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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381화 (1,138/2,000)

1381화. 빙백

*

히히힝!

철롱 안에서 거대 유골이 고개를 쳐들고 괴성을 지르자 모골이 송연해졌다. 다리에 남아 있는 검은 실들이 더는 버티지 못할 듯했다.

“갑시다!”

이번에는 두 원영이 동시에 하얀색과 푸른색 둔광으로 변해 허공을 갈랐다.

쿠르릉!

두 원영은 연달아 십여 번을 순간이동을 하며 혈호 지역을 벗어나 달아났다. 그런데 그때 전방에서 굉음이 들려오더니 갑자기 핏빛 안개가 몰려들었다.

서둘러 둔광을 멈춘 두 원영은 각각 검은 전갈 허상을 불러내고 푸른 종과 백골 방패를 꺼내 들었다.

핏빛이 흐릿해지고 그 안에서 똑같이 생긴 다섯 청년이 등장했다.

“혈합오자?”

오 노인이 놀라 다섯 청년의 이름을 불렀다.

“우리를 몰래 따라와 어부지리를 노리려는 겁니까!”

여 노인이 열 받아 사납게 소리쳤다. 그런데 청년들은 멍한 얼굴로 허공에 떠있을 뿐이었다. 그들이 하는 소리를 전혀 못 들은 것 같았다.

여 노인은 의아한 마음이 들어 분노를 가라앉히고 혈합오자를 꼼꼼하게 살폈다.

그런데 이전에 보았을 때와 다르게 눈언저리가 붉고 탱탱하던 피부가 쪼글쪼글해져 희미하게 시체 썩는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동시에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두 원영의 표정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그들은 혈합오자의 이상을 눈치채고 슬금슬금 물러나 거리를 벌렸다.

“어딜 가시려고 그러십니까? 어차피 육신도 잃은 거, 원영도 두고 가시지요. 제가 꼭꼭 씹어 삼켜 좋은 곳에 쓰겠습니다.”

음산한 목소리가 아무 것도 없던 허공에서 들리고 핏빛 그림자가 맺혔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우리 원영을 마음대로 차지하게 놔둘 것 같습니까!”

여 노인이 분노하며 호통을 쳤다.

“크크큭, 제힘으로는 힘들어도 여기 다섯 혈괴뢰(血傀儡)들과 함께라면 쉬울 것 같은데요?”

핏빛 그림자가 웃음을 흘리며 곧장 수결을 맺었다. 그러자 핏빛 안개가 자욱하게 번져 혈합오자와 두 원영을 함께 가두었다.

득의양양한 웃음소리와 함께 핏빛 그림자와 혈합오자가 두 원영을 향해 달려들었다. 두 원영의 얼굴에 절망스런 기색이 떠올랐다. 결과는 예상그대로였다.

한식경 후, 핏빛 그림자는 새로 얻은 보물 몇 가지를 들고 있었고 이전보다 색이 더욱 짙어져 있었다.

히히힝!

멀리 혈호 중심부에서 괴성이 들려왔다.

“이 기운은 혈살시! 후후, 사람 일은 모른다더니 천정진인의 의발을 찾으러 왔다 혈살시를 손에 넣게 되는구나. 대승기 강자의 백골로 만들어낸 혈살시라. 내 것으로 만들면 이후 천겁을 치르거나 강적을 상대할 때 얼마나 도움이 되겠는가!”

혈영이 희희낙락하며 보물을 거두고 소매를 펄럭였다. 핏빛 안개가 그와 혈합오자를 감싸고 혈호 쪽으로 날아갔다.

* * *

“휴, 두세 번은 쓸 수 있겠어.”

한립은 그의 손에서 새로 태어난 소형 진법을 앞에 두고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반나절 동안 평소 지니고 다니던 재료로 진법을 복구하고 약간의 개조도 해두었다. 그가 법결을 던져 넣자 진법이 순조롭게 발동했다.

