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9화. 장천병(掌天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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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살의 땅 중심부.
하얀빛이 차차 흩어지고 만 리의 땅이 평지가 되어 초대형 분지를 형성하고 있었다.
분지의 중심은 더더욱 거울처럼 매끈해서 굴곡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고, 그 위로 두 개의 물체가 미동도 없이 떠있었다.
거대한 구슬은 금빛 껍데기가 절반정도 타들어가 탄내를 풍겼고 자금색 거대 수정체는 흐릿하게 무언가를 품고 있었다.
쾅!
거대 수정체가 갈라지고 마량이 벌거벗은 사람의 모습으로 빠져나왔다. 청년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난색을 표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양의미진진. 선계의 진법을 사용해서 이런 위력을 낸 것이었어. 하하, 그래봤자 고작 모조품에 불과했지만…….”
마량은 중얼거리며 금색 구슬을 쳐다보았다. 구슬 표면에 금이 가고 새까맣게 타들어간 껍데기가 떨어지더니 금빛의 딱정벌레가 나타났다.
“금선탈각(金蟬脫殼)! 겨우 하계의 서금선이 이런 신통을 부려? 하하, 신기한 일이로다.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욱 자질이 뛰어나지 않은가!”
손뼉을 치며 웃음을 터트린 마량은 재빨리 은색 부적을 꺼내 금색 딱정벌레에게 날려 보내려 했다.
서금충왕도 이전보다 기운이 쇠약해져 있었지만 여전히 눈빛은 흉흉했다.
콰릉!
이에 서금충왕이 공격하려는데 고공에서 천둥소리가 들리고 은빛 뇌전 진법이 형성되었다. 흠칫 놀란 마량은 곧바로 부적의 방향을 은색 뇌전 진법으로 틀었다.
쉭!
은색 부적은 커다란 거대 도끼로 변해 뇌전 진법을 찍었다. 그러나 도끼날이 진법에 닿기 전에 날카로운 예기가 먼저 몰려들었다.
쿠릉!
뇌전 진법 안에 나타난 흐릿한 두 인영이 한 손을 뻗어 푸른빛을 날렸다.
챙!
거대 도끼와 푸른빛이 동시에 튕겨나갔다. 은색 도끼는 영기의 빛이 되어 흩어졌고 푸른빛은 작은 단검으로 변해 주인에게 돌아갔다.
뇌전 진법에서 나타난 두 사람은 한립과 해 도인이었다.
“또 죽고 싶어 환장한 것들이 나타났구나! 엇, 선괴뢰(仙傀儡)?”
마량이 한립과 해 도인을 발견하고 코웃음을 치다 한눈에 해 도인의 정체를 알아보았다.
“선계에서 오신 분 답게 해 형의 신분을 알아보시는군요. 그런데 영계의 힘에 반서를 당해 심한 부상을 당하신 듯합니다.”
한립이 대놓고 마량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때 금색 딱정벌레가 날개를 털고 쉭! 하고 금빛으로 날아들어 한립의 소매 속으로 사라졌다.
“내가 계면의 힘에 반서를 당할 거라고 옆의 선괴뢰가 알려줬나 본데, 내 아무리 부상을 입었어도 너희 둘을 죽이는 것은 간단한 일이다! 물론 얌전히 서금선을 바친다면 네 목숨만은 살려줄 수도 있다.”
마량은 눈을 번뜩였지만 겉으로는 대수롭지 않게 웃으며 말했다.
“서금선이라면, 제 서금충왕을 이르는 것입니까? 하하, 안타깝게도 그 말씀에는 따를 수 없겠습니다.”
“그렇다면 쓸데없이 너와 이야기 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냐. 너를 죽이고 서금선은 알아서 데려가겠다!”
태연한 한립의 대답에 마량은 얼굴을 굳히고 한 손으로 허공을 쥐어 핏빛 인장을 불러왔다.
그 순간 한립의 등 뒤로 범성법상이 떠올랐고 몸속에 푸른 검 그림자들이 빼곡하게 떠올라 검빛의 바다를 이루고 그를 보호했다.
콰릉!
뇌전 튀는 소리가 들리고 은색 뇌전에 휩싸인 해 도인은 뇌신(雷神)처럼 변해있었다.
웅웅웅!
그 순간, 한립은 돌연 가슴이 뜨끈해졌고 의복을 뚫고 푸른빛이 만발했다. 그의 품속에서 무언가가 진동하는 소리가 멀리까지 퍼져나갔다.
탓!
한립이 무의식중에 소매 속에서 암녹색 작은 병을 꺼내들자 마량은 그 푸르스름한 병 허상을 보고 미친 듯이 기뻐했다.
