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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448화 (1,205/2,000)

1448화. 풍운쌍살(風雲雙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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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고 수사. 냉염종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제가 알고 있는 건 밖에서 나도는 소문 정도라서 말입니다.”

“호호호. 안 그래도 슬슬 냉염종에 대해 설명 드려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이랍니다.”

한립의 물음에 고운월은 조금 의아해하면서도 바로 설명을 시작했다.

“저희 냉염종은 영환계에서 이름난 종파랍니다. 무려 백만 년이나 되는 역사를 갖고 있는 데다 제자의 수는 십만을 헤아리죠. 결단기나 원영기는 말할 것도 없고, 화신, 연허기의 장로도 수십 분이나 계시며 그 위에는 합체기 어르신이 세 분, 대승기인 어르신도 한 분 계시죠.”

고운월의 얼굴엔 종파에 대한 자부심이 선명히 드러났다.

한립 역시 대승기까지 있다는 말에 가슴이 조금 뛰었다. 그런 인물을 배출할 정도라는 건 냉염종이 영계의 웬만한 거대 일족에도 뒤지지 않을 힘을 갖고 있다는 뜻이었다.

“저희 개파 조사이신 냉염노조께선 백만 년 전에 선계로 비승하셨는데, 지금도 본 종에선 특별한 방법을 통해 그분과 연락을 주고받고 있고, 조사께서도 종종 선계의 영단이나 공법을 보내 주고 계신답니다. 그러니 다른 평범한 문파들이 어찌 본 종과 비교나 되겠어요? 한 수사, 냉염종에 들어오시면 절대 실망하지 않으실 거예요.”

고운월의 이 말에, 한립의 눈에 드디어 한줄기 흥분의 빛이 스쳤다.

냉염종이 선계에 든든한 배경을 갖고 있고, 거기다 냉염노조가 비승한 후에도 하계(下界)와 연락을 취하고 있다니. 이런 건 영계에서 들어 본 적도 없는 얘기였다. 아무래도 이곳 영환계는 영계와 많은 다른 듯했다.

고운월은 한립이 눈빛이 바뀌자 그저 흐뭇한 미소만 지었다.

“냉염종이 그렇게까지 대단한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역시 영환계의 일대를 지배할 만하군요. 그럼 천귀종(天鬼宗)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천귀종도 본 종이랑 비슷해요. 선계로 비승한 어르신의 도움을 받고 있죠. 그 외에 ‘경원관(境元觀)’이란 문파 역시 선계에 계신 선배의 지원을 받고 있고요. 덕분에 이 세 종파가 서로 엇비슷한 세력을 유지하며 영환계를 나란히 평정하고 있답니다.”

다른 두 종파 얘기가 나오자 고운월의 얼굴이 조금 어두워졌다.

“엇비슷한 세력이라고는 하지만, 그 안에서도 힘의 차이는 있을 수밖에 없을 텐데요. 세 종파 중 어디가 가장 강합니까?”

“그건……. 정말로 실력 면에서도 세 종파가 거의 비슷하다고 할 수 있어요. 다만 천귀종은 역사가 다른 두 종파보다 훨씬 길고, 그 사이에 벌써 세 분이나 되는 선배들이 선계로 비승하셨으니 어쩌면 조금 더 강할 수도 있겠네요. 어쨌든 우리 냉염종과 경원관의 위세는 서로 비슷하답니다.”

고운월은 눈빛이 살짝 흔들리더니 모호한 대답을 내놓았다. 실제로는 천귀종의 힘이 냉염종보다 훨씬 우위에 있지만 그 사실을 인정하기 싫은 듯했다.

한립은 그제야 냉염종에 흥미가 생긴 듯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냉염종이 선계의 사람과 연락할 방법을 갖고 있다니, 그곳에 가면 원영 문제를 해결할 방도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후 냉염종에 대해 몇 가지 더 질문한 한립은 얘기를 마친 후 다시 배 한쪽에서 가부좌를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립의 몸 위로 푸른빛이 떠올랐다가 가라앉았다.

뱃머리에서 영선을 조종하고 있던 고운월은 한립 주위에 일어나는 법력 파동의 변화를 보며 내심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하늘의 색이 점점 밝아졌다.

영선이 두꺼운 구름을 뚫고 지나가자 우뚝 솟은 산들이 빼곡히 모여 있는 광경이 보였다.

산봉우리들은 깎아지른 듯 날카롭고 암홍색을 띠고 있어서, 위에서 내려다보니 꼭 붉은 나무들이 밀집해 있는 숲처럼 보였다.

고운월은 그 붉은 산맥을 보고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 산맥의 이름은 ‘홍호산맥(紅瑚山脈)’이었는데, 홍호산맥이 보인다는 건 풍국의 변경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의미였다.

고운월은 여기까지 오기 위해, 추적자에게 발각될 만한 구역은 피해 우회하는 등 상당히 주의를 기울였기 때문에 홍호산맥을 보자 지금까지의 긴장이 단번에 풀리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서 고운월은 영선을 좀 더 높이 띄워 구름 속으로 들어갔다.

