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1화. 혈천대륙의 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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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령천 이종족 중 인구수가 가장 많은 월아족(月牙族) 금지.
종족의 삼대 장로가 십여만 족인들을 이끌고 거대 진법의 도움을 받아 한립과 남궁완을 상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립은 일다경이 지나기도 전에 홀로 진법을 파괴하고 수천 월아족인들을 죽였다.
특히 삼대 장로들의 육신은 한립이 공간을 뛰어넘어 날린 주먹 허상 몇 방에 터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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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후.
독 기운에 부패한 식물들이 널려 있는 습지.
소령천에서 가장 신비로운 종족으로 알려진 야면족(夜眠族) 대장로가 한립에게 항복 의사를 전하고 그가 살아 있는 동안은 결코 습지를 한 발자국도 떠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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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만에 한립과 남궁완은 소령천의 모든 이종족 지역을 돌아보았다. 이종족 강자들을 죽일 수 있으면 죽이고 항복하는 자들은 받아주어 그들들을 벌벌 떨게 만들어 놓았다.
이 소식을 들은 인족들은 환호했다. 이제 인족에서 외부 계면에서 온 대승기 수사인 한립에 대해 모르는 자가 없었다.
그만큼 치열한 선발을 거쳐 백여 명의 자질이 뛰어난 후배들이 뽑혔다.
세 달 후, 검은 거대 선박이 다시 녹해에 이렀을 때 묵령성주에는 한립과 남궁완 외에도 합체기 수사들과 인족 후배들이 타고 있었다.
녹해의 녹령족들은 진작 멀찍이 피해 선박 근처에도 접근하지 않았다.
쿠쿵!
검은 선박이 어느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는 거목 위에 멈추었다. 한립이 수결을 맺어 허공의 어딘가를 가리키자 거목에 파동이 일고 경치가 확 달라졌다.
거목이 사라진 자리에는 일곱 빛깔 광채가 반들거리고 있었다.
“언제쯤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 모르겠군.”
한립이 지그시 선박을 밟자 묵령성주는 크기를 줄이며 광채 속으로 뛰어들어 자취를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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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계 해역 어딘가.
고래를 닮은 두 무리의 저계 해양 요수들이 서로 물고 뜯으며 싸우고 있었다. 이에 요수들의 시체가 떠올라 바닷물을 핏빛으로 물들였다.
쿠쿵!
그때 무시무시한 기운이 갑작스레 심해에서 솟아올랐다. 두 무리의 해양 요수들은 화들짝 놀라 싸움이고 뭐고 흩어져 달아나기 급급했다.
별안간 피와 요수 잔해로 물든 바다가 고요해졌다.
촤아아악!
바닷물이 둘로 갈라지고 길이가 천장에 이르는 새까만 거대 선박이 떠올랐다. 선박에 탄 인족 수사들은 대부분이 젊어 보였고 다들 흥분한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심지어 몇몇 젊은 수사들은 눈시울이 붉어져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거대 선박은 소령천에서 돌아온 묵령성주였다.
그들이 해저로 돌아온 순간 일곱 빛깔 광채로 이루어진 통로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붕괴되었다. 다음에 소령천에 돌아가려면 또 다른 상고 제단들을 찾아봐야 한다.
뱃머리에 선 한립과 남궁완을 사이에 두고 인족 수사들은 공경스런 눈빛을 보냈다.
“이곳이 진정한 영계군요. 영기가 소령천에 비할 수 없을 만큼 풍부하고 정순해요. 이런 곳에서 수련해야 선계로 비승도 할 수 있는 거겠죠.”
남궁완이 깊게 바닷바람을 들이마시며 감상에 잠겼다.
