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1375화 (1,132/2,000)
  • 1375화. 악귀 얼굴, 거대 꽃, 꼭두각시

    *

    “중요한 보물들은 안쪽 구역에 보관되어 있을 게야.”

    “예, 내부로 향할수록 위험할 테고요.”

    기력이 쇠한 와중에도 의식을 퍼트려 주변을 살핀 혈혼이 걱정을 드러냈다.

    “그렇다고 여기까지 왔는데 빈손으로 돌아갈 수는 없지! 바깥 구역의 보물들은 거의 이전에 들어온 수사들의 손에 넘어갔을 것이니 안쪽으로 가보는 수밖에. 혈혼 수사, 본체가 있는 곳을 감응 할 수 있겠는가?”

    “감응을 해보려 했으나 천정궁의 금제가 너무 많아 멀리까지는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일일이 각 구역을 찾아보려면 겨우 한 달의 시간으로는 부족할 것인데 큰일일세. 나라고 해도 모든 금제들을 전부 들여다볼 수는 없는 일이니까.”

    한립이 미간을 좁혔다.

    “제 본체는 이곳에 갇히기 전에도 수행이 상당했고 강력한 보물들을 지녀 대승기 수사와 맞닥뜨려도 달아날 능력이 되었습니다. 갇혀 있다면 내부 구역에 있을 가능성이 높겠지요. 허나 만에 하나의 경우를 생각해 저는 바깥 구역부터 찾아볼 것이니 선배님께서 비술을 걸어 놓은 제 정혈을 지니고 내부 구역으로 가보시지요. 본체가 가까이 접근하면 반응할 겁니다. 그래야 선배님이 보물을 찾는데 방해도 되지 않고 단시일 내로 천정궁 전체를 수색할 수 있을 테니까요.”

    혈혼이 고민 끝에 흩어져 찾을 것을 제안했다.

    “이곳에 우리 둘밖에 없다면 그래도 될 걸세. 허나 자네 홀로 다니다 대승기 노조를 마주치면 어쩔 것인가?”

    “안심하셔도 됩니다. 선배님께서 주신 합체기 꼭두각시도 있으니 얼마간은 버틸 수 있을 겁니다.”

    “평범한 대승기 수사라면 꼭두각시들이 통하겠지만 이곳에 들어온 수사들은 하나같이 신통이 대단한 자들일세. 이렇게 하지, 금동을 붙여주겠네.”

    한립의 소매 속에서 소인이 빠져나왔다. 입과 코가 보이지 않는 소인은 전신이 금색으로 반짝였다.

    “금동, 혈혼 수사를 보호해 다른 수사가 해치지 못하게 지켜 주거라.”

    한립의 말에 소인은 흐릿하게 혈혼 위쪽으로 이동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금 선배님께서 지켜주신다면 걱정 없이 돌아다닐 수 있겠습니다.”

    혈혼도 한립을 따라다니며 금동의 위력을 보았기에 감격해 마지않았다. 그녀는 품에서 하얀 옥병을 꺼내 두 손으로 바쳤다. 미리 비술로 손을 써둔 정혈이었다.

    “우리보다 먼저 출발한 이들이 있으니 빨리 움직이세.”

    한립의 말에 혈혼이 공손히 응했고 두 줄기 둔광이 다른 구역을 택해 쏘아져 나갔다.

    한립은 천정궁 깊은 곳으로 진입할 생각이었지만 앞을 가로막는 다른 금제들을 뚫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하얀빛의 장막 앞에 이르자 푸른 장검을 만들어 휘둘렀다.

    쾅!

    하얀 장막이 도자기처럼 깨져나갔고 갑자기 풍경이 모호하게 변해 울창한 수풀 속 오솔길이 나타났다. 수풀 속 나무들을 자세히 보면 표면의 문양이 눈을 감고 있는 사람의 얼굴과 같았다.

    사내와 여인, 노인과 아이까지 전부 행복한 표정으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 모습에 한립이 영목신통을 발동하려는데 꽃향기가 솔솔 퍼졌다.

