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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424화 (1,181/2,000)

1424화. 다시 마원해(魔源海)로

*

보름이 지나 복령산 정상의 금제가 갈라지고 푸른 빛줄기가 빠져나와 인근 고공에 대기 중이던 새까만 거대 선박으로 돌아갔다.

쿠릉.

거대 선박은 바로 출발해 멀리 하늘 끝으로 사라졌다.

선실 밑바닥에 있는 밀실에 앉은 한립은 청록색 병을 들고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이틀 전 그는 강대한 의식을 기반으로 봉인된 선인에게 추혼술을 펼치는 데 성공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절반의 성공이었다.

상대의 의식세계에 침입은 했으나 아주 중요한 정보는 모종의 비술로 봉인이 되어 있어 접근할 수 없었다.

그가 접근 가능한 부분의 기억을 확인했을 때, 상대의 머리가 터져나가며 선인의 의식 자체가 소멸되었고 육체마저 괴이한 힘에 의해 순식간에 재로 변했다.

한립도 무척 예상 밖이란 표정이었지만 옆에서 지켜보던 영왕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나마 그의 기억 속에서 작은 병과 마량 그리고 구원관의 대략적인 관계를 유추할 수 있었고 그에게는 아주 중요한 정보도 얻을 수 있었다.

“병령이 마계에 숨겨져 있다라…….”

그는 혼잣말을 하며 기억을 되뇌었다.

상대가 어째서 장천병을 훔쳐 구원관에서 달아났는지는 몰라도 장천병이 어째서 둘로 나뉘어 하계에 떨어졌는지는 알았다.

봉인되어 있던 선인은 선계에서 구원관의 추격을 피하느라 막대한 대가를 치르고 대나이부(大挪移符)를 준비해 또 다른 선역으로 달아나려 했다.

그런데 전송 중 부적의 힘이 모종의 신비한 힘에 영향을 받아 괴이하게도 하계로 떨어져 버리고 만 것이다.

그 과정 속에 간신히 임시로 봉인해둔 장천병이 돌연 달아나려고 발버둥 쳤고, 놀란 그는 다급히 각종 비술을 썼지만 병령이 먼저 천부적인 신통을 이용해 껍데기와 병령을 분리해 다른 두 계면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다행히 선인이 급한 와중에도 병령에 추적 술법을 걸어놔 나중에 되찾을 가능성을 남겨두었다. 병령만 되찾으면 그 껍데기의 위치를 감응해 다시 온전한 장천병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일은 그 진선도 영계로 떨어지며 계면의 압력에 중상을 입어 육신이 소멸하고 수행이 크게 줄었다는 사실이었다.

어쩔 수 없이 서서히 영물을 이용해 진선의 몸을 복구한 그는 예전의 수행을 되찾으려 노력하고 있었다.

그동안 선인은 여러 번 술법을 펼쳐 병령이 숨어 있는 곳이 인계와 극히 가까운 마계라는 것을 파악해 두었고 임시로 화신을 만들어 영계 곳곳의 영약을 찾아내게 했다.

뇌명대륙의 광한계도 몰래 다녀갔을 정도였다.

한립이 그곳에서 갖고 나온 은색 연방(蓮房)은 진선이 육체를 응결하는데 큰 도움이 되는 영약이었는데, 당시에는 아직 덜 익어서 그대로 남겨두고 떠났다는 기억이 있었다.

진선은 그로부터 훨씬 뒤에 한립이 나타나 영약들을 모조리 채취해 가져가 버릴 줄은 몰랐던 것이다.

이에 선인은 열을 받아 머리가 터질 뻔했고, 그래서 육체 주조를 마치자마자 수행을 끌어올리기 전에 급히 해저 궁전을 나와 한립을 추적하다 선계와 선인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는 영왕을 만나 이 꼴이 되었다.

한립이 생각해도 기이한 일이었다.

똑!

그는 청록색 작은 병을 기울여 작은 액체 방울을 떨구었다. 영약들의 성장을 촉진하던 신비한 액체가 아니라 봉인 진선의 몸에서 고생스럽게 추출한 피였다.

이게 있어야 그도 마계에 있는 병령을 추적할 수 있었다.

장천병을 복구하면 부릴 수 있게 될 각종 역천의 신통들을 생각하니 한립도 가슴이 쿵쿵 뛰었다.

“다시 한번 마계에 다녀와야겠어.”

그때 느닷없이 품에서 용울음 소리가 울렸다. 한립이 흠칫 놀라 병을 거두고 품에서 꺼낸 것은 은빛이 용비늘이었다.

비늘 표면에는 은색 고대 문자들이 한 줄로 나열되어 있었다.

“2년 후 진룡의 섬! 광령도과대회가 드디어 개최되는구나.”

한립은 내용을 읽고 눈에 이채를 띠었다.

