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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451화 (1,208/2,000)

1451화. 오악(五岳)과 오귀(五鬼)

*

고운월은 영선을 조종하는 데 정신을 집중한 채 용권풍 기둥들을 조심스레 피해 갔지만 이동 속도는 그다지 느려지지 않았다.

이렇게 두 시진동안 비행하는 중에는 다행히 음얼비의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데 뒷짐을 진 채 평온한 표정으로 뱃머리에 서 있던 한립이 갑자기 날카로운 눈으로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한 수사, 왜 그러십니까?”

한립의 표정이 바뀐 걸 알아차린 고운월은 조금 놀란 기색으로 물었다.

“아무래도 좀 귀찮은 일이 생긴 것 같군요.”

한립이 옅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지만 고운월은 여전히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했다.

쿠르르르릉!

갑자기 저 멀리에서부터 이상하리만치 굵은 용권풍 기둥 하나가 맹렬하게 회전하며 영선을 향해 다가왔다.

게다가 이 기둥은 영선 가까이에 다다르기도 전에 영선을 휩쓸어 버릴 듯 용권풍에서 비롯된 거친 광풍까지 휘몰아쳤다.

고운월은 다급히 배를 조종해 용권풍 기둥을 아슬아슬하게 피한 뒤 순식간에 백 장 가까이 날아갔다.

고운월이 막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는 순간, 주위 지면이 쩍쩍 갈라지더니 그 속에서 노란 빛줄기가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이 빛줄기들은 곧바로 서로 뒤엉키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지면 위에 무려 백 장 크기에 달하는 거대한 황금색 대진을 이뤘다.

‘진법이다!’

고운월의 안색이 어두워지던 순간,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사막이었던 곳이 산봉우리가 가득하고 하늘과 땅 모두 영롱한 노란빛으로 반짝이는 풍경으로 바뀌었다.

그와 동시에 거대한 영압(靈壓)이 사방에서 밀려와 영선을 압박하자 영선을 감싸고 있던 흰 보호막 위에 수많은 균열이 생겨났다.

이 광경을 본 낙아와 여몽한은 저도 모르게 나직이 신음했지만 한립은 태연하게 황동 종 모양의 법보를 꺼내서 허공에 던졌다.

한립이 날려 보낸 종은 순식간에 자그마한 정자만큼 커지더니 바로 낙아와 여몽한을 안쪽에 감싼 채 배 위에 떨어졌다.

이 황동 종은 풍운쌍살 청년의 저물대에서 찾은 방어용 법보였는데 때맞춰 유용하게 쓰이게 된 것이다.

황동 종이 둘을 감싸자마자 영선 위의 보호막이 결국 완전히 깨져 버리면서 엄청난 압력이 쏟아졌다.

하지만 한립과 고운월은 몸에 영광(靈光)을 번뜩이며 버텨 냈고, 황동 종 역시 조금 진동하긴 했지만 별 탈 없이 무사했다.

“설마 또 천귀종 제자가 온 걸까요?”

고운월은 겉으론 애써 침착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방금 전 진법의 엄청난 기세를 봤을 때 이는 결코 평범한 원영기 수사가 펼칠 수 있는 공격이 아니어서 바짝 긴장된 상태였다.

하지만 고운월의 말에 한립은 그저 빙긋 웃으며 중얼거렸다.

“천귀종이라……. 정말 어지간히 끈질긴 놈들이군요.”

한립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주위에 누런 모래바람이 일어나더니 맷돌만 한 크기의 황색 바위 20~30개가 공중에 나타나 영선을 포위했다.

고운월이 긴장된 눈으로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바위들이 영롱한 빛을 반짝이는가 싶다가 빠르게 회전하며 영선을 향해 쇄도해 왔다.

고운월은 다급히 검은색 거검을 방출했다.

거검은 빙글빙글 돌다가 검은색 검광을 내뿜자 곧 용의 형상으로 응집됐는데, 그 순간 거검은 용이 기다란 꼬리를 세차게 휘두르듯 제일 가까이에 있던 바위를 베었다.

꽈아앙!

간신히 바위 하나를 깨부수긴 했지만 거검 역시 휘청거리면서 뒤로 물러났고 검신에 일었던 검광도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고운월 또한 그 충격으로 뒤로 몇 걸음이나 물러선 후에야 겨우 멈춰 섰고, 그 위력에 깜짝 놀랐다.

바위가 날아오는 힘은 거의 원영기 수사의 전력을 다한 일격에 비할 만했으므로, 그런 바위가 한꺼번에 20~30개나 쇄도해 오자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때 한립의 담담한 목소리가 고운월의 귓가에 울렸다.

“낙아를 잘 부탁합니다. 이쪽은 제게 맡기십시오.”

곧이어 한립이 배에서 뛰어오르더니 몸을 한 바퀴 뱅그르르 돌리며 사방을 향해 주먹을 내뻗었다.

콰쾅! 쾅! 콰아앙!

