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6화. 교환회
*
“오, 소문이 빨리도 퍼졌습니다. 허나 많은 분들을 실망시켜드려야겠군요. 여분의 진혼단은 진작 영계의 다른 강자들이 가져갔고, 하나 남은 것은 제가 복용했습니다.”
한립은 느긋하게 말했다.
“다른 이에게 줘버리고 나머지는 먹었다고요. 그 말을 누가 믿겠습니까?”
“믿고 안 믿고는 그들의 자유지만 주제도 모르고 선을 넘는 자들은 제가 가만두지 않을 것입니다.”
“헤헤, 진작 대책을 생각해 두셨나 보네요. 그런데 본족의 금 장로께서도 진혼단에 대해 듣고 사적으로 한 형을 한 번 뵙고자 하시더라고요.”
전비아가 어깨를 으쓱하며 뜻밖의 말을 전했다.
“금 장로라면 진룡족 일인자라는 금룡 대장로를 뜻하는 것입니까?”
“괜한 걱정은 마시고요. 도과대회는 본래 여러 계면의 강자들이 모여 서로의 보물을 교환하는 몇 안 되는 기회입니다. 금 장로께서 진혼단에 관심이 있어도 도과대회를 빌미로 다른 이에게 빼앗거나 하지는 않으실 거예요. 진혼단을 거래할 마음이 없으시면 금 장로를 뵙지 않아도 무방할 겁니다.”
“귀 족의 대범함은 알겠습니다. 아쉽게도 진혼단은 도겁에 무척 중요한 단약이라 남는 것이 있더라도 거래할 마음은 없습니다.”
진지한 전비아의 표정을 보고 한립이 고개를 저었다.
“너무 급히 거절은 마세요. 금 장로께서 제게 전하라는 말이 남았습니다. 진혼단과 교환하고 싶은 물건은 비승의 겁에 진혼단 못지않은 가치를 지녔다고 하시더군요. 아시다시피 우리 일족은 다른 생령들과 달린 선계 비승에 크게 연연해하지 않잖아요? 그러니 다른 강자들이 오매불망하는 보물도 본 족에서는 그만한 대접을 받지 못하기도 하죠.”
“……그 말이 사실이라면 고려를 해 볼만도 합니다. 이렇게 하지요, 진룡도에 도착한 후에 금 장로를 만나볼지 말지 결정을 내리겠습니다.”
표정이 시시각각 달라지던 한립이 이렇게 답했다.
“거래에 응하시면 금 장로께서 절대 수사를 실망시킬 일은 없을 거예요. 또한 진혼단이 우리 일족의 수중에 들어오면 그 소문을 퍼트려 더는 강자들이 한 수사를 귀찮게 하는 일이 없도록 할 테고요. 일거양득이랄까요?”
전비아는 한립이 반쯤 넘어오자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하하, 그러기를 바라겠습니다.”
“시간이 늦었는데, 이제 출발할까요? 마가계에서 가까운 편이기는 해도 진룡도까지 상당히 시간이 걸리거든요.”
전비아는 눈치 있게 더는 진혼단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고공으로 손을 뻗었다.
하얀 구름 속에서 사나운 울음소리가 들리고 네 마리 붉은 괴수가 끄는 하얀 비차가 내려왔다.
옥으로 만들어진 비차의 겉 부분에는 섬세하게 꽃문양이 새겨져 있었고 비차를 끄는 반마반룡(半馬半龍)의 괴수들은 머리에는 뿔이 나고 네 다리와 몸통은 붉은 비늘로 덮여 있었다.
“진룡도 고유의 영마(獰馬)예요. 전투 능력은 별것 없어도 힘이 좋고 인내심이 강해 먹고 마시지 않고 몇 달을 전력으로 달리기도 하죠.”
“이전에 소위 용마(龍馬)라는 영수는 보았는데 이 영마와 비교하면 자질이 한참 떨어지는군요. 진룡도에서 바깥 세계에 파시는 것입니까?”
