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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390화 (1,147/2,000)

1390화. 귀기(鬼氣)

*

흉사왕은 빛구슬을 전부 삼킨 악귀 얼굴로 녹색 정혈을 분출해 흡수시켰다. 악귀 얼굴은 꺽! 하고 트림을 하고는 작은 산 크기로 불어나 한립을 향해 입을 벌렸다.

불현듯 하늘이 어둑해졌다! 악귀 얼굴이 입을 벌려 모든 것을 집어삼키려 했다.

“탄서천지(呑噬天地).”

악귀 얼굴의 강력한 신통에 삼두육비 거원의 안색이 달라졌다. 거원은 금색 주술문자가 반짝이는 여섯 개의 손을 펼쳐 각각 금빛 찬란한 빛구슬을 하나씩 만들어냈다.

여섯 개의 금구슬이 악귀 얼굴 아래쪽으로 이동했다.

퍼펑!

금구슬들이 터지며 주술문자를 뿜어내 금색 소용돌이가 형성되었다. 거대한 소용돌이가 불경소리를 내며 빙글빙글 회전했다.

쿠쿠쿵!

악귀 얼굴이 커다란 입으로 금색 소용돌이를 물어 뜯으려 했다. 다른 속성의 두 힘이 부딪쳐 폭음과 요란한 빛이 일렁였다.

아래쪽은 금빛, 위쪽은 검은빛으로 물들어 악귀 얼굴과 소용돌이가 대치했다. 그 모습에 흉사왕의 표정이 처음으로 진지해졌다.

그는 돌연 한 발을 떼서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팟!

거원 머리 위로 파동이 일고 새까만 물이 핏빛덩이를 이끌고 떨어졌다. 눈을 가늘게 뜬 거원이 한 팔을 고공으로 휘둘렀다.

콰쾅!

검은 거대 발을 금색 태양이 받쳐 들었다. 이때 허공이 출렁이고 흉사왕의 거대해진 몸이 완전히 드러났다.

거인은 악의에 찬 웃음을 흘리며 두 손을 뻗었는데 마치 커다란 먹구름 두 덩이가 날아드는 듯했다.

먹구름 속에서 핏빛 화염과 코를 찌르는 피비린내가 가득했다.

“와라.”

상대가 거인으로 변해 육탄전을 시작한 것을 보고는 한립은 오히려 희색을 드러냈다. 금털 거원이 수결을 맺어 자신의 몸도 산만하게 부풀렸다.

피부에 크고 작은 은색 문양 진법들이 나타나고 여섯 손에는 도, 검, 지팡이, 고리 등의 여섯 가지 금색 병장기가 들렸다.

거원이 힘을 실어 여섯 개의 팔을 휘두르자 병장기들이 여섯 개의 돌풍으로 변해 고공으로 튀어 나갔다.

콰르릉!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굉음이 우렁차게 울렸다. 금색의 병장기 여섯 개가가루가 되어 사라지고 거원은 몸을 떨며 뒤로 두 발자국 물러났다.

그리고 흉사왕이 변한 거인은 먹구름이 흩어져 두 팔이 있어야 할 자리에 핏빛 안개만 가득했다. 확실히 거원보다 더 낭패를 당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중상을 입은 흉사왕은 물러서기는커녕 억지로 한 발을 들어 올렸다.

퍽!

검은 문양이 생긴 거인의 종아리가 스스로 터져 검은 기운으로 변했다. 그리고 검은 기운들은 커다란 흑룡으로 변해 쏘아져 나갔다.

동시에 흉사왕도 어깨를 털며 입을 벌렸다.

쉬쉬쉬쉭!

찰나의 순간 거인의 갑옷에 박힌 날카로운 가시들이 튀어나가 핏빛 송곳으로 변해 떨어져 내렸고, 입에서는 핏빛 괴상한 구름이 분출되었다.

웽웽웽웽.

핏빛 괴상한 구름은 손가락 굵기의 검은 괴충 떼였다. 검은 껍질에 새빨간 날개를 지닌 괴충들은 입안에 날카로운 이빨이 가득했다.

