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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457화 (1,214/2,000)

1457화. 만천과해(瞒天过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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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 인영이 문 안쪽으로 들어서자 장경각의 원형 대전이 눈앞에 나타났다.

대전은 생각 이상으로 넓었으며, 10여 개의 통로가 방사형으로 뻗어 나가 각각 어딘가로 이어져 있었다. 또한 대전 가장 안쪽으로는 위로 향하는 구불구불한 새카만 계단도 보였다.

인영은 대전을 한 바퀴 둘러보더니 그중 한 통로로 날아갔다. 통로는 그리 길지 않았는데, 곧 도달한 통로 끝에는 굳게 닫힌 석실이 자리하고 있었다.

석실 문에는 바깥 석문과 마찬가지로 백색 금제의 막이 덮여 있었으며, 문 위쪽 백옥 석판에는 ‘공법(功法)’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인영은 입에서 푸른 안개를 뿜어 금제의 막에 아까 같은 구멍을 뚫고는 그 속으로 날아들었다.

석문 뒤에는 수백 개의 서가가 놓여 있는 아주 커다란 석실이 있었으며, 서가들은 전부 옅은 붉은빛으로 덮여 있었다.

또한 규칙적으로 나뉘어 있는 서가의 각 칸에는 옥간이 보관돼 있었고 그 옆엔 옥간 속의 공법에 대한 간략한 설명도 표시돼 있었다.

인영은 그중 한 서가 앞으로 다가가 다시 푸른 안개를 내뿜어 서가를 감싸고 있던 붉은 빛의 막에 구멍을 냈다.

인영은 옥간 몇 개를 손에 넣은 후 의식으로 내용을 살펴보고는 살짝 미간을 찌푸리더니 옥간을 다시 서가에 돌려놓았다.

옥간에는 결단기, 심지어 원영기 공법까지 담겨 있었지만 인영의 눈에는 차지 않는 듯했다.

석실 안 여기저기를 돌아다닌 인영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곳의 옥간을 거의 대부분 살펴볼 수 있었지만, 결국 마음에 드는 옥간은 찾지 못했는지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인영은 더 볼 것도 없이 원형 대전으로 돌아간 후, 바로 옆 통로로 들어가서 통로 끝에 위치한 또 다른 석실로 향했다. 이 석실 위의 백석 석판에는 ‘술법’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이번에도 인영은 문의 금제를 뚫고 안으로 들어갔지만 얼마 후 역시나 실망한 얼굴로 나와서 세 번째 통로로 들어섰다.

그렇게 한 시진이 조금 넘게 지나는 동안 석실 10여 곳을 모두 둘러봤으나 결국 원하는 걸 찾지 못해 표정이 어두웠다.

인영은 마침내 원형 대전 가장 안쪽에 있던 그 새카만 계단으로 다가가 잠시 위쪽을 올려다보고는 천천히 몸을 날렸다.

계단은 그리 길지 않았고 그 끝엔 역시나 거대한 석문이 있었다.

석문 좌우에는 한 명씩 가부좌를 틀고 있었는데, 투실투실한 체격의 왼쪽 사람은 몸에 자색 가사를 걸친 걸 봐서 승려인 것 같았고, 오른쪽 사람은 키가 크고 마른 체격에 얼굴이 꼭 병든 사람처럼 누렇게 떠 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모두 머리에 은은한 빛이 떠올라 있었으며 몸에선 바다처럼 깊은 기운이 풍기고 있었다. 둘 다 연허기 고수였던 것이다.

그들은 아래쪽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선 전혀 모르는 듯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다. 이에 투명한 인영은 그들을 흘긋 보더니 다시 두 사람 뒤에 있는 석문을 바라보았다.

석문 표면에는 빛이 아른거리며 알록달록한 색을 반짝이고 있었는데, 한눈에 보기에도 아래층 석실에 펼쳐져 있던 것보다 훨씬 강한 금제인 것 같았다.

그렇다는 건, 다시 말해 저 석문 너머가 바로 냉염종의 가장 귀한 자료들을 보관하고 있는 장경각 내각이라는 뜻이다.

잠시 멈춰 있던 인영은 기척조차 없이 문 가까이까지 접근했다. 문 좌우에 앉아 있는 연허기 수사와 1장도 채 안 되는 거리였다.

그때 왼쪽에 있던 피둥피둥한 승려가 갑자기 눈을 뜨더니 사방을 흘끗 살폈다. 그러자 오른쪽의 수척한 남자도 눈을 뜨며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영서(靈犀) 형?”

승려는 고개를 돌려 내각 문을 보고는 덤덤히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네.”

승려는 실제로 뭔가 발견한 것이 아니라, 단지 누군가 접근할 시 절로 감응할 수 있는 특수한 비술을 익혔기에 묘한 느낌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이 비술은 정확도가 썩 높지 않았고, 더구나 바깥에 겹겹이 펼쳐져 있는 금제를 생각하면 설령 대승기 수사라 해도 아무 기척도 없이 이곳까지 접근하는 건 불가능했다. 이에 승려는 크게 경계하지 않고 다시 눈을 감았다.

