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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433화 (1,190/2,000)

1433화. 석두(石頭) 오라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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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두(石頭) 오라버니!”

세 도사가 어안이 벙벙해져 있던 순간, 놀라움과 기쁨이 뒤섞인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겁에 질려 있던 여자아이는 어느새 몸을 일으켜, 바위에서 불쑥 튀어나온 키 큰 청년을 꽉 껴안고 반갑게 그를 올려다보았다.

아이의 말에 세 도사는 경악한 눈으로 청년을 쳐다보았지만 청년은 아무런 표정도 없이 멍하니 앞만 바라볼 뿐이었다.

이에 도사들은 갑자기 의심스런 눈빛을 보냈는데 그 모습에 아이는 청년의 다리를 마구 잡아 흔들면서 울음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오라버닐 찾아서 정말 다행이에요! 석두 오라버니, 저 나쁜 사람들이 낙아(樂兒)를 막 잡으려고 했어요. 오라버니가 낙아 대신 혼내 주세요!”

이번에는 청년도 아이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아주 천천히 고개를 약간 숙였다.

아이는 청년의 공허한 두 눈을 보며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이 광경을 지켜보던 도사들은 미처 아이의 눈빛이 흔들리는 것을 눈치 채지 못했는지 다른 생각에 빠져 있었다.

사실 도사들은 일찌감치 의식을 펼쳐 청년의 상태를 살폈는데 그의 몸에서는 아무런 법력의 흔적도 발견하지 못했다.

보통 이런 상황은 두 가지 경우뿐이었는데 하나는 상대방이 정말 지극히 평범한 범인(凡人)이거나, 다른 하나는 상대가 법력을 숨기는 특수한 비술이나 법기(法器)를 지닌 경우이다.

그들은 괴상한 청년의 등장과 아이가 말한 호칭을 떠올리며 내심 저 청년이 후자의 경우일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즉, 상대가 요족(妖族)일지도 모른다고 판단한 것이다.

제 도사는 총채를 팔에 걸친 채 알 수 없는 눈빛으로 청년과 여자아이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말상 얼굴을 한 풍 도사도 이미 출수하려던 손을 거두고 다른 두 도사 곁으로 물러났는데 소매 속에 왼손을 숨긴 채 뭔가를 은밀히 움켜쥐고서 아이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귀하께선 뉘시오? 빈도는 혈도회의 ‘연승(燕承)’이라 하오. 두 명의 도우와 함께 이 사악한 요호를 잡으려던 중이니, 귀하께선 달리 볼일이 없으시다면 이만 먼저 물러가시는 게 좋을 것 같소.”

연 도사 연승이 두 도사에게 눈짓을 하며 먼저 입을 열었다.

그 말에 아이는 조금 초조한 기색으로 애걸하듯 청년을 올려다보았는데, 청년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멍하니 연승을 바라보기만 할 뿐 별다른 대답은 하지 않았다.

이에 연승은 순간 발끈하는 듯했지만 그래도 끈기 있게 방금 전의 말을 다시 한 번 반복했다. 물론 아까보다는 더 노기가 담긴 목소리였다.

아이는 청년을 재촉하고 싶은 듯 입술을 살짝 달싹거렸지만 실제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청년의 바지를 잡고 있던 작은 손은 어느새 땀으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청년은 여전히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의심스러운 자요. 굳이 시간 낭비할 것 없이, 차라리…….”

풍 도사가 다른 두 도사에게 전음을 보내자 제 도사도 눈을 가늘게 뜨며 전음으로 대답했다.

“이 근처에서 혈도회의 이름을 듣고도 저렇게 차분할 수 있다는 건 정말 엄청난 고수이거나, 아니면 멍청이란 뜻일 거요. 어쨌든 저자가 요호(妖狐)를 비호하고 나선 이상, 저자를 죽인다 해도 우릴 나무랄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지. 물론 최종 결정은 연 도우께서 내리셔야 할 거요.”

전음을 들은 연승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 박도를 들고 매섭게 외쳤다.

“끝내 앞을 비키지 않는다는 건, 우리 셋을 무시하겠단 뜻이렷다!”

연승의 노호는 사방으로 쩌렁쩌렁 울리며 퍼져나갔다. 아이는 두려움에 질린 얼굴로 결국 청년의 다리를 놓고 소고를 꽉 움켜잡았다.

그러나 청년은 여전히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좋다! 기어코 그 요녀의 편을 든다면 덤비거라!”

연승의 눈에 흉맹한 빛이 번뜩이는 순간, 그의 박도에 쳐다볼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빛이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연승이 다른 쪽 손을 흔들자 한 줄기 검은 빛이 번쩍이며 날아가 공중에서 빙그르르 돌며 순식간에 검은색 그물로 변했다.

거대한 그물은 마치 먹구름처럼 아이와 청년을 같이 덮쳤는데, 그물 안에 차가운 빛이 떠오르나 싶더니 그물의 각 매듭에 날카로운 은빛 갈고리가 나타났다.

