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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394화 (1,151/2,000)

1394화. 천지이진(天地二陣)

*

그 시각, 제단 앞에 선 한립은 희색이 만연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찾았다! 소령계로 통하는 입구 표식이 남아 있어.”

“한 선배님, 그게 정말이십니까?”

그의 혼잣말을 듣고 곁에서 술법을 보조하던 주과아가 깜짝 놀라 물었다.

“그래, 오랜 시간 제단들을 찾아다닌 일이 헛고생은 아니었구나.”

한립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고는 제단 뒤에 뜬 원반 모양의 빛의 장막을 없앴다.

“입구의 위치를 알아냈으면 지금 바로 가면 될까요?”

“조급해 말거라. 혈천대륙 지도에 따르면 소령천 입구는 대륙에서 멀리 떨어진 심해에 있다.”

한립은 혈천대륙 지도와 제단에 남겨진 위치를 비교해보고는 미간을 좁혔다.

“심해 속에요? 그럼 찾기 어려울까요?”

“걱정할 것 없다. 내 이런 상황을 대비해 두었으니. 화석, 때가 되면 네 실력을 보여줘야겠구나.”

그는 울상을 짓는 주과아를 보고 화석 노조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예, 선배님! 물속은 제게 평지와 다름없습니다. 그 안에서 입구를 찾는 것은 제게 맡겨 주십시오!”

화석 노조가 공손히 대답했다. 이에 한립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들을 데리고 날아올라 고공에 떠있는 검은 선박으로 돌아갔다.

쿠릉!

선박이 진동하며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 * *

7일 후, 사막 깊은 곳.

가면을 쓴 사내가 뒷짐을 쥐고 모래 언덕에 서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의 거대한 구렁 속에는 만여 혈도종문 정예 제자들이 도열해 있었다.

그들이 서있는 곳은 사막 지대 절반을 차지한 초대형 진법 위로, 수천 개의 극품 영석과 진법 법기와 원반을 든 제자들이 곳곳에 위치해 있었다.

하늘에는 만 리를 뒤덮은 먹구름 속에 또 다른 초대형 빛의 진법이 몸을 숨기고 있었다.

빛의 진법 속에는 열댓 병의 혈천 대승기 수사들이 떠서 조용히 무언가를 기다렸다.

사막에는 뜨거운 기운이 담긴 모래바람만이 불고 있었다.

“어째서 아직도 오지 않는 걸까요. 설마 그 녀석이 흉마에게 들킬까 겁나 중도에 달아나 버린 것은 아니겠지요? 따로 그들을 감시할 인원을 파견해 두지 않았습니까.”

빛의 진법 속에서 붉은 머리를 길게 기른 거한이 기다리다 지쳤는지 곁의 뚱뚱한 노인에게 전음을 보냈다.

“차기 형, 그건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유는 모르지만 흉마는 육익과 그 일행을 장시간 추격하고 있었어요. 육익이 조금만 머리가 돌아가도 흉마를 처리할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겁니다.”

뚱보 노인은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전음으로 답했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그 흉마가 그리 대단하답니까? 대승기 수사 12명이 천지이진(天地二陣)을 펼쳐두고 혈골문에서는 황풍도(黃風圖)까지 동원했습니다. 보물과 진법만으로도 그자를 가둬 죽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붉은 머리 거한이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그건 이 늙은이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작전을 주관하는 수사들이 신중을 기하는 것을 보면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요. 다른 건 몰라도 홀로 대승기 수사 셋을 죽이고 혈천대륙에서 겁도 없이 수많은 생령들로 혈제를 지내는 것을 보면 조심할 필요는 있다고 봅니다.”

“그런 녀석이 어디서 갑자기 타나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이전에는 줄곧 수련만 했던 것인지 아니면 다른 계면에서 넘어온 것인지요.”

“기왕 이렇게 된 것 고민할 필요 없습니다. 상대의 정체가 무엇이든 혈천대륙의 거대 종문들을 건드렸으니 더는 살아남을 수 없을 테니까요. 거대 종문들이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만들 겁니다.”

뚱보 노인은 두툼한 턱을 쓸어내리며 웃음을 흘렸다.

“그건 그렇습니다. 혁련상맹의 벽영 수사와 만고산의 영운부인 그리고 낙천곡의 하대선생도 이번 항마대전에 관전을 수락했다지요. 그들이 나서면 흉마는 끝일 겁니다.”

“허허, 그들 신분에 함께 힘을 합쳐 적을 상대하는 모습이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강력한 진법에 보물 그리고 우리가 있는데 그들에게 차례가 돌아가기나 할까요.”

뚱보 노인과 붉은 머리 거한이 전음으로 담소를 나누고 있을 때, 모래사막 바깥의 성에서도 네 명의 대승기 노조가 모여 있었다.