“적잖은 계면의 강자들이 모일 테니 가서 견문을 넓히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광령도과를 복용하면 잠시 광령도체가 되어 내가 수련한 몇 가지 신통에 큰 도움이 될 테고, 전비아와 한 약속도 써먹을 수 있겠어. 2년이면 마계에 들렸다 가기에도 충분하고 말이야. 가기 전에 완이에게는 걱정하지 않게 미리 알려야겠군.”

한립이 고대 거울을 꺼내 빠르게 법결을 날리자 거울에 은색 문자들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뱃머리에 앉아 기다리던 그는 거울에 파동이 일고 하얀 문자들이 나타나자 미소를 지었다.

그의 쌍수반려는 항상 계획에 동의해주었고 조심해서 다녀오라는 말을 남겼다. 한립은 소매를 펄럭여 고대 거울을 치우고는 거대 선박의 속도를 높였다.

* * *

두 달 후, 마계.

쿠콰쾅!

황량한 잿빛 땅 상공에 암녹색 검빛이 번득이고 하얀 공간균열이 생겨났다. 균열 안에서 빠져나온 것은 암녹색 목검을 든 한립이었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고는 살짝 미간을 좁혔다.

이번에 순조롭게 마계로 잠입한 것은 영계와 거리가 가장 가까운 공간접점을 찾았고 그가 현천참령검을 다루기에 충분한 법력을 지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전에 막간리가 가장 취약한 접점을 찾아 마계로 진입했지만 결코 이렇게 간단한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병령을 찾기 위해 온 것이라 어디에 도착했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한립은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입에서 푸른빛에 감싸인 손바닥 크기의 청록색 병을 내뿜었다.

“커져라.”

열손가락을 튕겨 연달아 법결을 던져 넣자 병이 빠르게 커져 사람 만하게 변했다. 병의 짙은 녹색의 문양이 세세하게 보일 정도가 되자 한립은 소매 속에서 백여 개의 깃발을 날려 주변 허공에 스며들게 했다.

그가 두 손으로 수결을 맺자 주변 공기가 팽팽하게 긴장해 웅웅 거렸다.

깃발들이 사라진 허공에서는 다채로운 빛깔의 주술문자들이 흘러나와 거대 빛의 진법을 형성하고 거대 병을 중앙에 두었다. 한립은 주문을 외며 표표히 거대 병 위로 떠올라 가부좌를 틀었다.

그때 비술에 의해 연계된 거대 병과 빛의 진법이 깜빡깜빡 거리고 있었다.

콰릉!

천둥소리와 함께 병에서 암녹색 빛기둥이 빠져나와 하늘 높이 치솟았다. 동시에 괴이한 파동이 사방팔방으로 퍼져나갔고 한립은 더욱 소리를 높여 주문을 외웠다.

* * *

마계 어딘가의 비밀 공간.

웅!

옅은 은색 액체가 절반 정도 채워진 연못 하부에서 석판이 밝게 빛나며 빛의 진법이 떠올랐다.

빛의 진법 중심에 주술문자들이 집결해 허공에 검은 구멍을 만들어냈고 그 사이로 암녹색 빛기둥이 빠져나왔다.

녹색 빛이 반짝이고 빛기둥은 연못을 뚫고 나와 비밀 공간 천장으로 사라졌다.

* * *

한립은 눈꺼풀을 꿈틀하며 밝은 얼굴로 눈을 떴다.

“정말로 감응이 되다니, 병령은 마계에 있었어! 이번에 엄청난 기연을 만나게 되겠구나.”

한립은 술법을 거두고 몸을 일으켜 병령을 감응한 방향을 쳐다보았다.

거대 진법이 흩어지고 백여 개의 진법 깃발과 병을 거둔 그는 허공을 박차고 푸른 빛줄기가 되어 쏘아져 나갔다.

이후 한립은 며칠에 한 번씩 같은 술법을 펼쳐 방향을 확인하고는 밤낮없이 병령을 찾아 날아갔다.

가끔 마족이나 마수를 마주쳤지만 그저 둔술을 써서 지나칠 뿐이었다. 그의 신통에 전력으로 날아가면 마계에서 쫓을 수 있는 자는 손에 꼽혔다.

평범한 마족들은 바람 소리와 같은 파공음을 듣고도 한립의 둔광을 찾지 못해 어안이 벙벙해졌다.

반년 후, 거무튀튀한 암석으로 이루어진 거대 산봉우리 정상.

한립은 거목에 등을 기대고 앉아 멀리 안개로 뒤덮인 검은 해수면을 보며 침음했다.

“마원해(魔源海)였다니……. 병령이 이곳에 감춰져 있단 말인가? 하긴 어디면 어떻겠는가. 감히 누가 나를 막는다고.”

잠시 고민하던 한립이 한 손으로 수결을 맺자 산봉우리 상공에 파동이 일고 새까만 선박이 떠올랐다. 바로 묵령성주였다.

너무 눈에 띄는 비행 법기라 이제까지는 둔술을 펼쳐 날아왔는데 마원해 같은 인적이 드문 곳에서는 써볼 만했다.

그의 등 위로 천둥소리가 들리고 은색 뇌전에 휩싸인 해 도인이 나타났다.