“장천병(掌天甁)! 그게 네 녀석에게 있었다고? 으하하하,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더니 이런 곳에서 찾게 되는구나! 배신자를 찾을 것도 없이 바로 보물부터 찾았어. 장천병을 갖고 돌아가면 시조께 큰 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장천병? 그게 무슨 소립니까.”
한립은 상대가 들고 있는 암녹색 작은 병을 보고 눈빛이 가라앉았다.
“시치미 떼지 말거라. 이것과 비슷한 병을 가지고 있지 않느냐? 내 도천병(盜天甁)은 모조품에 불과해도 장천병과 서로 감응할 수 있지.”
“이걸 말하는 겁니까?”
그는 품에서 비취색 기운이 가득한 작은 병을 꺼내들었다. 마량이 들고 있는 암녹색 병과 모양은 똑같았지만 아주 보잘것없어 보였다.
“그래, 바로 그것……. 아니, 왜 껍데기뿐이지? 병령(甁靈)은, 병령은 어디 있는 것이냐!”
마량이 작은 병과 자신의 병을 비교해 보고 좋아하다 안색이 급변했다.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한립은 진선의 이상한 표정에 눈을 가늘게 떴다.
“병령에 대해서는 네 놈도 모른다고? 흥, 보아하니 그 배신자 놈과 특별히 관계가 있지는 않나보구나. 일단 껍데기만 회수해 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병령에 관해서는 너같이 하찮은 하계 수사는 알 것 없다. 네 놈을 잡아 추혼술을 쓴 다음 저승길로 보내주마!”
마량은 암녹색 병을 치우고 다른 손으로 핏빛 인장을 던졌다.
팟!
핏빛 인장이 번득 사라지고 피의 강에서 핏물이 여덟 줄기 솟아올라 오조 혈룡으로 변해 한립을 향해 달려들었다.
진선은 대승기 수사와 엇비슷한 실력의 혈룡들이면 한립과 해 도인을 상대하기에 충분하다고 여긴 것이다.
콰릉!
해 도인은 제자리에서 빙글 돌며 금색 거대 게로 돌아갔다. 거대 게가 두 집게발을 움직이자 집채만 한 뇌전 구슬 두 개가 혈룡을 향해 날아갔다.
천둥소리와 포효소리가 터지며 황금 게와 혈령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한립이 숨을 들이마시며 푸른 병을 넣어두자 주변의 푸른 검빛의 바다가 웅웅 크게 진동을 했다. 푸른 검빛들이 반짝반짝 빛나며 광활한 검진을 펼치고 있었다.
크하아앙!
그의 손끝이 검진을 가리키자 검진 중심에서 용울음 소리가 울렸고, 푸른빛이 반짝이자 검진 중심에서 수백 장 크기의 푸른 용이 뛰쳐나갔다.
비취색 기운을 머금은 청룡(靑龍)은 꼬리를 힘껏 차고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드러낸 채 가장 가까이 있는 혈룡에게 달려들었다.
그 모습에 혈령도 주저 없이 입을 벌려 핏빛 빛기둥을 분출했다. 청룡의 몸에서 무수히 많은 검빛들이 번뜩이고 핏빛 빛기둥은 잘게 부서졌다.
멀리서 이를 지켜보던 마량은 미미하게 안색이 달라졌다. 그 순간 청룡과 혈룡이 한데 엉켰고, 순식간에 청룡이 혈룡을 찢어발겼다.
하지만 나머지 다섯 마리 혈룡들이 괴성을 지르며 각종 혈도술법을 펼치고 있었다. 청룡은 두려워하는 기색 없이 무수히 많은 음산한 검빛들을 뿜어 혈도술법을 상대했다.
스슷!
이때 갈기갈기 찢겼던 혈룡이 주변의 핏빛 안개를 응결해 다시 달려들었다.
청룡은 강력한 검기들로 홀로 여러 적들과 싸우며 온몸에 상처가 가득했지만 혈룡 한 마리를 더 찢어발기고는 핏빛 기운의 압력에 빛 알갱이로 흩어졌다.
나머지 혈룡들이 기뻐하며 한립을 향해 날아들었다.
팟.
무표정한 얼굴로 수결을 맺은 한립은 모호하게 검진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때 혈룡들 아래쪽으로 검명이 울리고 푸른 검진이 떠올라 또 다른 청룡을 내뿜었다.
사라진 것처럼 보였던 한립은 실은 시종일관 같은 자리에서 체내의 법력 절반만 움직인 채 검진이 흩어지지 않게 조종하는 중이었다.
청반검진은 그의 수행이 증가함에 따라 위력이 강해졌지만 대신 소모되는 법력의 양도 몇 배나 증가했다.
동급 수사와 비교해 법력과 의식이 월등히 뛰어났으니 쉽게 가능한 것이지 다른 이들이었으면 검진을 거둔 후에 다른 신통을 부릴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마량이 눈썹을 끌어올리며 수결을 맺고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 한립 머리 위로 쿠르응! 하는 소리가 울리고 핏빛 안개가 결집해 커다란 옥새 허상으로 변했다.
