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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358화 (1,115/2,000)

1358화. 적융산맥(赤融山脈)

*

“그렇지, 노부가 도겁을 하던 중 분신으로 살피니 자금색 소인이 산골짜기 밖에서 매서운 검기로 불멸천존을 참살하더이다. 그 소인의 기운이 어딘가 익숙하던데 내력이 무엇인지 가르침을 구해도 되겠습니까?”

“하하, 금동의 일을 물으시는군요. 아마 대략 짐작은 하실 텐데요?”

“설마 서금충왕! 정말 서금충왕을 길러내다니……. 하긴, 충왕 급이 되어야 대승기 수사를 개 잡듯이 참살하겠지요. 진선의 위명에 버금간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었습니다. 수사께서 어찌하신 것인지 궁금합니다.”

한립의 말대로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사실을 확인한 청원자는 놀라 소리를 높일 수밖에 없었다.

“충왕을 길러낸 것은 운이 따라준 덕입니다. 저라도 같은 방법으로 두 번째 충왕을 길러내라면 해낼 수 없을 테고요. 이전에 청 수사께서 일러주신 가르침에 다른 기연이 더해져 가능했습니다.”

미소를 지은 한립이 포권을 해 감사를 표했다.

“노부는 그저 되는 대로 몇 마디 한 것뿐인 것을요. 수사가 정말로 이런 역천의 영충을 길러낼 줄은 예상치 못했습니다. 충왕의 도움을 받으면 영계를 종횡무진하는 데 아무런 걱정이 없겠습니다. 아, 혹시 충왕을 소환해 노부의 견문을 넓혀주실 수 있겠습니까?”

청원자의 얼굴에 진한 부러움이 떠올랐다.

“그럴 리가요. 거대한 영계에 수많은 강대 종족과 기인기사들이 넘쳐납니다. 어찌 충왕만을 믿고 험한 세상을 종횡무진 하겠습니까? 다만 충왕은 잠시 일을 시켜 놓아 돌아오는 대로 불러 수사께 보이겠습니다.”

“항상 생각하지만 한 수사께서는 너무 겸손하십니다.”

“아닙니다. 그보다, 청 수사께서는 혹여 혁련상맹이란 곳을 들어보셨습니까?”

충왕을 보여준단 말에 좋아라 하는 청원자를 보고 한립이 대수롭지 않게 다른 화제를 꺼냈다.

“혁련상맹이라면 여러 대륙에서 영향력을 펼치는 초대형 세력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다지 자세한 사항은 모르고요. 그들과 문제라도 생기신 겝니까?”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니고, 이후 그들과 거래를 해야 할 것 같아 아시는 바가 있으면 관련 정보를 들으려 했습니다.”

“그거야 쉽지요. 노부가 돌아가는 대로 관련 정보를 복제해 옥간을 넘겨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 후로 그와 청원자는 도겁을 통해 얻은 깨달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일행 전부가 청원자의 동부로 향했다.

이튿날 아침, 석실을 나선 한립을 선녀처럼 아름다운 백의 여인이 기다리고 서 있었다.

“한 형, 오늘 하루만 제게 시간을 내주실 수 있나요?”

빙긋 웃으며 다가오는 것은 원요였다.

* * *

콰르르릉!

이레 후, 명하의 땅 어딘가.

거대한 녹색 검기가 날아가 허공에 나와 새까만 균열을 만들어냈다.

그 사이로 검은 거대 선박이 스며들어 종적을 감추었다.

검은 균열은 서서히 봉합되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범한 하늘로 돌아갔다.

그곳에서 멀리 떨어진 돌무지 위에 원요와 연려가 떠서 그것을 지켜보았다.

“가자! 네 님도 가셨는데, 여기서 아쉬워해 봐야 무슨 소용이야. 2백 년간 노력해서 육신을 안정시키고 인족으로 찾아가면 되잖아? 설마 그 시간도 참지 못할 만큼 조급한 건 아니지, 사매?”

연려가 장난스럽게 키득거렸다.

“뭐라는 거야! 나와 한 형 사이는 그런 게 아니라고. 요 며칠 보니까 한 형을 몰래 힐끔거리던데 사저야말로 춘심(春心)이 동해 다른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고?”

얼굴이 붉어진 원요가 입을 비죽였다.

