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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365화 (1,122/2,000)

1365화. 오장단원공(五藏鍛元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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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맹 시종들의 안내를 받아 평범한 이족 수사들이 광장을 떠나고 드넓은 공간에 비옥에 앉은 대승기 노조 수십 명만 남게 되었다.

“오늘 수사 분들에게 우스운 꼴을 보였습니다! 본 맹이 건립한 이래 경매품을 강탈당한 적은 한 번도 없는데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곳에 모인 수사 분들께 한 가지 약조를 하겠습니다. 본 맹을 대신해 그 자들을 잡아주시는 분께는 본 맹의 능력 내에서 세 가지 요구를 들어드리고 조룡의 피까지 보수로 드리겠습니다.”

명존은 높이 떠 있는 비옥들을 둘러보고 놀라운 제안을 했다.

“진심이십니까?”

“나중에 가서 딴 소리를 하지는 않을 테지요?”

파격적인 제안이라 몇몇이 놀라 물었다. 엄청난 보수에 마음이 동하는 모양이었다.

“허허, 본 맹이 영계 최고는 아니라도 그럭저럭 명성이 있는 세력입니다! 어찌 한번 내뱉은 약조를 지키지 않겠습니까. 돌아가는 대로 문하의 제자들이나 여러 족인들을 시켜 두 사람의 행방을 찾아주시지요.”

“그 말만 믿겠습니다!”

명존의 말에 부유족 노인이 음산한 웃음을 흘렸다. 흑포 사내와 수염 노인을 찾아낼 자신이 있는 것 같았다.

“명 형, 한 가지 물을 것이 있습니다. 방금 그들을 추격하며 종적을 찾지 못한 것입니까? 대체 어떤 비술을 사용했기에 이렇게 많은 금제를 무시하고 순간이동을 한단 말입니까.”

또 다른 이족 대승기 수사가 진지하게 물었다.

“저와 네 장로가 두 도적놈들을 거의 따라잡았는데 그놈들이 바깥에 또 다른 임시 전송진법을 마련해 놓았더군요. 진법에 무슨 수작을 부려 놓은 것인지 순찰을 삼엄하게 했음에도 발각되지 않았습니다. 저도 그들의 순간이동 술법은 처음 보는 것이라 정보를 드리지 못하겠습니다.”

명존이 미간을 좁히며 사실대로 답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어찌 해야 할지 알겠군요.”

이족인 수사는 감사를 표하고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 후로 몇몇 노괴들이 조룡의 피와 흑포 사내 등이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닌지 물었지만 상맹의 풍원대륙 관리인인 명존은 제대로 된 답을 내놓지 못했다.

대승기 이족인들은 비옥을 나서 하나둘 떠나기 시작했다.

“가세. 며칠 내로 혈천대륙으로 가야하니 우린 그들을 쫓을 시간도 없네.”

한립은 이야기를 듣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혈혼과 주과아를 푸른 기운으로 감싸 날아오른 그는 곧바로 동천을 떠났고 거처로 돌아와 홀로 밀실로 들어갔다.

한립은 가부좌를 틀고 앉자마자 저물탁에서 금빛 찬란한 종이를 불러냈다. 이번 경매에서 낙찰 받은 금궐옥서 내장이었다.

금궐옥서는 등장하자마자 웅웅 울어대며 그의 손을 벗어나려 했다. 이에 한립이 미소를 지으며 책장을 손바닥 사이에 두고 비비자 웅웅거리는 소리를 멈추고 종이의 빛이 어두워졌다.

손끝으로 금색 책장을 툭 건드리자 수많은 금전문들이 쏟아져 나와 신속하게 문장을 이루었다.

“오장단원공(五藏鍛元功).”

가장 위쪽에 신통의 명칭이 적혀 있었다. 그는 흥미롭게 내용을 파악해갔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표정은 더욱 밝아졌다.

펑!

그가 금전문을 다 잃고 소매를 털자 푸른 기운이 날아가 문장을 흩어버렸다.

“재미있군. 전문적으로 오장육부를 수련하는 공법이라! 오장육부를 단전과 비슷하게 만들어 법력을 담는 용기로 사용할 수 있고 백맥연보결(百脈煉寶決)과도 상호 보완할 수 있겠어.”

한립이 곰곰이 생각을 하다 슬쩍 미간을 좁혔다.

선가비술을 얻은 것은 좋았지만 공법을 익히기 위해 육신과 경맥에 대한 조건이 가혹하고 대량의 천지영기를 흡수해야 해서 수련 속도가 너무 느렸다.

전자는 백맥연보결을 익혀 조건에 부합하지만 후자는 아무리 영단묘약을 먹어가며 고되게 수련해도 소성(小成)을 이루는데 만 년은 걸릴 듯했다.

다른 공법보다 익히는데 시간이 조금 더 걸릴 뿐이라던 호옥쌍의 말이 떠올라 절로 코웃음이 쳐졌다. 그가 아니라 다른 대승기 수사였으면 5, 6만 년은 고되게 수련해야 했을 것이다.