그러자 수척한 남자 역시 눈을 감고 계속 수련에 전념했는데, 그때까지도 원래의 자리에서 미동조차 하지 않던 그 투명한 인영은 그제야 미간에서 강한 의식의 힘을 방출해 석문과 수사들 사이에 방호막을 만들었다.

이어서 인영이 다시 입을 벌려 예의 그 푸른 안개를 내뿜자 문에 일렁이던 물결 형상의 금제가 안개의 침투를 막으려는 듯 반짝이면서 법력 파동이 일었다.

하지만 방금 전 펼쳐둔 방호막이 파동의 흐름을 막은 덕에 문을 지키고 있던 수사들은 여전히 아무것도 눈치 채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인영이 여러 개의 수결을 맺자 푸른 안개가 때론 팽창하고 때론 수축하면서 금제와 힘을 겨루다가 마침내 사람이 드나들 수 있을 정도의 구멍을 만들었다.

인영이 곧장 금제에 뚫린 구멍을 통해 문 안쪽으로 들어가자 구멍은 다시 원래대로 메꿔졌고 방호막도 사라졌다.

“음?”

토실토실한 승려, 영서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면서 다시 눈을 떠 뒤쪽 문을 돌아봤다.

문의 물결 형태 금제는 여전히 아무 이상 없이 은은한 빛을 발산하고 있었지만, 방금 전 가슴속에 스친 불길한 느낌 때문에 도저히 찜찜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영서 형, 뭐 이상한 기척이라도 느끼신 겁니까?”

수척한 남자도 뭔가 묘한 느낌이 들었는지 드디어 몸을 일으켜 문으로 다가가더니, 의식을 펼쳐 사방을 훑기 시작했다.

영서 역시 곧 문 쪽으로 다가와 물었다.

“경도 현제, 뭐가 좀 느껴지는가?”

수척한 남자는 별다른 수확이 없는 듯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딱히 발견된 건 없지만……. 어쩌면 냉염노조께서 직접 펼쳐 두셨던 이 유리현수진(琉璃玄水陣)을 파훼하고, 거기다 순식간에 장경각 수백 리 밖까지 도망칠 자신이 있는 자라면 내각에 잠입했을 수도 있겠지요.”

경도의 말에 영서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게 어떻게 가능하겠나? 아마 내 착각이었던 것 같네.”

기척조차 없이 유리현수진을 깬 것도 모자라 그걸 다시 원래대로 회복시켜 놓는 건 냉염종의 대승기 태상대장로도 하지 못할 일이다.

문 밖에서 연허기 수사 둘이 자신들의 감지 능력을 의심하고 있을 때, 투명한 인영은 벌써 검은색 대전에 들어와 있었다.

그다지 크지 않은 대전 가운데엔 굵은 백옥 기둥이 우뚝 솟아 있었고, 기둥 표면엔 수많은 부적문이 새겨져 있었다.

기둥 위쪽에서 뿜어져 나온 부드러운 금빛은 사방으로 펼쳐져 꼭 사발을 엎어 놓은 것처럼 두꺼운 빛의 막을 형성했는데, 장막으로 보호되고 있는 영역 안에는 붉은빛이 감도는 돌 궤짝 십여 개가 놓여 있었지만 밖에서는 그 모습이 어렴풋하게만 보일 뿐이었다.

인영은 제자리에 서서 금빛 장막을 바라보다, 곧 검은색 진법 깃발 수십 개를 날려 금빛 보호막 둘레에 절묘하게 꽂은 후 양손으로 수결을 맺었다.

그러자 깃발에서부터 검은색 빛기둥이 솟구쳐 오르더니 허공에서 하나로 이어져, 금빛 장막보다 더 큰 옅은 흑색 장막을 형성해서 그 보호막을 완전히 덮었다.

금빛 보호막만 해도 대전의 절반을 차지할 만큼 컸기 때문에, 대전 전체가 꽉 차 버렸다.

두 빛의 장막 사이에 서 있던 인영은 또다시 구멍을 뚫기 위해 금빛 보호막 쪽으로 푸른 안개를 내뿜었지만, 간신히 장막 위에 손바닥만 한 구멍이 나는가 싶은 순간, 보호막이 번쩍 빛나더니 백옥 기둥의 부적문도 맹렬하게 번뜩였다.

그러자 금빛 보호막에서 반딧불 같은 빛점들이 무수히 떠올라 푸른 안개를 감싸고는 공격하기 시작했다.

결국 푸른 안개는 산산이 흩어져 사라졌고, 간신히 뚫렸던 구멍도 봉합돼 버렸다.

인영은 담담하게 백옥 기둥을 쳐다보다가, 다양한 색깔의 진법 깃발 10여 개를 꺼내 허공으로 날린 뒤 수결을 맺었다.

깃발들은 그 즉시 각기 다른 빛을 발하면서 금빛 보호막을 향해 날아가더니 사람 크기만 한 원형 모양으로 꽂혔다.

그 순간 보호막은 매섭게 번득이면서 깃발이 안쪽으로 파고드는 속도를 늦췄고, 그와 동시에 강력한 법력 파동이 사방으로 퍼졌지만 흑색 장막에 막혀서 바깥으로까지 뻗어 나가지는 않았다.