“헤헤, 몰래몰래 몇 번 훔쳐봤지. 우리 사매랑은 전혀 다른 이유 때문에 말이야! 솔직히 겉보기에는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수련 속도가 그리 빠른지 신기하잖아. 벌서 스승님과 같은 대승기 존재가 되고.”

연려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어깨를 으쓱했다.

“흥, 거짓말!”

“에이, 이거 심장을 꺼내서 보여 줄 수도 없고. 진짜 보여줘 봐?”

두 여인이 친밀하게 웃고 떠드는 소리가 명하의 땅의 적막함을 걷어내고 있었다.

* * *

적융산맥(赤融山脈)은 풍원대륙에서 유명한 영산이었다.

굽이굽이 수백만 리를 이어지는 산맥의 열댓 개 산봉우리 중 절반 이상이 활화산이라 일 년 내내 새빨간 용암이나 검은 화산재를 뿜어내 풀 한 포기 자랄 수 없는 뜨거운 기후를 형성했다.

이에 걸맞게 적융산맥은 다양한 품질의 불 속성 영석과 광석 재료 그리고 희귀한 극양(極陽) 속성의 영약들이 많기로 이름이 나서 위험지대임에도 매년 많은 수사들이 찾아들었다.

이날 산맥 변두리의 작은 화산 인근에서도 생김새와 복색이 다른 이족인들이 화산 분출이 멈춘 사이 삼삼오오 모여 붉 속성 영석이나 재료를 모으고 있었다.

화산이 폭발할 때마다 저계 재료들이 화산재와 함께 주변에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이족인들의 수행은 그리 높지 않아 연기기 정도였고 가장 수행이 높은 몇 명만이 축기기 수사였다.

돌연 귀가 네 개에 누런 피부를 지닌 이족인 한 명이 주변에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운 것을 보고 고개를 들었다.

“저, 저기!”

창백하게 질린 이족인은 날카롭게 소리를 질렀다.

다른 이족인들이 그 소리를 듣고 일손을 멈춘 다음 고공을 쳐다보았다.

그 결과 다들 놀라 입이 떡 벌어졌다.

언제부터인지 거산 크기의 새까만 거대선박이 기척도 없이 나타나 떠있어서였다.

이곳에 모인 이들은 저계 수사들이어서 평생 가도 이렇게 큰 비행법기를 보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돌연 새까만 거대 선박에서 하얀 빛줄기가 튀어나와 백발의 이족 노인 머리 위에 멈추었다.

열대여섯 밖에 안 되어 보이는 예쁘장한 소녀였다.

“이곳이 적융산맥이 맞는가?”

어린 소녀는 주위를 훑고 이족 노인에게 온화하게 물었다.

“선배님께 아룁니다. 이곳이 바로 적융산맥입니다.”

노인은 상대의 수행을 파악할 수 없다는 것에 놀라 덜덜 떨며 답했다.

“제대로 찾아왔네. 이곳이 적융산맥이라면 흑초봉은 어디에 있는지 아는가?”

“흑초봉을 찾으십니까? 그곳은 적융산맥 중심에 있는 극히 위험한 곳으로 진작 금지구역으로 지정되었습니다.”

“금지구역이라, 그럼 더 제대로 찾아왔다는 소리지. 내 안전은 수사가 걱정할 것 없으니 어찌 가면 되는 지나 알려주게.”

소녀가 걱정하기는커녕 배시시 웃으며 물었다.

“예예! 흑초봉으로 가시려면 서쪽 방향으로 쭉 가시기만 하면 됩니다. 산맥 중심부에 이러 품(品) 자 형태의 검은 산봉우리 세 개를 보실 수 있을 텐데 그곳이 바로 흑초봉입니다.”

찔끔 놀란 이족 노인이 굽신거리며 답했다.

“잘되었군! 이 영석은 상일세.”

고개를 끄덕인 소녀가 상품 영석 몇 개를 노인에게 던져주고 하얀 빛줄기로 변해 거대 선박으로 돌아갔다.

쿠릉!

잠시 후 거대 선박이 광채를 반짝이고 산맥 깊은 곳을 향해 날아갔다.

상품 영석들을 손에 쥔 이족 노인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고게 수사들에게는 별것 아니었지만 겨우 축기기 존재인 그에게는 엄청난 수확이었다.

‘히익!’

그러나 주위의 질투어린 시선을 느낀 노인은 식겁해 얼른 영석을 챙기고 급히 그곳을 떠나야 했다.

노인이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동급 이족 수사 몇이 소리 없이 사라졌다.

