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1366화 (1,123/2,000)
  • 1366화. 혈천대륙

    *

    “번포자가 광령도과대회(廣靈道果大會) 초청장을 주었지요?”

    흑포 사내가 씨익 웃으며 물었다.

    “이걸 말하는 것입니까?”

    한립이 은빛 찬란한 용 비늘을 불러냈다.

    “그겁니다. 한 형께서 이번에 저를 도와주시면 저도 도과대회에서 약소하지만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수사께서 도과를 얻을 가능성이 커지게 말입니다.”

    “저도 초청장을 받고 광령도과대회에 대해 알아보려 했으나 영계에 그 일을 아는 수사가 많지 않았습니다. 그저 초청장을 구하기 극히 어렵고 천계제일(千界第一)이라는 명성을 지닌 영과가 걸려있다고만 들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효과를 지닌 영과인지도 모르고요.”

    “하하, 물론 그랬을 겁니다! 용도(龍島)에서 열리는 광령도과대회는 수많은 계면의 강자들 중 겨우 천 명에게 밖에 초청장을 보내지 않으니까요. 초청장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자격조건은 진령의 실력에 가깝거나 넘어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식견이 넓은 번포자 사형의 인정을 받는 일이 쉽지 않았을 텐데 한 형은 초청장을 받지 않았습니까? 또 광령도과(廣靈道果)가 천계제일이라는 것은 장담 못해도 세 손가락 안에 꼽힐 영과라는 사실은 아무도 반박하지 못할 겁니다! 광령도과를 복용한 자는 만년 내로 광령도체(廣靈道體)를 지니게 되어 수련 속도가 7, 8배 이상 빨라지니까요.”

    “광령도체를 얻으면 수련 속도가 그리 빨리질 수 있단 말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평생 딱 한 번 밖에 복용할 수 없지만 평범한 신체를 전설 속의 광령도체로 바꿔주는 영과입니다. 적과 싸울 때는 아무 소용도 없지만 참선과 수련의 효과를 엄청 높여준답니다.”

    흑포 사내 역시 광령도과를 갈망하는 듯했다.

    “그런 놀라운 효과를 발휘한다면 천계제일 영과라는 명성이 과장은 아닐 겁니다. 대회에 참가해도 광령도과를 얻기가 쉽지 않겠습니다. 때가 되면 저를 어찌 도와주실 작정인지요?”

    “제가 부족하기는 해도 이번에 돌아올 광령도과대회의 집사의 역할을 맡기로 되어 있습니다. 대놓고 수사를 도울 수는 없지만 다른 이들이 모르는 소식과 자료를 미리 제공할 여력은 되지요.”

    “그게 답니까?”

    “만족하실 줄 알아야지요. 광령도과가 얼마나 귀하고 대회에 참가하는 각계 수사들이 얼마나 강한지 아십니까? 예년대로면 초청받은 수사들 중 백여 명만이 진정한 도과를 하나씩 얻어가고 나머지는 과즙이나 맛보게 된단 말입니다. 과즙도 수행을 쌓는 이들에게 귀한 물건이지만 과실 자체에 비하면 별 것도 아니에요. 서른여섯 명의 집사 중 하나로 소식을 미리 전하는 것만으로도 규정을 어기는 일입니다. 그러니 제 도움으로 수사가 광령도과를 얻게 될지 누가 알겠습니까?”

    흑포 사내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수사의 말이 일리가 있습니다. 더는 욕심 부리지 않고 그렇게 하는 것으로 하지요.”

    한립은 꼼꼼히 따져보고 결정을 내렸다.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그럼 당분간 수사의 거처에서 신세 좀 지겠습니다.”

    흑포 사내는 굉장히 기뻐했다.

    “그러시지요. 헌데 전송 인원을 네 명 밖에는 낙찰 받지 못했는데 어떻게 상맹의 이목을 속일 작정이십니까?”

    “예전에 익혀둔 비술 덕에 감쪽같이 장신구로 변할 수 있습니다. 진선이 눈앞에 있어도 속여 넘길 자신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안심입니다.”

    “할 이야기도 다 마쳤으니 적당한 방을 찾아 쉬고 있겠습니다! 몇 년 전에 염룡의 피의 행방을 찾은 이후로 발 뻗고 제대로 잔 날이 하루도 없었지 뭡니까.”

    일이 확정되자 흑포 사내는 자리에서 일어나 포권을 했다.

    “수사……. 그냥 선자라고 부르겠습니다. 다음번에 만날 때는 본모습으로 마주하길 바라지요.”

    돌아서 나가던 흑포 사내가 한립의 말에 걸음을 멈추었다.

    “한 형, 제가 변복한 것을 알고 계셨습니까? 다음번에는 멀쩡한 모습으로 뵙겠습니다. 아, 제 이름은 전비아입니다. 잘 기억해 주세요.”

    굵은 목소리가 맑고 듣기 좋은 여인의 소리로 바뀌었다. 전비아는 흐릿하게 변해 바람을 타고 문밖으로 빠져나갔다.

