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9화. 실력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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쇄애애액.

결국 거검은 거탑의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고, 고운월과 비검과의 의식 연계는 완전히 끊어졌다.

그에 반해 거탑에서 뿜어져 나오는 금빛은 더욱 눈부시게 빛났고 마치 천둥소리 같은 굉음을 내며 아래쪽 방향으로 더욱 거센 압력을 가했다.

게다가 구멍의 흡입력 때문에 헝겊 역시 금방이라도 탑 안으로 빨려 들어갈 것처럼 표면의 환영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고운결은 다급히 수결을 맺어 법력을 헝겊에 주입했다. 그러자 헝겊은 다시 빛나며 윙윙거리는 진동소리와 함께 겨우 안정이 되었다.

곱사등이 노인은 냉소하면서 두 손을 묘한 자세로 들어 올렸다.

퍼어어엉!

그때 멀리서부터 굉음이 들려왔고 소리가 난 곳에서 말처럼 생긴 청년 주위의 회백색 빛이 폭발하듯 흩어져 나가고 있었다.

그 덕에 청년의 신형 앞에는 아까의 검은색 족자가 활짝 펼쳐진 채 떠 있었고, 빼곡하게 백귀(百鬼) 무늬가 그려져 있는 족자는 강렬한 검은빛을 뿜어냈다.

청년은 독기 어린 눈으로 고운월을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

“천한 것! 감히 나한테 내상을 입혀? 형님, 이제부턴 소제한테 맡겨 주십시오. 제 손으로 저 계집한테 쓴맛을 보여 주겠습니다!”

곱사등이 노인은 청년의 말을 듣고 잠시 공격을 멈췄지만 시선만은 잠시도 그녀에게서 떼지 않았다.

그때 청년이 검은색 비수를 꺼내 자신의 손목을 독하게 그었다.

청년의 손목에서 쏟아져 나온 피는 짙은 핏빛 안개로 변해 백귀가 그려져 있는 그림에 스며들었다.

그러자 검은색 족자에서 뿜어져 나오던 검은 기운이 짙어지고 주위에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더니 귀신과 늑대가 울부짖는 소리가 소름 끼치게 울려 퍼졌다.

“크아아아아!”

매서운 포효 소리와 함께 갑자기 흉악한 모습의 귀물 두 마리가 족자에서 튀어나와 그 즉시 5장쯤 되는 크기로 커졌다.

두 귀물의 상반신은 원숭이와 비슷했고 하반신은 마치 실체가 없는 것 같이 검은색 안개로 덮여 있었다. 그것들은 진녹색 짧은 털과 송곳처럼 날카로운 이빨들을 갖고 있었으며 열 손가락엔 팔뚝만 한 길이의 시뻘건 발톱이 돋아 있었다.

뒤이어 족자 근처에 불던 바람이 한층 더 거세지더니, 검은 기운이 맹렬하게 빙글빙글 돌며 소용돌이 속에서 눈 깜짝할 사이에 백 마리도 넘는 귀물들이 잇따라 날아 나왔다.

그중 대부분은 축기기에 불과했지만, 개중엔 체구도 훨씬 크고 발산하는 기운 역시 결단기 수준인 놈도 여섯 마리나 있었다.

“살(殺)!”

청년은 섬뜩하게 웃으며 고운월 일행을 가리켰다.

“크아아아아아!”

백 마리도 넘는 귀물들이 무서운 기세로 영선에 달려들었다.

그 모습에 고운월이 서둘러 허리춤의 저물대를 두드리자 저물대에서 네 줄기의 흰빛이 날아 나왔다.

빛은 곧 키가 일반 사람 2배는 되는데다 갑주를 두른 채 손에는 넓적한 흰 깃발을 들고 있는 백옥괴뢰(白玉傀儡)로 변했다.

네 괴뢰가 큰 깃발을 흔들자 눈부시게 빛나는 흰빛이 발산돼 서로 하나로 연결되어 백색 진법을 형성하더니 영선을 덮었다.

하지 진법이 모양을 갖추자마자 백 마리도 넘는 귀물들이 그 진법을 겹겹이 둘러쌌다.

“크르르르렁!”

귀물들은 아까보다도 더 포악하게 으르렁거리면서 진법을 향해 맹공을 퍼부었고, 결단기 귀물들은 입에서까지 녹색 빛을 연달아 내뿜으며 진법을 공격했다.

진법은 거칠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고운월은 서둘러 수결을 맺어 괴뢰들의 몸에 흰빛을 주입했는데, 그제야 진법이 점차 안정되어 갔다.

그 모습에 풍운쌍살 청년이 곧 백색 진법 근처로 날아가 뭔가를 읊조리자 몸에 다시 한번 회백색 화염이 일어 십여 장 크기의 불바다를 이루었다.

뒤이어 청년이 허공을 움켜잡는 듯한 손동작을 취하자 불바다 속에서 잿빛 화염 한 덩어리가 떨어져 나오더니 웬만한 누각 높이만큼 기다란 장창 두 자루로 응집됐다.