범성진마공도 수련하기 극히 어려운 공법이라 적잖은 시간을 들였는데 이건 더 오래 걸릴 것이 틀림없었다.

‘이런 계륵과 같은 공법이니 혁련상맹에서 경매품으로 내놓은 것이겠지.’

허나 설명에 따르면 작은 성취만 이루어도 실력이 크게 늘어난다는데 포기하기도 아쉬웠다. 곰곰히 따져볼수록 고민이 되었다.

선가비술이 매혹적이기는 해도 만 년의 시간은 결코 짧지 않았다. 범인이었던 그가 합체기 수사가 되기까지 고작 2천 년이 걸린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랬다.

“누구십니까! 바깥에서 기웃거리지 말고 들어오시지요.”

돌연 눈을 빛낸 한립이 얼굴을 굳혔다. 그의 손짓에 대문이 열리고 흐릿한 그림자가 나타났다.

“하하, 한 수사 과연 예민하십니다. 비술을 사용해 여기까지 왔는데도 걸리고 말았군요.”

“당신은……. 담도 크십니다. 멀리 떠나지 않고 내 앞에 나타나다니, 내가 잡아다 상맹으로 데려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안 하십니까?”

한립은 불청객의 모습을 확인하고 냉랭히 말했다. 평범한 용모의 사내는 경매회에서 보물을 강탈해 사라진 흑포 사내였다.

웃음기가 가득한 얼굴이었지만 자신이 쉽게 발각되자 놀란 눈치였다.

“달아날 수 있었으면 진작 그렇게 했을 겁니다. 전송진법은 사실 눈속임이었고 지하세계 구석으로 숨어든 게 전부였지요.”

흑포 사내는 대뜸 밀실로 걸어 들어왔다.

“그럼 계속 숨어 있지 어찌 이곳에 나타난 것입니까?”

“당연히 한 수사를 만나기 위해 온 것입니다.”

“우리가 이전에 만난 적이 있던가요?”

“전혀요! 이번에 처음 뵙습니다.”

흑포 사내의 답변은 시원시원하고 거침이 없었다.

“아는 사이도 아닌데 저를 찾아온 연유가 무엇입니까. 듣자하니 저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을 하고 오신 듯 한데요.”

“예, 누가 한 수사에 대해 말해주기는 했습니다. 아직 번포자란 이름을 기억하십니까?”

“번포자를 아십니까?”

뜻밖의 대답에 한립은 정말 놀랐다.

“알다마다요! 아주 가까운 사이라 한 수사의 이야기도 들은 것 아니겠습니까. 한 형 칭찬을 아주 많이 했습니다. 그때는 과장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직접 보니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흑포 사내가 미소를 머금고 보란 듯이 한립을 아래위로 훑었다.

“과찬이십니다. 제가 번 수사를 만났을 때 주위에 아무도 없었으니 수사의 말이 거짓은 아니겠지요. 제가 처음에 무례한 태도를 보였다면 이해해 주십시오.”

한립이 곧장 얼굴을 풀고 상대에게 자리를 권했다.

“하하, 낯선 인물을 경계하는 것은 당연지사인데 어찌 수사를 탓하겠습니까.”

흑포 사내는 거절하지 않고 맞은 편 방석에 앉았다.

“제가 이번에 갑자기 찾아온 것은 수사께 부탁을 드릴 일이 있어서입니다. 한 형께서 저를 좀 도와주셨으면 좋겠군요.”

“말씀해 보시지요.”

“경매회 일 때문에 이곳 지하세계의 전송대전 경비가 더욱 삼엄해졌습니다! 저 혼자서 단시간 내로 이곳을 탈출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었지요. 듣자니 수사께서 대륙 간 전송진을 이용할 수 있는 이용권한을 낙찰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저도 같이 움직여도 되겠습니까? 도와만 주시면 이후 사례는 후하게 하겠습니다.”

흑포 사내는 솔직담백하게 몇 마디 말로 자신의 처지와 원하는 바를 밝혔다.

“대륙 간 전송진을 이용하길 원하신다고요?”

“그렇습니다. 그것 말고 단시일 내로 이곳을 떠날 방법이 없어서요.”

“기왕 경매회에 손을 쓰려고 계획했다면 응당 이곳에서 벗어날 길도 모색해 두셨을 것으로 압니다. 또한 일행은 어디로 간 것입니까?”

“제가 이곳에 갇히게 된 이유가 일행이 담당하던 퇴로에 문제가 생겨서입니다. 그 녀석은 운 좋게 지하세계를 벗어났는데 저는 쫓기다 보니 아직 떠나지 못했습니다.”

흑포 사내가 멋쩍은 얼굴로 답했다.

“그런 사정이 있으셨군요. 그런데 두 분께서 시끌벅적하게 경매회를 다녀가신 터라 상맹에서 두 분에게 상당한 현상금을 걸었습니다. 두 분만 잡아가면 상맹에 세 가지 요구를 할 수 있고 가져가신 물건도 보수로 주겠다던 걸요?”