“영계가 소령천보다 크고 수련 환경이 좋은 것은 사실이지만 대승기에 이른 수사가 그리 많지는 않소. 인족만 해도 한두 명의 대승기 수사를 보유한 것만으로 영계에서 자리를 잡았으니까. 초 강대 종족의 경우 대승기 수사들을 셋 이상 보유하기도 하는데 같은 대승기 수사라도 수준 차이가 크게 나지. 진정한 대승기 강자는 진령과 싸워도 밀리지 않고 홀로 동급 수사 여럿을 가볍게 상대하기도 하오.”
한립은 빙긋 웃으며 남궁완을 바라보았다.
“부군도 그 대승기 강자 중 한 명이겠네요. 영계 인족의 상황이 열악할 줄은 생각지 못했어요. 그래도 이제 당신이 있으니 달라지겠지요.”
“일대일 전투라면 대승기 강자 누구와 싸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지만 인족이 부흥하려면 장기적인 계획이 필요할 것이오.”
“그렇겠죠. 부군의 실력이면 분명 가능할 거라고 믿어요.”
남궁완이 한립을 바라보는 눈빛이 참 따뜻했다.
“그러기를 바라고 있소.”
순간 한립의 눈빛이 반짝였다.
“이제 풍원대륙으로는 어떻게 가죠? 바다를 건너야 하나요?”
“혁련상맹의 혈천대륙 관리자와 친분이 있소. 그가 관리하는 전송진을 이용하면 바로 풍원대륙으로 건너갈 수 있을 것이오.
“어서 우리 인족이 영계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보고 싶네요!”
남궁완이 해맑게 웃었고 한립도 미소를 지어 보였다.
거대 선박은 이미 방향을 틀어 혈천대륙으로 쏘아져 나가고 있었다.
* * *
몇 달 후.
묵령성주는 혈천대륙 어느 항구 도시 위에 도착해 삼각형 모양의 건물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한립은 남궁완을 데리고 그 건물들 중 한 곳에 들어가 중년 사내가 덜덜 떨며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뭐라? 상맹이 이미 대부분 세력을 철수시켰고 벽영 수사는 목숨을 잃었단 말인가! 나를 상대로 거짓을 고하는 것은 아니겠지? 내가 대륙을 떠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런 일이 벌어졌단 말인가.”
얼굴을 굳힌 한립은 서늘하게 중년인을 쏘아보았다.
“결코 아닙니다. 본 맹의 귀빈령(貴賓令)을 지니신 한 선배님께 제가 어째서 거짓을 고한단 말입니까. 게다가 이 일은 혈천대륙 수사라면 누구나 알고 있으니 제 말을 믿지 못하시겠다면 주변에 알아보십시오.”
중년이 이마 가득 땀방울이 맺혀 쓴웃음을 지으며 허리를 굽실거렸다.
“수많은 대승기 강자들을 홀로 참살했다면 흉마의 실력이 그만큼 대단하다는 소리일 터. 귀 맹은 항상 정보에 밝았던 것으로 알고 있네. 흉마의 정체에 대해 파악한 바가 있는가?”
“총맹에는 정보가 있을지 모르나 소인은 그저 작은 분맹의 관리자입니다. 아는 바가 많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소리는 아니군요. 기탄없이 말해보세요. 아니면, 부군도 알아서는 안 될 정보란 말인가요?”
중년인이 머뭇거리는 것을 본 남궁완이 온화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럴 리가요! 한 선배님께서 알고 싶으시다면야 당연히 말씀을 드려야지요.”
흠칫 놀란 중년인이 고개를 저었고 한립도 표정을 풀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혈천대륙에 뜬금없이 등장한 흉마의 정체가 무척 수상합니다. 그가 펼쳤다는 신통과 공법으로 보아 절대 본 대륙, 심지어는 본 계면 인물이 아닌 것으로 추정되고요. 다른 계면에서 흘러들었거나 아니면 상계에서 강림한 인물이 아닐까 의심하고 있습니다. 제가 들은 소식에 의하면 아무래도 후자일 가능성이 높고요.”
중년인은 아주 조그만 목소리로 속삭였다.
