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2화. 번천기(翻天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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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위의 호옥쌍이 이번에는 기다란 목함을 끌어와 뚜껑을 열었다. 길고 새까만 목함이 열리는 순간 용울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푸른 빛줄기가 빠져나와 커다란 푸른 교룡으로 변해 달아나려 했다.
“어딜 가려느냐!”
오색구름 속에서 누군가 헛웃음을 짓고 금빛 줄기가 날아들어 푸른 교룡을 맞추었다.
끙!
교룡은 앓는 소리를 내며 머리부터 고꾸라져 떨어져 내렸다. 이때 아래쪽의 미부인이 주문을 외며 교룡을 가리켰고, 몸을 비틀어대던 교룡이 푸른 보검으로 변했다.
호옥쌍의 손에 떨어진 푸른 보검은 더는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영목 신통을 일으킨 한립은 똑똑히 보았다.
팔뚝 절반 크기의 고풍스런 검은 검신으로 매우 짧고 손잡이가 절반에 달했다.
손잡이는 초승달 모양의 수정돌을 문 푸른 교룡의 머리를, 칼날은 비늘 문양이 새겨진 몸통 역할을 하고 있었다.
“청교충월검(靑蛟衝月劍)입니다! 십만 년 전 풍원대륙에서 명성을 떨쳤던 충월 노인이 소유했던 영검 세 자루 중 하나로, 십여 종의 통령 청교의 정혈에 담가 모양을 잡고 충월노인이 수백 년간 공을 들여 월정(月精)의 힘을 주입해 대단한 위력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지요. 흥미가 있으신 분들은 직접 살펴보셔도 됩니다.”
미부인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에 몇몇 수사들은 무대로 올라가 검을 살피고 고개를 끄덕이거나 저었다. 마지막 사람까지 무대를 내려가자 호옥쌍이 거침없이 외쳤다.
“청교충월검의 경매를 시작합니다! 시작가 7백만입니다!”
이번 보물의 시작 가는 황금골수보다 낮았지만 비범한 보검을 원하는 이들은 더욱 많았다.
“7백5십만!”
“8백만.”
“9백만!”
대승기 노조들이 나서지 않아 청교충월검은 쭉쭉 가격이 오르다 2천6백만에 낙찰되었다.
곧 호옥쌍은 세 번째 목함을 열어 주먹만 한 핏빛 광석을 꺼냈다.
혈천대륙 특산의 혈강철(血罡鐵)로 순조롭게 천7백만 개에 낙찰되었다.
이렇게 보물과 재료들이 무대로 올라올 때마다 호옥쌍이 간단한 설명을 하고 가장 고가를 부른 이에게 물건을 넘겼다.
순식간에 백여 개의 물품이 지나갔지만 비옥의 노조들이 눈여겨 볼만한 물건은 몇 되지 않았다.
한립도 아직까지 전혀 나서지 않고 있었다.
혈혼은 몇 가지 물건에 마음이 흔들렸지만 가격을 듣고는 할 말을 잃었다.
혁련상맹도 이런 물건들로는 비옥의 대승기 노조들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경매회가 절반쯤 지났을 때 황금골수에 비할만한 귀한 물건 대여섯 가지를 내놓았다.
전부 천겁을 막거나 미루는데 연관된 보물들이었다. 이에 비옥 안 수사들도 경쟁에 뛰어들어 가격이 억까지 올라가는 것도 다반사였다.
심지어 도겁에 관련된 특수재료 한 가지는 영석 4억 개에 거래되어 광장의 연허, 합체기 이족인들을 기함하게 만들었다.
한립도 그 특수재료에 관심을 보였지만 가격이 2억 개를 넘어가자 웃으며 신경을 껐다.
시간이 흘러 경매는 막바지에 이르렀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이제 경매회의 대미를 장식할 세 가지 보물만이 남았군요.”