한립은 네 마리 반마반룡의 괴수를 보고 감탄했다.
“하하, 그런 저계 영수는 팔기도 하지만 특수한 이유 때문에 오직 진룡도에서 태어난 직계 후손들만이 이런 준수한 혈통을 타고납니다. 진룡도 바깥의 영수들은 혈맥이 점차 옅어져 다른 지역의 용마와 엇비슷해져 버리고요.”
“그렇다면 아쉽게 되었습니다.”
전비아의 설명에 한립은 정말 아쉬워했다. 영마를 인족으로 데려다 키우면 쓰일 곳이 많겠다고 생각하던 중이었던 것이다.
“하하, 우리 진룡도는 이것 말고도 장점이 많습니다. 가셔서 직접 살펴보시지요.”
웃음을 흘린 여인이 먼저 비차에 올랐다.
“그 말씀을 들으니 도과를 얻지 못해도 허탕은 아닐 듯합니다.”
한립도 비차에 타자 네 마리 영마들이 날카롭게 울며 허공을 달려 나갔다. 뒤쪽에 탄 한립은 비차가 마치 평지를 달리는 듯 흔들림이 없자 신기해하며 내부를 둘러보았다.
“이 풍령차(風靈車)는 진룡도 고유의 구리와 비슷한 영석으로 제련해서 쓰면 다른 금속으로 만든 비차보다 백배는 가볍고 영기와 바람의 유입이 자유롭답니다.”
“이제 진룡도에 특별한 점이 많다는 선자의 말씀을 믿겠습니다. 하루빨리 도착해 돌아보고 싶군요.”
“그러시다면 제가 더 속도를 높여야겠군요.”
전비아는 법결을 연달아 쏘아 보내 영마들에게 흡수시켰다.
붉은 기운이 왕성해진 영마들은 체구도 커지고 입 안의 송곳니가 길게 자라나 더욱 힘차게 다리를 놀렸다.
* * *
몇 달 후.
한립은 전비아와 별이 가득한 하늘에 떠있는 거대 전당에서 걸아 나와 광장에 이르렀다.
하늘에는 거의 절반을 가린 녹색 달이 떠있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해 반원형의 거대한 섬이었다.
건물들이 새워진 거대 섬은 녹색 보호막으로 보호되고 있었다.
“이곳이 진룡도이군요. 상상했던 것과 비슷합니다.”
한립은 하늘의 녹색 달을 보고 중얼거렸다.
“원래는 이런 모습이 아니었는데 오래 세월 선조들이 막대한 법력을 들여 바꾸었다고 해요. 한 형은 초청장도 확인되었으니 도과대회 기간 동안 자유롭게 섬을 드나들 수 있습니다. 미리 말해둔 몇몇 금지 구역에만 들어가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저는 다른 볼일 있어 더는 동행할 수 없겠네요.”
전비아가 갑자기 공손히 인사를 했다.
“오는 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전 선자. 이제 가서 일을 보셔도 됩니다.”
“제게 더 하실 말은 없고요?”
전비아는 가지 않고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선자께서 말씀해 주시지요.”
“에이, 한 형이 먼저 이야기 꺼내기를 기다리려니 답답해 죽겠네요. 여기요. 이전에 약속한 것은 지켰습니다. 이걸로 광령도과를 얻을 수 있을지는 수사의 능력에 달렸어요.”
“하하, 고맙게 잘 받겠습니다.”
전비아가 하얀 옥간을 던져 주자 눈을 반짝인 한립은 미소를 띠고 그것을 끌어왔다.
“신세진 것도 갚았고 정말 가볼게요.”
여인이 대전 안으로 다시 들어가자 한립은 옥간을 거두고 광장의 하얀 전송진으로 걸어갔다.
쿠릉!
