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1410화 (1,167/2,000)

1410화. 구름처럼 몰려드는 강자들

*

“다른 분들을 몇 분 더 청했는데 너무 멀리 있어 제때 도착하기 어렵거나 다른 중요한 일이 있었습니다. 다 모였다면 이번 작전이 성공할 확률이 높아졌을 텐데요.”

명존은 안타깝다는 어조로 덧붙였다.

“큼, 선계 선인의 실력이 그 정도로 대단합니까? 수사의 말씀은 이곳에 모인 이들만으로는 성공을 확신할 수 없다는 것으로 들리는데요. 노부가 경전을 뒤적거려 보니, 상고시대 때 본 계에 출현한 선인들이 계면의 법칙의 힘에 제약을 받아 상고 진령보다 조금 더 강한 정도였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를 압도할 정도는 아니지 않습니까?”

용머리 지팡이를 든 노옹이 헛기침을 하며 목소리를 바르게 하고 물었다.

“평범한 선인이었다면 이 정도 전력이면 상대하고도 남았을 겁니다. 허나 그쪽도 선인 중에서 강자라면 어떻겠습니까?”

그 말을 듣고 명존이 쓴웃음을 지었다.

“선인 중의 강자요?”

노옹이 움찔했고 다른 이들도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강림 진선이 다른 대륙에서 보인 실력은 상고시대 때 강림한 보통 선인과는 확연히 달랐습니다. 혈천대륙에서 열댓 명의 대승기 수사를 죽였고 그 중에 우리와 엇비슷한 수준의 강자가 셋이나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아무리 조심해도 부족함이 없을 겁니다.”

“벽영 수사의 죽음은 저도 들었습니다. 뇌명대륙에서 심지어 세 진령이 협공해 그 자와 겨루었다는 이야기도요. 그런데 진선이 풍원대륙에 나타난 뒤로 심복과 비슷한 존재를 대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 자의 실력도 예사롭지 않다던데 조사는 해보셨습니까?”

오령 부인이 눈을 번득이며 물었다.

“오 부인께서 소식에 정통하십니다. 확실히 진선 곁에 따르는 자가 생긴 것이 맞습니다. 본 맹의 조사에 따르면 각치족이 파견한 세 진령 중 한 마리인 양록이라 합니다.”

명존은 안 좋은 소식에 미간을 좁혔다.

“양록이라고요? 아니 진령이 진선을 죽이지도 못하고 굴복했단 말입니까.”

이번에는 여러 수사들의 얼굴이 구겨졌고, 한립도 생각에 잠겼다.

“이제 다들 제가 신중하게 구는 이유를 이해하셨을 겁니다. 이번에 수사분들 외에도 본 맹은 줄곧 봉양해 오던 강력한 진령 네 분을 모시고 현천의 보물 두 개를 이용해 양의멸진대진(兩儀滅盡大陣)까지 펼쳐 상대의 퇴로를 철저히 차단할 계획입니다.”

“헉, 진령이 넷에 현천의 보물을 두 개나요? 귀 맹이 이번 일에 고생이 많으십니다!”

은강자가 기함해 헛바람을 들이켰고, 다른 수사들도 눈이 휘둥그레지기는 마찬가지였다.

“본 맹의 존재 이유는 본래 영계의 안녕을 지키는 것입니다. 아무리 천상의 진선이라도 결코 본 계의 균형을 깰 수는 없는 법이고요. 다만 본 맹의 기여가 큰 만큼 선인을 제압하는데 성공하면 그가 지닌 보물의 3분의 1을 우선으로 가져가고 남은 것을 여러분이 공평하게 나누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이 점에는 이의가 없으시겠지요?”

명존이 차분히 설명했다. 이번에는 다들 침묵하며 바로 답하지 못했는데 명존은 재촉하는 기색 없이 기다렸다.

그걸 지켜보던 한립이 먼저 가볍게 웃으며 침묵을 깼다.

“귀 맹이 치른 희생을 생각하면 3분의 1의 보물이 과한 대가는 아니라 생각합니다. 그저 제 의견을 더하자면, 선인의 몸에서 선가 비술이나 공법이 발견된다면 모두에게 복제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한 수사의 의견에 저도 찬성합니다.”

“좋군요. 그런 조건이라면 저도 동의하겠습니다!”

오령 부인과 대머리 거한을 시작으로 한립의 의견에 다들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명존은 조금 안색이 달라졌지만 심사숙고 끝에 그 조건을 수락했다.

이에 대청에 모인 대승기 수사들 중 상당수가 한립을 향해 우호적인 시선을 보내게 되었다.

상의를 마친 이들은 대청을 떠나 천외천에 위치한 다른 건물에 거처를 마련했다. 한립은 홀로 왔기에 약간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 * *

이튿날 아침, 화석노조가 누각 1층 대청에 서서 한립을 향해 빙봉에 관한 소식을 전했다.