호옥쌍이 신비로운 미소를 지으며 손뼉을 짝! 짝! 두 번 쳤다. 고공의 오색구름이 좌우로 갈라지고 금빛찬란한 궁전이 드러났다.
궁전 안에서 불경 소리와 함께 오색 궁장 차림을 한 미녀 세 명이 날아올랐다. 은색 쟁반을 든 여인들은 금색 보호막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들 뒤로 네 명의 노인이 나타났는데 전부 대승기 노조들이었다. 그들이 무대에 올라오자 호옥쌍이 나서서 네 노인에게 공손히 예를 올렸다.
“장로님들을 뵙습니다. 풍원대륙에 오자마자 인사를 올리려 했으나 선배님들께서 폐관수련 중이시라 찾아뵙지 못했습니다.”
“껄껄, 호 가에서 가장 재능이 출중하다는 직계 후인이 아닌가. 과연 남다르구만. 우리는 잡다한 예를 따지는 사람들이 아니니 신경 쓰지 말게. 이 늙은이들이 한 가지 신통을 익히느라 명존이 나서달라 청하지 않았으면 아직도 출관하지 않았을 걸세.”
베옷을 걸친 마른 노인이 손을 저었다.
“이번 경매품이 너무 값진 것만 아니었다면 명 대인께서도 장로들께 출관을 요청하지 않으셨을 겁니다.”
“그렇지. 어차피 한 닷새 나돌아 다닌다고 수련에 크게 지장이 있는 것도 아니니 말이야. 우리는 신경 쓰지 말고 경매를 계속 진행하게.”
마른 노인은 다른 세 명과 함께 무대 옆으로 물러나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면 바로 세 물품의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호옥쌍이 세 궁장 여인들에게 손짓하자 세 여인들이 앞으로 나서고 상맹의 네 노인은 무대의 각 모퉁이로 이동해 가부좌를 틀었다.
광장의 이족인들은 혁련상맹이 이번 경매회를 위해 네 명의 대승기 노조를 보낸 것에 크게 놀라고 있었다. 보아하니 앞으로 나올 보물이 엄청날 듯했다.
호옥쌍이 술법을 펼쳐 은색 쟁반 중 하나의 빛의 장막을 거두었다. 쟁반 위에는 작은 회색 깃발이 놓여 있었는데 노란 문양이 새겨진 것 외에는 특이한 것은 없었다.
그저 봉인 부적이 여덟 장이나 붙어 있는데도 희미하게 괴이한 파동이 느껴져 대단한 물건일 거라 예상했다.
“혼돈만령방은 다들 알고 계실 겁니다. 일계에 속한 가장 위력적인 보물들을 기록한 것이니까요. 그 중 뒷줄에 있는 보물들은 이곳에 모인 수사들이라면 한두 점씩 지니고 계실 것입니다. 허나 앞줄에 있는 현천의 보물들은 직접 본적이 없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호 선자의 말씀은 이번 보물은 현천의 보물이란 뜻입니까?”
합체기 이족인이 끼어들었다.
“하하, 영리한 분이시군요. 이번 경매품은 현천의 보물이자 만령방에서 무려 9위에 오른 번천기(翻天旗)입니다.”
미부인이 작은 깃발을 들어올렸다.
“뭐라고요? 번천기!”
“그럴 리가 없습니다. 실종된 지 오래인 보물이 어찌!”
“당시 번천기를 위해 풍원대륙의 여러 종족이 세력을 크게 잃었고 심지어 약소 부족 두 곳은 멸족을 당하지 않았습니까.”
흥분한 이족인들이 수군거렸다. 비옥 안 대승기 노조들도 놀랄 만한 물건이었다.
“번천기를 내놓다니 정말 예상 밖의 일이군. 대륙을 초월하는 세력이라더니 혁련상맹의 수완이 대단해!”
한립도 놀란 눈빛을 보였다. 옆에 선 혈혼과 주과아는 말할 것도 없었다.
