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4화. 법칙사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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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르자 진령은 세 괴수들의 법칙사슬의 힘이 날로 강해져 그들의 진원을 제압해가는 것을 느꼈다. 속으로 어떤 비술을 발동해 해보아도 소용이 없었다.
이에 진령이 변한 세 짐승의 마음은 혼란스러웠다. 이대로 가다가는 법칙사슬의 힘이 그들을 완전히 잠식할 테고 정말 반서가 일어나면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거대 참새와 소머리 괴물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설마 저 자의 간교한 말에 넘어가려는 것은 아니겠지요?”
사슴 머리 괴수가 다른 두 짐승의 눈빛을 보고 입에 문 사슬을 강하게 당기며 말했다.
“진혼단이 아무리 진귀해도 그런 짓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법칙사슬이 반서를 일으키면 우리도 죽을 수 있다는 것은 무시할 수 없는 일입니다.”
소머리에 전신이 용 비늘로 덮인 괴수가 망설이다 답했다.
“맞습니다. 각치족과 현천의 보물을 이용해 맺은 상고 계약이라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정말 남의 일에 목숨을 버릴 수는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잿빛 화염으로 둘러싸인 거대 참새도 눈을 번득였다.
“두 분의 뜻은 잘 알겠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의논드릴 일이 있습니다.”
사슴 머리 괴수가 침음하다 두 짐승에게 전음을 보내고 거대 참새 쪽으로 서서히 다가갔다.
“양록 형, 거기 서시지요! 할 말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하세요. 어쩌서 갑자기 다가오는 것입니까?”
잿빛 거대 참새가 그걸 보고 경계의 눈빛을 보냈다.
“이제 저도 믿지 못하는 것입니까?”
사슴 머리 괴수가 그 말을 듣고 얼굴을 굳혔다.
“하하,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때일수록 거리를 두는 것이 서로 마음 편할 거라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제룡 형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잿빛 참새는 멋쩍게 웃음을 흘리다 소머리가 괴수에게 물었다.
“그게 참……. 다들 각치족의 봉양을 받아 여기에 온 처지에……!”
쌍두 소머리 괴수가 헛웃음을 지으며 몇 마디를 하려는데 물고 있던 사슬이 팽팽하게 당겨지며 엄청난 괴력이 전해졌다.
괴수가 고통스런 비명을 지르며 입에서 피를 뿜고 자금색 사슬을 입에서 놓았다.
쿠쿵!
그 순간, 머리 위에서 서늘한 웃음소리가 들리고 산만한 핏빛 인장이 대뜸 떨어져 내렸다. 금은색 주술문자가 새겨진 인장은 기운이 심상치 않았다.
쌍두 소머리 괴수는 대경실색했지만 피하기에는 늦었다는 것을 알고 노호성을 터트렸다. 그리고 곧바로 몸을 몇 배로 부풀려 두 앞발로 핏빛 인장을 차내려 했다.
콰콰쾅!
공간이 무너질 듯 흔들거렸다.
두 앞발은 핏빛 인장에 닿은 순간 핏물이 되어 튀어나갔고 괴수의 나머지 육체는 물론 혼백까지 핏빛에 휩싸여 흩어졌다.
이때 핏빛 인장 위에서 비웃음을 띤 흑포 청년이 나타났더니 거품처럼 사라졌다.
“이럴 리가 없어. 어, 어찌 법칙사슬을 탈출한 거지!”
거대 참새가 깜짝 놀라 황급히 물고 있던 사슬을 배어버리고 날개를 펄럭였다. 잿빛으로 변해 뒤쪽으로 달아날 심산인 듯했다.
퍽!
검은 털이 자라난 거대 손이 파리를 때려잡듯 거대 참새를 내리쳤다. 거대 참새는 불시의 일격에 튕겨나가 비틀거리며 겨우 멈춰서야 했다.
이때, 사슴 머리에 곰의 몸을 지닌 괴수가 천천히 팔을 거두었다.
“양록, 이 미친……. 그래, 이제야 알겠구나! 네 놈이 진작 투항을 하고 법칙사슬에 수작을 부린 것이었어!”
잿빛 거대 참새가 고개를 저으며 날카롭게 소리쳤다.
“그걸 이제 깨달아서 되겠느냐?”
사슴 머리 괴수는 싸늘하게 답하고 핏빛 인장 위의 흑포 청년에게 미소를 보였다.
“대, 대인! 살려주십시오. 저도 항복하겠습니다. 영복이 되어…….”
다급해진 잿빛 거대 참새가 겁에 질려 애원했다.
“하하, 늦었다. 진혼단은 한 알 뿐이고 선계로 데려갈 수 있는 것도 한 명뿐이라서 말이야! 양록, 내 부하가 되고 싶다고 했으니 저것을 죽이거라. 이걸 내 첫 번째 명령으로 하지.