“그렇다면 빙봉은 육익상공에게 겁박을 당해 동행하는 것이고, 육익상공은 내게 상당한 적의를 품고 있단 말이군.”

한립이 들은 내용을 정리했다.

“빙봉 수사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육익이 고분고분 미끼가 되겠다고 약속한 이유 중에는 명존 선배님께서 스승님을 설득해 천여 년 내로는 그 자를 건드리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다 주기로 한 것도 있다고 합니다.”

“그랬군. 그건 됐고, 내가 전해주라고 한 방어 보물들은 빙봉 수사에게 전해 주었느냐?”

“전해드렸습니다.”

“알았으니 이만 물러가 보거라. 대전이 임박했으니 너는 멀리 피해 있는 것이 좋겠다.”

한립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고 화석은 명을 받들어 누각에서 물러났다. 그 뒤로 며칠 동안 한립은 누각 내에서 몸과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사이 다른 대승기 강자들이 천외천에 도착하고 상맹의 인물들은 명살의 땅에 양의멸진대진을 설치하느라 바삐 돌아다녔다.

진안(陣眼)의 역할을 하는 두 현천의 보물이 모셔진 곳은 금제로 겹겹이 보호되고 있어서 명존과 몇몇 상맹 장로들을 제외하면 출입이 금지되었다.

명존이 언급한 진령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는데 어딘가에 숨어 있는 것인지 아니면 결전 당일 소환할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보름이 지나 누각에 앉아 있던 한립 앞에 파동이 일고 붉은 불구슬이 나타나 불씨를 화르륵 피웠다.

잠시 후 담담한 목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한 수사, 그 자가 명살의 땅 근처까지 왔다고 합니다. 우리도 준비해야하니 속히 대전으로 모여 주십시오.”

한립은 신중히 몸을 일으켜 푸른 빛줄기로 변해 사라졌다.

* * *

일다경 후, 여러 사람들이 모인 대전 앞.

둔광들이 사방팔방에서 떨어졌다.

한립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십여 명의 대승기 강자들이 모여 있었고 오 부인과 은강자 등 낯익은 얼굴 외에 몇 사람이 더 보였다.

그 중 생김새가 닮은 남녀 수사가 가장 먼저 한립의 시선을 끌었다.

이십대로 보이는 남녀 수사 중 사내는 잘생겼지만 차가운 인상을 풍겼고 여인은 화사하게 아름다웠다.

그런데 그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자홍색 살기 때문에 주변 공간이 흐릿하게 왜곡되고 있었다.

은강자와 다른 수사들도 남녀를 보는 시선에 기탄이 어려 있었다.

“육익, 빙봉 수사가 약속한대로 흉마를 명살의 땅 인근까지 유인했습니다. 이 속도라면 두세 시진 내로 양의멸진대진의 통제 범위 내로 진입할 것으로 보입니다. 본 맹 제자들과 장로들이 우선 출발해 각자 위치에서 대기 중입니다. 소환의식은 모든 준비가 끝나 언제든 진령들이 강림을 할…….”

이때 명존은 상석에 앉아 중년 사내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

“알았네. 두 시진 후에 소환의식을 시작하지. 양의멸진대진은 내 명령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절대 먼저 발동해서는 안 될 것이야! 다른 사항은 원래 계획대로 처리하고 나와 다른 수사들이 매복한 후에는 모든 일은 본 좌에게 맡기면 되네.”

명존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 손을 저었다. 중년 사내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서둘러 나갔다.

“다들 들으신 것처럼 본 맹의 준비는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제 남은 일은 모두 힘을 합쳐 진선을 제압하는 것뿐입니다! 미리 경고 드리지만 전투가 벌어졌는데 물러선다든지 이상한 의도를 품은 것처럼 행동하시면 제가 어떤 조치를 취해도 원망하지 마십시오.”

명존은 정색하고 수사들을 돌아보았다.

“하하, 별걱정을 다하십니다. 누가 여기까지 와서 꽁무니를 빼겠습니까.”

“맞습니다. 누구든 이번 작전을 망치려 들면 다른 이들도 가만있지 않을 것입니다.”

몇몇 대승기 강자들이 답했고 다른 이들도 찬성했다.

“명 수사, 우리 오누이도 도착했는데 어째 헌구령은 보이지 않습니다. 마음이 바뀌어 오지 않기로 한 것은 아니겠지요?”

남녀 수사 중 사내가 냉랭히 물었다. 다른 이들도 궁금하다는 듯 명존의 대답을 기다렸다.

“운담 수사, 헌구령 수사는 이미 이틀 전이 도착해 있습니다. 그저 강력한 비술을 준비하는데 시간이 걸리고 또 다른 중요한 임무가 있어 이곳에만 참석하지 않으신 겁니다.”

명존은 예의를 차리며 답했다. 살기를 발산하는 남녀는 운담, 월소 오누이였다.

“그랬군요. 헌구령 수사가 진령을 아홉이나 해치웠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줄곧 만나볼 기회가 없어서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월소라 불리는 여인이 살짝 웃으며 말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오누이는 헌구령에게 묘한 적의를 품고 있는 듯했다.