한립이 안으로 들어가자 옆에서 비석 하나가 솟아올랐다. 한립은 비석을 살피다 움푹 들어간 곳에 은빛 용비늘을 쏘아 보냈다.
번포자에게 받은 초청장이었다. 초청장이 꽂힌 비석에서 기이한 파동이 나와 전송진과 연결되었다.
하얀빛이 번지고 한립은 비석에 쏘아 보낸 은빛 비늘을 챙긴 후 사라졌다.
* * *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머리에 뿔이 나고 몸에 비늘이 돋아난 사람들이 작은 마을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밖에 특수한 기운을 가진 이들이 용모를 감추고 마을 상점을 돌아다니며 마을 사람들은 잘 찾지 않는 숨겨진 점포들을 방문했다.
“예에? 풍정금(風精金)을 2만 근이나 원하신다고요?”
어두운 점포 안에서 머리에 뿔이 난 중년 주인이 깜짝 놀라 손님을 바라보았다. 최근 큰 거래를 여러 번 했지만 오늘 이 손님처럼 대량 구매를 하려는 경우는 드물었다.
“왜, 수량이 부족한 것인가? 이곳이 진룡도에서 전문적으로 풍정금을 거래한다던데, 이 정도 수량도 갖고 있지 않은가?”
“선배님께서 보름 전에만 오셨어도 맞춰드릴 수 있었지요. 그런데 지금은 8 천근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나머지는 보름 전에 다른 선배님들이 사가셨습니다.”
중년 주인장이 공손히 답했다.
신분을 숨긴 이들이 다른 계면에서 온 강자들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진룡 혈맥을 이어받은 중계 용인(龍人)인 주인장도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8천근이 남았으면 그만큼이면 됐네. 이거면 되겠지?”
푸른빛 속의 인물은 둥근 고리 하나를 던져 주었다.
“옙, 잠시만 기다려 주시면 바로 사람을 시켜 재료들을 가지고 오겠습니다.”
중년인은 저물탁 속 물건을 확인하고는 얼른 원반 형태의 법기를 꺼내 무어라 중얼거렸다.
일다경이 지나 점포 뒤쪽의 작은 방에서 작은 전송진이 울리고 건장한 청년 용인이 나타났다. 그는 날듯이 이쪽으로 다가와 푸른 저물탁 세 개를 중년인에게 바쳤다.
“수량이 맞는지 확인해 보십시오.”
중년인은 그것을 받자마자 한립을 향해 두 손으로 바쳤다.
“귀 족의 명성을 믿으니 따로 확인할 것 없네.”
푸른빛 속의 인물은 손을 까닥해 저물탁 세 개를 회수하고 거침없이 발길을 돌렸다. 그가 나가고 긴장하고 있던 용인 두 명만 점포에 남았다.
“와, 저 많은 풍정금을 수량도 확인해 보지 않고 그냥 나가시다니 멋있네요.”
건장한 젊은 용인이 긴장을 풀며 감탄을 터트렸다.
“네가 뭘 아느냐! 진룡도에 온 외부인들은 진룡 대인들과 연관이 있으신 분들이다. 그 정도 경지에 이르러 우리 같은 작은 점포에서 사기를 칠까 두려울 턱이 있더냐? 집사에게 안 좋은 소리 한마디만 전해도 우리를 쫄딱 망하게 할 수 있는데 말이야.”
중년인이 눈을 부라리자 젊은 용인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 푸른 빛 속의 인영은 작은 마을을 빠져나와 어느 산 위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푸른 의복을 걸친 한립이었다. 그는 저물탁을 꺼내 수량을 확인하고는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진룡도의 다른 곳을 향해 날아올랐다.
* * *
세 달 후.
푸른 빛줄기가 새빨간 산맥으로 진입해 평범해 보이는 산골짜기로 떨어졌다. 골짜기 중앙의 광장에는 다양한 복색의 남녀 다섯이 앉아 있었다.