    “전비아. 용족에서 어느 정도 신분이 있는 수사겠어.”

    한립은 생각에 잠겼다.

    * * *

    4일 후, 밀실에 앉아 있는 그에게 붉은 화염이 날아들었다. 활활 타오르는 화염 속에서 명존의 차분한 음성이 들려왔다.

    “한 수사, 전송진법이 준비되었습니다. 오셔서 출발하시지요.”

    * * *

    삼엄한 경비가 이루어지는 지하세계의 비밀대전 안.

    오색 광채를 반짝이는 거대 진법이 중앙에 펼쳐져 있었다.

    진법 안에는 열댓 명의 흑갑 병사들이 바삐 움직이며 극품영석을 자리에 꽂아 넣느라 여념이 없었다.

    진법 밖에는 50명의 각기 다른 복색의 남녀가 서있었는데 그 중 대승기 수사가 다섯이었고 대부분은 합체기 수행을 지니고 있었다.

    한립은 두 여인과 화석노조를 데리고 대전 한쪽에 서서 병사들이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었다.

    향녀들은 같이 혈천대륙으로 갈 수 없었기에 상맹에 맡겨 인족으로 보내달라고 하였다.

    대전 안의 대승기 수사들은 오만한 성품을 지녔는지 일행이 있든 없든 따로 떨어져 서로 인사를 나누지 않았다.

    다른 이족인들은 더욱 제자리를 지키며 대승기 수사들의 눈에 띄지 않게 조심했다.

    대전 바깥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리고 명존이 비운 선자를 데리고 들어왔다.

    침묵을 지키던 대승기 수사들도 다들 고개를 돌려 명존을 바라보았다. 손목에 녹색 팔찌를 찬 한립도 평온히 그들을 살폈다.

    저물탁으로 보이는 팔찌가 바로 전비아였다.

    “전송진법은 보통 백 년에 한번 사용하게 됩니다. 문제없이 발동되도록 노부가 직접 와봤습니다.”

    명존의 시선이 잠시 한립에게 머물렀다 떠나갔다.

    “허허, 명 형께서 친히 나서주시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겠지요.”

    이족 대승기 수사가 웃음을 머금고 말했고, 다른 이들도 웃는 낯으로 명존을 맞이했다. 상맹의 풍원대륙 업무를 총괄하는 총 집사를 함부로 대할 수는 없었다.

    명존은 일일이 대승기 수사들과 인사를 나누다 마지막으로 한립에게 포권을 했다.

    “한 형, 노부가 수사의 위명을 흠모한지 오래이나, 경매회에 약간의 혼란이 생겨 직접 찾아뵙지 못하고 이제야 만나 뵙니다. 부디 양해해 주십시오.”

    “물론입니다. 저도 귀 맹의 경매회가 처음이라 이렇게 많은 동급 수사들을 뵌 것만으로도 만족합니다.”

    한립이 미소를 지으며 포권을 했다. 다른 수사들은 명존의 태도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풍원대륙의 이름난 강자 명존이 이렇게 동급 수사를 각별히 대하다니 이상한 일이었다.

    “명 형, 이 분은…….”

    키가 큰 이족인이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저는 인족의 한립이라 합니다.”

    명존이 소개하기 전에 한립이 먼저 이름을 밝혔다.

    “그 마계로 가서 명충모를 참살했다는 인족 대승기 수사 말입니까!”

    키가 큰 이족인의 표정이 싹 변했다. 이에 다른 대승기 수사들도 한립을 보는 눈빛이 이전과 달라졌다. 이제 그들도 명존이 갑자기 나타난 것이 한립 때문일 거라는 추측하게 되었다.

    “마계에 다녀온 것은 맞지만 명충모를 참살한 것은 제가 홀로 한 일이 아닙니다. 아무래도 이야기가 부풀려져 소문이 난 모양입니다.”

    한립의 대답에 다른 이족인 대승기 수사들이 앞 다투어 자신을 소개하고 서로 한담이 오갔다. 명존이 옆에서 가끔 한두 마디씩 거드는 데 전송진법이 맑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영석 배치가 끝난 초대형 진법이 오색 주술문자를 흩날리고 있었다.

    “준비가 되었으니 전송진으로 오르시지요.”

    명존이 힐끔 그쪽을 살피고 안내했다.

    “명 형, 보중하시지요. 저는 가보겠습니다.”

    한립이 손을 모아 예를 표하고는 두 여인과 화석노조를 데리고 걸음을 옮겼다. 다른 대승기 수사도 마찬가지였다. 별안간 수십 명이 전송진에 올랐고 강렬한 빛과 함께 사라졌다.

    “휴! 드디어 보내 버렸습니다. 대인, 그 용족이 정말 저 중에 섞여 들었을까요?”

    전송된 것을 보고 비운 선자가 한숨을 돌리며 물었다.

    “그런지 아닌지는 확인해보면 될 일.”

    명존은 거대 진법을 가리켰다.