    향기에 취할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강대한 의식을 지닌 한립은 잠시 몽롱해진 것을 제외하면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자신이 금제 속에 들어온 것을 알고 길을 따라 걸어갔다.

    쐐애애액!

    그 순간 양쪽의 수목들이 눈을 번쩍 뜨고 눈에서 날카로운 검은 실들을 뿜어냈다. 기이한 파동을 지닌 실들이었다.

    한립은 재빨리 몸에서 회색 기운을 일으켜 보호막을 형성했다.

    파파파팍!

    검은 실들이 비처럼 쏟아졌지만 빛을 번뜩이며 터져나갈 뿐 회색 보호막을 뚫지는 못했다. 한립은 그 상태로 차분히 오솔길을 걸어갔다.

    그의 행동이 수목의 얼굴을 자극했는지 동시에 입을 벌려 처절한 괴성을 질러댔다.

    모든 얼굴들은 분노로 일그러졌고 입에서는 녹색 불길이 뿜어져 나와 오솔길을 불바다로 만들었다. 그러나 한립은 여전히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회색 보호막을 타고 반짝이는 불길이 흘러 녹색 화염을 흡수했다. 그와 동시에 회색 보호막에서 잿빛 실들이 튀어나가 수목의 얼굴들을 갈랐다.

    크하하학!

    얼굴들은 애달피 울며 푸른 연기로 변해 나무 표면에서 사라져갔다. 얼굴 문양을 잃어버린 거목은 급속도로 말라붙어 생기를 잃었다.

    오솔길을 걸어 수풀을 빠져나온 한립 앞에 이번에는 알록달록한 화단이 펼쳐졌다. 동그란 화단마다 꽃나무들이 심어져 있었고 각각 거대한 꽃을 한 송이씩 맺은 채였다.

    거대 꽃은 색깔과 모양은 달라도 전부 만개해 진한 향기를 내뿜고 있었다. 오솔길에서부터 맡은 향기의 근원은 이 화단이었다.

    한립은 의식으로 거대 꽃들을 훑고는 눈썹을 끌어올렸다.

    키에에엑!

    그가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려는데 인근의 거대 꽃들이 요란하게 반짝이고 흉악한 악귀 얼굴로 변해 달려들었다.

    “저계 마두 주제에 내게 덤비다니. 죽고 싶어 환장한 것이냐.”

    한립이 한숨을 내쉬며 두 손을 교차했다.

    콰르릉!

    마른하늘에 천둥이 내려치듯 두 줄기의 굵직한 금색 뇌전이 뻗어나가 커다란 뇌전 교룡으로 변해 화단들을 휩쓸었다.

    악귀 머리는 뇌전 교룡에 닿기만 해도 괴성을 지르며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다른 화단의 거대 꽃들이 악귀 머리로 변해 혼비백산한 채 달아나려 했다.

    키엑! 키에엑!

    신비로운 풍경을 자랑하던 화단들은 검은 마기가 요동치고 악귀 머리들이 비명을 지르는 통에 완전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러나 벽사신뢰를 익힌 한립이 저계 마두들을 그냥 달아나게 둘 리 없었다. 뇌전 교룡 두 마리가 자폭해 가느다란 뇌전뭉치로 바뀌어 사방팔방으로 튀어나갔다.

    콰릉! 콰콰쾅! 콰르릉!

    결국 악귀 머리는커녕 마기조차 남지 않았다. 한립은 산책을 나온 사람처럼 그 곁을 지나 검붉은 호숫가에 도착해 있었다.

    * * *

    “아무리 많이 죽여도 계속 들러붙어 지겨워 죽겠습니다! 소 형, 다른 방법을 쓰지 않으시면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만화부인이 열 받아 소리쳤다. 그녀는 소명, 청평도인과 같이 노란 모래로 가득한 곳에 떠있었다.

    누런 모래흙으로 이루어진 커다란 꼭두각시들이 시시때때로 튀어나와 그들을 공격하고 있었던 것이다.

    검, 칼, 창, 활을 등 각양각색의 무기를 쥐고 죽음을 불사하고 달려드는 꼭두각시들은 그녀의 말대로 계속 죽여도 끝이 없었다. 힘을 아끼기 위해 소명 일행은 아예 보물로 몸을 보호하고 그것들을 죽이지 않았다.