이를 본 인영이 나직이 주문을 읊자 깃발들은 아까보다 더 강한 힘으로 파고들어, 마침내 금빛 보호막 깊숙이 박혔다.

그러자 깃발들이 박혀 있는 곳의 금빛이 급격하게 어두워졌고, 그때를 틈타 인영이 푸른 안개를 내뿜자 결국 보호막이 빠르게 부식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때 백옥 기둥의 부적문들이 일제히 번뜩였으며 금빛 보호막의 나머지부분에서 또다시 작은 빛점들이 솟구쳐 나와 깃발에 둘러싸인 영역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그 빛점들은 이내 깃발의 힘에 가로막혀 버렸다.

격렬한 법력 파동이 사방으로 퍼졌다. 물론 이번에도 흑색 장막이 파동을 막기는 했지만, 이번 파동은 너무 거셌기 때문에 흑색 장막도 웅웅 진동하면서 간신히 버티고 있을 뿐이었다.

다행히 그러는 사이 깃발에 싸인 영역이 마침내 부식되어 뚫렸다. 인영은 서둘러 구멍 속으로 들어가 검은 기운을 내뿜어 백옥 기둥에 뿜었다.

검은 기운이 기둥을 감싼 순간 인영이 수결을 맺어 검은색 법결까지 방출하자 기둥 표면의 부적문들이 검게 물들어 갔다.

기둥의 빛은 금세 어두워졌으며, 맹렬하게 깃발을 공격하던 보호막의 빛점들도 서서히 사라졌다.

인영은 금빛 보호막에 꽂혀 있던 깃발들을 회수한 후, 이번엔 황색 깃발 한 다발을 꺼내더니 보호막 쪽으로 날렸다.

보호막의 안쪽까지 날아간 깃발들은 아무 저항 없이 쉽게 장막에 녹아들어 사라졌으며, 보호막은 약하게 진동하더니 부식됐던 구멍을 봉합하고 다시 처음 상태로 돌아갔다.

그제야 인영은 고개를 돌려 기둥 근처에 놓여 있는 돌 궤짝들을 바라봤다. 각각의 궤짝은 모두 짙은 붉은빛으로 덮여 있었다.

인영이 푸른 안개를 내뿜어 그 위를 덮자 금세 붉은빛이 옅어졌지만, 바로 하얀 점들이 떠올라 푸른 안개의 침식을 막았다. 그와 동시에 날카로운 종소리가 대전 전체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이에 인영은 깜짝 놀란 듯했지만, 곧 침착하게 주문을 읊으며 쉼 없이 수결을 맺었다.

푸른 안개는 맹렬하게 소용돌이치며 여러 가지 모양으로 변화면서 금제를 공격했다. 하지만 아무리 매섭게 공격해도 금제를 파훼할 순 없었다.

인영은 과감하게 푸른 안개를 회수하고는 두 손가락으로 자신의 미간을 짚었다. 그러자 미간에 갑자기 일자 형태의 검은색 금이 생기는가 싶더니 곧 그 금이 쩍 벌어지면서 먹처럼 새카만 눈동자가 나타났다.

쌔애액!

눈동자에 흑색 부적문이 떠오른 순간, 손가락 굵기의 검은빛이 눈동자에서 발출되더니 순식간에 돌 궤짝 위의 금제에 떨어졌다.

홍백색 금제는 마치 물에 젖은 종이처럼 힘없이 찢겨 버렸고, 인영은 10여 가닥으로 나눈 의식의 힘을 궤짝 속 옥간에 침투시켜 재빨리 내용을 살폈다.

하지만 방금 전 종소리가 울린 순간, 이미 장경각 바깥에선 금제가 규칙적으로 번쩍이고 있었다.

“침입자다! 누가 장경각에 침입했다!”

“간도 크군. 아주 제 발로 죽을 자리를 찾아왔구나!”

“설마 천부당에 잠입했던 그 도둑놈인가?”

분노에 찬 외침들과 함께 사방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번엔 순찰 제자들도 주저 없이 장경각으로 뛰어들었고, 깊은 밤중이었음에도 냉염종 곳곳에 등불이 잇따라 켜지며 금세 큰 소란이 일었다.

물론 이들보다 먼저 반응한 사람도 있었다. 바로 내각 입구에 있던 연허기 수사들이었다.

경종이 울린 순간 두 사람은 성난 얼굴로 벌떡 일어났다. 설마설마 했지만 정말로 누군가가 자신들 눈앞에서 내각에 잠입한 것이다.

‘설마 정말 대승기 수사라도 온 건가?’

그들의 머릿속에 동시에 같은 생각이 스쳤지만, 지금은 앞뒤 가릴 때가 아니었다.

두 사람은 곧 하나는 초승달, 다른 하나는 한쪽 면이 약간 일그러진 원 모양인 옥부를 꺼냈는데, 두 옥부가 합쳐지자 보름달처럼 완전한 원형이 만들어졌다.

옥부를 내각 석문의 지정된 곳에 갖다 대자, 표면의 물결 형태 금제가 사라지고 문이 저절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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