강력한 기운을 풍기는 네 노조들은 하얀빛으로 이루어진 구슬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 중 녹색 장포를 입은 이가 바로 혁련상맹의 벽영이었고, 나머지 셋은 유생 차림의 중년인과 화려한 의복을 걸친 중년 부인 그리고 핏빛 장포를 걸친 매부리코 사내였다.

네 사람은 그저 구슬에 나타난 모습에 집중할 뿐 아무 말도 주고받지 않았다.

* * *

반나절이 흐르자 사막 외곽에서 파공음이 들리고 수정빛이 무서운 속도로 날아들었다. 그리고 바로 뒤에서 일곱 빛깔 구름이 하늘을 가르며 쫓고 있었다.

“감히 내 성질을 건드려? 이제 장난질도 싫증이 나던 참이니 너희는 죽은 목숨이다!”

냉랭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놀랍게도 구름 속에서 일곱 빛깔 뇌전으로 변해 속도를 높였다.

수정빛 둔광과 뇌전은 일다경을 쫓고 쫓기면 사막을 절반 정도 가로질렀다. 앞서가던 둔광이 가시고 날개가 8개 달린 새하얀 지네와 은색 궁장 차림의 아름다운 여인이 나타났다.

거대 지네는 허공을 굴러 얼굴에 금은색 문양이 새겨진 백포 청년으로 변했다.

콰릉!

뒤쪽에서 벼락 소리가 들리고 뇌전이 그들이 멈춰선 곳으로 쇄도했다.

육익은 등 뒤로 한기를 휘날리며 반투명한 8개의 날개를 불러내 다시 지네의 모습으로 변했다.

그가 빙봉을 데리고 그곳을 벗어나자 동시에 하늘과 땅에서 굉음이 들려왔다.

쿠쿠쿠쿵!

엄청난 흡입력이 바닥에서 밀려들고 있었다.

일곱 빛깔 뇌전은 곧장 허공에 멈춰 흑포를 입은 병약한 모습의 청년으로 변했다. 바로 영계에 강림한 진선 마량이었다.

모래 속에서 다채로운 빛깔의 빛기둥들이 구름까지 솟구쳤다. 땅이 마구 흔들리며 한눈에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거대한 초대형 진법이 나타났다.

그 위에는 혈도 제자들이 서서 진법 법기를 발동하고 주문을 외고 있었다.

먹구름으로 가려져 있던 하늘이 확 밝아지면서 광활한 지역이 빛의 진법으로 뒤덮였다.

아래위로 등장한 두 개의 초대형 진법 때문에 놀라운 파동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그사이에 선 흑포 청년은 멀리서 보면 개미처럼 작아 보였다.

이때 빛의 진법에서 12명의 혈도 대승기 수사들이 빠져나와 흑포 청년을 포위했다.

콰직!

흑포 청년은 두려워하는 기색도 없이 주변을 슥 훑고 소매 속에서 기운을 날려 자신을 구속하던 흡입력을 상쇄시켰다.

“담도 크구나. 감히 매복을 하고 나를 덮쳐? 이렇게 많은 인원이 동원된 것을 보면 나를 이곳에서 죽일 생각인 듯하구나.”

천지이진과 대승기 수사들을 보고선 흑포 청년이 냉소했다.

“혈천대륙에서 수많은 생령들을 희생해 혈제를 치를 때 이런 날이 올 줄 몰랐단 말입니까!”

핏빛 기운에 둘러싸인 대승기 수사가 노호성을 터트렸다.

“뭐, 예상은 했지. 허나 저것들과 짜고 일을 벌일 줄은 몰랐구나. 하아, 안 그래도 쫓아다니기 슬슬 지겨워지던 참이니까. 너희를 멸하고 손을 봐주면 되겠지.”

흑포 청년은 육익과 빙봉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았다.

“관을 보기 전에는 눈물 흘리지 않는다더니 네 놈이 딱 그 짝이로구나! 저런 흉마와 무슨 대화를 나누려 하십니까! 칩시다!”

묵색 의복을 입은 노인이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그는 소매 속에서 열댓 개의 핏빛 비검을 날렸고 다른 대승기 수사들도 각종 보물로 공격을 퍼부었다.

웅웅!

하늘과 땅의 두 진법이 강렬하게 진동하고 무수히 많은 주술문자를 내뿜었다.

하늘의 진법은 내뿜은 빛이 하늘을 가리는 거대 거울로 변해 그 안에서 은색 실들을 폭우처럼 쏟아냈고, 땅의 진법은 하얀 바람을 일으켜 거대한 ‘봉(封)’자를 만들어냈다.

흑포 청년은 도처에서 밀려드는 법칙의 힘을 느끼고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쿠와앙!

다음 순간, 그의 몸에서 엄청난 기운의 폭발이 일고 자금색 사슬이 나타나 눈부신 빛을 뿜었다.

하늘이 어두워지고 천지원기가 깔때기 모양을 이루며 미친 듯이 그를 향해 밀려들었다.