청년은 곧 장창 두 자루를 모두 날려 보냈는데, 귀를 찢을 듯한 소리와 함께 매섭게 날아가 백색 진법에 꽂혔다.

쾅!쾅!

두 번의 굉음과 함께 장창은 부서졌지만, 백색 진법 역시 거칠게 흔들렸고 그 안에 있던 고운월의 얼굴도 창백해졌다.

청년은 다시 한번 장창들을 만들어 잇따라 진법을 향해 날렸다. 그 탓에 영선을 두텁게 뒤덮고 있던 백색 진법의 빛이 얼마 지나지 않아 원래보다 절반 이하로 급격히 축소되었다.

이에 고운월의 얼굴은 더욱더 창백해졌고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으며 온몸이 약하게 떨렸다.

진법 상공에서 고운월의 이런 모습을 보고 있던 곱사등이 노인은 웃음을 터뜨리더니 허리춤의 저물대에서 12자루의 뼈 갈퀴를 꺼내 날려 보냈다.

저물대에서 나온 뼈 갈퀴는 급격하게 커지면서 몸체 전체에 시커먼 화염을 휘감았는데, 그 화염에선 오히려 뼛속까지 시려 오는 냉기가 느껴졌다.

제훤(齊煊), 즉 제명호의 숙조부인 제 장로가 직접 명령한 만큼 일을 성공하면 자연히 큰 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노인은 이미 힘을 거의 잃어버린 고운월을 보고 그 공을 가로채려 끼어든 것이다.

이 광경에 청년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노인보다 실력이 떨어지는 이상 참을 수밖에 없었다.

고운월의 눈에 절망의 빛이 스쳤다.

그런데 그때 신형 하나가 영선에서 하늘로 솟구쳐 오르더니 순식간에 진법이 형성한 빛의 장막까지 뚫고 허공에 나타났다. 바로 한립이었다.

한립의 몸이 좌우로 살짝 흔들리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잔영 몇 개가 나타났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다시 하나로 합쳐졌다.

그와 동시에 12자루의 뼈 갈퀴가 기이하게도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곱사등이 노인은 굳은 얼굴로 한립을 바라보았다.

한립이 허공에 선 채 두 손을 천천히 펴자 그 12자루의 뼈 갈퀴가 모습을 드러냈는데, 하찮은 일을 처리하듯 시종일관 무표정한 얼굴로 검은색 화염을 깨끗이 지워 뼈 갈퀴를 거둬들였다.

“너, 네놈이……!”

곱사등이 노인은 분노로 바들바들 떨면서 한립을 노려보았다.

그 순간, 귀물들이 생기를 감지하고는 즉시 백색 진법을 떠나 거칠게 울부짖으면서 한립에게로 달려들었다.

“시끄럽군!”

한립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몸을 날려 귀물들 속으로 뛰어들었다.

한립의 푸른 신형이 지나가는 곳마다 귀물들은 무슨 암초에 부딪힌 것처럼 산산이 터져 나가 버렸다.

그렇게 눈 깜짝할 사이에 백 마리가 넘는 귀물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졌지만 워낙 찰나에 일어난 일이나 청년은 그저 멍청한 눈으로 그 광경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한립은 귀물을 모두 없애고 멍하니 서있는 청년에게 나타나 매서운 주먹을 날렸다.

쾅!

주먹 한 방에 청년의 육체는 물론 원영까지 그대로 폭발해 버렸으며, 온 하늘에 청년의 살점들이 튀어 나갔다.

“제길!”

곱사등이 노인이 깜짝 놀란 얼굴로 기다란 비침을 수백 개나 한꺼번에 방출했는데 머리카락만큼 가느다란 비침 위에는 녹색 화염이 휘감겨 있었다.

쏴아아아!

비침들은 온 하늘을 덮으며 비처럼 한립에게 쏟아져 내렸다. 그리고 노인은 황금빛 거탑도 챙기지 않고 전신에 녹색 화염을 뿜으며 저 멀리 도망치기 시작했다.

한립은 원래 있던 자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은 채 입만 벌려 깊은숨을 들이마셨다.

휘오오오오오.

허공에 갑자기 엄청난 흡인력이 생기더니 공기가 회전하며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쏟아져 내리던 비침들은 곧바로 그 흡인력에 휩쓸려 꼭 회오리바람에 날리는 낙엽처럼 모조리 한립의 입안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한립은 비침들을 우두둑 씹더니 그대로 꿀꺽 삼켜 버렸다.

“……!”

그 모습에 고운월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입을 벌린 채 멍하니 서 있었다.

여몽한과 낙아 역시 하늘에서 펼쳐진 전투 장면을 자세히 본 것은 아니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두 명의 추적자 중 하나는 죽고 하나는 도망가는 걸 보고는 얼떨떨한 얼굴이 되었다.

