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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407화 (1,164/2,000)

1407화. 갑돈족(甲豚族) 강자

*

한 달 후, 청원궁 밀실에 앉아 벽사신뢰를 정련 중이던 한립이 문득 표정이 달라져 수결을 풀었다.

팟!

그의 품에서 푸른 부적이 날아올라 푸른 글자로 변했다.

“빙봉과 육익을 벌써 찾았다고? 혁련상맹의 행동이 빠르구나. 지금 바로 가볼 수는 없어도 반드시 사람을 보내 자세한 내막을 알아내야겠군.”

그는 한 손으로 수결을 맺고 입술을 달싹였다. 그러자 청원궁의 또 다른 밀실에서 수련 중이던 화석노조의 귓가에 그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는 신중하게 귀를 기울이다 즉시 밀실을 나섰다.

반나절 후, 화석노조는 급히 원합도를 빠져나갔다.

* * *

세 달 후.

풍원대륙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거대 종족 갑돈족(甲豚族) 금지.

백여 명의 갑돈족 병사들이 거대한 전당 밖을 지키고 있었다.

웅웅!

난데없이 땅이 울리고 전당 안에서 공간파동이 느껴졌다. 이에 수행이 높은 병사들은 표정이 달라져 전당 안으로 들어갔다.

통로를 따라 여러 번 골목을 돌아 들어간 그들은 하얀 빛으로 가득 찬 대청을 앞에 두었다. 빛 속에서 거대 전송진이 발동되고 있었다.

“누군가 다른 대륙에서 건너오려 하고 있습니다. 비 통령, 들으신 바가 있습니까?”

체격이 작은 갑돈족 병사가 심각한 얼굴로 거검을 멘 동료 병사를 쳐다보았다.

“아니오, 그런 소식은 듣지 못했습니다. 상대편 종족의 어느 대인이 급한 용무가 있어 미리 언질을 하지 못하고 전송진을 발동한 것이 아닐까요?”

거검을 멘 병사는 고개를 저으며 머뭇거렸다.

“그럴 수도 있겠군요. 어찌된 일인지 금방 알 수 있겠지요.”

체구가 작은 병사가 다른 이들에게 조심하라는 손짓을 보내자 병사들이 흩어져 출구를 봉쇄했다.

갑돈족 병사들이 대비를 마쳤을 때 거대 진법이 크게 울리고 두 사람이 나타났다. 그들을 살피던 병사가 안색이 확 달라져 소리쳤다.

“당신들은 본 족의 수사가 아니군요! 반대편 이들은 어찌하여 이런 때에 이종족이 대륙 간 전송진을 쓸 수 있게 허락한 것입니까!”

“하하, 반대편 녀석들? 전부 죽여 버리고 알아서 전송진을 이용했다면?”

빛이 가시고 두 사람의 얼굴이 드러났다.

창백한 얼굴에 검은 장포를 걸친 청년과 체구가 큰 사슴 머리 괴수가 전송진 밖의 병사들을 흉흉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적이다! 어서 소식을 전하라!”

거검을 멘 병사가 다급히 소리치고 재빨리 검을 손에 쥐었다. 병사들은 훈련이 잘되어있는지 서둘러 붉은 부적을 천장으로 날려 보냈다.

쾅!

전당 위쪽으로 적홍색 불구슬들이 나타나 굉음을 내며 터지자 전당 밖 백여 명의 병사들이 그것을 보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대부분의 병사들은 전당 안으로 튀어 들어가고 나머지는 오히려 물러나며 품에서 각종 진법 법기들을 꺼내 허공으로 투척했다.

쿠쿠쿵!

오색 기운이 진법 법기들에서 쏟아져 나와 36개의 구리 기둥을 이루고 전당을 에워쌌다. 적홍색 구리기둥 표면에 은색 문자가 깨알같이 각인되어 있었다.

그제야 물러선 갑돈족 병사들은 평정을 되찾고 전당 입구를 주시했다.

콰르릉!

굉음이 울리고 전당이 활화산이라도 된 것처럼 터지며 무수히 많은 돌조각과 나무 조각들이 튕겨 나와 불 보호막과 부딪혔다.

전당 잔해는 불 보호막에 닿자마자 재로 변했고, 안으로 뛰어 들어간 병사들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바깥에 남아 있던 갑돈족 병사들이 놀라 웅성거렸다.

그때 전당 잔해에서 마량과 양록이 날아올랐다. 양록은 손에 무언가를 들고 으적으적 뜯어먹고 있었다.

“비 통령!”

병사 중 한 명은 양록이 뜯어먹는 것이 지휘관의 시체라는 것을 알고 기함해 소리쳤다.

“금제 발동해. 공격한다!”

전당 안의 병사들이 화를 당한 것을 깨달은 다른 병사가 분노에 차 고함을 쳤다.

그러자 모든 병사들이 허공의 법기를 발동했고 36개의 적홍색 구리 기둥들이 눈부신 붉은 빛을 머금고 양록을 향해 붉은 빛기둥들을 발사했다.

“흐흐, 겨우 이런 금제로 나를 상대하겠다고?”