    “만화수사, 괜히 힘 빼지 마십시오. 이제 진안에 거의 다 와갑니다. 죽여 봤자 계속 나타날 텐데 어찌 법력을 낭비하려 하십니까. 어차피 금제의 힘으로 만들어진 것들이라 이곳만 벗어나면 걸리적거리지 않을 겁니다.”

    백옥 원반을 들고 뭔가를 찾고 있던 소명이 고개를 저었다.

    “진안을 찾으셨습니까! 하하, 그렇다면 이곳에서 오래 붙들려 있다 남들에게 선수를 빼앗길까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소명의 말에 만화 부인의 얼굴이 밝아졌다.

    “청평수사의 도움으로 최단거리를 찾아냈으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분궁(分宮) 세 곳만 지나면 됩니다. 다른 이들이 아무리 서두른다고 해도 우리보다 앞설 수는 없을 겁니다.”

    “저도 그러길 바라지만 풍원대륙의 인족 녀석만 해도 신통이 대단했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특수한 방법으로 금제를 빠르게 깨며 이동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너무 마음 놓지 말고 하루빨리 중심 구역에 가야 할 겁니다.”

    “만화 수사의 말이 일리가 있습니다. 빈도도 약간의 원기를 상하더라도 조금이라도 빨리 천정궁 중심부에 이르는 게 낫다고 봅니다.”

    만화부인의 말에 청평도인이 동의했다.

    “알겠습니다. 두 분의 의견이 그러시다니 강제로 길을 열어 진안으로 바로 가지요.”

    소명의 등 뒤로 구목혈섬 허상이 떠올랐다.

    “가라.”

    소명은 들고 있던 진법 원반을 던지고 정혈을 흡수시켰다. 그러자 진법 원반에서 우윳빛 문자가 날아올라 빛의 진법을 형성하고 허공 어딘가로 빛기둥을 방출했다.

    쿠쿵!

    공간이 흔들리다 잠잠해졌다.

    “여긴 아닌 가 봅니다. 다른 곳을 시도해보죠.”

    소명은 실망하지 않고 다시 진법 원반을 가리켰다. 똑같은 일이 반복되고 빛기둥이 이번에는 다른 허공을 때렸다.

    쿠쿵!

    공간이 흔들리다 거대한 은색 주술문자가 나타났다. 은빛으로 반짝이는 커다란 주술문자였다.

    “운이 좋았습니다. 저겁니다.”

    소명이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비술을 발동했다. 등 뒤의 거대 두꺼비 허상이 9개의 눈을 뜨고 주술문자를 노려보았다.

    쿠르릉!

    핏빛 두꺼비의 9개의 눈에서 금빛 실들이 뻗어나가 은색 주술문자를 조각냈다.

    주술문자가 빛 입자들로 붕괴되고 앞뒤 안 가리고 달려들던 꼭두각시들도 모두 사라졌다. 전방의 허공이 뒤틀리며 궁전 건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뚫렸습니다! 역시 소 형의 방법은 대단하십니다.”

    만화부인이 당장 희색이 만연해 소명을 추켜세웠다.

    “이곳도 금제가 퍽 현묘해서 괜찮은 보물이 숨겨져 있을 법한데요. 누가 다녀갔는지 알 수 없으니 시간이 촉박하지 않다면 수색해 봐도 좋았을 겁니다.”

    소명이 아쉬운 지 탄식했다.

    “허허, 아까워 마십시오. 바깥의 분궁에 좋은 보물이 있겠습니까? 어서 중심부로 가서 금제 중추를 장악하면 언제든 얻을 수 있는 보물입니다.”

    “하하하! 청평 수사의 말이 맞습니다. 보물을 지척에 두고 그냥 지나치자니 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해본 소립니다.”

    세 사람은 이야기를 나누며 건물들 사이에 난 길을 따라 빠르게 이동했다.

    * * *

    천정궁 외곽의 또 다른 분궁 금제.

