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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405화 (1,162/2,000)

1405화. 인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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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립과 남궁완이 갑판으로 나오자 연이어 하얀 빛줄기가 날아들어 선박 앞에서 멈추었다.

“한 아우, 그간 무탈했는가?”

둔광이 가시고 정정한 노인이 웃으며 나타났다. 그는 여러 가지 사건을 겪고는 한립과 가까워져 그를 더욱 살갑게 대했다.

“걱정해 주신 덕분에 원하던 바를 이루었습니다. 이쪽은 제가 인계에서 연을 맺은 반려입니다. 완이, 어서 막 형께 인사를 올리지.”

한립이 손을 모아 인사를 하며 남궁완을 소개했다.

“정말 이 선자가 자네의 반려란 말인가?”

막간리는 깜짝 놀라 되물었다.

“남궁완이 막간리 선배님을 뵙습니다. 이제까지 소령천에 갇혀 있다가 부군을 만나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돌아오면서 선배님에 관해서도 많은 얘기를 들었습니다. 오랜 세월 인족의 기둥이 되어주셨다니 대단하십니다.”

남궁완이 살포시 앞으로 나서서 공손히 예를 취했다.

“남궁 선자, 어서 일어나시게. 노부와 한 수사는 막역한 사이이니 선자가 부담스럽지 않다면 앞으로는 막 형이라 불러주시게.”

막간리는 만면에 웃음을 띠고 남궁완을 살폈다. 이에 남궁완도 빙긋 웃으며 ‘막 형’이라 불렀다. 그 모습에 막간리가 활짝 웃으며 품에서 은색 옥함을 꺼내들었다.

“허허, 기왕 나를 막 형이라 불렀으니 어찌 첫 만남에 빈손으로 돌려보낼 수 있겠는가! 108개로 이루어진 현녀쇄음침(玄女碎陰針)일세. 신통이 꽤 현묘하고 구하기 어려운 보물이니 선물로 주겠네.”

남궁완은 현녀쇄음침이 비범한 보물임을 느끼고 두 손으로 옥함을 받았다.

옥함 속에는 머리카락보다 얇은 바늘이 빼곡하게 놓여 있었는데 한기를 품고 있어 의식으로 훑으려 하면 한기에 잠시 얼어붙을 정도였다.

남궁완은 옥함을 살펴보곤 예상보다 더 귀한 보물임을 깨닫고 연달아 감사 인사를 하고 소중히 은색 옥함을 저물탁에 넣어두었다.

“막 형, 안으로 들어가셔서 이야기 나누시지요! 혈천대륙에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들이 많습니다. 그중에는 좋은 소식도 있고 나쁜 소식도 있어요.”

막간리와 한담을 나누던 한립은 드디어 웃음기를 지우고 말했다.

“오, 어떤 소식들인지 들어봐야겠군.”

막간리는 심상치 않은 느낌에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곧 선실의 대청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제 할 말이 무엇인지 말해주게.”

자리에 앉자마자 막간리가 입을 열었다.

“물론 그래야지요.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 무엇부터 들어보시겠습니까?”

한립이 미소 지으며 물었다.

“좋은 소식을 먼저 듣겠네. 나쁜 소식에 기분이 상하기 전에 잠깐만이라도 좋은 마음을 갖는 게 좋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좋은 소식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번 여정에서 소령천에서 완이를 데려온 것 외에 혈천대륙에서도 갇혀 있던 인족 수사 한 명을 구출하였습니다. 여러 기연에 힘입어 벌써 대승기에 이르렀더군요.”

“뭐라! 우리 인족에 또 대승기 수사가 늘어났단 말인가! 한 아우, 노부를 속이는 것은 아니겠지?”

막간리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놀라고 기쁜 마음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하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저 그 수사의 경지가 아직 안정되지 않아 혈천대륙에서 몇 년간 더 머물다 본족으로 돌아올 듯합니다.”

“허허허! 인족에 대승기 수사가 또 늘었는데, 고작 몇 년쯤이야 늦게 돌아와도 무슨 상관이겠는가! 그렇지, 혹시 노부가 알만한 수사인가?”

“글쎄요, 빙백 선자는 인족을 떠날 당시 합체기 경지였는데 막 형께서 들어보셨을지 모르겠습니다.”

들뜬 노인을 보고 한립은 차분하게 답했다.

“……빙백, 빙백 선자! 자네의 말을 들으니 언뜻 생각이 나는 것도 같네. 비승수사가 합체기 경지에 이르렀다는 이야기를 오소 수사와 나눈 적이 있어.”

막간리가 곰곰이 기억을 더듬다 퍼뜩 소리쳤다.