근처의 구름은 비교적 작고 드문드문 떨어져 있긴 했지만 행적을 감추는 데는 큰 문제가 없었다.

여몽한과 낙아도 어느새 영선에 꽤 적응이 됐는지, 처음처럼 무서워하는 기색 없이 몸을 일으켜 주위 경치를 감상하면서 때때로 맑은 웃음을 터트렸다.

배 아래쪽에서 산봉우리들의 모습이 빠르게 뒤로 사라지더니 저 멀리 평원이 나타났다.

이에 고운월이 마지막 한 가닥 남은 긴장의 끈을 놓으려는데 줄곧 눈을 감고 앉아 있던 한립이 급히 눈을 뜨고는 경고했다.

“조심하십시오!”

낙아와 여몽한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한립을 보고 있었지만, 고운월은 바로 손바닥에서 굵은 흰빛을 방출해 영선에 흡수시켰다.

그러자 선체 전체에 빛이 확 일어나는가 싶더니 바로 그 자리에 멈춰 서더니 곧장 뒤쪽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후진하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앞쪽의 흰 구름 한 덩어리가 갑자기 칠흑처럼 새까맣게 변하다가 순식간에 집채보다 더 큰 검은색 얼굴로 변했다.

그 귀신같은 괴상한 얼굴은 한껏 벌렸던 입을 콱 닫았지만, 영선이 빠르게 후진한 덕에 안개만 잔뜩 삼키고 말았다.

“쳇!”

괴상한 얼굴에서 가벼운 탄식이 울려 퍼졌다.

뒤이어 얼굴이 일그러지다가 무너져 다시 검은색 구름으로 돌아가자, 그 위에 사람 신형 두 개가 나타났다.

왼쪽에 있는 사람은 등이 굽은 노인으로, 얼굴엔 깊은 주름이 가득했고 몇 가닥 안 남은 노란 머리카락마저 바람에 휘날렸는데 꼭 썩은 나무 같았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젊은 남자는 말처럼 생긴 얼굴에 괴상할 정도의 커다란 입을 갖고 있었고 눈에는 흉측한 빛이 번쩍였다.

두 사람 모두 험상궂은 귀신 얼굴이 수놓인 검은색 도포를 입고 있었는데, 몸에서 발산되는 기운을 봐서는 모두 원영기에 이르렀음이 분명해 보였다.

그 중 청년은 고운월과 마찬가지로 원영 중기, 노인은 그보다 한 수 위인 원영 후기인 듯했다.

그들의 모습에 고운월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나직이 중얼거렸다.

“풍운쌍살(風雲雙煞)……!”

“하하하! 고 수사께서도 우리 형제의 별호를 알고 계실 줄은 몰랐군. 영광이오.”

등이 구부정한 노인이 마치 쇳조각이 부딪히는 것처럼 거슬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노인 옆의 청년은 아무 말 없이 살짝 벌게진 눈으로 한립 등을 천천히 훑어보다가 여몽한과 낙아를 보면서는 눈을 빛내며 입술을 혀로 핥았다.

그 모습에 낙아는 곧바로 한립 뒤로 숨었고, 여몽한은 울컥 돋는 화를 애써 진정시켰다.

고운월은 내심 당황한 모습이었다.

여부에서의 일을 천귀종이 얌전히 넘길 리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그것도 이렇게 악명 높은 자들이 추적해 올 줄은 미처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고운월은 적잖은 전투를 치른 경험이 있는 수사였으므로 곧 냉정을 되찾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갑자기 우리 앞을 막아선 이유가 뭐요? 설마 두 종파 사이에 전쟁이라도 일으키려는 것이오?”

“킬킬킬. 뻔한 일을 그리 시치미 뗄 필요 뭐 있소? 우리가 온 까닭은 수사께서도 똑똑히 알고 계실 텐데? 우린 제 장로님의 명을 받아 제 사질을 죽인 흉수를 없애러 왔소. 물론 그러는 김에 저 여 씨 성을 가진 계집아이도 취하고 말이오.”

노인은 괴상한 웃음소리와 함께 한립과 여몽한이 있는 방향을 흘긋 바라보았다.

한립은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고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여몽한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고 수사, 수사와 우리 형제 사이엔 이렇다 할 원한이 없지 않소. 이 둘만 넘겨주면, 우리도 수사를 얌전히 보내드리겠소. 어떻소?”

노인은 겉으론 거만한 태도로 말했지만, 고운월이 냉염종에서 제법 높은 지위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속으론 가능하면 그녀와 손을 섞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한 수사는 본 종의 외문 객경장로이시고, 여몽한은 내문제자인데 내가 두 분 말씀에 따를 것 같소? 대체 냉염종을 뭐로 생각하는 거요?”

“흥, 권주는 마다하고 벌주를 받겠다니, 그럼 소원대로 해 드리리다!”

노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그 옆의 청년은 소매에서 회백색 화염을 방출했다. 꿈틀대며 피어난 화염은 곧 청년 앞에서 응집되어 화염의 소용돌이를 만들었다.

그 소용돌이 속에서 순식간에 집채만 한 크기의 갈퀴 모양 화염이 날아 나왔다.