거원이 몰아치는 공격들을 보고 크게 웃음을 터트리고 여섯 개의 팔을 위로 펼쳤다.

굵직한 금색 뇌전이 팔을 타고 솟아올라 구렁이 여섯 마리로 변해 마침 달려드는 흑룡을 포위했다. 구렁이들과 용은 서로를 물어뜯고 할퀴느라 분주했다.

다음으로 핏빛 송곳들이 거원 가까이에 이르렀다. 금털 거원의 세 입이 동시에 훅! 하고 입김을 불어 푸른 바람을 만들어냈다.

그러자 세찬 바람에 휩쓸린 송곳들은 이리저리 흔들리며 중심을 잡지 못했다.

그 뒤를 따라오던 괴충 떼는 지능이 꽤 높은지 웽! 하고 급격히 방향을 틀어 열댓 개 무리로 흩어져 바람을 피했다.

금털 거원은 괴충들이 푸른 바람을 돌아 날아드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다 화륵! 은색 불길을 키워 불바다를 만들었다.

치치치치칙!

빠른 속도로 다가오던 괴충들은 제때 피하지 못하고 불길에 휩싸여 재가 되었다.

그 순간, 거원 뒤쪽에서 검은 기운이 일고 빼빼 마른 악귀의 손이 쇄도했다. 놀랍게도 악귀의 손은 은색 화염과 보호막을 뚫고 그대로 거원의 등을 찔렀다.

퍽!

금털 거원의 등 뒤로 은색 문양 진법이 나타나 악귀의 손을 막았다. 말라비틀어진 악귀의 손은 엄청난 괴력을 지니고 있는지 힘을 주자 거원의 방대한 육체가 앞으로 밀려났다.

그러나 은색 문양 진법은 잠시 반짝거렸을 뿐 전혀 손상되지 않았다. 잠시 비틀거리던 금털 거원이 재빨리 한 손을 뒤로 뻗었다.

금빛 검기가 날아가 검은 기운을 둘로 가르고, 그 안에 숨어 있던 원숭이를 닮은 괴물을 노출시켰다.

머리에 뿔이 나고 두 눈은 눈동자가 없이 하얗기만 한 짐승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붉은 선이 그어져 피를 뿜어내고 있었다.

금빛 검기에 베인 것이다.

콰르릉 콰쾅!

금털 거원은 공격을 멈추지 않고 나머지 다섯 손에서 금색 뇌전들을 내뿜어 뇌전 그물을 만들어냈다.

휙!

검은 기운은 그런 금색 뇌전 그물을 무시하고 양쪽으로 갈라져 달아났다. 벽사신뢰가 통하지 않은 것이다.

이번에는 한립도 조금 놀라 멈칫했다. 그 틈에 두 개의 검은 기운이 고공에서 뭉쳐져 다시 원숭이를 닮은 괴물로 변했다.

괴물은 냉랭히 한립을 쏘아보고 순간이동을 해 흉사왕 거인 머리 옆으로 이동했다.

펑!

원숭이 괴물은 검은 기운으로 변해 거인의 콧속으로 스며들었다. 거인의 잘려나간 두 팔은 검은 기운이 밀려들는 순간 원래대로 복구되었다.

“제2원영! 아니지, 제2원신이라고 하는 것이 맞겠습니다.”

눈을 번득인 금털 거원이 웅웅 중얼거렸다.

“견문도 넓구나! 내 제2원신은 상고흉수의 유해를 이용해 제련한 것이다. 기척 없이 이동하고 본체보다도 강력한 괴력을 지니고 있지. 네 등 뒤의 문양진법은 뭐기에 이번 공격을 막은 것이지? 보아하니 하계의 신통이 아니로구나.”

흉사왕은 새로 자라난 팔을 흔들어 보다 냉소를 하며 물었다.

“스스로 알아내 보시지요.”

콧김을 훅 내뿜은 거원은 이렇다 할 답을 주지 않았다.

콰르릉!

