것 등 다양한 고목이 솟아 있는 숲속의 깊숙한 곳에는, 그와는 반대로 키 작은 관목들만 자라 있는 넓은 벌판이 펼쳐져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벌판의 한가운데에 구름까지 우뚝 솟은 기이한 나무가 서 있었다.

검푸른 색을 띠고 있는 이 나무는 몸통이 웬만한 전각 너비보다 굵었으며, 잔가지가 거의 없고 특히나 나뭇잎은 아예 한 잎도 나지 않아 나무가 아니라 그저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거대한 기둥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무 위쪽의 비스듬히 돋아난 가지 위에는 커다란 회색 둥지가 놓여 있었는데 멀리서 보면 꼭 거꾸로 놓인 낡은 밀짚모자 같았다.

새 둥지 속엔 불가사의할 정도로 커다란 새 한 마리가 누워 몹시 고통스러운 듯 낮은 소리로 울고 있었다.

새의 몸은 화살처럼 생긴 깃털로 덮여 있었고, 커다란 머리와는 달리 목은 상당히 가늘었다. 또한 가슴 가까이에는 커다란 육낭(肉囊)이 달려 있었는데 새의 호흡에 따라 팽창과 수축을 반복했다.

그러던 중, 새가 갑자기 목을 쭉 펴고 어딘가를 경계하며 바라보자 가슴 쪽 주머니가 팽창과 수축을 반복했다.

쌔쌔쌔쌕!

저 멀리 숲이 흔들리는가 싶더니 각기 다른 위치에서 3개의 신형이 일제히 솟아올라 둥지로 달려들었다.

이들은 모두 흑색 경장 차림의 청년이었는데 숲에서 날아오른 시기와 속도, 몸놀림, 심지어 외모까지도 전부 똑같았다.

이 세 청년은 무서운 속도로 둥지에 접근하더니 어느 순간 동시에 모습을 감췄다.

“끼이이이!”

새가 놀라서 울부짖자 가슴 앞주머니도 불룩해졌다. 새는 청년들이 나타났던 방향을 향해서 하늘까지 진동시킬 듯한 엄청난 울음소리를 냈다.

그 소리의 파동이 마치 무수한 칼날이 박혀 있는 파도처럼 거친 기세로 퍼져 나갔다.

쿠아아아앙!

굉음과 함께 파동이 휩쓸고 지나간 곳엔 관목들이 뿌리째 뽑혀 가루로 변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가루들은 소리의 파도에 녹아들었고, 한층 더 강한 기세로 나아갔다.

그러자 파도 정면의 허공에서 방금 전 사라졌던 청년 중 두 명의 신형이 번쩍 나타났다.

뿌연 먼지 속에서 전신에 푸른빛이 번쩍일 때마다 그들은 자유자재로 속도를 조절하며 소리의 파도를 완벽하게 피했다.

이에 거대한 새는 계속해서 날카롭게 울었고, 칼날 같은 소리의 파도가 청년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두 청년은 마치 산책이라도 하는 것처럼 여유롭게 파도 사이를 옮겨 다니며 점점 더 새와의 거리를 좁혀왔다.

청년들이 가까이 다가오자 새는 구슬프게 울더니 목 밑의 육낭이 급속도로 부풀어 올라 순식간에 새의 몸집만큼 커졌다.

이 광경에 청년 하나가 성난 얼굴로 외쳤다.

“감히 자폭하려고? 어림없다!”

청년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동안 모습을 감추고 있던 세 번째 청년이 돌연 새의 눈앞에 나타났다.

청년의 손에는 검은색 장도(長刀)가 들려 있었는데, 순식간에 장도의 검은빛이 새의 목을 그었다.

푸화아아악!

강한 도기(刀氣)가 지나간 곳에 푸른색 피가 하늘높이 솟구쳐 올랐다.

결국 새의 머리는 툭 꺾이면서 깃털은 피로 물들었고, 목 아래 육낭 역시 원래의 크기로 줄어들었다.

새의 배 아래쪽에는 피가 잔뜩 묻어 있는 하얀 알만이 아직 온전한 채로 남아 있었다.

흑색 옷을 입은 청년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둥지에 날아들더니 각각 두 날개와 꼬리 쪽에서 유난히 반짝이고 있는 깃털을 하나씩 뽑았다.

그런데 그때 청년 중 하나가 허리에서 윙윙거리는 소리와 함께 노란빛을 번쩍였다. 나머지 두 사람이 그 모습을 보자마자 다가갔는데, 순간 세 사람의 몸이 흐릿해지는가 싶다가 갑자기 3개의 신형이 하나로 합쳐졌다.

뒤이어 허리춤에서 전신(傳訊) 원반을 꺼낸 청년은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말도 안 돼…….”

청년은 곧 흉악한 눈빛으로 둥지의 거대한 알을 거둬들인 후, 광풍처럼 저 멀리 날아갔다.

* * *

밀실 안.

한립은 자신의 그림자 속으로 녹아드는 마광을 바라보며 조용히 쓴웃음을 지었다.

원영에 대한 문제는 잠시 접어 둔 채 밀실 천장의 구멍을 통해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던 한립은 한참이 지나서야 북두취원진(北斗聚元陣) 중 여섯 번째 자리에 위치해 있는 개양성(開陽星) 문양 위로 가 다시 가부좌를 한 후 진법을 발동시켰다.

하지만 소북두성원공(小北斗星元功) 제6단계를 수련한 지 고작 반 시진 만에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이번에 끌어당긴 성광지력은 예전보다 몇 배나 더 강력했고, 잠깐 동안 별빛으로 이뤄진 거대한 기둥은 여섯 개나 되어 버렸다.

밤하늘에서부터 동부까지 이어져 있는 빛의 기둥들에선 세차게 출렁거리는 성광지력의 파동이 퍼져 나오고 있었다.

그 심상치 않은 기세에 한립은 흠칫 놀랐다.

앞서 다섯 번째 단계까지 수련했을 때에도 신비한 현상이 일어나긴 했었지만 지금과 같은 모습은 아니었기 때문에 별다른 걱정은 하지 않았었다.

이곳 영환계에는 별의 힘을 빌려야 수련할 수 있는 공법이 적잖게 있었으므로 그런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는 것도 흔히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영환계라도 방금 전과 같은 현상이라면 사람들의 이목을 끌게 될 것이다.

하지만 한립은 곧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태연해진 얼굴로 계속해서 수련을 이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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