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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391화 (1,148/2,000)
  • 1391화. 승리

    *

    “휴우.”

    거원이 탄식하며 한 손으로 자신의 뒤통수를 쳤다. 뒤통수에서 다양한 색깔의 빛구슬이 떠올라 천봉, 진룡, 뇌붕 등 진령 허상으로 변해 거원의 몸 안으로 뛰어들었다.

    으드득!

    금털 거원의 몸 안에서 폭죽 터지는 소리가 들리고 세 개의 머리 위로 짧은 뿔이 돋아났다. 자금색 비늘로 뒤덮인 마화된 거원은 주위의 천지원기를 미친 듯이 빨아들이고 있었다.

    한립도 흉사왕을 평범한 방법으로는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열반성체 삼열변신에 들어간 것이다.

    크아아아앙!

    마화된 거원은 고개를 쳐들고 포효하며 두 손으로 거대 손을 잡아채 악력으로 터트리고 입에서 금빛을 내뿜어 검은 그물들을 전부 빨아들였다.

    “저건 뭐야?”

    멀리서 흉사왕 거인이 기겁해 서둘러 손가락으로 허공을 가리켰다.

    키헤헥! 키에에엑!

    동시에 거원 주변에 더 많은 악귀 얼굴들이 검은 기운을 품고 떠올라 악에 바친 얼굴로 주문을 외워댔다.

    “같은 수법이 통할 듯싶습니까?”

    마화된 거원은 어이가 없다는 듯 외치고 여섯 개의 팔을 동시에 뻗었다.

    쿠콰콰쾅!

    금색 소용돌이 여섯 개가 나타나 무서운 흡입력을 발동했다. 희미하게 법칙의 힘이 작용하고 있었다. 악귀 얼굴들은 처절하게 비명을 지르며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앗, 천목(千目)의 힘!”

    흉사왕이 재빨리 두 손으로 수결을 맺었다. 그러자 사라진 악귀 얼굴들이 다시 나타나 부릅뜬 두 눈에서 녹색 실을 발사했다.

    번득 날아간 실들이 한곳에 모여 굵은 빛기둥으로 변해 마화된 거원에게로 쏘아져나갔다. 얼굴을 굳힌 거원은 자금색 비늘로 뒤덮인 한 손을 펼쳤다.

    콰콰콰쾅!

    산봉우리가 진동을 하고 녹색 빛기둥은 금색 거대 손에 막혀 폭발했다. 여파가 사라지고 난 뒤에 남은 것은 금색 거대 손뿐이었다.

    수많은 전투를 치러온 흉사왕의 얼굴에 조급함이 어렸다. 그가 눈을 굴리며 다른 강력한 신통을 펼치려고 할 때 멀리 거원의 손에 암녹색 장검이 들렸다.

    거원은 신중한 얼굴을 하고 여섯 개의 손으로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파앗!

    마화된 거원에게서 자금색 빛이 떠올라 조금 전 흡수한 천지원기를 장검으로 쏟아부었다.

    은색 주술문자들이 반짝이는 암녹색 장검은 흐릿하게 변해 초승달 모양으로 사라졌다.

    “혀, 현천의 보물!”

    암녹색 장검을 보고 법칙 파동을 감지한 흉사왕이 서둘러 수결을 맺어 특수한 둔술을 펼치려 했다.

    우우웅!

    이때 흉사왕 거인 위로 암녹색 초승들이 떠올라 빛을 만발했다. 무서운 법칙의 힘이 도래하고 있었다. 흉사왕은 온몸에 소름이 돋고 주변이 얼어붙은 듯 꼼짝하지 못했다.

    전력으로 발동한 현천참령검의 위력은 흉사왕의 예상을 초월했다. 이전에 본 다른 현천의 보물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었다.

    “안 돼! 하, 항복! 금제를 열어!”

    겁에 질린 흉사왕 거인이 패배를 인정한 순간 산봉우리를 가리고 있던 두 겹의 보호막은 허물어져 사라졌다. 하지만 녹색 초승달은 거리낌 없이 빛을 내뿜고 있었다.