고공에서는 천둥소리가 연달아 들렸는데 여섯 뇌전 구렁이가 흑룡을 갈기갈기 찢어 조각을 내놓고 있었다.

그리고 악귀 얼굴과 금색 소용돌이도 한동안 괴성을 내며 힘겨루기를 하다 흩어졌다.

“일반적인 방법은 먹히지 않겠어. 흐흐, 아무래도 본명신통을 좀 보여줘야겠군.”

흉사왕 거인은 말을 마치고 길게 포효했다.

또 다른 전장에서 검은 뇌화를 분출해 서금충왕과 막상막하로 싸우던 금색 악귀 요물들 다섯 마리가 즉시 해골머리로 변해 날아들었다.

해골머리들은 거인의 방대한 육체로 스며들어 사라졌다.

스스슷.

거인의 목에서 금빛이 반짝이고 다섯 개의 해골머리가 괴이하게 등장해 입을 벌렸다. 해골들은 제각각 다른 주문을 외고 있었다.

주문소리가 절정에 도달했을 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핏빛 화염으로 뒤덮인 거인의 피부에서 수많은 검은 문양들이 꿈틀꿈틀 움직여 천여 개의 악귀 얼굴을 형성한 것이다.

눈을 감은 악귀 얼굴들은 희노애락을 표시하며 거인의 피부에서 손가락 하나의 틈을 두고 떠있었다.

흉사왕이 음산한 웃음을 흘리며 한 손으로 수결을 맺자 천여 악귀 얼굴들이 서서히 눈을 떴다.

휘릭!

이때 금색 검빛이 아무런 조짐도 없이 날아들어 거인의 목을 휘감고 지나갔다. 검빛이 가시고 나타난 것은 팔뚝 크기의 무표정한 소인이었다.

스륵!

거인의 커다란 머리통이 미끄러지듯 목에서 굴러떨어졌다. 금색 소인은 그것을 보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무형의 검기를 날려 떨어지는 거인의 머리통을 노렸다.

키에에엑!

거인의 머리가 살점 조각이 되려는데, 거인의 목에 자라난 해골머리들이 날카롭게 비명을 방출했다.

슉!

허공에 파동이 일고 금빛 찬란한 보호막이 나타나 무형의 검기들을 다 튕겨내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거인의 몸에 떠오른 악귀 얼굴 하나가 모호하게 사라져 검은 기운과 함께 잘려 나간 거인의 머리를 대신했다.

이에 금색 소인의 두 눈이 서늘해졌고, 거인 양측에 파동과 함께 기다란 수정빛 두 줄기가 나타나 교차했다.

펑!

단단해 보이던 보호막이 부서지고 막 새로 만들어진 거인의 머리가 또 굴러 떨어졌다. 서금충왕은 놀랍게도 본명신통을 이용해 거인의 머리를 두 번이나 베어냈다.

그러나 다섯 개의 해골머리들이 괴이한 주술을 외자 거인의 몸에서 두 번째 악귀 얼굴이 사라졌다. 잘린 목 위로 검은 기운이 몰려들고 악귀 얼굴이 거인의 머리를 대신했다.

“아직 천 개는 넘게 남았다. 목숨이 천 개 이상인 것과 마찬가지지. 어디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잘라내 봐라!”

말을 마친 거인이 몸을 떨었다. 표면의 악귀 얼굴들이 전부 두 팔로 몰려들었다.

후우우우!

악귀 얼굴들은 두 팔에서 떨어져 나와 험악한 표정으로 울부짖었다.

쉭! 쉭!

거인의 두 팔이 소리 없이 분리되어 금색 소인과 멀리있는 거원을 향해 뻗어 나갔다.

덤덤하던 금색 소인이 처음으로 표정이 달라져 금빛을 반짝이며 자취를 감추었다. 하지만 날아든 거대손 주변의 악귀 얼굴들이 얼굴을 일그러트리고 다섯 손가락 끝에서 검은 밧줄을 분출했다.

펑!