어린 여자 아이, 청록색 피부의 노옹, 중년 부부 그리고 피부에 은색 꽃문양이 있는 거한이었다.
허공을 선회해 광장에 떨어진 푸른빛 속에서 한립이 걸어 나왔다. 그는 다른 이들을 살피고 여자아이와 머지않은 곳에 자리를 잡고 가부좌를 틀었다.
다른 이들은 그가 온 것에 무관심했다.
또 한참이 지나, 멀리서 파공음이 들리고 오색 빛줄기가 날아들었다. 둔광이 가시고 나타난 여인은 냉랭한 표정으로 광장을 둘러보고는 아무도 없는 구석으로 가서 앉았다.
“다들 모이셨으니 교환회를 시작하겠습니다. 다들 이견이 없으시면 노부가 먼저 시작하지요.”
청록색 피부 노옹이 여인이 앉는 것을 보고 천천히 일어났다.
“그러시지요.”
“누가 먼저 시작하든 상관없습니다.”
몇몇 사람들이 동의했고 한립을 포함한 나머지도 반대하지 않았다. 이에 노옹은 시간을 끌지 않고 소매를 털었다.
쿵!
광장에서 하얀빛을 발산하는 네모난 돌 탁자가 솟아올랐고 그 위로 반짝이는 열댓 개의 물건들이 보였다.
옥함이나 목함에 든 물건을 제외하면 다들 영계에서 보기 드문 보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심지어 그중 몇 개는 무엇인지 알 수도 없었다.
“이 물건들로 저는 만년 음수(陰水), 헌원목(軒轅木), 구규령취(九竅靈翠)를 바꾸고자 합니다. 물론 현천잔보 같은 보물이 있다면 그것도 좋고요.”
노옹이 말을 하면서 목함과 옥함도 하나씩 열어 보였다. 나머지 사람들이 돌 탁자 위의 물건을 무표정하게 쳐다보았다.
“아니, 이것들이 마음에 차지 않으십니까? 그런 것이면 당장 거둬 드리고 다음 수사의 차례로 넘어가겠습니다.”
노옹은 다들 말이 없자 성질 급하게 재촉했다.
“잠시만요. 제게 헌원목이 한 토막 있습니다. 수사께서 마음에 드실지 모르겠습니다.”
그 말에 겉모습처럼 목소리도 아주 앳된 여자아이가 입을 열었다. 아이가 거무튀튀한 물건을 날려 보내자 얼른 끌어와 살폈지만 금세 실망한 기색을 드러냈다.
“원하던 것보다 덜 자랐고 크기도 작습니다. 이걸로 교환하고 싶은 물건이 무엇입니까?”
“태을금단(太乙金丹)을 거래하고 싶습니다.”
노옹의 물음에 여자아이가 정확히 옥함을 가리켰다.
“태을금단이면 가치가 엇비슷하겠습니다. 거래하시죠!”
이번에는 노옹도 망설임 없이 승낙했다. 여자아이는 손을 까딱해 옥함을 끌어온 다음 다시 자리에 앉았다.
“저는 저 옥궐(玉闕)이 흥미롭습니다. 만년 음수와 효과가 비슷한 예음액(穢陰液)으로 거래가 되겠습니까?”
기다렸다는 듯 중년 부부 중 사내가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이번에도 노옹은 거래를 승낙했다. 이어서 몇몇이 일어났고 돌 탁자 위의 물건 대부분이 순조롭게 거래가 되었다. 한립도 금속도 아니고 돌도 아닌 재료 하나를 교한했다.
노옹은 마지막으로 더 거래할 사람이 없는지 묻고는 흡족한 얼굴로 남은 물건을 회수해 물러났다.
“다음은 누가 나서시겠습니까?”
나른한 목소리가 물었다.
“원하는 분이 없다면 제가 먼저 나서겠습니다.”
한립이 눈을 반짝이며 미소를 머금고 지체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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