    “터져라, 천귀의 힘!”

    연달아 여러 비술을 쓰고도 도저히 법칙의 힘에서 벗어날 수 없자 흉사왕은 최후의 한 수를 썼다.

    쿠르릉! 쿠르르릉!

    천여 개의 악귀 얼굴들이 핏빛으로 물들어 연쇄 폭발을 일으켰다. 핏빛이 사방팔방으로 퍼져 법칙의 힘에 저항하고 있었다. 흉사왕은 거인화된 몸을 급속도로 수축해 쉭! 하고 튀어 나갔다.

    “이제 와서 벗어날 수 있을 성 싶습니까.”

    멀리서 주시하고 있던 거원이 돌연 암녹색 검을 움직였다. 평범해 보이는 동작에 커다란 칼날 절반이 흐릿하게 사라졌다.

    동시에 막 핏빛이 붙들어둔 녹색 초승달 옆을 비켜 지나가려던 흉사왕 옆에 녹색 빛이 폭발했다.

    서걱!

    절반짜리 투명한 칼 조각이 제대로 확인할 틈도 주지 않고 흉사왕의 허리를 잘라냈다. 이에 흉사왕은 참혹하게 비명을 지르고 황급히 한 손으로 수결을 맺어 하반신을 핏빛 안개로 폭파시켰다.

    남은 상반신이 그 핏빛 안개로 뒤덮여 불가사의한 속도로 도망쳤다. 거원이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허공을 가리켰다.

    펑!

    녹색 초승달이 휘리릭 회전하다 터져나갔다. 그 안에서 암녹색 실들이 튀어나가 핏빛 안개에 무수히 많은 구멍을 뚫어버렸다.

    흉사왕은 신음 소리와 함께 상반신에 구멍이 숭숭 뚫린 채 나타났다. 하반신이 잘리고 상반신도 너덜너덜했지만 흉사왕은 죽지 않았다.

    그는 여러 음산한 기운을 내뿜는 보물들로 몸을 보호하고 다른 산봉우리 쪽으로 쏘아져 나갔다.

    “…….”

    이번에는 한립이 직접 움직였다. 현천참령검까지 사용했는데 살려 보낼 수 없었다.

    보물로 몸을 보호하고 전광석화처럼 날아가던 흉사왕 앞에 금빛이 번득이고 거산 크기의 거원이 소리 없이 나타났다.

    거원은 금빛의 거대한 손바닥으로 흉사왕의 머리를 내리쳤다.

    콰직!

    방어보물들은 물론이고 흉사왕의 상반신도 화를 피하지 못했다. 일장(一掌)에 가루가 되어 으깨지고 만 것이다.

    쉭! 쉭!

    흉사왕은 끈질겼다.

    검은 기운 두 덩이가 흐릿하게 살점 덩어리를 빠져나와 다른 방향으로 달아났다.

    거원은 인상을 찡그리며 손끝으로 그중 하나를 가리켰다.

    푸른 검기가 날아가 가른 검은 덩어리 안에는 원숭이를 닮은 괴물이 들어있었다.

    콰릉!

    검기에 금색 뇌전이 튀어 올라 괴물을 한순간에 재로 만들었다.

    흉사왕의 법력이 지탱해 주지 않는 제2원신은 이전보다 허약할 수밖에 없었다.

    또 다른 검은 덩어리 안에는 소머리에 사람의 몸을 한 괴물이 숨어 있었다.

    쉬익!

    소머리 괴물도 얼마 도망가지 못해 귀곡성을 흘리며 산산조각이 났다. 금색 소인이 기다리고 있다 무형의 검기로 공격했기 때문이다.

    소인은 흉사왕 원영이 남긴 귀기마저 깡그리 흡수했다. 이렇게 음사십왕 중 흉사왕이 강자결전에서 목숨을 잃었다.