양록은 숨을 거칠게 들이쉬며 몸을 부풀렸고 그 순간 노란색 갑옷이 입혀졌다.

쉬쉬쉬쉭!

붉은 빛기둥들이 노란 갑옷을 맞히고 허무하게 사라졌다. 갑옷을 입은 양록은 전혀 타격을 입지 않은 모습이었다.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것도 있어야겠지?”

양록은 교활한 웃음을 지으며 검은 거대 도끼를 불러내 양손으로 쥐고 허공을 마구 내리찍었다.

퍼퍼퍼펑!

폭음이 귀청을 때리고 검은 도끼날들이 양록을 중심으로 사방을 베어나갔다.

콰콰콰쾅!

36개의 구리 기둥들은 전부 두 동강이 나서 쓰러졌고, 자연스럽게 불 보호막도 허물어졌다.

양록이 나머지 병사들을 정리하려는데 옆에서 마량이 성가시다는 듯 말했다.

“가자! 저런 것들을 죽이는 것보다 급한 일이 먼저다.”

“예, 주인님!”

흠칫 놀란 양록이 공손한 자세를 취하고 거대 도끼를 치웠다. 그러자 양록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고 서둘러 둔광을 일으켜 마량을 따라갔다.

그들은 반 시진이 채 지나지 않아 엄청난 거리를 이동했다. 그들이 막 초원지대를 벗어나 거대한 산맥으로 진입하려 할 때 흑포 청년이 돌연 둔광을 멈추었다.

“주인님, 무슨 일이 생긴 것입니까?”

양록이 그를 따라 멈추며 물었다.

“별일 아니다. 주제도 모르는 것이 따라붙어서는…….”

마량은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그런 멍청한 것들이 있습니까?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수행이 그리 약하지 않다. 너 혼자 만으로는 쉽게 승리를 거둘 수 없을 것이다.”

양록의 말에 마량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강한 갑돈족의 일원이라면 짐작 가는 인물이 있습니다.”

“오, 누구더냐?”

“갑돈족 제일의 태상장로로 실력이 저희 진령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는 자입니다. 영계에서 가장 강한 수사 다섯 중 하나라더군요.”

“어쩐지 감히 홀로 추격한다 했다. 이렇게 된 것 잘 대접해줘야겠구나. 그 혼백으로 만령혈새(万靈血璽)의 주령을 삼으면 되겠어!”

마량은 차갑게 미소를 지으며 소매 속에서 핏빛 인장을 불러내 허공에 스며들게 했다. 양록이 핏빛 인장을 보고 안색이 미미하게 달라졌다.

그 보물의 무서움은 다른 진령들과 협공해 마량을 상대하며 톡톡히 맛보았기 때문이다.

진령 셋이 힘을 합치지 않았으면 상대에게 부상을 입혀 법칙 사슬에 구속되게 만들지도 못했을 것이다.

양록이 간담이 서늘해 마른 침을 삼키고 있을 때 뒤쪽 하늘에서 천둥소리가 들리고 은색 뇌전에 휩싸인 백골 마차가 나타났다. 백골 마차에는 수척한 갑돈족 노인이 타고 있었다.

노인의 두 눈은 녹색으로 음침하게 빛났고 팔짱을 낀 팔뚝에 크기가 다른 백골 팔찌 열댓 개를 차고 있었다.

양어깨에는 백골 깃발을 교차해 메고 있었는데 바람에 펄럭일 때마다 악귀 허상이 어른거렸다.

“진령!”

갑돈족 노인이 두 사람을 훑다 양록을 보고 놀란 눈빛을 보냈다.

“눈썰미가 제법입니다. 단번에 본 좌의 정체를 꿰뚫어 보고 말입니다.”

“당신이 아무리 진령이라도 본 족의 금지에 침입해 살계를 펼치고 대륙 간 전송진을 훼손한 것에 대하여는 해명해야 할 것입니다.”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던 노인이 표정을 풀고 말했다.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당신의 족인들이 감히 주인님께 무례를 범해 벌을 준 것뿐입니다.”

“주인님?”

그 말에 노인은 깜짝 놀라 마량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지, 진선!’

갑돈족 노인은 흑포 청년의 창백한 얼굴을 보고 최근에 들은 소식이 떠올라 가슴이 철렁했다. 그는 당황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오히려 미소를 띠며 입을 열었다.

“아, 알고 보니 모자란 후배들이 두 선배님들께 실례를 범한 것이었군요. 그렇다면 제가 본 족을 대표해 사과드리겠습니다! 그럼 저는 다른 일이 있어서 이만 가봐야겠군요.”

말을 마친 갑돈족 노인은 가볍게 마차를 밟았다. 이에 백골 마차에서 콰르릉! 하고 은색 뇌전이 일어났다.

“흐흐, 기왕 여기까지 왔는데 어딜 가려고 그러십니까.”

양록은 음흉한 웃음을 흘리며 성큼 앞으로 나서 거대 도끼를 불러내 사납게 허공을 찍었다.

쾅!