우웅!

그가 들어가자 하얀빛이 번득이고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곧바로 눈을 뜬 한립은 어두운 공간 안으로 이동해 있었다.

“이곳은…….”

그가 남색빛을 어른거리자 공간 내부가 또렷하게 보였다.

언덕처럼 낮은 산 위에 열댓 그루의 커다란 소나무가 자라나 있었고 그는 또 다른 전송진을 밟고 있었다.

작은 산 주변으로 녹음이 푸른 산봉우리들이 가득했다. 이에 그는 미소를 지으며 손에서 푸른 검기를 들었다.

“베어라.”

거대하게 변한 푸른 검기가 어두운 허공을 갈랐다.

쿠릉!

한 폭의 그림 같던 풍경이 일그러지고 그곳은 새하얀 석벽으로 사방이 막힌 정원으로 바뀌었다. 안에 수목들이 가득했다.

그는 정원을 둘러보다 어느 나무를 향해 담담히 입을 열었다.

“그만큼 숨어 있었으면 이제 나와서 인사나 나누시지요.”

“제가 있는 것을 알고 계셨군요.”

거대 나무 뒤에서 흐릿하게 파동이 일었다. 듣기 좋은 목소리는 노란 장포를 걸친 자색이 뛰어난 여인이었다.

그녀는 경계심을 거두지 않고 한립을 훑었다.

한립은 혈혼과 똑같이 생긴 여인을 한눈에 알아보고 미소를 짓다가 의식으로 상대방의 수행을 확인하고는 눈썹을 꿈틀했다.

“빙백 선자. 이곳에 진입하자마자 뵙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이미 대승기 경지에 이르셨군요.”

“저를 아십니까? 저는 처음 뵙는 분 같은데요.”

빙백이 조금 놀라 신중하게 물었다. 그녀는 아직 대승기 수행을 안정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동급 수사라도 안심할 수 없었다.

“놀라실 것 없습니다. 저는 수사의 혈혼 화신이 도와 달라 청해 이곳에 온 사람이니까요. 한립이라 합니다. 저는 인족 수사로 이 물건 덕분에 선자를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담담히 사정을 설명한 그가 핏빛이 반짝이는 병을 꺼내 그녀에게 던져주었다.

“인족 대승기 수사시라고요? 어쩐지 익숙한 기운이 느껴진다 했습니다.”

빙백은 병 안의 정혈을 확인하고 기쁨을 드러냈다.

“내내 이곳에 갇혀 있었던 것입니까? 그 오랜 시간 탈출할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단 말입니까?”

“저도 탈출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곳은 천정궁의 중추이자 천정진인이 오랜 시간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놓은 독립 공간입니다. 한 형께서 이용한 전송진을 제외하고 다른 출구는 없지요. 오래전 제가 다른 수사들과 이곳에 들어왔을 때 동료들은 다 죽고 바깥의 진법마저 훼손되어 속수무책으로 갇히고 말았습니다.

다행히 이곳에서 천정진인의 의발과 공법을 발견해 수련에 매진한 결과 몇 년 전 대승기 경지에 이를 수 있었지만요. 아, 제 혈혼 화신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 수사께서 이곳으로 전송될 때 그녀가 천정궁 어딘가에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빙백이 한숨을 내쉬며 그간의 사정을 간략히 이야기해주었다.

“수사가 단시간에 대승기에 이른 것을 보면 천정진인의 의발이 확실히 비범하기는 한가 봅니다. 선계 비승을 한 분답습니다! 하하, 혈혼 수사는 아직도 바깥에서 선자를 찾고 있을 겁니다.”

한립은 미소를 지었다.

“혈혼이 그간 고생이 많았겠네요. 한 수사 같은 실력자에게 도움을 청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녀를 바깥에 남겨 놓은 것은 무슨 일이 생기면 이전에 친분이 있던 이종족 친우들에게 도움을 청하라는 의도였는데요.”