“강림? 자네 말은 흉마가 선계에서 내려온 선인이란 뜻인가! 어찌 그런 판단을 내린 것이지?”
항시 평온하던 한립도 화들짝 놀랄 이야기였다. 남궁완의 아름다운 얼굴에도 놀란 기색이 스쳤다.
“그것이, 누군가 아주 멀리서 흉마가 모종의 강력한 신통을 펼치려는 것을 훔쳐보았는데 계면의 힘이 작용해 법칙 사슬이 그자의 몸을 꿰뚫고 들어가 법력 대부분을 막는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진선계의 선인이 아닌 다음에야 이런 일이 벌어질 리 없지요. 다른 강대 계면에서도 그런 능력자들이 존재하기는 하겠지만 벽영 대인과 수많은 대승기 강자들을 한방에 죽일 수는 없으니까요. 전설 속에 상고진령인 천봉이나 진룡이 나타나도 쉽지 않은 일일 겁니다.”
중년인은 드디어 그렇게 생각한 이유를 털어놓았다.
“법칙 사슬이 나타난 것이 사실이라면 합당한 추론일세. 허나 갑자기 진선이 영계에 나타났다는 말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군! 내 직접 귀 맹의 총단으로 가서 자세한 내막을 알아보겠네. 그럼 벽영 수사가 목숨을 잃고 혈천대륙 관리는 누가 하고 있지? 또 흉마는 지금 어디 있나. 아직도 곳곳의 생력들을 이용해 혈제를 지내고 있는 것인가?”
“벽영 대인께서 돌아가시고 본 맹은 잠시 여러 장로님들이 공동으로 관리하고 계십니다. 다음 총집사가 선출되기 전까지요. 흉마는 혈천대륙 서부의 열댓 곳을 돌며 서부 지역 대부분의 생령을 말살시켰습니다. 그러다 두 달 전인가, 돌연 혈흔종(血痕宗)에 쳐들어가 종문의 대승기 노조 두 명과 고계 제자들을 학살하고 금지의 대륙 간 전송진을 발동해 사라졌다고 합니다.”
“대륙 간 전송진을? 그자가 어디로 갔는지는 알려졌는가?”
한립은 드디어 깜짝 놀란 얼굴로 물었다. 남궁완도 근심스런 표정이었다.
“조사를 해본 결과 뇌명대륙으로 향한 듯합니다.”
중년인의 대답에 한립의 표정이 한결 풀어졌다. 그는 몇 가지 더 물어보고 대청을 떠나 남궁완과 검은 선박으로 돌아갔다.
* * *
뇌명대륙, 끝없이 펼쳐진 비취색 호수 위.
수정실이 불가사의한 속도로 하늘을 가르며 날아들었다.
파공음과 함께 아주 멀리까지 이동한 수정실은 멈추지 않고 잠행을 유지한 채 쾌속으로 날아갔다.
그러다 전방에 나무가 드문드문 자라난 섬이 나타나자 돌연 방향을 틀어 아래로 쏘아져 내려갔다.
펑!
섬의 유일한 누런 산위에 구덩이가 파이고 한쪽 무릎을 꿇다시피 한 백의 청년과 은포 여인이 나타났다.
“두 시진만 쉬었다가 다시 출발한다.”
청년은 퉤! 하고 피를 뱉어내고는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그걸로 되겠어요? 원기를 너무 상해서 이대로 무리해서 비술을 사용하면 얼마 버티지 못할 거라고요.”
침묵하던 은색 장포 여인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럼 어쩌란 것이냐? 그 미치광이가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 그러는지 혈제는 치르지 않고 죽자 사자 우리 뒤만 쫓고 있는데! 혈흔족에서도 불쑥 그놈이 끼어들지 않았으면 전송진을 잘못 조정해 뇌명대륙에 떨어질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진선 마량에게 쫓겨 다른 대륙까지 도망쳐 온 육익과 빙봉이었다.