“아, 진작 들어 알고 있습니다. 상맹에서 어찌나 후하게 보수를 약속하는지 제가 스스로 찾아가 현상금을 받았으면 싶더라고요.”

흑포 사내는 웃음을 터트리며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 듯했다.

“그들이 내건 보상에 마음이 없다고 해도 문제입니다. 제가 수사를 데리고 떠났다가 이 일이 바깥으로 새어나가면 상맹 사람들이 알게 될 것 아닙니까? 실력에 자신은 있지만 그래도 공연히 초대형 세력과 척을 지어 좋을 것은 없지요. 게다가 번 형의 친한 벗이라는 것 외에 수사에 대해 아는 바도 없는데 아무 상관도 없는 일에 끼어 들 수는 없습니다.”

한립이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걱정이라면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심마를 걸고 맹세하건데 한 형이 저를 도와주었다는 사실은 절대 바깥에 발설하지 않겠습니다. 어차피 일이 해결되면 저는 더 이상 영계에 머물 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본족에서 이 일을 외부에 공개해 모든 책임을 질 것이고요. 절대 한 형이 연루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번포자와 잘 알고 계시다면서 제 정체는 짐작이 안 되십니까?”

“진룡족!”

“맞습니다, 제 본체가 바로 진룡입니다. 미리 언질을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진룡족이셨군요. 어쩐지 조룡의 피를 강탈해 간다 했습니다.”

“조룡의 피요? 설마 아직도 제가 조룡의 피를 강탈했다 여기십니까?”

한립의 말에 흑포 사내가 입 꼬리를 끌어올렸다.

“그게 조룡의 피가 아니었단 말입니까?”

한립은 움찔했다.

“하하, 아니다 뿐입니까? 조룡과는 아무 관련도 없는 물건입니다! 한 형과 같은 외지인들은 착각할 테지만요. 진룡의 기운이 느껴지니 오해할 법도 합니다.”

흑포 사내가 낮게 키득거렸다.

“제게 물건의 내력을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이건 진룡족에게나 쓸모가 있지 다른 종족은 손에 넣어도 덕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조룡의 피가 아니라 염룡(魘龍)의 피니까요!”

“염룡이요?”

한립은 처음 듣는 소리였다.

“한 형께서 염룡을 모르시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진룡족에서도 그 존재를 아는 이가 몇 되지 않으니까요. 간단히 말해 염룡은 조룡 대인에 버금가는 선계의 존재로 저희 진룡족과는 원수인 마룡족(魔龍族)의 선조입니다. 선계로부터 전해진 염룡의 피는 이것만이 아니라 일고여덟 방울은 되고요.”

흑포 사내는 한립이 깜짝 놀랄 이야기를 술술 불었다.

“그렇게 많이 전해졌단 말입니까?”

“본족 장로가 혈맥의 힘을 이용한 특수한 방법으로 염룡의 피를 찾아냈고 저희를 파견해 각 계면에 퍼진 염룡의 피를 한 방울도 남김없이 수거해 오도록 했습니다.

염룡의 피에는 막대한 염룡 진원이 담겨 있지만 동시에 특유의 혼란한 힘을 품고 있어 저 같은 진룡족만이 천천히 연화를 시킬 수 있지요. 다른 종족이 강제로 제련하려고 하면 염룡 진원은 얻지 못하고 법력이 오염되어 나중에는 염룡의 투영체(投影體)가 되고 맙니다.

본족 장로들은 이런 물건이 하계에 나타난 이유가 염룡의 꿍꿍이가 아닌 가 의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마룡족의 생사대적(生死大敵)인 저희 진룡족이 두고 볼 수만은 없는 일이지요.”

흑포 사내가 진지한 얼굴로 설명했다.

“그 말은 이 물건이 다른 종족에게는 쓸모가 없고 오히려 해가 될 거란 뜻이군요. 허나 귀족이 염룡의 피를 얻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세력이 크게 늘고 비승하는 수사도 나오겠습니다.”

“에이, 염룡의 피를 연화하는 것이 그리 쉽지가 않습니다! 막대한 진원의 힘을 지닌 만큼 혼란한 힘을 몰아내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진원도 같이 유실이 되니까요. 나중에 1할 만 건저도 다행이라고 보면 됩니다.

전부 연화를 시켜도 남들보다 법력이 심후해질 뿐 별 다를 것도 없고요. 진령급 존재들은 다른 수사들보다 비승이 백배는 더 어렵습니다. 물론 대승기 미만의 후배들에게 복용을 시키면 한순간에 고비를 넘어 진령이 되기도 할 겁니다.”

“앞으로 진룡족에 더 많은 진령급 수사들이 등장하겠군요.”

“그러기를 바라는데 원대로 될지는 봐야지요. 저희 일족은 진령의 몸을 타고 나서 오랜 세월이 흘러 진령이 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지요. 이만하면 설명은 할 만큼 한 것 같은데 결정을 내리셨습니까?”

“수사께서 번포자의 동족이라 하시고 돌아가는 대로 이 일을 공개해 책임을 지신다고 했으니 거절하기는 어렵겠습니다.”

한립은 직접적으로 답하지 않고 말을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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