물론 실패해도 나는 상관없다. 진혼단은 승자의 것이 되겠지? 내가 약속을 지키지 않을까 걱정할 것은 없다. 어차피 하계에서 부릴 만한 영복이 필요했으니까. 너희 중에 더 강한 녀석을 영복으로 삼아주겠다.”
청년은 웃음을 흘리며 명령을 내렸다.
흑포 청년의 말에 사슴 머리 괴수는 표정이 급변했고 절망하던 거대 참새는 희색을 드러내며 두 눈에 광기가 어렸다.
그들은 거의 동시에 기합을 넣으며 전투 준비를 했다.
양록은 몸집을 키우고 날카로운 가시가 달린 황토색 갑옷을 불러냈고, 거대 참새는 두 날개를 펄럭여 잿빛 화염 덩어리들을 폭우처럼 쏟아 보냈다.
그들이 격전을 치르는 소리가 공간 안을 가득 채웠다. 이에 흑포 청년은 웃음을 흘리며 핏빛 인장과 함께 허공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 * *
푸확!
뇌명대륙 어딘가, 울퉁불퉁하게 파인 돌더미 위로 파동이 일고 흑포 청년이 나타났다. 그는 주위를 살펴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자 금빛 빛줄기로 변해 어딘가로 날아갔다.
반나절 후, 그는 금빛 작은 산에 이르렀다.
청년이 둔광을 거두고 암녹색 병을 던지자 병이 뒤집어 지면서 그 안에서 광채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체구가 큰 인영이 상처투성이인 몸으로 광채 속을 빠져나왔다. 바로 사슴 머리에 곰의 몸을 지닌 괴수, 양록이었다.
“내 예상대로 네가 살아남았구나.”
“양록이 주인님을 뵙습니다!”
괴수는 즉시 청년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제법 눈치도 있고 담도 크구나! 네가 먼저 투항하지 않았으면 저곳을 빠져나오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약속한 것들은 빠짐없이 지킬 것이니 걱정할 것 없다. 진혼단도 줄 것이고 너를 선계로 데리고 가주겠다는 것도 사실이다. 허나 그 전에 네 혼백 일부를 분리하거라. 영복 계약을 맺고 이참에 이곳 계면과 네 관계도 끊어주겠다.”
흑포 청년은 무표정하게 명했다.
“예, 주인님!”
양록은 잠시 머뭇거렸지만 이제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입에서 녹색 빛덩이를 뿜었다. 그 안에 작은 사슴 머리 짐승이 포효하고 있었다.
“네가 운이 좋구나! 선령보감(仙靈寶鑑)에 계약이 기록되면 계면의 힘에 영향을 받지 않고 선계에 이를 수 있지. 이걸 다시 제련하려면 꽤 시간이 걸리겠지만 말이야.”
흑포 청년은 빛덩이를 보며 입에서 금색 서책을 꺼냈다.
“의식을 개방하고 저항하지 마라. 도중에 괜히 문제가 생기면 나도 책임질 수 없으니까.”
청년은 수결을 맺어 금색 서책 속으로 법결을 던져 넣었다.
파아앗!
서책에서 무수히 많은 금색 문자들이 빠져나와 빛덩이 속의 작은 짐승을 감싸고 춤추듯 날아다녔다.
이에 수많은 내용들이 혼백에 강제로 각인되기 시작했고 사슴 머리 짐승은 머리를 감싸고 고통스러워했다.
괴수는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영복 계약의 내용을 살피고는 마음을 놓았다.
영복이 되면 다른 사람의 부림을 받아야 하지만 목숨을 걸어야 완수할 수 있는 임무는 약간의 대가를 지불하고 거부할 수 있었고 계약 자체도 완전히 영구적인 것은 아니었다.
조건이 무척 까다롭지만 나중에 계약을 파기할 수도 있었다. 이에 사슴 머리 짐승은 기뻐했고, 흑포 청년은 괴수의 생각을 알고 내심 냉소를 흘렸다.
계약 내용에 문제가 없다는 생각이 들자 양록은 의식을 활짝 개방했고 저항력이 사라진 작은 짐승의 몸으로 금색 주술문자들이 깊이 스며들었다.
양록 본체가 부들부들 몸을 떨다가 눈을 감고 고꾸라졌다.
그제야 흑포 청년은 차분히 금색 서책을 회수했고 작은 짐승이 들어있던 빛덩이도 양록의 몸속으로 종적을 감추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양록은 비틀비틀 몸을 일으키고는 혼백이 정체모를 기운에 구속당하는 느낌이 들자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그는 속으로는 한숨을 내쉬었지만 겉으로는 흑포 청년을 향해 대례를 올렸다.
“좋다. 네가 나와 계약을 맺었으니 이제 약속한 물건을 주마.”
