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7화. 구겁멸령대진(九劫滅靈大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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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 대승기 수사들은 명존의 보호막 속으로 들어갈 수 없어 각종 방어 보물을 꺼내 겹겹이 보호막을 만들어냈다.
피피피핑!
핏빛 실들이 스치고 동시에 여러 명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가장 가까이 있던 은색 탑도 구멍투성이가 되어 위태롭게 반짝였다.
이에 대머리 거한과 대승기 강자들은 핏빛 실에 보호막이 파괴되고 전신에 미세한 구멍들이 숭숭 뚫렸다.
구멍에서 순식간에 핏빛 화염이 일고 그들은 원영도 달아나지 못한 채 푸른 연기로 사라지고 말았다.
명성이 자자하던 풍원대륙 강자들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일시에 죽어나갔다.
은균천서의 비호를 받은 명존과 세 명의 수사만이 간신이 화를 피했다.
핏빛 실들이 빛의 장막을 미친 듯이 때렸지만 보호막은 암담해졌을 뿐 다행히 깨지지는 않았던 것이다.
‘이럴 수가…….’
목숨을 건진 수사들의 얼굴은 창백하기 짝이 없었다. 명존도 어두운 얼굴로 얼른 흑예수들이 있던 방향을 힐끔 쳐다보았다.
흑갑 청년들 역시 수결을 맺어 검은 불의 장막으로 몸을 보호해 핏빛 실의 공격을 막아냈다.
마량은 아직도 수사들이 살아 있자 놀란 눈빛을 보냈다. 이에 재빨리 두 손으로 수결을 맺어 거대 인장을 가리켰다.
쿠르릉!
거대 인장이 한층 묵직하게 변해 아래쪽에서 간신히 버티던 은색 탑을 깨부수기 직전이었다. 탑이 사라지면 명존 등 나머지 수사들은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명 형, 이제 어찌합니까!”
은강자가 변한 은색 거인이 다급히 명존을 찾았다.
“어쩌긴요, 목숨을 걸어봐야지요! 너무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강력한 신통을 펼치느라 상대도 분명 막대한 진원의 힘을 소모했을 거예요. 연달아 두 번은 사용할 수 없을 겁니다. 여러분이 최선을 다해 잠시만 제 보물을 막아주시면 제가 비술을 펼쳐 봉인을 시도해 보겠습니다. 흑예수 수사들도 지금 본명 진화로 저를 보조해 주시면 됩니다.”
명존은 나머지 수사들과 네 명의 흑예수에게 동시에 전음을 보냈다.
“저자를 봉인할 거라고요? 성공 확률은 얼마나 되는 것입니까?”
오령 부인이 불안하게 물었다. 눈앞에서 죽어나간 동급 수사들을 보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혼백 일부를 희생해 펼치는 선계 비술이니 성공 확률이 적어도 5할은 됩니다.”
명존의 자신 있는 대답이 전음으로 들려왔다.
“알겠습니다! 저도 수사를 한 번 더 믿어보지요. 은 수사, 같이 가시죠!”
오령 부인은 기세등등한 핏빛 인장을 올려다보고 마음을 다잡았다. 은강자가 변한 은색 거인도 고개를 끄덕이고 기합을 넣었다.
거인의 몸에 두꺼운 은색 문양이 떠오르고 불끈 근육이 솟아오른 두 팔이 허공을 마구 갈겼다.
오령부인이 변한 돼지머리에 원숭이 몸을 지닌 괴물도 길게 포효하더니 두 손에 쥔 검을 챙! 하고 부딪쳐 옅은 노란색의 낭아봉으로 변형시켰다.
못이 수북하게 박힌 낭아봉이 움직이자 노란 바람이 일었다.
말이 없던 궁장 여인도 은강자와 오령부인이 나서자 머리에 꽂혀 있던 남색 구슬이 박힌 옥비녀를 뽑아 고공으로 투척했다.
펑! 펑! 펑!
옥비녀가 터져나가고 남색 구슬들만 치솟아 반짝였다. 마량이 변한 금색 거인의 눈에 비웃음이 어렸다.
그가 체내의 선령력을 끌어 올리자 핏빛 인장 주위로 선홍색 안개가 짙어지고 그 안에서 두꺼운 핏빛 촉수들이 자라나 아래쪽으로 쏟아져 내렸다.
쿠콰콰쾅!
은강자의 두 주먹에서 날아간 수많은 은색 주먹 허상들이 핏빛 촉수들을 부수고, 오령부인이 낭아봉을 휘둘러 날린 노란 돌풍도 핏빛 촉수들을 파괴했다.
또한 남색 구슬 세 개가 아예 형체가 없는 것처럼 고공에 떠있었는데 핏빛 촉수의 공격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곧 주먹 허상들과 노란 돌풍이 선홍색 안개에 부딪쳐 굉음이 터졌다. 거대 인장은 미세하게 몸을 떨었지만 여전히 묵직하게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은강자와 오령부인이 안색이 급변해 한 명은 허공을 박차고 열 손가락으로 고공을 받쳐 들었고 다른 한 명은 낭아봉을 던졌다.