“아마 혈혼 수사는 제가 더 가능성이 있다고 여겼나 봅니다.”

“수사의 수행을 생각하면 혈혼이 그리 여긴 것도 정상이지요. 그런데 제가 인족을 떠나올 때만 해도 오소와 막간리 선배님뿐이셨습니다. 다른 종족의 수행이 뛰어난 합체기 수사들도 거의 안면이 있는 편인데 당시 은거중이셨나 봅니다.”

빙백은 아직도 의심을 완전히 버리지 못하고 한립을 떠보았다.

“저는 선자와 똑같은 인계 출신으로, 선자가 실종된 후에 영계로 왔으니 모르시는 것이 당연합니다. 어찌 보면 저와 선자는 인연이 깊다고도 볼 수 있지요. 오래전 허천궁에 들어가 선자가 남긴 허천정과 다른 보물들을 몇 가지 얻었으니까요.”

한립이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로 답했다.

“예? 인계의 허천정을요? 아니, 그보다 제가 실종된 다음에 비승을 하셨다면 겨우 수천 년 만에 화신기에서 대승기 수행에 이르렀단 말입니까!”

빙백은 한립의 대답을 듣고 있다가 놀라 눈을 부릅떴다. 그의 수련 속도는 선계로 비승한 천정진인이라도 놀랐을 것이다.

“여러 가지 기연을 얻어 지금의 성취를 이루었습니다. 예전에 허천정을 손에 넣은 덕에 천정궁에 쉽게 들어왔습니다. 저 말고도 다른 대승기 수사들이 많이 들어와 있으니 어서 이곳을 떠나시지요. 바깥의 전송진에 손을 써두기는 했지만 누군가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바깥으로 나가 혈혼 수사를 만나시면 해결될 겁니다.”

한립이 시간을 가늠해보며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지금 당장이요?”

그 말에 빙백선자는 바로 답하지 못하고 망설였다.

“이곳에서 해야 할 일이 있으십니까?”

“……한 형께서 저와 동족 출신이고 나름대로 인연이 깊으니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래전 이곳에서 천정진인의 의발과 공법 그리고 적잖은 보물을 찾기는 했지만 마지막 남은 가장 중요한 창고를 열지 못했습니다. 천정진인이 남겨 두신 귀한 보물들이 몇 점 들어있는데 그분의 공법을 익힌 제게는 무척 중요한 것이라서요.”

빙백 선자가 고민하다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이대로 이곳을 떠나면 다시 언제 보물을 찾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시간이 너무 지체되지 않는다면 가볼 수는 있습니다. 능력이 닿는 대로 도움을 드리지요.”

한립은 싫어하는 기색 없이 답했다.

“감사합니다! 창고는 아주 가까운데 제가 실력이 부족해 아직까지 금제를 제거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중에 공법과 관련된 보물만 원하니 나머지 보물들은 수사께서 챙겨 가시면 됩니다.”

빙백이 몹시 좋아하며 후한 조건을 제시했다. 그는 여인을 따라 날아올라 석벽 어딘가에 내려섰다.

우웅!

빙백은 능숙하게 손을 뻗어 석벽을 짚었고 그곳에 검은 통로가 나타났다. 안으로 들어간 두 사람은 회백색의 대전 안으로 들어섰다.

회백색 바위를 깎아 만든 고풍스런 양색의 대전이었다. 대전 중앙에는 또다른 천정진인 조각상이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이번에는 허리춤에 찬 칼 외에 손에 아기자기한 금색 탑을 하나 들고 있었다.

“천정진인의 마지막 보물이 들어있는 창고가 바로 그 작은 탑 안의 공간입니다. 보잘것없는 능력을 지녀 오랜 세월 금제를 파훼하지 못했지요. 강력한 반탄력을 지닌 금제라 무턱대로 공격했다 십여 년 요양을 해야 하기도 했습니다.”

