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0화. 진선을 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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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립이 변한 마신은 안색도 변하지 않고, 중간 머리의 얼굴에 수정빛 광채가 흐르자 다시 목검을 휘둘렀다.
이에 천지원기가 들끓고, 암녹색 가느다란 실이 쏘아져 나갔다.
‘또!’
마량은 안색이 달라져 곧바로 양 소매를 털어 백여 개의 오색찬란한 보물들을 날려 보냈다.
콰르릉!
보물들은 암녹색 실을 향해 불나방처럼 달려들어 폭발해 눈부신 빛을 토해냈다.
범상치 않은 보물들의 자폭에 암녹색 실도 주춤거렸고 백 개에 이르는 보물이 다 터졌을 때는 실의 길이가 꽤 줄어 있었다.
이때 마량의 손가락에 금빛 선이 생기고 툭 떨어져 나왔다.
쿵!
떨어진 손가락이 핏빛 안개로 폭발하며 남은 암녹색 실을 붕괴시켰다.
“두 번째다! 겨우 대승기 수사 주제에 현천의 보물을 세 번이나 사용할 수는 없을 터. 크큭, 게다가 저렇게 방대한 검진을 운용했으니 이제 법력이 거의 바닥날 것이 아니겠느냐?”
마량은 잘려나간 손가락을 보고 마음이 좋지 않았지만 한립을 흉흉하게 노려보고 반짝이는 은색 피리를 불러냈다.
“제가 현천의 보물을 몇 번이나 사용할 수 있을 지는 지켜보면 알게 될 겁니다. 허나 당신의 상태가 저보다 더 안 좋은 것 같습니다.”
마신의 세 개의 머리가 동시에 냉소를 흘렸다.
하지만 확실히 바로 목검을 휘두르지 않고 나머지 다섯 개의 손을 펼쳐 금빛 속에서 지팡이, 망치, 봉 등의 다섯 가지 병장기를 만들어냈다.
“크하하! 다음 번 공격에 넌 죽는다!”
그 소리에 마량은 분노했지만 겉으로는 광소를 터트리고 은색 피리를 입으로 가져갔다.
휘리리리.
은색 음파가 구성진 피리 소리를 타고 마량의 의식에서 빠져나갔다. 은색 파동에 공기가 웅웅 울렸다.
한립이 변한 거대 마신도 피리 소리를 듣자 머리가 묵직해지고 술에 취한 것처럼 몽롱해졌다. 동시에 주변 풍경이 흐릿해지더니 마치 펄펄 끓는 핏물 바다 속에 들어와 있는 착각이 들었다.
키에에엑! 크하하학!
핏물 속에서 무수히 많은 악귀들이 날아들었는데 다들 대승기 수행을 지니고 있었다.
“겨우 환술로 나를 미혹하려 하다니.”
한립은 진짜 같은 환상에도 당황하지 않고 손에 들고 있던 병장기로 사방을 갈랐다. 무시무시한 기운의 파동이 사발팔방으로 퍼져 피의 바다와 악귀들을 모조리 멸했다.
아무리 고명한 환술도 압도적인 힘에는 속수무책이었다.
그 모습에 마량은 입 꼬리를 끌어올렸다. 피리소리는 여전했고 그의 등 뒤로 언뜻 허상이 나타났다 허공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그리고 사라졌던 환상이 음파를 따라 다시 밀려들어 그를 포위했다.
‘그렇다면…….’
움찔한 한립은 무언가를 깨닫고 재빨리 병장기에 금색 기운을 뿜어 환상을 부수었다.
그리고 단전에 위치한 원영이 수결을 맺고 맑은 기운을 일으켜 순식간에 경맥을 타고 세 개의 머리로 향하게 했다.
다행히 술에 취한 듯한 기분이 씻은 듯 사라졌다. 아무리 피리소리가 귓가에 또렷이 울려도 더 이상 환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 모습에 마량은 속으로 크게 놀랐다.
은색 피리는 그가 아끼는 보물들 중 하나로 의식의 힘이 그보다 강대하지 않은 자는 환상에 갇혀 빠져나올 수 없었다.