쿠쿠쿵!
은색 거대 손이 나타나 열손가락으로 핏빛 인장 아래쪽을 받쳤고 동시에 하늘과 땅을 이을 듯 거대한 낭아봉이 인장이 떨어지는 것을 막아냈다.
은색 거대 손들이나 거대 낭아봉 모두 애달피 울며 오래 버틸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은강자와 오령부인은 내심 쓴웃음을 삼켰다.
이미 법력을 최대로 쏟아 붓고 있어 더 이상은 인장의 하강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바로 그때 남색 구슬 세 알이 인장 옆까지 도달해 선홍색 안개에 닿는 순간 폭발을 일으켰다.
이에 혼백을 얼려버릴 듯한 오싹한 한기가 퍼져나갔고, 커다란 남색 빙화(氷花) 세 송이가 한기 속에서 피어나 빙글빙글 돌다 수정 빛기둥을 분출했다.
콰아앙!
남색 한기가 빠른 속도로 퍼져 순식간에 인장 대부분을 얼음으로 봉인해 버렸다. 그 모습에 은강자와 오령 부인은 눈을 동그랗게 떴고 명존도 희색을 드러냈다.
“빙담화(氷曇花)의 씨앗! 하계에서 이걸 보게 될 줄은 몰랐구나. 허나 겨우 그까짓 수법으로 내 만령혈새를 막을 수 있을 듯싶으냐!”
마량이 변한 거인이 훅! 하고 인장 쪽으로 입김을 불었다.
화르륵!
인장 주변 허공에 금색 불씨들이 잔뜩 떠올라 거머리처럼 남색 얼음에 달라붙었다.
퍼퍼퍼퍼펑!
동시에 인장에서도 폭죽 터지는 소리가 들리고 핏빛 화염이 솟아올랐다. 남색 얼음은 바깥의 금색 불씨와 안쪽의 핏빛 화염에 서서히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명 형, 아직 입니까! 오래 버티지 못할 겁니다!”
궁장 여인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남색 빙화 세 송이를 조종하다 날카롭게 소리쳤다.
“안심하세요. 이미 손을 써 두었습니다.”
명존이 숨을 내쉬며 의미심장하게 답했다. 궁장 여인은 물론 은강자와 오령부인도 아연한 기색이었다.
팟.
마량이 변한 금색 거인 머리 위로 파동이 일고 푸른 소인이 나타났다. 빛이 반짝거려 얼굴은 알아볼 수 없었지만 두 손에 녹이 슨 검은 고대 등잔을 들고 있었다.
마량은 곧바로 고개를 쳐들고 입에서 금색 화염 한 줄기를 내뿜었다. 화염은 바람을 타고 번져나가 불바다로 변해 소인을 삼키려 들었다.
그런데 푸른 소인은 태연히 등잔을 들어 올려 몰려드는 금색 화염을 비추었다.
쉬이이잉!
불가사의하게도 검은 등잔 표면에 회백색 주술문자들이 날아오르고 주변의 금색 화염들이 천적을 만난 것처럼 속절없이 등잔 안으로 빨려 들어가 깨끗하게 사라졌다.
마량도 그걸 보고 움찔했다.
이때 소인이 돌연 푸른빛으로 변해 등잔 안으로 달려들었고 어두컴컴하던 등잔에 불이 붙었다.
화륵!
회백색 화염이 피어올랐다. 동시에 명존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고 비틀댔다.
우우웅!
고대 등잔은 진동하며 갑작스레 불길이 불어나 하늘 절반을 가리고 내려앉았다.
마량이 변한 금색 거인은 등잔의 회백색 화염에 휩싸인 순간 체내의 선령력이 응결되고 금색 보호막마저 흩어져 어떤 술법도 펼칠 수 없었다.
그 찰나의 순간 금색 거인 주위로 흐릿한 파동이 일었다.
그때 네 마리의 흑예수들이 허공에서 튀어나와 입에서 새까만 불구슬을 분출해 거인을 노렸다.
“전부 다 죽고 싶으냐!”
흠칫 놀란 마량이 노호성을 터트리고 두 주먹을 날렸다.
퍽! 퍽! 퍽!
충돌음이 들리며 새까만 불구슬 세 개가 거인의 주먹에 닿아 검은 빗방울처럼 흩어졌다.
쉭!
불구슬 하나만 돌연 검은 그림자로 변해 주먹을 피하더니 금색 거인 코앞에 이르러 평범한 얼굴의 회색 장포 사내로 변했다.
“구겁멸령대진(九劫滅靈大陣)!”
사내의 손바닥이 소리 없이 금색 거인의 허리에 닿았다.
느닷없이 검은 기운이 회색 장포 사내의 몸에서 폭발하더니 통통하던 사내의 팔뚝이 앙상하게 말라붙고, 아홉 개의 법칙파동이 손을 타고 빠져나가 괴이하게 하나로 융합되었다.