    * * *

    또 다른 세계, 지하 깊은 곳에 위치한 새까만 전당.

    쾅!

    나란히 놓인 열 개의 청석 관에서 검은 그림자가 뚜껑을 박차고 일어났다.

    “누가 감히 내 본체를 멸살했단 말이냐! 잡히기만 하면 피부를 다 벗기고 근육을 뽑아 죽인 다음 영진음혼해(永鎭陰魂海)에 처박아 둘 것이야!”

    검은 그림자가 관을 빠져나와 빠르게 대전 밖으로 날아갔다.

    * * *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온 한립은 손에 혈홍색 구슬을 들고 만지작거렸다. 검은 기운이 감도는 구슬 위로 검은 점들이 콕콕 박혀 있었다.

    영목신통을 발휘해 수백 배로 확대해 보니 점 하나하나가 고통으로 일그러진 악귀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쯧, 생긴 것은 흉하지만 갖고 돌아가 연구해볼 만하겠구나.”

    그는 흉사황 정혼 속에서 챙긴 구슬을 넣고는 다른 산봉우리를 둘러보았다. 그가 서있는 산봉우리를 제외하면 다른 네 곳은 아직도 보호막에 싸여 있었다.

    그가 가장 먼저 결전을 마친 것이다.

    한립은 잠시 중간 산봉우리를 쳐다보다 왼쪽으로 몸을 날렸다. 기억대로라면 문심봉이 싸우고 있을 것이다.

    산 정상 보호막 위에 도착한 그는 검은 산봉우리를 집어 던졌다. 산봉우리는 커다란 검은 그림자로 변해 날아갔다.

    또 다른 손으로는 수결을 맺고 커다란 푸른 검기를 만들어 보호막을 갈랐다. 한립 옆에선 금색 소인도 말없이 어깨를 털어 무형의 검기들을 분출했다.

    쿠콰쾅!

    두 겹으로 이루어진 보호막이 현묘해도 한립과 서금충왕이 힘을 합쳐 대놓고 깨부수는데 오래 버틸 수 없었다. 순식간에 보호막이 깨지고 내부 상황이 드러났다.

    산봉우리의 두 곳에서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아담하고 귀여운 날개 달린 담비가 산만하게 변해 비슷한 체구의 쌍두 도마뱀과 육탄전을 벌이고 있었다.

    담비가 날개를 펄럭일 때마다 은색 뇌전이 흘러나왔고, 도마뱀의 붉은 머리와 푸른 머리는 각각 화염과 건은 기운을 분사했다.

    둘 다 피부가 두껍고 싸움에 능해 단시간 내로 승부가 나지 않을 듯했다.

    그러나 다른 곳의 전투는 비교적 괴이했다.

    녹색 죽간을 깔고 앉아있는 문심봉을 오색 기운으로 이루어진 옷이 덮고 있었고 그 위로 우윳빛 원반이 떠서 은색 주술문자를 날리고 있었다.

    또한 그 맞은편에는 피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피바다 중심에는 핏빛 연꽃에 앉은 백골 수사가 기괴한 수결을 맺으며 한 손에 혈홍색 사발을 들고 있었다.

    피로 촉촉하게 젖은 하얀 백골 수사의 등 뒤로 금빛 광채가 피어올랐다. 이상한 것은 백골 수사고, 문심봉이고 눈을 감고 앉아서 움직임이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한립은 눈에서 남색 빛을 번득였다.

    그러자 원래 텅 비어 있는 것처럼 보이던 두 수사 사이의 공간에 완전히 다른 생(生)과 멸(滅)의 세계가 펼쳐져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화염의 세계에서는 검은 기운이 변한 해골들이 흉포하게 날뛰었고, 녹음이 푸르른 세계에서는 수목과 덩굴 그리고 오채색의 나비들이 가득했다.

    두 세계는 경계선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충돌했다.

    화염은 수목과 나비들을 태워 재로 만들었고 수목과 덩굴은 화염 속의 해골들을 끌어와 보양을 하며 몸집을 키워갔다.

