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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361화 (1,118/2,000)

1361화. 황금골수(黃金骨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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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릉!

얼마 후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광장에 돌로 만든 무대가 솟아올랐다.

그 위에선 홍발 노인은 체구가 그리 크지 않았는데도 등장한 순간 모두의 시선을 끌어모았다.

“노부 명존은 풍원대륙에서 본 맹의 일을 맡아보고 있습니다. 허허, 길게 소개하지 않아도 이곳에 모인 많은 분들이 노부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긴말 필요 없이 이번 경매회는 다른 지역의 경매회와 규정이 비슷하니 누구든 규정을 무시하는 자는 노부가 친히 나서서 배웅을 해드릴 것입니다. 자, 이제 경매회 시작을 선포하겠습니다.”

홍발 노인은 간단한 설명과 함께 경매회 시작을 알리곤 은색 빛줄기로 변해 오색구름 속으로 종적을 감추었다.

그와 동시에 무대 위 빛의 진법이 광채를 발산하고 풍만한 몸집을 지닌 미부인이 만면에 웃음을 띠고 나타났다.

미부인이 요염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자 주변 이종족들은 피가 들끓는 것 같은 묘한 감정을 느꼈다.

더욱 괴이한 것은 그녀의 엉덩이 뒤쪽으로 분홍색 꼬리 3개가 살랑살랑 움직인다는 것이었다.

“삼미미호(三尾媚狐)! 영계에 이런 역천의 존재가 있었단 말인가!”

“혁련상맹은 어디서 삼미미호를 찾아내 이번 경매회를 진행하게 한 것일까요?”

조용하던 광장 안이 갑자기 들썩였다.

적잖은 이족 사내들이 미부인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미부인은 긴장하는 기색 없이 싱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저는 호옥쌍이라 합니다. 명 선배님의 보살핌을 받아 이번 경매회를 주관하게 되었습니다. 보잘것없는 아녀자라 여기실지 모르겠으나 다수의 경매회를 진행해 본 경험을 살려 만족스러운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여러 경매회를 진행해 보았다고요? 그게 사실입니까, 호 선자? 선자와 같은 인재가 경매회에 얼굴을 드러냈다면 우리들이 어찌 그 소식을 모를 수 있겠습니까.”

누군지 모를 괴상한 목소리가 허공을 울렸다. 다른 수사들도 의심스럽다는 표정이었다.

“수사께서 풍원대륙의 경매회를 일컫는 것이라면 확실히 처음 주관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럼 선자는 본 대륙 사람이 아니란 소립니까?”

태연한 호옥쌍의 대답에 이번에는 다른 수사가 목소리를 높였다.

“줄곧 혈천대륙에서 활동하였고 1년 전에야 풍원대륙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저를 낯설게 여기는 것도 당연한 일이지요.”

“호 선자께서 풍원대륙 사람이 아니라니 정말 아쉽게 되었습니다. 진작 부인 같은 자태를 지닌 분이 있는 줄 알았으면 오랜 세월 수련만 하며 홀로 늙지는 않았을 텐데요.”

또 다른 굵직한 목소리가 광장 구석에서 울렸다. 상대를 희롱하는 기색이 다분했다.

“하하, 인연을 언제 어디서 만날지는 모르는 법이지요. 마침 부군이 세상을 뜬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수사께서 진심이시라면 기회를 드리지요. 말만 하지 마시고 직접 나서서 방금 한 말을 다시 해보시면 어떻겠습니까?”

미부인이 초롱초롱하게 눈을 빛내자 고혹적인 분위기가 한층 고조되었다. 사내들의 시선을 끄는 자력이라도 있는 것처럼 요염하기 그지없었다.

“좋습니다. 기왕 선자께서 그리 말씀을 하시니 따라야지요. 진작 부인과 같은 미인이 존재하는 것을 알았으면 오랜 세월…….”

무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말쑥한 얼굴의 중년인이 홀린 듯 일어나 소리치기 시작했다.

중년인은 말을 하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입을 다물지 못했다.

“오, 석용족(石蛹族) 사 수사셨습니다. 제가 그리 마음에 드신다면 경매회가 끝난 후에 따로 남아 제 곁에 며칠 더 머무는 것이 어떠십니까?”

미부인은 중년인의 얼굴을 확인하고 아름답게 웃었다. 그러나 그녀의 눈빛에는 서늘한 기운이 번득이고 있었다.

“그저 농을 한 것뿐입니다. 게다가 제가 어찌 감히 호 선자께 그런 마음을 품을 수 있겠습니까!”

절색의 미부인을 마주본 중년인은 독사와 눈이 마주친 듯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눈길을 피했다. 얼른 자리에 앉는 모습이 아주 고분고분하기 짝이 없었다.

“농이요? 저와 정말 인연을 맺고 싶은 마음이 없으시다면 앞으로는 그 입을 조심하시는 것이 좋으실 겁니다.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지만 또 누가 ‘농’을 하신다면 제가 어떻게 나와도 무정하다 나무라지 마십시오.”