“마원해에 대해 해 형 만큼 잘 아시는 분은 없겠지요. 수고스럽지만 안내를 해주셔야겠습니다.”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멀리 검은 바다를 보며 해 도인이 담담히 답했다. 이에 한립은 미소를 짓고는 그를 데리고 선박에 올랐다.

* * *

보름이 훌쩍 지나 비취색 거대 섬 상공에 거대 선박이 멈춰서있었다. 전방에는 거대한 빛의 진과 거대 병이 깜빡거리고 있었다.

한립이 뱃머리에서 수결을 맺어 비술을 펼치고 있는데 돌연 거대 섬에서 냉랭한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감히 고령도(苦靈島)에 침입하려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포효 소리가 들리고 머리가 셋 달린 검은 교룡이 솟아올라 이쪽으로 날아들었다.

교룡에는 삼두 흑교(黑蛟)의 중간 머리에 보랏빛 눈동자를 지닌 살기등등한 흑포 청년이 타고 있었다.

“한립! 어떻게 성계로 들어온 겁니까?”

청년은 한립의 얼굴을 확인하고 흠칫 놀랐다. 상대는 마족 3대 시조 중 한 명인 원염이었다.

“제가 못 올 곳이라도 왔습니까?”

한립은 그다지 놀라지 않고 술법도 중단하지 않은 채 담담히 반문했다.

“흥, 가만히 영계에 머물면 될 분이 어째서 또 고령도를 찾은 건지 묻는 겁니다. 이미 대승기에 이르렀으니 세령지에 몸을 담가도 더는 도움이 되지 않을 텐데요.”

원염은 한립 뒤의 해 도인과 유난히 밝게 빛나는 빛의 진법을 보고는 좋지 않은 어조로 말했다.

“괜한 걱정이십니다. 저는 찾고자 하는 또 다른 물건이 있어 그 물건만 찾으면 알아서 떠날 겁니다.”

“물건이요?”

“예, 원 형께서는 신경 쓰실 필요 없는 물건입니다.”

대수롭지 않게 답한 한립이 마지막 법결을 던져 넣자 거대 병이 암녹색 빛기둥을 하늘 높이 뿜어냈다.

원염은 안색이 달라졌지만 머뭇거리다 술법을 막지 않고 어두운 얼굴로 기다렸다.

한립이 선인을 죽였다는 이야기까지는 아직 마계에 전해지지 않았지만 보화와 예전에 명충모를 죽인 것만으로도 충분히 경계 대상이었다.

게다가 고령도 같이 마기가 희박하고 마족에게 불리한 곳에서 한립과 싸울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거기다 해 도인이 한립 옆에 서서 그를 주시하고 있는 것도 함부로 공격을 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였다.

“오오, 과연 이곳에 있었어.”

눈을 감고 감응을 하던 한립은 반응이 오자 재빨리 병과 진법 깃발들을 거두고 해 도인과 함께 둔광으로 변해 하늘을 갈랐다.

원염도 주저 없이 그들의 뒤를 쫓아갔다.

* * *

그들은 빠른 속도로 눈 깜짝할 사이에 거대 섬 중심부에 도착했다.

멀리 평범해 보이는 산봉우리 위로 둔중한 폭음이 들리고 하얀 빛기둥이 솟아올랐다.

곧 주변 풍경이 달라지면서 비취색 산봉우리와 영기로 가득 찬 산골짜기가 나타났다.

“영소천주(靈霄天柱)!”

한립은 빛기둥을 보고 아연해했다.

지난번에 왔을 때는 금제를 깨고서야 나타났던 빛기둥이 지금은 어찌 스스로 산골짜기에서 솟아올랐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가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푸른빛이 소매를 빠져나와 빛기둥 속으로 쇄도했다.

한립은 안색이 급변해 얼른 손을 뻗었고 무형의 힘이 밀려들어 푸른빛을 수백 장 밖에서 잡아챘다. 빛이 가시고 드러난 것은 청록색 작은 병이었다.

표면에 암녹색 주술문자가 떠오른 작은 병은 거의 투명하게 변해 몸을 떨며 몸부림치고 있었다. 동시에 빛기둥 속에서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들리고 노란빛이 유성우처럼 날아들었다.

‘저건!’

흠칫 놀란 한립이 곧바로 다른 손을 뻗었다. 노란빛 상공으로 파동이 일고 금색 거대 손이 나타나 신속히 노란빛을 낚아챘다.

쉬쉬쉬쉬쉭!

노란빛 속에서 불현듯 푸른 실들이 튀어나와 단단하기 그지없는 금색 거대 손을 뚫어버렸다.

구멍이 숭숭 뚫린 거대 손은 부르르 떨다 영기의 빛으로 흩어졌고 노란 빛은 흐릿하게 사라져 청록색 작은 병 옆으로 이동했다.

노란빛 속에는 또 다른 노란 작은 병이 들어있었다. 색깔만 다를 뿐 청록색 병과 똑같이 생긴 병이었다. 노란 병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다급히 청록색 병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나로 융합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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