    금의 거한이 거산 크기의 쌍두(雙頭) 원숭이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의 제자들이 현묘한 진법을 형성해 괴수를 둘러싸고 무형의 힘으로 쌍두 원숭이를 억제하는 중이었다.

    우드득! 퍼퍽!

    뼈가 부러지고 근육이 터져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쌍두 원숭이가 전혀 힘을 쓰지 못하게 되자 금의 거한은 유유히 은색 빛을 뿜어 괴수의 몸을 두 동강냈다.

    흐릿하던 주변 풍경이 허물어졌다.

    * * *

    습지로 보이는 곳에서 남색 뇌전들에 둘러싸인 대형 지네, 검은 기운을 내뿜은 대형 전갈 그리고 머리가 기이하게 납작한 거대 구렁이가 떼거지로 밀려드는 요수 떼를 뚫고 지나가고 있었다.

    거대 영충과 영수 머리 위에는 추레한 노인들이 한 명씩 앉아 있었다.

    * * *

    오색 봉인 바깥.

    똑같이 생긴 청년 다섯이 허공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무언가를 기다렸다.

    파앗!

    아무 조짐도 없이 파동이 일고 허공에 검은 구멍이 나타났다. 그 안에서 사람의 형상을 한 핏빛 그림자가 빠져나왔는데 두 눈이 녹색으로 번득여 말로 설명하게 어려운 사악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이에 꼼짝하지 않던 청년들이 일어나 12개의 백골 비검을 불러냈다.

    “혈합오자, 뭐 하자는 것입니까?”

    흐릿한 혈영(血影)이 의외라는 듯 물었다.

    “봉인을 풀 열쇠가 없어 나중에 도착할 수사들을 기다리던 중입니다. 당신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열쇠를 내놓으면 그냥 보내드리지요.”

    중간에 선 청년이 무표정하게 말했다.

    “으하하하! 오만하기 짝이 없구나! 뭐, 정혈로 몸보신을 하면 나쁠 것이 없으니 좋다.”

    혈영이 광소를 터트리며 다섯 줄기 핏빛으로 변해 협합오자들에게 쏘아져 나갔다.

    “혈영공(血影功)이 패도적이라도 막을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중간에 있는 청년이 냉소를 흘리며 보물들을 발동했다. 나머지 네 명의 청년도 마찬가지였다.

    콰르릉!

    핏빛과 하얀 기운이 얽혀들었다.

    * * *

    거대 문밖에는 천여 명에 달하는 고계 수사들이 모여 있었다. 그중 합체, 연허기 수행을 지닌 수사들 30명이 모여 거대 문을 공격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표면에 금은색 주술문자가 반짝거리고 있는 거대 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에 수사들은 냉랭히 방관할 뿐 그들을 막지 않았다.

    “본 좌가 천정궁에 들어갈 것이니 썩 꺼지거라!”

    갑작스레 누군가의 목소리가 수사들의 두 귀를 때렸다. 수행이 낮은 이들은 몸에 힘이 풀려 고공에서 그대로 떨어지거나 비틀거렸다.

    쿠쿵!

    적홍색 뇌전 빛이 허공을 찢고 등장해 거대 문을 두들겼다. 적홍색 뇌전들이 거대 문을 타고 흐르자 놀라운 열기가 퍼져나갔고 가까이에서 공격하던 수십 명의 수사들이 대경실색해 달아났다.

    행동이 굼뜬 몇몇은 열기에 휘말려 고통스런 비명을 지르다 숨이 끊겼다. 거대 문이 서서히 밀려 틈이 벌어지자 적홍색 뇌전들이 한 덩이로 뭉쳐져 그 안으로 들어갔다.

    쿠르릉!

    거대 문이 다시 서서히 닫혀 틈이 사라졌다.

    “적뢰노조! 분명 적뢰노조였어!”

    누군가 놀라 중얼거리는 말에 주변 고계 수사들이 서로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지난번 천정궁 개방 때는 대부분 합체기 수사들이 들어왔는데 이번에는 대승기 노조의 수가 너무 많았다.

    천정궁 열쇠들을 노괴들이 모아둔 것이 확실했다.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