“꺄아앗!”

아이는 비명을 지르며 서둘러 손에 쥔 소고를 향해 핏빛 안개를 뿜어내고는 곧장 손목을 흔들었다.

투웅!

구슬이 북면을 때려 북소리가 울리자, 그물에 덮쳐졌던 아이의 몸이 푸른빛으로 흐릿해지더니 곧 고목나무 한 토막으로 변해 버렸다.

콰당!

그물 속에서 사라진 아이는 갑자기 10여 장 밖에 모습을 드러냈는데, 한두 걸음도 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넘어졌다. 미처 피하지 못해 그물 갈고리에 찔려 수십 곳에 상처를 입었고 몸에서는 붉은 피가 흘렀다.

“읏……!”

아이는 간신히 몸을 일으켰지만, 한 발짝 내딛자마자 금세 다시 넘어지고 말았다. 얼굴은 몹시 창백했고,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힘들어했다.

이에 연승은 아이는 잠시 놔두고 한 손으로 수결을 맺어 청년을 덮친 그물을 더욱 세게 조였다.

연승 옆의 제 씨 도사도 연이어 몸을 날리면서 손목을 까딱거리자 손끝에서 열 가닥의 푸른빛이 튀어나와 날카로운 바늘로 변해 청년의 몸 곳곳으로 날아들었다.

“조심해요!”

근처에 쓰러진 아이는 제 한 몸도 가누지 못했지만 그 광경을 보자마자 안타깝게 소리를 질렀다.

팅! 팅! 팅!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가 연이어 울렸다. 푸른색 바늘들은 청년의 몸에 닿자마자 꼭 돌멩이에 부딪힌 것처럼 모조리 튕겨져 나갔다.

“어, 어떻게 저럴 수가……!”

제 도사가 가볍게 땅에 내려앉으며 중얼거렸다. 자신이 던진 바늘은 바위도 능히 관통할 수 있는 위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쌔애액!

그때 한 줄기 금색 빛이 갑자기 날아 나가더니, 순식간에 청년의 목 위에 단단히 박혔다.

“후후후. 내 금봉추(金蜂錐)에 맞았으니 이번에야말로 끝장…….”

풍 도사가 두 도사 뒤에서 천천히 팔을 내리며 의기양양하게 미소 지었다.

퍼어억!

그러나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청년의 목에 박혔던 금봉추가 터져 버리더니 그 파편들이 금빛이 되어 떨어져 내렸다.

“말도 안 돼!”

풍 도사는 꼭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다른 두 도사도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청년을 바라보았다.

게다가 제 도사와 풍 도사의 공격만 막힌 게 아니라 검은 그물의 위력적인 갈고리 역시 청년의 몸에 작은 상처도 내지 못했다.

세 도사의 연이은 공격에 청년은 마침내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즉, 천천히 고개를 숙여 자신의 몸에 걸려 있는 그물을 보고는 거추장스럽다는 듯이 두 손으로 그물을 움켜잡았던 것이다.

쫘아아아악!

그물은 빛이 번뜩이나 싶더니, 이내 얼마 못 버티고 청년의 손길에 의해 양쪽으로 찢겨져 버렸다.

그 광경에 풍 도사와 제 도사는 금방이라도 눈알이 튀어나올 것처럼 놀란 얼굴이 됐다. 근처에 쓰러져 있던 아이도 입을 벌린 채 이 모습을 지켜보았다.

“너……. 네놈이 감히 내 법기(法器)를 망가뜨려!”

연승은 시뻘게진 얼굴로 매섭게 소리쳤다.

검은 그물은 연승이 혈도회의 어느 친우로부터 거금을 들여 빌려 온 귀한 보물이었는데, 정체도 알지 못하는 자에 의해 망가졌으니 어떻게 화가 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를 갈며 청년을 노려보는 연승의 손가락에 홀연히 자주색 부적 한 장이 나타났다. 연승이 부적을 던지며 주문을 외자 부적이 청년의 머리 위로 날아올랐다.

쫘악!

부적이 찢어지며 그 자리에 난데없이 검은색 구름 덩어리가 나타났고, 구름 속에서 굉음과 함께 빛이 쉼 없이 번쩍이나 싶더니 커다란 은색 번개가 튀어나왔다.

꽈꽈꽈꽈꽈꽝!

번개가 청년의 몸을 그대로 강타하자 수많은 빛의 파편들이 사방으로 튀어 나가 주위에 깊은 구덩이들을 만들었다.

아이는 굉음에 깜짝 놀라 어디서 힘이 났는지 잽싸게 몸을 움직여 아슬아슬하게 번개의 여파를 피했다. 하지만 몸을 피한 후에도 뒤늦게 밀려오는 두려움에 손을 떨며 연신 사방을 살폈다.

반면, 청년은 구덩이들이 움푹 패여 있는 땅 위에 고요히 서 있었는데 전신에 상처라곤 하나도 없었다.