* * *

사막 외곽, 가면을 쓴 사내가 허공에 떠서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그는 혈골문 태상장로 소명이었다. 그는 뒷짐을 쥐고 서서 천지를 멸할 것 같은 기운과 폭음을 감지하고 표정이 달라졌다.

“천지이진으로도 그자를 제압할 수 없단 말인가! 황풍도를 사용하지 않고는 안 되겠구나.”

소명은 입에서 노란색의 둘둘 말린 족자를 내뿜었다. 족자에는 사막의 지도가 담겨 있었는데 그가 서있는 곳과 똑같이 생긴 지도였다.

파아앗!

그가 묵묵히 지도를 가리키자 그림에 불과하던 지형이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휘이잉!

그것에 반응하듯 사막은 괴이한 힘에 의해 모래 알갱이들이 떠올라 광풍을 이루었다. 소명은 한 손으로 수결을 맺고는 족자 속으로 법결을 던져 넣었다.

지도 속 사막이 변두리에서부터 흐릿하게 변해 노란 안개로 뒤덮이고 있었다. 동시에 소명 앞으로 노란 안개가 거대한 돌풍으로 변해 일렬로 대기했다.

마치 노란 바람의 벽이 생겨난 것 같았다.

“가라!”

소명의 외침에 누런 바람벽에서 바람 소리가 들려오고 주위의 모래들이 밀려들어 모래안개를 이루었다.

노란 광풍이 만들어낸 풍벽은 거대한 장막이 되어 모래사막을 가리고 있었다.

소명은 멀리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천천히 두 눈을 감고 묵묵히 눈앞의 족자를 조종했다.

* * *

금색 고탑(高塔) 안.

구슬에 비친 누런 모래바람 때문에 사막의 상황이 잘 보이지 않았다. 이에 오색찬란한 의복을 입은 부인이 인상을 찡그렸다.

“옥 형, 소명 수사가 혈골문의 보물인 황풍도를 사용한 것이지요? 영계의 현천의 보물 중 꽤 높은 순위에 올라있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관천경(觀天鏡)까지 가린 것으로 보아 명불허전입니다. 그런데 너무 일찍 황풍도를 동원한 게 아닌가 걱정입니다. 소 수사가 과하게 조심하는 것 같아요.”

“허허, 유명한 황풍도가 맞습니다! 평소에는 혈골문의 조사당에 모셨다가 강적이 나타나면 여러 장로들이 함께 꺼내와 적을 상대하지요. 사실 황풍도는 미리 발동을 해둔 것과 다름없습니다. 흉마가 진입한 사막 자체를 그 보물로 만들어둔 것이니까요.

소 수사가 과감히 보물을 동원한 것도 모두 만에 하나를 대비해서가 아니겠습니까? 흉마의 실력이 보통이 아닌 것은 알려진 사실이니 천지이진과 황풍도로 동시에 가둬야 합당하다고 판단한 것이지요. 벽 형 생각은 어떠십니까? 이런, 안색이 좋지 않으신데 무슨 걱정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핏빛 장포를 입은 매부리코 거한이 설명을 하다 이상하다는 얼굴로 벽영을 보았다. 이때 벽영은 구슬에 비춰진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넋이 나간 듯 난색을 표하며 매부리코 거한에게 답했다.

“아, 아닙니다. 그저 방금 흉마의 모습을 언뜻 보았는데 이상하게도 가슴이 떨리고 소름이 돋아서요.”

“그런 일이 있었다고요? 우리 정도 수행에 이르면 그런 예감을 무시할 수 없지요. 하 수사, 영운부인께서도 마찬가지십니까?”

매부리코 노인의 안색이 확 달라져 심각한 얼굴로 다른 두 명에게 물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저도 이상한 느낌은 받지 못했습니다. 벽 형, 무언가 착각한 것 아니십니까?”

유생 차림의 사내가 벽영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착각이든 아니든 저는 가봐야겠습니다. 이번 일의 결과는 옥 형께서 본 맹으로 소식을 보내주시지요.”

다른 이들과 달리 벽영은 얼굴 근육을 꿈틀거리며 당장 떠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다들 어안이 벙벙해졌다.

“허허! 벽 형, 걱정도 많으십니다. 아무리 위험한 일이 생기더라도 우리는 이곳에 있는데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조금만 기다리셨다가 항마전투가 끝나면 그때…….”

매부리코 사내가 그를 말리려는데 그들 앞의 화면에 돌연 금빛들이 반짝였다. 그리고 날카로운 금빛들이 풍벽을 뚫고 나타나 그들이 지켜보던 모습조차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이게…….”

“큰일입니다! 관천경이 깨지려 하고 있어요!”

그때 매부리코 노인이 소리를 높였다.

챙강!

빛의 장막으로 이루어진 화면이 깨지며 기운의 파동이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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