도끼날 허상이 튀어 나가며 새까만 파도처럼 변해 백골 마차를 덮쳤다.

이에 갑돈족 노인이 어두운 얼굴로 한 손을 털자 백골 팔찌 중 하나가 튀어 나가 방대하게 커져 도끼날 허상을 막으려 했다.

쿠콰쾅!

커다란 충돌소리가 하늘을 울리고, 백골 팔찌는 원래 크기로 줄어 튕겨 돌아오고 검은 도끼날 허상은 흩어져 사라졌다.

그 사이 백골 마차는 번득 사라져 아주 멀리까지 도망가 있었다.

갑돈족 노인이 한시름을 놓고 전력으로 마차를 움직이려는데 고공에서 쿠르릉 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거대한 핏빛 인장이 떨어져 내렸다.

인장은 아주 천천히 하강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백골 마차 바로 위로 이동해 법칙 파동을 일으켰다.

갑돈족 노인이 화들짝 놀라 서둘러 어깨를 털었다.

키에에엑!

두 개의 백골 깃발이 튀어나가 커다랗게 변한 다음 수백 개의 악귀들을 뿜어냈고, 열댓 개의 백골 팔찌들이 노인의 팔을 떠나 핏빛 인장을 향해 돌진했다.

쿠르릉!

연달아 굉음이 들려왔다.

그러나 열댓 개의 백골 팔찌들은 인장 허상과 닿자마자 바스라지고 백여 마리의 악귀들은 법칙파동에 휘말려 소멸되고 말았다.

핏빛 인장 허상은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고 떨어져 내렸다. 갑돈족 노인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손가락을 마구 튕겨 전신의 법력을 마차로 밀어 넣었다.

웅웅!

콰르릉 콰쾅!

백골 마차가 요란하게 진동하며 은색 뇌전을 방출했다. 마차는 놀랍게도 은색 뇌전에 휩싸인 백골 진룡으로 변해 사라지려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마량은 헛웃음을 지으며 한 손으로 수결을 맺어 핏빛 인장을 가리켰다. 이에 인장 허상에서 핏빛 주술문자들이 흘러나왔다.

퍼펑!

그러자 백골 진룡 주위로 핏빛 촉수들이 튀어나와 사슬처럼 꽁꽁 감아버렸다. 아무리 발버둥 치고 뇌전을 일으켜도 촉수들은 풀리지 않았다.

백골 진룡 머리에 탄 갑돈족 노인은 등줄기가 서늘해져 냉큼 정혈을 한 모금 뱉었다.

크아아앙!

피를 흡수한 백골 진룡은 울부짖으며 순간적으로 체구가 커져 핏빛 촉수를 벗어나려 했다. 그러나 열댓 줄기의 핏빛 촉수들은 백골 진룡이 커지자 함께 늘어났고 절대 떨어지지 않았다.

이에 갑돈족 노인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가득했고 엄청난 법칙의 힘을 담고 있는 인장을 올려다보았다.

“좋습니다! 어디 노부도 목숨을 걸고 당신의 선계 비술이 얼마나 대단한지 가르침을 구해봐야겠습니다!”

노인이 이를 악물고 자신의 뒤통수를 치자 불경소리가 들리고 노인과 똑같이 생긴 소인이 머리를 빠져나왔다.

본체와 달리 금빛 갑옷을 입고 양손에 적홍색 장창과 백골 종을 쥐었다. 그리고 뒤통수에는 흉악하게 생긴 악귀 얼굴이 하나 더 붙어 있었다.

소인은 본체를 빠져나온 순간 흐릿하게 열댓 개의 허상을 만들어냈다.

허상들은 들고 있던 장창을 높이 쳐들어 붉은 화염을 일으켰고, 화염들이 뭉쳐져 열댓 개의 머리를 지닌 불 구렁이를 만들었다.

불구렁이가 쉭쉭 거리는 소리를 내며 핏빛 인장을 향해 쇄도했고, 소인 허상들이 들고 있는 백골 종에서는 청아한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 * *

“가소로운 것들. 풍원대륙 전체의 강자들을 모아 내게 대적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어? 혁련상맹이라면 혈천대륙에서 참살한 녀석이 속한 곳으로 기억하는데 이렇게 죽자 사자 나를 노린다면 내가 상맹을 쳐서 먼저 괴멸시키는 것도 재미있겠구나.”

마량은 축 늘어진 갑돈족 노인의 시체에서 손을 떼고 서늘하게 중얼거렸다. 그러자 시체는 힘없이 추락했다.

“혁련상맹은 세력이 대단합니다. 각치족과 비교될 정도이니 조심하셔야 합니다.”

양록이 옆에서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자신과 비슷한 실력의 강자를 단번에 요절내는 것을 보았으니 고개가 조아려지는 것은 당연했다.

“세력이 강할수록 철저히 멸해 본보기를 삼는 게 좋겠지! 풍원대륙 강자들이 모이든 말든 상관없지만 괜히 그 일로 시간을 끌어봐야 좋을 것도 없다. 그 전에 비술로 내가 찾는 목표가 이곳에 있는지부터 확인해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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