이에 명존은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다물었다. 다행이 오누이도 더 이상 캐묻지 않고 자기들끼리 전음으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 후 명존은 수사들에게 이런저런 당부를 했고, 곧 한립의 귓가에도 그의 전음이 들려왔다. 그의 말에 살짝 놀랐지만 잠시 고민하다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명존의 얼굴에 희색이 스쳤다.

시간이 지나 여러 대승기 강자들이 분분히 둔광을 일으켜 정해진 매복 지점으로 이동했다. 이제 남은 것은 명존과 한립 그리고 운담, 월소 오누이 네 사람밖에 없었다.

“명 수사, 우리 오누이에게 현천의 보물이 있는 진안을 지키라는 것은 너무 막중한 임무를 주신 것 같습니다. 만일 실패하기라도 하면 그 책임을 질 도리가 없을 텐데요.”

월담이 힐끗 한립을 보고는 입을 열었다.

“허허, 겸손한 말씀이십니다. 두 분께서 불가능하다면 누구에게 맡겨도 안 될 일이지요. 양의멸진대진에 이번 전투의 승패가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두 현천의 보물만 무사하면 진법은 쉬지 않고 운용될 테고요.”

“우리 오누이는 항시 함께 움직입니다. 저희가 진안 중 한 곳을 맡으면 나머지는 이쪽 분이 책임질 예정인가 봅니다. 이번 일을 망치지 않을 자신이 있으십니까?”

명존의 말에 사내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립에게 직접 물었으나 한립은 그저 미소를 지으며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것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한 수사처럼 실력이 뛰어난 분이 진안 중 한 곳을 맡아주시면 한결 마음이 편할 겁니다.”

명존이 웃으며 대신 답을 했다.

“명 형이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마음 놓겠습니다. 이번 작전은 전부 수사의 안배를 따르기로 합의를 하였으니까요.”

월소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한립을 훑고 빙긋 웃었다.

“좋습니다! 안내할 이들을 부를 테니 바로 진안으로 이동하시지요.”

명존은 얼굴이 밝아지며 바로 손뼉을 짝짝! 쳤다. 이에 상맹 갑옷을 입은 병사가 들어와 공손하게 오누이를 안내해 먼저 대전을 빠져나갔다.

“한 수사, 양의멸진대진의 또 다른 진안을 부탁드리겠습니다.”

그제야 명존이 한립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진지하게 말했다.

“명 형께서 저를 너무 좋게 봐주시니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허허, 그렇게만 해주시면 양의멸진대진은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한립은 명존과 인사를 나누고 또 다른 병사를 따라 대전을 나섰다. 그런데 명존이 홀로 남자 미소를 싹 거두고 얼굴을 찌푸린 채 고민에 빠졌다.

“그 진선이 법칙의 제약을 벗어나 잠시나마 선계에서의 본 실력을 쓸 수 있다는 게 사실입니까? 그게 사실이라면 온갖 계획들이 무용지물인 것은 알고 있겠지요?”

돌연 명존 뒤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발밑에서 그림자가 흐릿해지면서 낯선 인영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명존은 전혀 놀라지 않고 평온히 대답했다.

“혈천대륙의 전투 장면이 불완전하지만 분명히 그런 모습이 포착되었습니다. 금색 신선 형상은 그 자가 선인의 실력을 회복했다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안 그랬으면 벽영과 다른 수사들이 손쓸 틈도 없이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고요! 이번 전투의 승패는 수사의 일격에 달려 있습니다. 그게 실패하면 우리도 벽영 수사와 같은 꼴이 되고 말 겁니다.”

“그 자가 진선의 몸을 회복하기만 하면 불시에 구겁멸진대진(九劫滅盡大陣)으로 일격을 가할 수 있을 겁니다. 전문적으로 진선의 육체를 제거할 수 있는 조상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진정한 선계 비술이 아닙니까. 아홉 진령의 원신을 연화해 겨우 일격을 가할 힘을 모았으니 겨우 강림 진선 한 명을 상대하기에는 차고 넘칠 겁니다.”

모호한 인영이 웃음을 흘렸다.

“맞습니다. 진선이 아무리 대단해도 진법과 강자들이 대부분 힘을 빼놓은 상태로 수사의 일격을 피할 수는 없을 겁니다. 진선의 육체만 제거하면 강한 진령 정도로 실력이 떨어질 테니 말입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이 사실을 모르는 것 아닙니까? 만약 살아남는 자가 있다면 해명하기 어려울 겁니다. 그 진령 네 마리도 희생될 것이고요.”

“어쩔 수 없는 희생입니다! 전성기의 힘을 지닌 선인을 상대하는데 그 정도 대가도 치르지 않고 이길 생각을 해서는 안 되지요. 게다가 이미 여러 차례 조심해야 한다고 당부를 했으니 그들도 생각이 있으면 신중하게 움직일 겁니다.”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