청년은 양록의 절을 받고 담담히 말했다. 곧바로 양록 앞에 파동이 일고 달걀 크기의 금색 단약이 떠올랐다.
단약은 강렬한 금빛 속에 상서로운 기운을 품고 그윽한 향기를 발산하고 있었다. 양록은 그 향기에 정신이 맑아지자 기분이 좋아져 어쩔 줄 몰라 했다.
“진혼단이다! 지금 바로 복용해도 되고 내가 널 선계로 데려간 후에 복용해도 되지만, 나라면 후자를 택할 것이다. 단약이 네 혼백의 힘을 개선하는 대신 복용 후에 이곳 계면의 법칙의 힘에 의해 배척을 받게 될 테니 말이다.”
“예, 주인님! 나중에 복용하겠습니다. 앞으로 최선을 다해 주인님을 모실 테니 믿어주십시오!”
잠시 주춤하던 양록이 공손히 답하고 자홍색 목함을 꺼내 금색 단약을 집어넣었다.
“보물 속에서 휴식을 취할 것이니 너는 바깥을 지키고 있으면 된다.”
“예, 주인님!”
흑포 청년의 명에 양록이 힘차게 답했다. 청년은 빛구슬로 변해 고공의 암녹색 병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콰쾅!
병 표면에 빛이 어리자 마치 무게가 천근은 되는 것처럼 땅으로 뚝 떨어져 산속 깊은 곳으로 파고들어갔다.
양록도 수결을 맺어 땅속으로 들어가 작은 병 옆에 앉아 눈을 감았다.
병 속 공간.
흑포 청년은 이전의 대규모 전투로 어질러진 공간을 보고 소매를 털었다. 그러자 도처에서 안개가 새어나와 모든 흔적을 말끔하게 치웠다. 청년의 손짓에 하늘이 맑아지고 일곱 빛깔 구름이 나타났다.
쉭!
구름은 빛을 머금은 방석으로 변해 그의 곁으로 내려왔다. 청년은 방석에 앉아 눈을 감고 의식을 살폈다.
“이런, 정말 성가시게 되었어. 각치족 녀석들이 법보를 자폭시키는 바람에 원기까지 상하고 법칙의 힘에 고문까지 당하다니. 조사께서 부적 외에도 모조품까지 내려주셔서 그나마 다행이구나. 원래 보물의 만분의 일도 못 따라가지만 그래도 요양하는 시간을 훨씬 단축시켜 줄 것이야.”
청년이 눈을 뜨고 수결을 맺으며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
웅웅!
돌연 공간이 진동하고 녹색 기운이 도처에서 밀려들었다. 녹색 기운 안에서 희미하게 꽃과 풀들이 허상처럼 떠올라 공간을 자욱하게 채웠다.
신기하게도 공간 내부의 영기가 짙어지고 있었다. 청년은 주문을 멈추고 한 손으로 허공을 쥐었다. 이에 암녹색 빛이 반짝이고 작은 병 허상이 그의 손에서 날아올랐다.
“비야 내려라!”
병 허상이 고공으로 스며들자 청년은 전신에서 금빛을 뿜으며 소리쳤다.
쿠쿵!
고공에 거대한 병 허상이 나타나 뒤집혔다.
쏴아아!
거대한 병 입구에서 녹색 액체가 빗물처럼 쏟아져 공간 안을 적셨다. 이에 기이한 꽃과 풀들이 녹색 빗물을 흡수하고는 눈에 보이는 속도로 자라나기 시작했다.
거대한 꽃들과 작은 나무들이 무럭무럭 자라나 진한 약 향기를 풍기자 청년은 놀라지 않고 곧장 수결을 바꾸었다.
주변의 초목이 함유한 푸른 기운이 한 줄기 물결로 변해 그의 몸속으로 밀려들었다.
그는 길게 숨을 들이마시며 푸른 기운 속에서 천천히 눈을 감았다. 이때 고공의 병 허상이 펑! 하고 터져 빛 알갱이로 돌아갔다.
* * *
반년 후.
거대 선박이 천연성 상공에 나타나자 성 안에 있던 인족과 요족들이 난리가 났다.
양족의 장로들은 전부 성 밖으로 나가 거대 선박을 향해 예를 올렸고 서둘러 인근에 머물고 있던 막간리에게 연락을 취했다.
한립은 합체기 수사들의 인사를 받고 선박에 탄 이족 수사들에게 이곳에 남을지 말지를 선택하게 했다.
다음 날, 낭랑한 웃음소리가 멀리서 들려오자 남궁완과 이야기를 나누던 한립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막 형이 오셨군. 완이, 같이 나가 맞이하겠소?”
“막간리 수사라고요? 안 그래도 어떤 분일지 궁금했어요.”
남궁완은 진작 인족의 대승기 수사에 대해 들어보았기에 미소 지으며 따라 일어났다. 이에 한립이 푸른 기운으로 부인을 휘감고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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