가볍게 음파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것을 보면 상대는 그보다 의식의 힘이 강하다는 소리였다.
비록 계면의 압력 때문에 의식의 힘도 제약을 받았지만 그래도 평범한 선인과 비교해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이렇게 그가 따로 준비하던 필살기는 무용지물이 되었다. 이에 마량이 다른 방법을 쓰려는데 삼두육비의 범성마신이 성큼 앞으로 나와 종적을 감추었다.
‘이런!’
전투경험이 풍부한 마량은 곧장 은색 피리를 거두고 신형을 움직여 수백 장 밖 허공으로 움직였다.
쿠앙!
굵직한 다섯 줄기의 금빛이 마량이 원래 서있던 곳을 스치고 지나가 허공을 왜곡시켰고 파동과 함께 범성마신이 나타났다.
마량은 다섯 개의 금색 병장기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저런 괴력을 담은 공격이라면 진선인 그도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그는 결코 한립과 근접전을 벌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진원이 크게 상하고 선령력도 고갈되어 쓸 수 있는 것이 몇 가지 없었다.
그가 멈칫하고 있는 사이 범성마신은 또 성큼 앞으로 나서 사라졌다. 마량은 가슴이 철렁해 몸을 날려 다른 곳으로 순간이동을 했다.
잠시 후 금빛 파동이 그가 있던 자리를 강타했고, 한립이 변한 마신은 번득 나타났다 또 사라졌다.
쿠앙! 쿠쿵! 콰릉!
이렇게 둘이 번갈아 가면서 사라지기를 수차례, 한립과 마량은 방원 백 리를 미친 듯이 이동하며 폭음을 터트렸다.
마량은 열댓 번을 이동하고도 한립이 계속 쫓아오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이에 그는 더 이상 순간이동을 하지 않고 소매 속에서 옥함을 꺼내 신중한 얼굴로 법결을 던져 넣었다.
쾅!
파동이 일고 이전처럼 굵은 금빛이 날아들어 옥함을 부서트렸다. 옥함의 파편 속에서 적홍색 불 구름이 빠져나와 새빨간 긴 수염을 기른 괴상한 교룡으로 변했다.
금빛을 거두고 본 모습을 드러낸 병장기들은 거침없이 괴교(怪蛟)를 둘러싸고 공격을 가하려 했다. 그런데 괴교는 몸을 움직여 붉은 불씨로 흩어져 마량 옆에서 다시 나타났다.
“으하하, 두 번째 금제까지 풀어버리다니 아주 곤란한 상황에 처하셨나 봅니다.”
괴교가 빙글 돌며 적홍색 난쟁이 소인으로 변해 마량을 힐끔 쳐다보았다. 이때 고공에서 나타난 범성마신이 여섯 개의 손에 무기를 들고 적홍색 소인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는 바로 공격을 가하지 않았다.
“화수자, 쓸데없는 소리 말고 어서 저 녀석을 죽여라!”
“기왕 자유를 되찾았는데 왜 당신의 명을 따라야 하지요?”
마량이 차가운 얼굴로 명을 내리자 적홍색 소인이 얄밉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흥, 본명주(本命珠)를 되찾을 생각이 없는 모양이지?”
“본명주를 돌려주겠단 말입니까? 헛, 꼴이 그게 뭡니까! 어쩐지 나를 풀어 주었다 했더니……. 구원도조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면 도와드리지요.”
“뭐라? 조사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라고!”
“허허, 맹세하지 않으면 나도 돕지 않겠습니다.”
“좋다. 조사의 이름을 걸고 맹세를 하겠다. 다만 오늘 나를 도와 저자를 죽이고 선계로 돌아간 후 만 년 동안은 내 곁에 남아 있어야 한다.”
마량이 고민하다 이를 갈며 답했다.
“만 년이야 뭐. 순식간이지요. 알겠습니다, 저 녀석은 내가 쫓아 드리겠습니다.”