“맞습니다. 빙백 선자는 저와도 약간의 인연이 있었는데 대승기에 이르렀을 줄은 몰랐습니다. 우리 인족의 입장에서는 경축할 일이 아닐 수 없지요!”

“우리 인족 역사상 3명 이상의 대승기 수사를 보유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네. 게다가 한 아우의 실력이면 다른 평범한 동급 수사 여럿을 상대하는 것도 문제없지 않은가! 이제 인족도 빛을 볼 날만 남은 게야. 당당히 세력을 키우고 영토를 넓히는 것이지.”

“흠, 영토를 넓히기에는 그리 적기가 아닌 듯싶습니다.”

즐겁게 미래를 그리는 막간리를 향해 한립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어째서 말인가? 지금 인족의 실력이면 주변의 야차족, 목족 등 이종족들을 압도하는데……. 혹여 따로 걱정거리가 있는 것인가?”

“제가 말씀드리려고 한 나쁜 소식이 바로 그것입니다.”

“아, 그렇지. 아직 나쁜 소식을 듣지 못했다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네. 그리 심각한 일인가?”

“심각하다 뿐입니까, 한순간의 실수로 인족 전체가 멸망할 수도 있는 일입니다.”

“아니 그 정도로 나쁜 소식이란 말인가!”

막간리의 안색이 대번에 확 달라졌다.

“제가 직접 본 것은 아니고, 대부분 혁련상맹을 통해 들은 정보입니다. 하지만 혈천대륙을 떠나기 전에 살펴보니 민심이 흉흉하고 분위기가 괴이한 것이 거짓은 아닌 듯합니다. 이 일은 강림한 진선으로 의심되는 흉마…….”

워낙 중대한 일이었기에 한립은 숨김없이 혈제와 선인으로 추정되는 자에 대해 처음부터 끝까지 아는 바를 털어놓았다.

“조건부로 명존 수사의 연합 제안을 수락했습니다. 그 진선을 제압할 기회가 생긴다면 저도 힘을 보태야 할 듯합니다. 어쨌든 그자가 인족을 노리면 우리의 힘만으로는 막기 어려울 테니까요. 막 형의 의견은 어떠십니까?”

한립은 장장 일다경 동안 이야기를 털어놓고 노인을 향해 물었다.

“진선이 영계에 출현했단 말인가……. 그런 불가사의한 일이 다 있다니! 너무 엄청난 일이라 고민을 좀 해보고 답을 해줘도 되겠는가?”

막간리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충분히 고려해 보시고 답해 주십시요. 완이, 사람을 시켜 차를 한 잔 가져다주겠소?”

“제가 직접 소령천 특유의 영차를 대접하겠습니다.”

한립의 말에 남궁완이 부드럽게 답했다.

“그것도 좋겠소.”

한립이 고개를 끄덕이자 남궁완은 막간리에게 살짝 예를 취하고 대청을 나섰다.

잠시 후 그녀는 호박색 주전자가 담긴 백옥 쟁반을 들고 들어왔다. 그녀는 직접 한립과 막간리에게 차를 한 잔씩 내주고 자리로 돌아갔다.

이때, 막간리가 생각을 마쳤는지 입을 열었다.

“한 아우, 생각을 해봤는데 한 가지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네.”

“무엇이든 물어보십시오.”

“상대가 강림 진선이라면 영계에 온 목적이 무엇인지 아는가? 영계를 포함한 주변 계면들은 진작 선계와 연계가 끊겼으니, 선인의 몸으로 직접 강림하면 계면 법칙의 힘에 의해 제약을 받을 것인데 그걸 감수하고 이곳에 온 이유 말일세. 상대가 우연히 본 계로 흘러들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네.”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혁련상맹 쪽도 마찬가지고요. 이미 죽은 수사들과 혈제의 제물이 된 생령을 제외하면 그자를 직접 대면한 이가 없어 무슨 목적으로 하계에 강림했는지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한립이 고개를 저었다.

“내가 만일 상맹의 관리자였다면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그것부터 알아낼 것이네.”

막간리가 수염을 쓸어내리며 미소를 지었다.

“막 형의 뜻은 알겠습니다. 바로 명존 수사에게 건의를 해보지요. 허나 큰 기대는 하지 않으시는 것이 나을 겁니다.”

“아무리 가능성이 희박해도 반드시 알아내야 하는 일일세. 그자의 목적을 알아야 약점도 손에 쥘 수 있을 테니까. 싸움을 하든 교섭을 하든 이용할 수 있을 테고 말이야.”

“그것 외에 다른 건의 사항이 있으십니까?”