“노부가 한 마디 묻지. 정말 만령방에 오른 현천의 보물이 확실한가? 허허, 솔직히 정말 현천의 보물을 귀 맹이 숨겨두지 않고 경매회에 내놓는 것이 이상해서 말일세.”
혈혼과 황금골수를 두고 경쟁했던 대승기 수사가 냉랭히 물었다.
“현명하십니다. 저희가 만령방에 오른 물건을 지니고 있었다면 대놓고 공개하지 못했을 겁니다. 상고 진령만 몇 찾아와도 후환이 무궁무진할 테니까요. 허나 제가 들고 있는 것은 번천기가 확실합니다.”
호옥쌍이 살짝 허리를 굽히며 진지하게 답했다.
“뭔가 사연이 있는 것 같은데 시간 끌지 말고 분명히 밝히게.”
또 다른 낯선 대승기 노조가 입을 열었다.
“예. 다들 번천기의 이름은 들어보셨어도 그 보물이 본래 두 개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각 음과 양의 속성을 띤다는 것을 아는 분은 드물 것입니다. 제가 갖고 나온 것은 음기(陰旗)로, 단독으로 사용하면 평범한 통천영보의 위력밖에 내지 못합니다. 음기와 양기가 함께 있어야 현천의 보물의 진정한 위력을 발휘하게 되지요.”
“번천기가 두 개?”
“음기와 양기!”
수사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런 사정이 있었군. 허나 현천의 보물은 영성이 뛰어나서 음기가 세상에 나왔다면 분명 양기도 있을 것일세. 양기에 대한 소식은 없는가?”
또 다른 비옥에서 대승기 수사의 온화한 목소리가 들렸다.
“본 맹이 그 소식을 알았으면 진작 양기를 손에 넣었겠지요. 우연히 음기를 찾았을 뿐 양기의 행방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습니다. 자, 설명은 여기까지 하고 이제 위력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미부인이 공손히 답하고는 깃발을 쥐고 흔들었다.
우웅!
노란 기운이 밀려나와 무수히 많은 꽃으로 변해 무대 전체를 가렸다.
미부인의 주문 소리와 함께 동천 내부의 천지원기가 미친 듯이 몰려들어 노란 꽃들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쿠르릉!
광장 위로 노란빛이 퍼져나가 시선이 닿는 곳마다 노란 거대 꽃의 세계를 이루었다. 의식으로 노란 꽃을 훑은 이들의 안색이 달라졌다.
거대 꽃이 함유한 막대한 힘을 느꼈기 때문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노란 꽃 내부가 극히 불안정해 언제라도 폭발할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었다.
그때 비옥 중 하나에서 누군가 냉소했다.
“그만 됐으니 경매나 시작하지! 현천의 보물인지 아닌지 우리 같은 늙은이들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을 게야. 이런 보물이 아무 손에나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예, 선배님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비옥에서 푸른 광풍이 불어나와 노란 꽃들을 멸하고 광장 상공을 원래대로 돌려놓았다.
놀란 호옥쌍이 서둘러 깃발을 휘둘러 괴상한 파동을 퍼트렸다. 그러자 남아 있던 노란 꽃들이 사라졌다.
“번천기 경매를 정식으로 시작합니다. 시작가 영석 3억 개! 영석이 부족하면 다양한 보물로 셈을 치를 수 있습니다!”
“5억.”
미부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방금 말을 꺼낸 대승기 노조가 가격을 불렀다. 광장 안의 합체 연허기 이족인들은 입 밖에 꺼내지도 못할 거액이었다.
이번 경매품은 상맹이 대승기 노조들을 위해 준비한 것이 틀림없었다.
“겨우 영석 5억 개로 현천의 보물을 가져가시겠다고요? 그냥 필요 없다고 하시지요. 8억 개!”
또 다른 비옥에서 여인의 웃음소리가 들리고 가격이 거의 배로 뛰었다.