한립은 곱사등이 노인이 멀리 도망치는 모습을 보고는 담담한 얼굴로 금빛 법력을 실은 주먹을 내뻗었다.

쌔애애액!

곱사등이 노인 뒤쪽에 커다란 금빛 권영(拳影)이 번쩍 나타나더니 노인보다 두 배는 빠른 속도로 그 뒤를 쫓아 날아갔다.

“으억!”

노인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몸을 떨어 검은색 빛을 불러냈는데, 바로 그 순간 노인을 따라잡은 권영이 그의 몸을 강타했다.

콰콰쾅!

노인이 있던 곳에선 뜻밖에도 녹색 귀화가 폭발했으며, 사방에는 선혈이나 살점 대신 온통 하얀 뼛조각들만 흩날리고 있었다.

그 순간 수십 리 떨어진 곳의 허공에 파동이 생기더니 갑자기 검은색 빛의 소용돌이가 나타났다.

빛 속에서 웬 신형 하나가 비틀거리며 나왔는데 바로 곱사등이 노인이었다.

노인은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흘긋 보더니 다시 입에서 녹색 빛을 내뿜어 전신을 감싸고는 쏜살같이 사라져 버렸다.

진작 의식을 펼쳐 놨던 한립은 노인이 모습을 드러낸 순간 다시 한번 출수하려고 했다.

하지만 곧 자신의 몸을 덮고 있는 푸른빛이 예전보다 어두워진 걸 보고는 추격을 단념한 채 청년의 저물대를 거둬들인 후 바로 영선으로 돌아왔다.

이번 전투에선 주로 육신의 힘에 의지해 싸우긴 했지만 법력의 소모 역시 완전히 막을 순 없었던 것이다.

“오라버니, 괜찮아요?”

낙아는 한립이 돌아오자 얼른 다가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조금 전과 같은 엄청난 싸움은 여태껏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왠지 그의 몸이 걱정됐던 것이다.

한립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곱사등이 노인의 황금빛 거탑이 주인의 명령을 받지 못하자 급격히 위세가 줄어들어 빙글빙글 돌면서 아래로 떨어져 내려왔다.

고운월은 바로 손을 흔들어 작아진 금탑을 거둬들이면서 한립의 눈치를 살폈는데, 그가 딱히 신경 쓰지 않아 안심하고 저물대 속에 집어넣었다.

이 금탑은 그 자체의 위력도 대단했지만 다른 사람의 법보를 속박하는 신묘한 용법도 갖고 있었으므로 이걸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면 앞으로의 전투에서도 큰 힘이 될 것이다.

물론 풍운쌍살을 제압한 한립에게 돌아가야 마땅하지만 다행히 그가 양보해 준 것이다.

고운월은 금탑을 무사히 챙겨 넣고는 한립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한 수사께서 나서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원래도 수사께서 범상치 않은 분일 거라 생각은 했었지만, 이렇게까지 대단한 실력을 갖고 계실 줄은 몰랐군요.”

고운월의 표정은 담담해 보였지만 그 눈동자 깊은 곳에는 숨길 수 없는 경외심이 담겨 있었다.

고운월은 자신이 설사 자신과 동급인 청년과 단독으로 대결을 벌였더라도 결코 한립처럼 쉽게 상대를 격살할 순 없었을 것이며, 원영 후기 곱사등이 노인을 꺾는 건 더더욱 불가능하단 걸 잘 알고 있었다.

고운월의 칭찬에 한립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제 목숨을 노린 자들이라면 당연히 그에 따른 보답을 받아야죠.”

여몽한이 그의 말을 듣고 수줍게 웃음을 터트렸고, 그를 바라보는 눈빛에 역시나 경외심과 의혹 등이 뒤섞여 있었다.

여몽한은 그의 바로 앞에 있는데도, 커다란 강이 가로놓여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풍국 변경만 벗어나면 천귀종의 추적을 피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빨리 쫓아올 줄은 몰랐네요.”

고운월이 작게 한숨을 쉬며 말하자 한립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꾸했다.

“이상한 일도 아니죠. 어쨌든 여기도 아직 천귀종의 세력 범위 안 아닙니까.”

“하긴 그러네요. 어쨌든 천귀종의 추적에서 벗어나려면 최대한 빨리 우리 냉염종의 세력권으로 들어가야겠어요.”

맞장구치던 고운월의 눈동자에 문득 의혹의 빛이 스쳤는데, 아주 잠깐 사이였지만 한립 역시 그녀의 변화를 알아차렸다.

사실 한립은 겉으로는 멀쩡해 보였지만, 속사정은 썩 좋지 못했다.

조금 전 일전 때 호신을 위해 약간의 법력만 소모했을 뿐인데도 결국 법력이 원영 초기로 완전히 떨어져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고운월 역시 이런 한립의 변화를 눈치챘지만, 바로 그 때문에 이에 대해서는 감히 더 물어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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