콰르릉!
앙상하게 말라붙은 팔이 금색 거인의 허리를 파고들어 폭발했다. 이에 9가지 빛의 화염이 미친 듯이 흘러나와 거인의 몸을 뒤덮고 거대 화인(火人)을 만들어냈다.
아홉 개의 빛깔을 내뿜는 불길 속에서 금색 거인의 살점이 녹아내리자 고통스런 신음이 들려왔다. 화염의 9가지 빛깔은 선명하게 나뉘면서도 고르게 섞여 있었고 각기 다른 법칙의 힘을 품고 있었다.
“진선이면 뭐 어떠냐! 내 구겁멸령대진에는 어쩔 수 없을 것이다!”
회색 장포 사내는 일격을 날리고 번득 사라졌고, 곧 명존 옆에 나타나 차가운 웃음을 흘렸다. 스스로 팔 한쪽을 날려먹었지만 진선을 처치한 것에 비하면 별것 아니었다.
금색 거인을 구속하던 검은 등잔의 불길이 사라지고 놀랍게도 펑! 하고 터져 빛 알갱이로 돌아갔다. 고대 등잔의 효과는 강력했지만 소모성 보물이었던 것이다.
은강자와 오령 부인 등은 선인이 제압을 당하자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시선을 교환했다. 명존 역시 금색 거인이 타들어 가자 드디어 얼굴이 웃음기가 떠올랐다.
구겁멸령대진의 진정한 무서움은 저 구겁진염(九劫眞焰)에 있었다.
9가지 불 속성 진령의 본명 진화를 특수한 방법으로 제련해 각기 다른 법칙의 힘을 품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단 한 방울로도 바다를 끓게 만들고 산을 녹일 수 있었다.
온전한 힘을 발휘하는 진선이라도 피할 수 없는 성가신 공격이었다.
거대 화인은 온몸의 살점과 근육이 전부 녹아 금색의 뼈만 남자 더 이상 소리를 내지 않았다. 이에 수사들은 한시름 놓았다.
“이상합니다! 진선은 아직 죽지 않았어요. 만령혈새의 위력이 그대로입니다!”
그때 가부좌를 틀고 있던 궁장 여인이 식은땀을 흘리며 소리쳤다.
“뭐라고요?”
그 말에 은강자와 명존 등도 정신이 번쩍 들어 고공을 올려다보았다. 남색 얼음으로 봉인 당한 핏빛 인장은 두 가지 화염으로 얼음을 거의 다 녹인 상태였다.
“이런, 공격을 재개해야 합니다!”
명존이 난색을 표하다 두 손으로 수결을 맺고 입에서 남색 비도를 뿜어냈다.
곁에 있던 회색 그림자 헌구령도 믿기지 않는지 서둘러 소매 속으로 백여 개의 은색 비검들을 뿜어 금색 골격을 갈랐다.
팟!
금색 골격 위로 수정 갑옷이 나타나 자금색 주술문자들을 뿜어냈고 백여 개의 은색 비검들과 남색 비도를 전부 튕겨냈다.
근처에 있던 흑예수들도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알고 다시금 새까만 불구슬을 날리고 뒤쪽으로 물러나려 했다.
새까만 불구슬이 금색 골격을 향해 날아갔지만 자금색 주술문자들 때문에 밀려났다.
그 순간, 금색 골격이 키득키득 괴상한 웃음소리를 흘리며 고개를 쳐들고 손바닥 크기의 암녹색 병을 분출했다.
우웅!
거대한 병 허상이 하늘을 뒤덮더니 녹색 액체를 끊임없이 쏟아냈다. 금색 골격은 은색 비검과 남색 비도의 공격은 개의치 않고 두 팔을 활짝 펼쳐 최대한 녹색 액체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녹색 액체에 닿는 순간 금색 골격은 녹색 빛으로 뒤덮이며 피와 살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온전한 금색 거인이 되어 두 눈을 부릅떴다. 두 눈에는 남색 화염이 이글거리고, 얼굴에는 흉포한 미소가 어려 있었다.
쿵!
그가 손을 뻗어 암녹색 병을 낚아채자 허공의 거대 병 허상이 흩어져 사라졌다.
“크크큭, 버러지 같은 것들이 금원정(禁元灯)에다 구겁멸령대진까지 썼다 이거지? 본 선이 너희를 얕보았구나? 덕분에 이제 이곳에 있는 그 누구도 살려 보내지 않을 것이고, 다시는 반격할 기회를 주지 않겠다!”
금색 거인은 곧바로 수결을 맺고 입에서 자금색 주술문자를 잔뜩 분출했다. 주술문자들이 사라지고 크고 작은 금색 빛구슬들이 떠올라 거인의 목소리와 함께 그 크기를 키워갔다.
그리고 하늘과 땅에서 잠시 움직임을 멈추었던 금색 용암도 활발하게 활동하기 시작했다.
세상이 금빛으로 물들고 흉흉한 기세가 수사들을 향해 밀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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