미리 경계하고 있던 고운월은 바로 발을 굴러 영선을 후진시키면서 검은색 장검에 7~8장 길이의 검강을 일으켜 화염을 가로막았다.

화염과 검강이 맞부딪치자 뜻밖에도 쇠 부딪치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뒤이어 고운월이 빠르게 수결을 맺자 검은색 검강이 갑자기 수축해 두 배 이상 작아졌는데, 대신 그 빛은 더욱 눈부시게 밝아졌다.

푸화악!

마침내 검강이 화염을 관통하고 지나가자 화염이 응집돼 만들어진 갈퀴가 폭발하더니 무수한 불꽃으로 변해 사라졌다. 그 덕분에 청년은 얼굴이 벌게지더니 곧 선혈을 내뿜었다.

“으아아아아!”

청년은 노호와 함께 시뻘게진 눈을 하고선 검은색 족자를 꺼냈다. 그와 동시에 청년의 몸에서 회백색 빛이 솟구쳐 올라 그의 몸을 뒤덮었는데, 그 탓에 그가 뭘 하고 있는지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곱사등이 노인은 때맞춰 원영 후기의 고수다운 위세를 뽐내며 검은 빛을 전신에서 내뿜었다.

고운월은 조금 긴장한 기색으로 장검을 머리 위로 불러들이고는 의식을 펼쳐 노인과 청년을 옭아맸다. 그 틈에 영선은 다시 백여 장 이상을 물러선 후에야 겨우 멈췄다.

그때 고운월의 전음이 한립 머릿속에 울렸다.

“한 수사, 저 둘은 꽤 강한 자들입니다.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아이들을 데리고 먼저 피하십시오. 제가 저들의 발을 묶겠습니다.”

고운월은 방금 전 청년의 공격은 무사히 막아냈지만, 저 곱사등이 노인을 꺾을 자신은 없었다.

거기다 한립이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갖고 있는지도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협공에 성공한다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래서 차라리 도주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한립은 승낙도 거절도 하지 않고 그저 아무 대답 없이 서 있었다. 그때 섬뜩한 목소리가 고운월의 귓가에 울렸다.

“그렇게 마음대로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소?”

푸화아악!

노인의 목소리가 떨어지자마자 그의 주위를 뒤덮고 있던 검은빛이 갑자기 폭발하듯 흩어지더니 그 속에서 곱사등이 노인의 신형이 흐릿해지다가 곧 회색 해골로 변했다.

이 광경을 본 고운월은 순간 바짝 긴장했으며, 한립의 눈도 날카롭게 번쩍였다.

그 순간 영선 위쪽 허공에 갑자기 파동이 일다가 돌연 칠흑 같은 빛이 만들어졌다.

곧이어 그 검은빛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곱사등이 노인이 양손을 흔들자 금빛이 번쩍이더니, 족히 10여 장은 되는 듯한 황금빛 거탑이 나타나 영선 쪽으로 맹렬하게 날아 내려왔다.

그 무서운 공기의 압박 앞에서 영선의 빛은 금방이라도 깨질 것처럼 격하게 흔들렸다.

고운월은 낮은 신음과 함께 두 손으로 수결을 맺어 머리 위 검은색 장검에 검결을 주입했다.

장검은 거칠게 진동하다가 무수한 검영을 그리며 거탑을 베었다.

콰콰콰콰콰쾅!

촘촘하게 이어진 검영이 거탑을 스치고 지나가자 강한 폭발음이 일었지만, 탑에는 어떤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하지만 그 덕분에 거탑의 기세 역시 조금은 줄어들었고, 영선을 향해 맹렬히 달려들던 속도도 잠시 느려졌다.

고운월은 그 틈을 타 은백색 비단 헝겊을 날려 보냈는데, 처음 방출될 땐 평범한 헝겊 형태였지만 바람에 휘날리던 순간 눈부신 은빛을 뿜어냈으며 표면에는 산과 강의 환영이 흐릿하게 떠올랐다.

헝겊은 곧 놀라운 영기를 뿜으며 황금빛 거탑을 가로막더니 거탑의 추락 속도를 늦췄다.

고운월은 그제야 조금 긴장됐던 표정을 풀고 다시 한 번 수결을 맺었다.

그러자 검은색 장검이 빙글빙글 돌면서 검은빛을 발산하다가 순식간에 6장(약 20미터) 길이의 거대한 검으로 변해 엄청난 속도로 곱사등이 노인을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노인은 태연하게 콧방귀를 뀌면서 법결을 운용했다.

그 순간 황금색 거탑의 아래층 단 부분이 쩍 갈라지면서 검은색 구멍이 나타났는데, 구멍 속에 어느새 거대한 금빛 고리가 형성돼 있었다.

뒤이어 고리 안에서 가공할 흡인력이 생기자 주위의 공기가 고리를 향해 밀려들기 시작했다.

이에 검은색 거검 역시 태산이 짓누르기라도 한 것처럼 그대로 멈춰서더니 곧 흡인력에 의해 뱅글뱅글 돌면서 거탑의 동그란 구멍을 향해 빨려갔다.

고운월은 필사적으로 수결을 맺어 거검을 안정시키려고 했지만 아무 소용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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