법칙파동 한 줄기가 밀려들고 인장 허상은 그대로 한립을 향해 떨어졌다.
“과연 진원의 힘이 이전만 못하십니다. 이전에 부리던 혈령괴뢰들도 응결해 내지 못하고요.”
한립은 놀라기보다 반가워하며 소매를 털어 작은 산봉우리 세 개를 분출했다.
“커져라.”
담담한 그의 명에 산봉우리들이 만장 거산으로 변해 눈부신 기운을 뿜어내며 핏빛 인장 허상과 격돌했다.
쿠콰콰콰쾅!
세 거산들은 바닥 쪽으로 쿵! 밀렸지만 핏빛 인장 허상의 하강을 안정적으로 막아냈다.
이때 핏빛 인장이 발산한 법칙파동이 한립에게 영향을 미쳤다. 몸이 서늘해지고 법력이 응결된 것이다. 그러나 한립은 당황하는 기색 없이 암녹색 검빛을 일으켜 법칙파동을 베었다.
펑!
두 가지의 법칙이 파도처럼 충돌했다 동시에 흩어졌다. 한립은 몸을 바르르 떨며 체내의 법력이 원래대로 회복된 것을 느꼈다.
“원합오극산! 현천의 보물!”
마량이 아연한 얼굴을 하며 대노했다.
그의 힘이 온전하기만 했어도 어찌 미완성의 오극산과 현천의 보물 따위에 만령혈새가 막혔겠는가!
진원을 크게 상한 그는 만령혈새의 위력을 제대로 발휘하기 어려웠다.
선인이 내심 다른 방법으로 공격해야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한립이 한 손으로 암녹색 목검을 쥐었다.
그가 전방으로 한 걸음을 내딛자 등 뒤의 법성법상이 달려들어 몸속으로 흡수되었다.
파아앗!
한립의 체내에서 맑은 울음소리가 들리고 각기 다른 빛덩이가 떠올라 청룡, 진봉, 청란 등 각종 진령 허상으로 변했다.
각 허상들이 발산하는 무시무시한 기운이 곧 그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자금색 빛을 터트린 한립의 몸은 폭발적으로 커졌다.
금색 비늘이 뒤덮인 피부에 은색 문양이 새겨지고 어깨와 옆구리에 머리 두 개와 팔 네 개가 더 자라났다.
크아앙!
거대한 삼두육비 마신의 등장이었다.
머리마다 외뿔이 달린 마신은 여섯 개의 눈을 번득였고 한 손으로 암녹색 목검을 쥐고 있었다. 바로 한립이 극성으로 익힌 열반성체 삼단변신이었다.
웅!
한립은 변신을 마치자마자 손목을 털어 암녹색 목검에서 은색 주술문자를 뿜어냈다. 천지원기가 요동치고 오색 빛 알갱이들이 폭포처럼 암녹색 목검으로 밀려들어갔다.
그 모습에 마량은 더 이상 주저하지 않고 은색 부적 8장을 날렸다. 부적들은 거대한 검, 도끼, 창 등 은빛으로 반짝이는 병장기로 변해 흐릿하게 사라졌다.
하지만 삼두육비 마신이 한발 빨랐다.
소리도 없이 기다란 초승달 모양의 암녹색 검빛이 엄청난 법칙의 파동을 발산하며 날아간 것이다.
콰콰쾅!
나중에는 아주 가느다란 암녹색 실처럼 변한 검빛은 부적이 변한 은색 병장기들을 거침없이 깨트려 버리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 속도가 너무 빨라 거의 순간이동에 가까웠고 어느새 마량의 지척에 이르렀다. 검빛의 예리함에 진선인 그도 전신의 피가 굳는 것 같은 기이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마량은 피하지 않고 소매 속에서 검은 방패를 방출하고, 동시에 입에서 새하얀 옥으로 만들어진 단검을 뿜었다.
스윽!
암녹색 실은 조용히 검은 방패를 가르고 하얀 단검으로 돌진했다.
쿵.
둔중한 충돌음과 함께 기이한 장면이 펼쳐졌다. 하얀 단검과 암녹색 실이 마량의 코앞에서 멈춘 것이다.
쨍강!
다음 순간, 하얀 단검이 산산이 부서졌고 암녹색 실도 흔적 없이 사라졌다. 단검이 부서지자 얼굴이 붉어진 마량은 금색 정혈을 울컥 토해냈다.
“감히 내 참원선검(斬元仙劍)을 부숴! 네 놈을 곱게 죽이지 않으리라!”
마량은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표독스럽게 쏘아붙였다. 하얀 단검이 그에게 퍽 중요한 보물이었던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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