“그 이유를 몰라서 그럽니까? 혈천대륙에서 혈도종문들이 매복한 일로 열이 받은 것이겠지요! 이제 와서 말해봐야 무엇하겠어요. 저 살인귀를 떼어날 방법이 없다면 이번에는 두 시진도 되지 않아 따라잡힐지 모릅니다.”
빙봉은 냉랭히 육익을 타박했다.
“다른 방법이 있었으면 진원이 상할 때까지 무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하, 잘못하다가는 오늘이 너와 내가 한날한시에 죽게 될지도 모르겠구나!”
“하! 누가 당신이랑 한날한시에 죽겠대요? 얼른 가부좌나 틀고 운기조식하세요. 옆에서 보조할 테니.”
담담하게 웃는 육익을 보고 빙봉이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네 수행으로 나를 돕겠다고?”
“당신보다 수행은 한참 떨어질지 몰라도, 난 오채천봉(五彩天鳳)의 직계 후손이에요. 타고난 비술이 얼마나 많은지 상상도 못할 걸요?”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어디 한번 믿어보지.”
담담한 빙봉의 말에 육익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구덩이 속에서 즉시 가부좌를 틀고 앉아 눈을 감았다.
빙봉은 곧바로 그의 뒤로 가서 자리를 잡고 입에서 하얀 한기를 내뿜었다. 그 안에 손톱 크기의 오색 구슬이 서서히 회전하고 있었다.
한손으로 수결을 맺은 그녀의 등 뒤로 수정 빛이 밀려들어 거대한 빙봉 허상을 만들어냈다.
빙봉 허상은 맑은 목소리로 울부짖으며 두 날개를 활짝 펴고 수많은 수정실들을 내뿜어 오색 구슬 속으로 스며들게 했다.
웅웅!
구슬이 진동하고 짙은 진원의 힘이 흘러나왔다. 이를 악문 빙봉은 손끝으로 구슬을 가리켰다.
쉭!
구슬은 형체가 없는 것처럼 육익의 등 뒤로 흡수되었다. 이어 빙봉이 열손가락을 빠르게 튕기며 주술을 외웠다.
광채로 번뜩이는 그녀의 몸이 점점 하얗고 투명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그때 육익은 등에 위치한 힘의 근원에서 극한(劇寒)의 힘이 흘러나와 경맥을 타고 단전으로 향하는 것을 느꼈다.
단전에 앉아 있던 초췌한 소인이 진원의 힘을 받아들여 점점 혈색이 좋아지고 있었다.
“본원의 힘! 네 본원의 힘을 내게 주입한 것이냐!”
육익이 깜짝 놀라 눈을 번쩍 뜨고 희색을 드러냈다.
“우리가 극한의 체질을 지녔고 비슷한 공법을 익힌 것을 다행으로 아세요. 안 그랬으면 본원의 힘을 직접 넘겨주고 싶었어도 방법이 없었을 거예요.”
빙봉은 전혀 감정이 담긴 어조로 답했다.
“덕분에 몇 번 더 비술을 펼쳐 달아날 수 있게 되었다. 허나 네 수행이 높지 않아 이런 식으로는 오래 가지 못할 터. 반드시 다른 방책을 찾아야 할 것인데…….”
“무슨 방법이 있겠어요?”
“묘책이 있기는 한데 이전에는 미치광이가 너무 바짝 쫓아와서 시행할 엄두를 내지 못했지. 재앙을 우리 힘으로 없앨 수 없다면 남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방법이 있으면 진원의 힘이 보충된 동안 서둘러야죠.”
“네가 재촉하지 않아도 그리 할 것이다. 전송진이 있는 가장 가까운 성으로 이동해서 하루 발리 각치족 영역에 진입해야 한다. 듣기로 뇌명대륙에서 제일가는 초대형 세력이라더군. 대승기 수사들도 상당히 머물고 있을 테니 그 진선 미치광이를 데리고 시간을 좀 끌어주겠지!”
육익은 숨김없이 흉악한 계획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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