미부인이 웃음기가 싹 가신 얼굴로 서늘하게 경고했다.

중년인은 난색을 표하며 대꾸하지 못했고 다른 수사들도 화들짝 놀라 호옥쌍에 대해 기탄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됐으니 더 이상 시간 낭비 말게! 우리가 이런 구경이나 하려고 이곳에 모인 것은 아니지 않나? 어서 경매품이나 소개하게.”

은색 석실 중 한 곳에서 노쇠한 목소리가 불만을 토로했다.

“예, 제가 잠시 본분을 잊었습니다. 바로 첫 번째 물품을 소개하도록 하지요.”

호옥쌍이 비옥(飛屋)에서 들려온 말을 듣고 흠칫 놀라 허리를 숙였다.

쿠릉!

그녀가 수결을 맺고 무대의 한 곳을 가리키자 투명한 백옥 탁자가 솟아올랐다. 탁자 위에 목함 세 개가 하얀빛의 장막으로 덮여 있었다.

“이번 경매회의 첫 번째 보물은 풍원대륙 물건은 아닙니다. 본 상맹이 심혈을 기울여 뇌명대륙에서 구해온 황금뇌사(黃金雷獅)라는 사자의 골수 한 병을 소개합니다.”

호옥쌍은 목함 하나를 끌어왔다.

“황금사자의 골수!”

“정말입니까?”

“이번 경매회가 남다를 것이라더니 처음부터 사람을 놀라게 합니다!”

대청 안이 한바탕 시끄러워졌다. 미부인이 목함의 뚜껑을 열어 안에 든 보라색 병을 보였다.

은색 부적이 은은한 빛을 내며 뚜껑을 봉하고 있었다.

“황금뇌사는 뇌명대륙 3대 성수(聖獸)중 하나로, 성년이 되면 대승기 수사에 맞먹는 실력을 내며 뇌전을 조종하는데 천부적인 능력이 있어 그 골수로 만든 뇌수단(雷髓丹)을 복용한 자는 잠시 뇌전 공격에 저항력을 지니게 됩니다. 뇌수단 제련법이 난해하지만 도겁을 앞둔 수사들에게 의미 있는 재료인지라 다들 아실 거라 믿습니다.”

미부인은 간략한 설명을 마치고 손끝을 튕겨 금색 주술문자들을 봉인 부적에 흡수시켰다.

펑!

은색 부적이 튕겨 나가고 안에서 치지직 거리는 뇌전 소리가 우렁차게 울렸다. 부적이 떨어져 나간 순간 작은 병이 보라색 뇌전으로 뒤덮여 주위에 뇌전 그물을 만들었다.

괴이한 장면에 이족인들은 탄성을 내질렀고 작은 병을 바라보는 수사들의 눈길이 뜨거워졌다. 뇌전 그물만 봐도 그것으로 제련한 단약의 위력을 가늠할 수 있었다.

원래 다른 목적으로 이번 경매회를 찾은 강자들이나 대승기 노괴들도 마음이 동했다.

“시작부터 저렇게 진귀한 물품을 내놓을 줄은 몰랐습니다. 뇌겁을 막는데 효과가 있다는데 선배님께서도 경매에 참여하실 생각이신지요?”

혈혼이 눈을 빛내며 물었다.

“뇌수단의 효력이 아무리 현묘해도 대승기 수사에게는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네. 게다가 상고 진령 수준으로 육체를 강화해온 내게는 효과가 아주 미미하지.”

한립은 정말 아무런 관심이 없어보였다.

“뇌수단이 대승기 수사들에게 꼭 필요한 물건이 아니라면 저도 기회를 노려볼 만하겠습니다.”

“호오, 마음에 드는가?”

“후배의 본체가 어떤 처지에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결코 그리 좋은 상황은 아닐 것입니다. 그간 수행도 크게 늘지 못했을 테니 천겁을 대비할 보물이라도 준비해 두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혈혼이 쓴웃음을 지어보였다.

“원한다면 하고 싶은 대로 하게. 영석이 부족하면 내게 얼마간 빌려가도 되고.”

“감사합니다, 선배님!”

한립이 담담히 건넨 말에 혈혼이 무척 기뻐했다. 그때 미부인이 맨손으로 병을 잡아 천천히 기울였다.

휙!

금빛 찬란한 액체가 흘러나와 공기와 닿는 순간 광채 덩어리로 변했다.

콰르릉 콰콰쾅!

머리통만 한 금빛 덩어리가 굉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골수의 진위를 의심하던 이들도 서둘러 이 보물을 낙찰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호옥쌍이 광장에 모인 이족인들의 표정을 확인하고 금색 액체를 모아 병 속에 돌려놓았다.

“황금뇌사의 골수 한 명, 시작가 영석 1천만 개! 오로지 극품영석으로만 거래할 수 있습니다. 지금 경매를 시작합니다.”