“흥, 번천기가 온전하기만 했어도 얼마를 주고 낙찰을 받든 이익일 겁니다! 허나 절반짜리가 아닙니까? 그렇게 가치 있다고 생각하시면 선자나 비싼 값을 치르고 가져가시지요.”
처음에 가격을 부른 대승기 노조가 코웃음을 치고 발을 뺐다. 이에 다른 비옥도 잠시 조용해졌다.
노인의 말이 일리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두 번째로 가격을 부른 여인은 그 말에 개의치 않고 직접 호옥쌍에게 말을 걸었다.
“아무도 가격을 부르지 않는 것 같은데? 그만 내 것이라 선포해야겠지?”
“예, 선배님. 세 번 확인을 하고 더 가격을 부르실 분이 없으면 바로…….”
미부인이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하는데 말이 끝나기 전에 ‘9억’을 부르는 담담한 목소리가 대청을 뒤집어 놓았다.
비옥 안의 혈혼과 주과아가 놀란 얼굴로 한립을 바라보았다. 방금 가격을 부른 이가 바로 한립이었기 때문이다.
“9, 9억5천만!”
“10억!”
“10억3천만!”
한립이 가격을 부르자 다른 대승기 노조들도 정신을 차리고 연달아 가격을 높여 순식간에 12억까지 경매가가 올라갔다.
이에 광장 안이 또 한 번 고요해졌다.
“크큭, 겨우 절반짜리 현천의 보물을 두고 이리 경쟁이 치열할 줄이야. 다들 양기를 찾아낼 수 있다고 자신하나 봅니다. 그게 복이 될지 화가 될지도 모르고 말입니다. 종족에 큰 화를 불러들일 것이 겁나지도 않으십니까?”
탁한 여인의 목소리가 광장을 울렸다.
“아 그럼, 고 선자는 나서지 말고 보물을 다른 이에게 넘기면 그만 아닙니까?”
그 말에 날카로운 목소리가 쏘아붙였다.
“설마 당신에게 말입니까? 석소족(石魈族)이 현천의 보물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괜히 잘못 삼켰다가 탈나지 말고 욕심을 거두시지요!”
“석소족이 능력이 되는지 안 되는지는 모르겠고. 고 선자 눈에 부유족은 그만한 능력이 되는지요?”
탁한 여인의 목소리에 음산한 노인의 목소리가 답했다.
“부유족!”
대승기 노조들 중 몇몇의 표정이 달라졌다.
“부유족이 강대 종족인 것은 알지만 우리 천명족(天鳴族)도 그리 만만한 종족은 아닙니다. 다른 일이라면 귀 족에 양보하겠지만 현천의 보물은 안 되겠군요!”
침묵하던 여인이 감정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좋습니다. 다들 포기할 의지가 없다니 결국 가장 높은 가격을 부르는 사람이 현천의 보물을 손에 넣게 될 겁니다. 노부는 이미 가격을 불렀고 더 높은 가격을 불러보세요.”
노인이 웃음을 흘렸다.
“15억 개.”
탁한 여인의 목소리가 바로 놀라운 가격을 제시했다.
“고 수사, 그리 많은 영석을 지니고 있기는 한 것입니까? 설마 가진 보물로 충당하려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게 어쨌단 겁니까? 지니고 다니는 보물 중에 쓸모없는 것들을 이참에 처분하는 셈 치면 그만인 것을요.”
“본 좌도 물러서지 않을 겁니다! 18억.”
석소족 대승기 수사가 가격을 불렀다.
“18억5천.”
“19억!”
너무 높아진 가격에 현천의 보물을 노리던 몇몇 대승기 수사들은 인상을 찡그리고 입을 다물었다. 낙찰을 받아도 보물을 지니고 버틸 수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저 3명의 대승기 수사만이 계속 가격을 높이는 중이었다. 무대 위의 호옥쌍은 눈웃음을 치며 조용히 서서 결과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어찌 되었든 가격이 오르면 오를수록 맹의 이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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