빙백은 금색 탑을 가리켰다.

“흠, 알겠습니다. 제가 한 번 시도해 보지요.”

한립이 무표정한 얼굴로 나서서 손을 펼치자 푸른 검기가 금색 탑을 향해 날아갔다. 수정빛이 탑 주위로 흐르고 매끄러운 수정 보호막이 떠올랐다.

징!

검기는 놀랍게도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가 반사되어 한립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쉭!

한립은 덤덤하게 손가락을 튕겨 다른 푸른 검기로 검기를 흩어버렸다. 그의 몸에서 천둥소리가 쩌렁쩌렁 울리고 금색 뇌전들이 튀어나가 뱀처럼 작은 탑으로 달려들었다.

치지직!

보호막에 닿은 금색 뇌전이 그대로 흡수되었다가 똑같은 개수의 뇌전 뱀으로 뒤돌아 나왔다.

“반서금제(反噬禁制). 흥미롭기는 한데 이런 종류의 금제는 되돌려 보낼 수 있는 힘에 한계가 있기 마련입니다. 어디까지 버티나 한번 볼까요?”

손바닥을 펼쳐 날아드는 금색 뇌전 뱀들을 잡아 으깨버린 그는 푸른 산봉우리를 들어올렸다. 그가 낮게 울부짖자 금빛이 폭발하며 금빛 비늘로 뒤덮인 팔뚝이 몇 배로 굵어졌다.

그가 힘껏 손을 휘두르자 푸른 산봉우리가 날아가 사라졌다. 금색 탑 앞에서 파동이 일고 푸른 산이 나타나 몸통 박치기를 했다.

쿠콰콰쾅!

경천동지할 굉음이 터져 나오더니 수정 보호막이 움푹 들어가 하얀 균열을 만들어냈다.

반서금제가 깨지려는데 천정진인 조각상의 손끝에서 하얀 기운이 흘러나와 보호막으로 흘러 들어갔다.

펑!

보호막이 복구되며 힘껏 푸른 산봉우리를 튕겨냈다. 한립은 미간을 찌푸리며 손짓해 산봉우리를 불러들였다.

“한 형, 저 조각상이 작은 탑을 보호해 웬만한 방법으로는 금제를 깨기가 어렵습니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빙백은 한립이 거의 보호막을 깨버릴 뻔한 것을 보고 놀라워하며 한 마디 건넸다.

“그럼 먼저 저 조각상을 없애야겠군요.”

그가 순간 눈빛이 서늘해지며 전신에 금빛을 일으켰다. 순식간에 금털 거원으로 변한 그의 뒤에 삼두육비 법상 허상이 떠올랐다.

쿵!

거원은 두 손에 푸른색과 검은색 산봉우리를 들고 크게 한 걸음을 내디뎠다. 동시에 두 팔이 어마어마한 힘으로 두 극산을 투척했다.

산봉우리들의 목표는 천정진인 조각상이었다.

우웅!

탑만 가리고 있던 수정 보호막이 불어나 조각상 전체를 감쌌고 허리춤의 장검이 부들부들 떨렸다.

휙! 휙!

하얀 검기 두 개가 솟아올라 날아드는 산봉우리들을 갈랐다.

쿠쿵!

바르르 몸을 떤 두 산봉우리는 검기의 공격에 품고 있던 엄청난 힘이 대부분 흩어졌다. 그 덕에 두 극산과 부딪친 보호막은 약간 오목하게 들어갔다가 그들을 튕겨낼 수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 나선 금털 거원이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조각상 위쪽에 털이 북슬북슬한 두 주먹이 나타나 사정없이 보호막을 내리쳤다.

퍼퍼퍼퍼퍼퍽!

자금색 주먹 허상이 셀 수 없이 쏘아져 나가 보호막을 공격했다. 주먹 허상들이 보호막에 흡수되어 다시 되돌아 나오기 전에 더 많은 주먹 허상들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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