    두 세계의 충돌로 중간에 거대한 소용돌이가 형성되었는데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아 모든 것이 환상처럼 느껴졌다.

    “놀랍게도 둘 다 영역(靈域)을 발동해서 싸우고 있어! 평범한 대승기 수사는 상대가 되지 않겠구나. 금동, 너는 가서 도마뱀 요수를 죽여라. 귀왕은 내가 알아서 하마.”

    한립이 상황 파악을 마치고 명을 내렸다.

    이에 금색 소인은 금빛 빛줄기로 변해 아래쪽의 머리가 둘 달린 도마뱀에게로 날아갔고, 한립은 허공에서 빙글 돌아 은색 뇌전을 두른 커다란 뇌붕으로 변해 날아갔다.

    보호막이 깨진 순간, 대결 중이던 문심봉과 백골 모두 한립과 서금충왕의 존재를 발견했다.

    문심봉은 무척 반가웠지만 백골 수사는 서금충왕과 거대 붕새가 하강하는 것을 보고 가슴이 서늘해졌다.

    그러나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눈에서 화염을 이글거리며 들고 있던 발우를 고공으로 던졌다.

    발우는 무수히 많은 핏빛 주술문자를 불러내고는 거대하게 변해 곧장 금색 소인을 쫓았다. 동시에 핏빛 화염 안에서 열댓 마리의 혈교(血蛟)들이 솟아올라 거대 붕새를 노렸다.

    백골 수사는 다른 손으로 신속히 수결을 맺고 멀리 두 세계의 경계면을 가리켰다.

    쿠르릉!

    녹음이 푸르른 세계와 대치하던 화염 세계가 아무런 징조 없이 폭발해 방대하기 이를 데 없는 핏빛 태양을 만들어냈다.

    태양은 무너져 내리는 핏빛 세계를 미친 듯이 빨아들였다.

    상대의 자폭 공격에 녹음이 푸르른 세계는 나무, 덩굴 허상이 일그러지고 대부분의 나비들이 몸을 떨다가 터져서 가루가 되었다.

    놀란 문심봉이 서둘러 수결을 맺고 자신의 푸르른 세계로 열손가락을 튕겨댔다.

    푹! 푹!

    핏빛 발우 속에서 강력한 흡입력이 발동해 금색 소인의 둔광을 빨아들이려하자 소인의 눈에서 두 줄기의 강력한 수정 빛줄기가 방출되었다.

    발우는 교룡처럼 날아드는 수정 빛줄기를 맞고는 아래쪽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고 말았다.

    극심한 손상에 발우는 급속도로 작아지기 시작했고 금색 소인은 빛줄기들을 이용해 발우를 사정없이 베어 산산조각 냈다.

    금색 소인은 즉시 몸을 날려 두 수정 빛줄기와 하나로 융합되어 쏘아져 나갔다.

    굵은 빛줄기가 번득 사라져 쌍두(雙頭) 도마뱀 주위를 흐릿하게 휘감았다.

    쌍두 도마뱀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피할 수도, 숨을 수도 없어 겨우 적홍색 화염 보호막만 방출했다.

    쉬익!

    금색 빛줄기가 쌍두 도마뱀을 산산조각 냈지만 어찌나 생명력이 강한지 조각 난 몸이 꿈틀대며 검은 기운 속에서 다시 하나로 합쳐지려 했다.

    그때 거대 담비가 펄쩍 덤벼들어 앞발로 도마뱀 조각 하나를 붙들고 물어뜯기 시작했다.

    격렬하게 반항을 하던 쌍두 도마뱀 조각은 거대 담비가 몇 번 뜯어먹자 사라졌다.

    거대 담비는 흥분한 얼굴로 다른 조각을 찾아 고개를 돌렸다. 인근 허공에 선 금색 소인은 쳐다보기만 할 뿐 말리지 않았다.

    결국 쌍두 도마뱀 조각들은 순식간에 거대 담비의 뱃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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