“방심하지 마라. 너 역시 이곳 계면의 압력 때문에 제약을 받는데다 육체가 한 번 망가졌으니 제 실력을 내기 어려울 것이다.”
“걱정 마십시오. 당신이 이렇게 낭패를 당했는데 방심할 리가요. 물론 내가 상대를 붙들고 있는 동안 죽일 수 있을지 없을지는 당신의 능력에 달렸습니다.”
화수자는 고개를 돌려 한립이 변신한 삼두육비의 마신을 보았다.
“이렇게 강력한 불 속성 영력 파동이라니, 화령(火靈)의 몸인가 봅니다!”
한립이 변한 마신이 먼저 입을 열었다.
“화령? 뭐 그런 것으로 착각해도 상관없다. 겨우 하계의 존재가 마량을 저 꼴로 만들다니 대단하구나. 허나 약속한 것이 있어 마량을 도와 싸워야 할 것 같다.”
화수자는 웃음을 흘리며 답했다.
“하하, 그렇다면 더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실력으로 이야기 하시지요!”
범성마신도 웃음을 터트리고 다섯 개의 병장기를 휘둘렀다. 적홍색 소인은 한 손으로 수결을 맺어 화륵! 불 구름에 휩싸여 다시 거대한 괴교로 돌아갔다.
괴교는 득달같이 발톱을 휘둘러 허공에 붉은 구름으로 이루어진 거대 발톱을 만들어냈다.
쾅!
병장기들은 부르르 몸을 떨며 놀랍게도 붉은 거대 발톱에 붙들려 있었다.
범성마신의 세 얼굴에도 놀란 기색이 스쳤다. 변신한 후의 범성마신의 힘과 병장기가 품고 있는 괴력이 얼마나 센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량은 그제야 마음을 놓으며 남색 부적을 꺼내 몸에 붙이고 눈을 번득였다. 부적들이 푸른 안개로 변해 그의 몸에 스며들자 놀랍게도 그의 기력이 상당히 회복되었다.
이때 괴교는 긴 수염을 거칠게 휘둘러 수많은 광선을 날렸다.
범성마신이 두 손의 병장기를 치우고 수결을 맺어 금색 거대 딱정벌레를 불러냈다. 딱정벌레는 흐릿하게 거대 방패로 변해 그의 앞을 막았다.
광선이 비처럼 방패에 쏟아졌지만 약간 구멍이 파인 것 외에는 큰 이상은 없었다. 그러나 한립이 광선 공격에 주의를 기울인 사이 머리 위에 번개처럼 허상이 날아들었다.
쉭! 쉭!
범성마신의 두 머리가 돌연 고개를 쳐들고 미간 사이에 생겨난 세 번째 눈에서 검은 빛기둥을 쏘아 올렸다.
잠시 후, 참혹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허상은 검은 빛기둥을 두 대나 맞고 커다란 구멍이 뚫려 흩어졌고, 아래쪽에 있던 마량은 머리를 부여잡고 고통스럽게 신음했다.
한립은 그런 마량을 냉랭히 내려다보았다.
감히 분혼을 이용해 그를 직접 공격 하다니 스스로 고통을 자초한 것과 다름 없었다. 분혼이 완전히 찢겨나가지는 않았지만 공간균열 속으로 던져졌으니 오래지 않아 스스로 소멸할 것이다.
범성마신의 중간 머리가 아래쪽을 향해 은색 불구슬을 날렸다. 불구슬은 빙그르르 돌아 은색 불새로 변했는데 은빛 찬란한 깃털마다 수많은 금색 주술문자가 어른거렸다.
“가라.”
은색 불새가 날개를 활짝 펼치자 깃털의 주술문자들이 커지며 불새의 몸도 커졌다. 불새가 맑은 소리로 지저귀며 괴교를 향해 쇄도했다.
이에 괴교는 즉시 입을 쩍 벌려 굵은 적홍색 빛기둥을 발사했다.
쿠쿵!
불새 표면의 금색 주술문자가 빛을 발하고 적홍색 빛기둥이 그 안으로 스며들어 불새의 몸집만 더욱 키웠다.