주위에서 굉음이 잇따라 울리더니 황색 바위 전부가 거의 동시에 괴력에 격파되어 계란처럼 터져 나갔다.

“흥, 역시 역수였군!”

웬 남자의 차가운 목소리가 허공에 울렸지만, 목소리가 워낙 어렴풋하게 들려와 도저히 소리가 나는 방향을 찾을 수 없었다.

고운월이 목소리의 주인을 찾기 위해 사방을 두리번거리던 때, 한립이 돌연 옅은 조소와 함께 청색 검기 한 가닥을 방출해, 누렇게 빛나고 있는 공간의 한 구석을 베었다.

츠츠츠츠츠!

갑자기 허공에 거친 파문이 일더니 검은색 옷을 입은 거한의 비틀거리는 신형이 나타났다. 짧은 수염이 나 있는 거한의 네모난 얼굴에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역수인 것도 모자라 검수이기까지 하다니. 고작 원영기 주제에 이 어르신이 친히 만든 환진을 간파해 냈다면 필히 무명소졸은 아닐 터. 이름이 뭐냐? 사부가 누구지?”

거한이 금세 침착한 태도를 되찾고 물었지만 한립은 냉소하며 대꾸했다.

“곧 죽을 놈이 내가 누구인지는 알아서 뭐 한단 말이냐.”

“방자한 놈! 공격 한번 성공했다고 꽤나 우쭐해진 모양인데, 방금 전엔 나 역시 진법이 원래 갖고 있는 위력의 1~2성만 보여 줬을 뿐이다. 그렇게 자신 있다면 어디 이번 공격도 받아 보거라!”

거한은 불같이 화를 내고는 수결을 맺어 전신에 황색 파문을 일으키더니 또다시 한립의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이 모습에 한립의 얼굴에 약간 곤혹스러운 표정이 스쳤다.

거한이 상당히 절묘하게 만들어진 진법의 더 깊은 곳으로 숨어든 바람에, 지금의 의식 수준으로는 그의 기운을 감지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당황하지 않고 곧 완력으로 진법을 깨뜨릴 생각으로 한껏 힘을 끌어올렸다.

그런데 바로 그때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검은 기운이 휘감고 있는 거대한 물체 다섯 개가 나타나 영선 주위를 포위했다.

한립의 표정이 마침내 조금 굳어졌다.

그 거대한 물체는 다름 아닌 30~40장 크기의 검은 거귀였는데, 머리에 돋아 있는 굽은 뿔 한 쌍만 빼면 엄청나게 큰 원숭이와 꼭 닮아 있었다.

검은색 짧은 털로 전신이 덮여 있는 거귀는 눈이 붉게 충혈되어 있었고 날카로운 이빨을 갖고 있어 무척이나 포악해 보였지만 뜻밖에도 표정은 멍했다.

각각의 거귀들은 검은색 작은 산을 받쳐 들고 있었는데, 이들에 비하면 한립 일행은 마치 개미처럼 보일 정도로 작았다.

고운월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으며, 심지어 낙아와 여몽한은 거귀들이 내뿜는 가공할 영압을 못 버티고 이미 쓰러져 정신을 잃고 말았다.

“크아아아아!”

다섯 거귀가 갑자기 핏빛 두 눈을 사납게 번득이며 손에 들고 있던 산을 내던졌다.

작은 산은 거귀의 손에서 떨어지자마자 순식간에 백여 장 크기의 거산으로 변하더니 바람을 가르며 한립 일행을 덮쳤다.

산이 아직 다다르기도 전에 무서울 정도의 압력이 밀려오면서 영선 주위 공기가 윙윙 울리고 광풍이 일었다.

고운월은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지만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서 미친 듯이 법보 부적들을 꺼내, 자신과 두 소녀 주위에 여러 겹의 각기 다른 보호막을 형성했다.

그때 이런 상황에서도 침착한 표정을 하고 있는 한립의 두 손이 금빛으로 번쩍이더니 부채만 한 크기로 커져서 자신들을 향해 날아오는 산을 가볍게 쳐 냈다.

쿠쿠쿵! 쿠쿵! 쿠쿠쿠쿵!

천지가 진동할 듯한 굉음이 연속으로 울리더니 강력한 충격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러자 황색 공간이 윙윙거리며 진동하다 결국 심하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퍼퍼퍼퍼어엉!

황색 공간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끝내 산산이 부서지면서 주변 환경은 단번에 원래의 사막으로 돌아갔고, 사막 상공에 무수한 황색 빛의 조각들이 먼지처럼 흩날렸다.

그리고 그동안 갇혀 있다가 마침내 자유를 되찾은 바람들이 강하게 용솟음치며 모래를 휘감아 태양마저 가렸다.

하지만 깨진 건 그저 환진의 작용으로 만들어진 공간일 뿐이므로 지면에는 대진이 여전히 남아 있었고, 다섯 마리 거귀도 아직 허공에 서 있었다.

그때 검은 옷을 입은 거한이 갑자기 허공에 번쩍 나타나더니 의기양양한 웃음을 지었다.