    쉭!

    허공에서 투명하지만 복잡한 표식이 그려진 원반이 나타나 그의 손에 떨어졌다.

    “57명! 과연 낙찰된 인원수보다 1명이 많습니다. 어떻게 섞여들어 갔는지 대전의 금제에도 발각되지 않았습니다.”

    비운 선자가 옆에서 원반의 표식을 확인하고 말했다.

    “진룡족의 신통이면 공법이나 보물을 이용해 우리를 속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근시일 내로 돌아가려면 이번 전송이 유일한 기회였겠지. 염룡의 피 같은 골치 덩어리가 손을 떠나니 이제야 마음이 놓인다.”

    명존도 드디어 미소를 드러냈다.

    “대인께서 적시에 용족 벗을 통해 그 물건이 조룡의 피가 아닌 염룡의 피라는 정보를 입수한 덕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용족에서 보낸 수사들이 경매회에서 물건을 강탈해 가게 놔두신 것이고요. 그렇지 않았으면 용족이라도 어찌 본 맹의 경매회를 망칠 수 있었겠습니까.”

    “수사의 진원을 오염시키는 사악한 물건이라 경매에서 정식으로 낙찰되어 팔려갔다면 후환이 무궁무진했을 것이다. 그냥 용족에게 내주어도 되지만 그럼 본 맹의 위엄에 영향이 있을 게 아니냐? 그러느니 용족이 훔쳐가게 두는 것이 낫지.”

    “그렇습니다. 다른 대책을 생각하기에는 시간이 촉박해 어쩔 수 없었던 일입니다.

    “이 일은 마무리 되었고, 현상금에 관한 일은 몇 년 지나면 차차 잊혀 질것이다. 돌아가자! 처리해야할 일들이 많다.”

    명존이 고개를 끄덕이며 먼저 걸음을 돌리고 비운 선자가 빙긋 웃으며 그 뒤를 따랐다.

    * * *

    한립은 염룡의 피 강탈사건이 상맹의 의도임을 꿈에도 모르고 어지러움을 느끼고 눈을 떴다.

    똑같이 초대형 전송진 위에 있었으나 청석으로 이루어진 넓은 공터에는 나란히 선 남녀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혈천대륙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선배님들. 저는 방진으로 상맹의 사람입니다. 필요한 것이 있으시면 제게 말씀해 주십시오.”

    동글동글한 얼굴을 지닌 젊은 청년이 방금 전송된 수사들을 향해 포권을 했다. 웃는 얼굴이 퍽 선량해 보였다.

    곁에 선 냉랭한 표정의 미녀는 전송진 안 수사들을 살피고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방 수사, 인근 세력이 표시된 지도를 구할 수 있겠습니까?”

    두 남녀가 합체기 수행을 지닌 것을 보고 누군가 물었다.

    “필요하신 분들께 한 부씩 드리겠습니다.”

    둥근 얼굴 사내가 신속히 수십 개의 옥간을 불러냈다. 진법 위의 수사들은 분분히 다가가 하나씩 챙겼고, 성격이 급한 이들은 곧장 의식을 불어넣어 내용을 확인하고 둔광을 일으켜 자리를 떠났다.

    남은 이들도 몇 가지 질문을 하고 갈 길을 갔다. 별안간 대승기 수사는 한립 밖에 남지 않았고 대여섯 명의 이종족 수사들은 모여 무언가를 상의했다.

    “우리도 가지.”

    한립이 옥간을 살피며 담담히 말했다. 화석노조가 챙겨온 옥간이었다.

    “한 선배님이시지요? 후배가 명을 받들어 선배님을 모시러 왔습니다. 저를 따라 가주시겠습니까.”

    냉랭한 얼굴의 미인이 앞으로 나섰다. 표정과 달리 목소리가 달콤하고 듣기 좋았다.

    “명을 받들어 나를 모시러 왔다! 누구의 명을 받은 것인가?”

    한립이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제가 이곳에 있을 수 있는 것은 당연히 상맹 사람이라서가 아니겠습니까? 혈천대륙을 관리하시는 총 집사 벽영 대인의 명으로 한 선배님을 모시고자 합니다.”

    냉랭한 여인이 공손히 답했다.

    “벽영이란 이름은 처음 듣네. 귀 맹에서 혈천대륙을 담당하고 있다니 명성이 자자하겠어. 벽 수사가 무슨 일로 나를 찾는 것이지?”

    이곳에 오자마자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맞이하는 것은 명존 쪽에서 정보가 새어나갔다는 소리였다.

    “이유는 모르옵니다. 묻고 싶은 것이 있으시다면 벽영 대인을 뵙고 이야기를 나누시지요.”

    “하하, 벽 수사가 자네를 보내며 일러둔 말은 없는가? 내가 만남을 거절하고 가버릴 수도 있을 텐데.”

    “선배님께 전해드리라고 제게 한 가지 물건을 내주셨습니다.”

    “무엇이지? 꺼내 보게.”

    “예, 선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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