“정염화(精炎火)? 그럼 저 불새가 정염화조(精炎火鳥)라고!”
깜짝 놀란 괴교는 나른하던 표정을 싹 지우고 겁에 질린 목소리로 말했다. 은색 거대 불새는 그러든 말든 괴교에 다가가 은색 화염을 날려 보냈다.
이에 괴교가 기겁하며 괴성을 질렀고 적홍색 구슬로 변해 표면의 기다란 수염을 마구 흔들었다.
구슬 바깥으로 붉은 보호막이 생겨났다. 수염들이 만들어낸 붉은 보호막은 은색 화염과 충돌해 얼마 버티지 못할 것처럼 번득거렸다.
‘과연 그렇군.’
한립은 자신의 예상이 맞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령불새는 태생적으로 각종 화염을 집어삼키는 능력을 지녔는데 지난 번 깊은 잠에 빠져 진화를 한 후로 불 속성 영수를 제압하는 능력이 더욱 강해졌다.
그러니 불 속성 영력이 강한 화수자를 상대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정염화에 파멸법목까지 수련했을 줄은 몰랐구나. 그것도 아주 대성을 했어! 아무래도 나도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마량은 간신히 두 손을 머리에서 떼고 괴교와 싸우는 은색 불새를 보고 무표정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고통스러워하던 직전과는 아주 상반된 표정이었다.
“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해보시지요.”
범성마신은 코웃음을 치며 들고 있던 나머지 병장기들을 날렸다.
그 순간 자리에서 사라진 마량은 순간이동을 해 다른 곳에 나타나 우윳빛 기운이 감도는 금색 단약을 입에 털어 넣었다.
“네 놈 때문에 진혼단을 생으로 삼키게 되다니. 네 놈의 숨통을 끊기 전에 죽느니만 못한 고통이 뭔지 보여주겠다.”
마량이 금색 단약을 삼키자 그윽한 약향과 함께 우윳빛 안개가 일어 그를 뒤덮었다. 그 일대가 하얀 운해로 변해갔다.
이에 범성마신은 손을 털어내 다섯 개의 금빛을 안개 속으로 쏘아 보냈다.
탱!
금빛은 안개 속에 무언가에 부딪치기라도 한 듯 튕겨 나왔다. 이에 의아한 눈빛을 보내던 범성마신은 입을 벌려 크게 숨을 훅! 내뱉었다.
휘우웅!
찰나의 순간 광풍이 일어나 하얀 안개를 흩어버려 내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에는 마량 외에 용모와 복색이 똑같으나 피부가 새까만 또 다른 청년이 서있었다.
청년은 이상하다는 얼굴로 흉하게 비틀린 팔을 거두었다. 맨 손으로 다섯 가지 병기를 막은 것이다.
“쯧쯧, 겨우 하계 수사 때문에 나까지 불러낸 것입니까? 그간 나를 그럭저럭 잘 공양했으니 이번만은 도와주겠습니다.”
검은 피부 청년이 자신의 팔을 꺾어 정상적인 모습으로 돌렸다.
“마 형, 저 놈의 원신은 남겨주십쇼. 이렇게 고생했는데 제대로 괴롭혀 주지 않으면 앞으로 한 동안 심마가 되어 남을 듯합니다!”
마량이 독하게 소리쳤다.
“하하, 그러지요.”
“천외마두!”
여섯 개의 눈에서 남색 빛을 일렁인 범성마신이 말했다.
“정답입니다. 제대로 맞췄지만 안타깝께도 상은 없네요?”
검은 피부 청년은 냉소를 하며 허공을 박차 번득하고 범성마신 앞으로 이동했다.
크아앙!
범성마신은 포효하며 다섯 개의 병장기를 빠르게 휘둘렀다.
그러나 청년은 괴이한 웃음소리를 내더니 검은 마염(魔焰)을 일으켜 흐릿하게 사라졌다가 형체가 없는 것처럼 다섯 병장기를 지나 범성마신의 몸을 관통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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