“선인과 원한 관계를 맺고 뇌명대륙까지 쫓기던 두 사람이 지금 행방불명이라는 게 사실인가?”

“명존 수사가 직접 그리 말했으니 사실일 겁니다. 둘 다 저와는 이전부터 아는 사이로 인족 수사는 아닙니다. 한 명은 가까운 벗이라 할 수 있고 한 명은 적인지 아군인지 확답을 드리기가 어렵습니다.”

막간리의 두 번째 질문에 한립이 가볍게 웃으며 답했다.

“그렇다면 한 아우가 그들과 연락할 방법을 찾아봐 주었으면 좋겠네. 그들이 무슨 일로 진선에게 밉보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의 행방을 알아야 앞으로 어떻게 대책을 세워야 할지 도움이 될걸세.”

“막 형의 말씀은 그들을 미끼로 사용하자는 것입니까?”

한립은 슬쩍 미간을 좁혔다.

“진선이 그들을 쫓아 풍원대륙까지 온다면 그들이 어디로 숨을 수 있겠나.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서라도 분명 그 선인을 어딘가로 유인해 시간을 끌려 할 테니 어차피 미끼가 되는 것은 피하지 못할 걸세. 혁련상맹의 명존이라는 수사도 그래서 아우에게 그들을 언급했던 것일 테고.”

막간리가 냉소했다.

“그들이 혈천대륙에서 한번 미끼가 되어 선인을 끌어들인 적이 있는데 그 방법이 또 통할지는 모르겠습니다. 허나 그들이 인족에 비호를 요청한다면 당연히 우리의 계책에 협조할 수밖에 없겠지요. 그러나 당장 그들과 연락을 취하는 것은 어려우니 돌아가는 대로 문하의 제자들에게 분부를 내려놓겠습니다.”

한립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협조만 해준다면 그보다 좋은 수는 없을 걸세. 내 생각에는 진선이 미끼를 물지 말지는 걱정할 필요가 없거든! 감히 영계 대륙을 돌아다니며 수억 생령으로 혈제를 지낸 그 과감함을 보게. 우리 하계의 수도자는 그자의 눈에 위협이 되지 않겠지. 함정인 줄 알지만 피하지 않을 걸세.

하아, 진선이 풍원대륙까지 올 것 없이 목적을 이루고 돌아갔으면 좋겠구만! 자네와 같은 실력자들이 연합해 상대를 이긴다고 해도 대륙에 한바탕 피바람이 부는 것은 피할 수 없을 것이네.”

“진선이 보인 신통을 보면 확실히 싸우지 않고 끝내는 것이 상책이기는 합니다.”

“어찌 되었든, 한 아우가 이 일에 개입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보네! 풍원대륙의 어느 종족도 일족의 힘으로 진선을 상대할 수는 없으니까. 노부는 평범한 실력을 지녀 큰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일세.

돌아가는 대로 자네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말고 수련을 통해 조금이라도 실력을 끌어올리는 데 주력하게. 나머지 일족의 관리는 내게 맡기고 말이야. 서둘러 인구가 밀집한 성을 중심으로 일부를 이주해 인구를 분산시키도록 하겠네.

이번 일에 인족이 말려들어도 너무 많은 사상자가 나지 않도록 준비를 해두는 게 좋겠지. 그밖에 성의 진법들을 강화해 만일의 사태도 준비하고 말이야.”

“막 형께서 역시 연륜이 있으십니다. 모든 것은 수사의 말씀대로 따르지요. 내일 바로 청원궁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들은 대청에서 반 시진 정도 더 이야기를 나누다 흩어졌다. 한립과 남궁완은 갑판에서 하얀 빛줄기가 멀리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부군, 돌아가는 대로 폐관에 들어갈 건가요?”

하얀 빛이 하늘 끝으로 사라지자 남궁완이 고개를 돌렸다.

“그럴 생각이오. 외지를 떠돌며 얻은 몇 가지 비술이 있어 완전히 깨우치지는 못해도 약간은 파악해둘 생각이오. 언제 쓰일지 모르니까.”

한립은 생각에 잠긴 목소리로 답했다.

“옳은 판단이에요. 그나저나 인족으로 오자마자 이런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을 줄은 몰랐네요. 수도의 길을 걸어간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 같아요.”

“너무 걱정할 것은 없소. 수도이라는 것이 본래 섭리를 역행하는 것 아니겠소? 하하, 하늘과의 싸움보다야 선인이라도 사람과 싸우는 것이 더 쉽지 않겠소.”

그가 선실로 걸음을 돌리자 남궁완도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미소를 지으며 그 뒤를 따랐다.

이튿날, 천연성 상공에 떠있던 검은 선박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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