연승은 조금 당황하면서도 계속해서 손을 움직여 수결을 맺으며 입으로는 빠르게 주문을 외웠다.

“결(結)!”

그러자 허공에 또다시 은빛 번개가 떨어지더니 번쩍이는 사슬을 만들어 청년을 꽁꽁 묶었다.

“두 분은 언제까지 기다리실 생각이십니까!”

연승은 매섭게 그들을 재촉하며, 손에 쥐고 있던 박도를 휘둘러 청년을 향해 돌진했다.

풍 도사는 청년이 번개 공격에도 멀쩡하자 경악했다가 연승의 기세에 금새 밝아진 얼굴로 수결을 맺으며 바람처럼 원래의 자리에서 사라졌다.

뒤이어 청년에게 광풍이 몰아쳤는데 바람 사이로 나타난 풍 도사의 손에는 부적문이 번득이는 검은색 필가차(筆架叉)가 쥐어져 있었다.

풍 도사는 곧 날카로운 기세로 필가차를 청년의 어깨에 내려찍었다.

제 도사는 두 도사처럼 근접전을 펼치는 대신,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손을 흔들어 붉은색 빛으로 이루어진 커다란 구슬을 만들었다.

그러자 빛의 구슬은 엄청난 속도로 방향을 바꿔 날아가더니 소리 없이 청년의 뒤통수를 가격했다.

그들의 공격을 보니 이번이 그들이 첫 합공은 아닌 게 분명했다.

이에 반해 청년은 자신에게 닥쳐오는 공격을 보지 못한 듯 여전히 흐리멍덩한 눈으로 제자리에 서 있을 뿐이었다.

그 모습에 연승은 자신만만한 얼굴로, 박도를 쥔 손에 한층 더 힘을 주었다.

그러나 그 순간. 갑자기 커다란 손이 연승의 손목을 꽉 조여 왔고, 그 탓에 연승은 박도를 움직일 수 없는 것은 물론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것도 불가능했다.

줄곧 멍하니 있던 청년이 뜻밖에도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연승의 손목을 꽉 움켜쥔 것이다.

연승은 온힘을 다해 손목을 빼내려고 해 봤지만, 아무리 발버둥 쳐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는 순간 가슴이 서늘해졌다.

그때, 연승의 입가에 돌연 웃음이 번졌다.

콰직! 퍼어어엉!

풍 도사의 필가차 공격과 제 도사의 핏빛 구슬 공격이 거의 동시에 청년의 어깨와 후두부에 쏟아진 것이다.

청년의 어깨에서는 검은색 빛이 피어올랐고, 후두부에서는 구슬이 깨지며 짙은 피의 안개를 내뿜었다. 청년의 머리를 완전히 뒤덮은 안개에서는 구역질이 날 정도로 역겨운 피비린내가 풍겨 왔다.

“하하하하!”

의기양양하게 웃어젖히던 풍 도사는, 갑자기 청년의 몸에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엄청난 힘이 필가차를 따라 자신의 몸에 전해지는 걸 느끼고는 얼굴이 굳어졌다.

“안 돼!”

풍 도사는 짧은 비명을 지르고 서둘러 청년에게서 떨어졌지만, 이미 한발 늦고 말았다.

쩌쩌쩌쩌쩍!

풍 도사의 몸의 뼈들이 일제히 깨져 나가며 입에서 내장 조각이 섞인 피가 미친 듯이 뿜어져 나왔다. 이에 만신창이가 된 풍 도사는 더 이상 숨도 쉴 수 없게 되었다.

“말도 안 돼. 어, 어떻게……!”

그 모습에 연승은 대경실색했지만 그의 손목을 잡고 있던 커다란 손이 가볍게 떨리며 연승의 몸도 순식간에 산산조각 나 버렸다. 참혹한 고통에 연승은 저도 모르게 처량한 비명을 질렀다.

휘익!

그때 커다란 손이 연승을 집어던지자 연승의 몸은 무력하게 날아가 근처의 큰 바위에 부딪혔다.

“끄아악!”

퍼어억!

엄청난 충격에 연승을 비명을 질렀고 바위에 닿는 순간 그대로 짓뭉개지고 말았다. 이 모든 것이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제 도사는 순간 안색이 흙빛으로 변해, 갑자기 몸에다 부적들을 붙이며 미친 듯이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주위의 공기가 갑자기 팽팽해지는 듯하더니, 그의 몸을 감싸 보호해 주고 있던 빛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퍼어억!

제 도사의 눈빛이 두려움으로 흔들리던 순간, 섬뜩한 소리와 함께 제 도사의 몸이 허공을 가르고 날아온 무형의 힘에 가격당해 피와 살점들이 사방으로 날아갔다.

휘오오오오.

이에 청년의 머리를 뒤덮고 있던 짙은 핏빛 안개 역시 힘없이 그의 입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러나 청년은 여전히 멍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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