공간이 깨지긴 했지만 이 오귀(五鬼)와 오악(五岳)을 이용한 공격은 설사 화신 후기의 수사라 해도 훌륭한 영보가 없는 한 막아 내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 거한의 얼굴에 웃음이 사라지고 두 눈은 믿을 수 없다는 듯 휘둥그레졌다.

자신이 차곡차곡 쌓아 날린 다섯 개의 거산 아래에서, 한립이 느긋하게 한 손으로 산들을 받쳐 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 아래 영선에 타고 있는 고운월 등은 더없이 편안해 보였다. 거한이 뭔가 손을 쓰기 전에 한립은 살짝 입을 열어 하얀색 기류를 내뿜었다.

그러자 다섯 개의 거산은 마치 바람에 날리는 새의 깃털처럼 휙 날아갔는데, 그와 동시에 크기까지 빠르게 축소되어 원래의 작은 크기로 돌아갔다.

이에 한립이 그 산들을 낚아채서 내던지자 다섯 개의 산은 순식간에 검은 옷을 입은 거한의 눈앞까지 다다랐다.

거한은 굳은 얼굴로 재빨리 지면으로 하강해 그 산들을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한립은 다시 산 앞에 나타나 산들을 멈춰 세우고는 곧 몸을 빙글 돌려 다섯 개의 산들 중 두 개를 홱 걷어찼다.

그 두 개의 산은 방금 전보다 배 이상 빠른 속도로 날아갔는데 검은빛을 반짝이면서 순식간에 다시 백여 장 크기로 커지더니 그중 하나는 아래쪽 대진을 향해 떨어졌고, 또 다른 하나는 검은 옷을 입은 거한을 향해 날아갔다.

콰콰콰쾅!

대진으로 날아간 산이 지면에 단단히 박혔다.

대진은 즉시 눈부신 빛을 발하며 그 파괴력을 상쇄시키려 했지만 거산에 담긴 놀라운 힘에 짓눌리자 얼마 버티지 못하고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무수한 빛으로 흩어져 버렸다.

대진이 부서지자 마침내 완전히 속박에서 풀린 영선은 주위의 광풍에 휩쓸려 파도를 맞은 일엽편주처럼 멀리 날아갔다.

거한은 자신에게 날아오는 나머지 한 개의 산을 피해 도망쳤지만, 산은 거한보다 더 빨리 그를 따라잡았다.

거한은 자신을 덮쳐 오는 산을 힐끗 올려다보고는 놀란 눈으로 정혈을 뱉어 뱀 모양 영광을 온몸에 휘감더니 방금 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쿠우웅!

마침내 산이 지면에 떨어져 꽂히자 무수한 모래와 먼지가 사방으로 튀었다.

산이 지면에 닿던 순간 뱀 모양 영광은 아슬아슬하게 땅을 스치고 날아갔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백 장 밖에 나타난 거한의 얼굴에는 식은땀이 가득했다.

하지만 거한이 한숨을 돌리기도 전에 그의 귓가에 거친 파공음이 울렸다.

거한의 머리 위가 어두워지나 싶더니 또 하나의 거대한 산이 급속도로 떨어져 내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거한이 막 고개를 들었을 때는 이미 그의 머리 바로 위까지 다다라 있었다. 몸을 피하기에도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거한은 두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다급히 양손을 휘둘러 흑색과 황색을 띤 두 줄기 빛을 방출했다.

바로 검은빛으로 휘감긴 지팡이와 표면에 무수한 부적문이 아른거리고 있는 노란색 커다란 인장이었다.

놀라운 영력 파동이 두 개의 법보에서 퍼져 나오는 걸 봐서 분명 거한의 비장의 수단이었던 모양이었다.

거한이 바로 수결을 맺으며 기합을 넣자 흑색과 황색 빛이 광염(光焰)의 소용돌이를 만들어 무섭게 아래로 추락하던 산의 움직임을 막았다.

거한은 그 틈을 타 뒤쪽으로 빠르게 몸을 날렸는데, 두 가지 색의 광염은 거한이 고작 십여 장 거리를 날아갈 때까지만 겨우 버티고는 이내 산의 압력에 짓뭉개져 버렸다.

쿠우우웅!

산이 지면에 박히자 또 한 번 모래와 먼지가 자욱하게 일었다.

그 뿌연 먼지 속에서 다급히 튀어나온 거한의 움직임은 예전보다 상당히 느렸고, 그의 안색 역시 백지장처럼 창백했다. 또한 몸은 피투성이가 된 데다 왼쪽 팔은 몸통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채 맥없이 덜렁덜렁 흔들리고 있었다.

방금 전 제법 빨리 피했음에도 산의 추락 속도가 워낙 빨라 결국엔 산의 끝자락에 몸이 스치면서 중상을 입고 말았다.

“푸후읍!”

거한은 선혈을 내뿜으며 바닥에 굴렀고, 얼굴에는 두려운 기색이 가득했다. 하지만 곧 이를 악물고 백색 부적 한 장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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