미부인이 소매를 펄럭이자 빛의 진법이 울며 오색 빛기둥을 쏘아 올랐다. 빛기둥들이 허공에서 하나로 연결되어 거대한 빛의 장막을 만들었다.

거울처럼 반질반질한 장막 표면에 보라색 병의 도안이 떠올랐다.

“2천만.”

묵직한 저음이 광장을 울려 모두를 놀라게 했다. 처음부터 시작가의 두 배를 부른 것이다! 장막에 그려진 보라색 작은 병 옆에 숫자와 원반 모양의 부호가 떠올랐다.

“2천백만!”

“2천3백만 개!”

연달이 가격이 올라 3천만을 돌파했고 4천만에 이르러서는 잠시 소강상태에 머물렀다. 성공할지 실패할지 모를 단약의 재료치고는 천문학적인 액수였다.

아무리 가진 재산이 많아도 이제부터는 신중하게 가격을 부를 때였다.

“4천5백만.”

나른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빛의 장막의 금색 숫자가 바뀌고 옆의 부호가 황금색으로 반짝였다.

높은 가격을 부른 이는 은색 비옥의 대승기 노조였다.

이에 광장 안의 수사들은 경쟁할 의욕을 잃었다. 합체, 연허기 경지의 수사가 가격을 부를 자리가 아니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4천6백만.”

누군가 머뭇거리다 조심스럽게 가격을 올렸다.

“4천7백만!”

두 대승기 노조가 서로 가격을 올리며 외치자 광장 안은 아주 조용해졌다.

“수사께서 꼭 필요하신 것 같으니 더는 경쟁하지 않겠습니다.”

나중에 가격을 부른 대승기 노조의 목소리는 아주 온화했고 사내인지 여인인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단 한 번만 가격을 높이고 금방 경쟁을 포기했다.

“허허, 양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첫 번째 대승기 수사가 웃으며 감사를 표했다. 그때 ‘4천8백만’이라는 낭랑한 목소리가 또 다른 은색 비옥에서 들려왔다.

광장 안 이족인들이 아연한 얼굴로 그곳을 보는데 금방 ‘5천만’으로 경매가가 올랐다.

“5천백만 영석.”

세 번째 은색 비옥 안에서 혈혼이 신중한 표정으로 원반을 들고 있었다. 한립은 의자에 기대앉아 미소를 띤 얼굴로 지켜보기만 했다.

“5천2백만. 이 황금골수가 제 후배에게 꼭 필요해 그러니 양보해주시면 노부가 나중에 사례하겠습니다.”

처음으로 가격을 부른 대승기 노조가 가격을 올린 다음 얼른 양해를 구했다.

은색 비옥 안에서 가격을 불렀기에 자신이 연허기 수사와 경쟁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듯했다. 이에 혈혼이 안색이 변해 슬쩍 한립을 쳐다보았다.

“상관없네. 경매회란 높은 가격을 부른 자가 물건을 가져가는 법. 꼭 필요하다면 신경 쓰지 말고 낙찰받게.”

“감사합니다, 선배님!”

한립의 말에 안심한 그녀가 원본 위에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쓰고 ‘5천 5백만’이라는 가격을 불렀다.

안 그래도 높은 가격에 한번에 3백만을 올리자 수사들은 깜짝 놀랐다.

이에 처음 가격을 부른 대승기 노조도 침묵하자 무대 위의 호옥쌍이 세 번을 확인하고 황금골수가 낙찰되었음을 알렸다.

혈혼은 밝은 얼굴로 상맹 사람이 전해온 물건을 받고 그 자리에서 극품영석을 전해주었다.

“혈혼 언니가 이렇게 부자인 줄 몰랐어요. 그 많은 극품영석을 눈 하나 깜짝이지 않고 내주다니요!”

주과아가 혈혼이 쥔 보라색 병을 보고 부럽다는 듯 말했다.

“부자는 무슨! 오랜 세월 모아온 영석들인데 황금뇌사의 골수는 정말 구하기 어려운 물건이라 큰마음 먹고 낙찰받은 것이지. 이제 영석을 다 탕진해서 더는 경매에 참가할 수 없을 거야.”

혈혼이 한숨을 내쉬고 병을 품에 넣었다.

“그래도 언니가 현명하게 판단을 잘 한 것 같아요. 나중에 아무리 귀한 물품이 나와도 낙찰받기 어려울 것 아니겠어요? 차라리 더 좋은 물건이 없을까 사람들이 눈치 보는 동안 적당한 물건을 손에 넣는 게 낫죠.”

“그것도 다 한 선배님이 계셔주신 덕이지. 나 혼자였으면 어찌 감히 대승기 노조와 경쟁을 했겠어? 다른 이들도 대승기 노조가 경매에 참여했기에 더는 나서지 못한 것이고.”

“혈 수사에게 영석을 좀 빌려주려 했는데 알아서 해결했다니 다행일세.”

한립은 비옥 바깥의 광장을 내려다보며 담담히 말했다.

첫 번째 경매품이 황금뇌사의 골수였으니 다음번 보물이 기대되는 것은 당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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