검은 밧줄은 허공을 파고들어 격렬한 공간 파동 속에서 금색 소인을 끌어냈다. 거대 손이 밧줄에 묶인 금색 소인을 꽉 쥐었다.

주변에 악귀 얼굴들의 울음소리가 커지고 검은 기운이 연달아 폭발해 거대 손과 금색 소인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쉬잉! 슁!

그때 두 줄기 커다란 검빛이 검은 기운을 뚫고 나와 교룡처럼 난동을 부리며 밧줄과 거대 손을 전부 가루로 만들었다. 그 덕에 금색 소인은 검은 기운 속에서 탈출 할 수 있었다.

밧줄과 거대 손 잔해가 악귀 얼굴들이 내뿜는 검은 기운 속에서 다시 뭉쳐져 다시 거대 손으로 변해 소인을 쫓았다.

서금충왕의 눈에서 뿜어내는 수정빛 검기가 아무리 강력해도 연달아 여 러번 사용하는 것은 무리였다.

이렇게 불사체에 가까운 거인의 거대 손과 서금충왕 사이의 추격전이 시작되었다.

한편 한립이 변한 거원은 바람을 가르며 날아드는 거대 손을 피하지 않고 두 주먹으로 가슴을 내리쳤다.

이에 삼두육비의 금털거원은 다시금 불어났고 피부에 빼곡하게 떠다니는 은색 문양진법이 진동을 했다. 거원은 그 상태로 여섯 개의 주먹을 허공을 향해 강타했다.

맨몸으로 거대 손을 박살 낼 심산이었다. 백맥연보결을 극성으로 운용한 거원의 주먹에서 괴력이 터져 나와 여섯 개의 금색 돌풍을 일으켰다.

휘이잉!

공간을 일그러트리는 무서운 기세를 품은 돌풍들이었다.

후우우우!

키에에엑!

이런 공격에도 거대 손은 주춤거리지 않고 주변의 빼곡한 악귀 얼굴들이 동시에 섬뜩한 웃음을 터트리며 입을 벌렸다.

여섯 돌풍들이 무슨 수를 쓸 새도 없이 악귀 얼굴들의 입속으로 흡수되었다. 부풀어 오른 악귀 얼굴들은 검은 실들을 잔뜩 내뿜어 실그물을 만들었다.

여섯 개의 주먹이 내리치는데도 실그물이 끊어지지 않아 거원의 방대한 몸이 그 안에 갇히려 하고 있었다.

화륵!

거원은 은색 화염을 하늘을 찌를 기세로 내뿜었다. 은색 불 구름이 검은 실그물을 밀어내는 형상이었다.

그런데 거대 손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불바다에 뛰어들었다. 거대 손 주변의 악귀 얼굴들이 내뿜는 검은 빛이 은색 화염의 접근을 막아주었기 때문이었다.

쇄액!

거대 손은 거원의 중간 머리를 노리고 손을 펼쳤다. 다섯 손가락 끝에서 검은 밧줄이 튀어나와 중간 머리를 제압하려 했다.

‘어딜!’

거원은 냉소하며 세 개의 입을 벌려 벌려 푸른 바람을 내뿜었다. 다섯 줄기 밧줄들이 날아간 것은 물론 거센 바람이 극한의 한기를 품고 거대 손을 공격했다.

채패채챙!

푸른 바람이 가시고 그 안에서 수십 자루의 푸른 비검들이 나타나 거대 손을 난도질했다. 그러나 천귀(千鬼)를 지탱하는 거대 손은 얇은 하얀 자국만 남기고 푸른 비검들을 다 튕겨냈다.

쾅!

드디어 거대 손이 거원의 보호막을 부수고 머리를 잡아채려 할 때, 크고 작은 은색 문양진법들이 몰려들어 그 앞을 막았다.

거대 손에서도 악귀 얼굴들이 빼곡하게 떠올라 주문을 외웠고 다섯 손가락이 굵어지며 열 배의 힘을 발휘했다.

현묘한 은색 문양 진법들도 엄청난 압력에 삐그덕 거리며 언제라도 부서질 듯 위태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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