연허기 수사들은 그것을 보고 가슴이 서늘해졌지만 아무 말 없이 불 속성 재료를 찾는 데 집중했다.

* * *

묵령성주가 빠르게 날아가는 동안 한립은 뱃머리에 서서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옆에 혈혼과 주과아 그리고 화석노조가 공수를 하고 서있었다.

“혁련상맹의 경매회가 이런 눈에 띄는 곳에서 개최된다는 건 의외로구만. 저계 이족 수사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고 말이야.”

“이번 경매회에 참석하려면 최소한 연허기 이상의 강자여야 하니 현지 저계 수사들이 모르고 있는 것도 당연합니다. 한두 달 내로 경매회가 개최될 것이니 이미 수많은 각족 강자들이 모여 있겠네요. 한 선배님께서 이번 경매회에서 의외의 수확을 얻게 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한립이 입을 열자 혈혼이 한 걸음 걸어나와 공손히 답했다.

“의외의 수확이라, 그러길 바라겠네. 허나 나 정도 경지에 이르면 마음에 차는 물건을 만나기가 쉽지 않지. 다른 대승기 존재들이 귀한 물건들을 내놓는다면야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제가 이전에 와 본 경험에 따르면 선배님과 같은 대승기 존재들도 적잖이 참가를 했습니다. 그런 선배님들은 경매회 외에 따로 사적으로 거래를 하기도 하였고요. 상맹의 경매회에서 마음에 차는 물건을 만나지 못하셔도 그런 모임에서 수확을 얻으실 수 있을 겁니다.”

“오, 사적인 거래라. 그건 기대가 좀 되는 구만.”

가볍게 웃음 짓는 혈혼의 말에 한립이 흥미를 보였다.

반 시진이 지나 전방에 검붉은 암석으로 이루어진 괴이한 산봉우리 세 개가 나타났다.

만장에 이르는 높은 산봉우리들은 들은 대로 품(品) 자 형태로 서서 중간의 검붉은 돌무지 지대를 둘러싸고 있었고, 그 안에서 코를 찌르는 유황 냄새가 뜨거운 바람과 함께 전해졌다.

검은 거대 선박이 다가가자 거대 매를 탄 이족 병사들이 다가와 막아섰다.

등에 곡도(曲刀)를 멘 병사들은 갑옷으로 얼굴까지 가렸고 체구가 커서 평범한 인족 수사보다 머리 두 개 정도는 키가 더 컸다.

그들이 탄 새까만 매는 체형이 굉장히 크고 날아다닐 때 광풍을 몰고 다녔다.

“선배님들, 이곳부터는 본 맹의 금지 구역입니다. 신물을 갖고 있지 않으면 나아가기 어려우십니다.”

우두머리로 보이는 병사가 나서서 공손히 예를 올렸다.

거대 선박의 웅장한 자태와 그 위에 잔뜩 타고 있는 갑옷병사들을 보았으니 당연히 비행 법기의 주인이 평범한 신분은 아닐 거라 예상한 것이다.

“이것이면 되겠나?”

혈혼이 표표히 선박에서 내려 하얀빛을 쏘아 보냈다.

우두머리 병사가 그것을 받아 살피니 맹(盟)이란 은색 글자가 새겨진 정교한 영패였다.

“객경 대인이셨군요! 당연히 안으로 들어가실 자격이 되십니다. 제가 안내를 할 수하를 붙여 드리겠습니다.”

병사는 두 손으로 영패를 돌려주고 신속히 답했다.

선박에 탄 한립이나 다른 수사들을 검문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인 혈혼이 영패를 끌어와 거대 선박으로 돌아갔다.

부대의 병사들은 한 명을 남기고 순찰을 계속하러 떠나갔다.

우웅!

검은 거대 선박은 안내를 하는 병사를 따라 세 산봉우리를 향해 천천히 날아갔다.

가는 동안 다른 순찰 부대를 마주쳤지만 거대 매를 탄 병사가 길안내를 하는 것을 보고 아무도 막지 않았다.

파앗.

묵령성주의 속도에 금방 검은 산봉우리 중 하나에 이렀고, 막 산 정상을 통과하려는데 허공에 파문이 일었다.

거대한 문이 눈부신 빛을 발하며 허공에 떠 있었다.

그 주위로 백여 개의 크고 작은 괴상한 건축물들이 늘어서 있고 거대 매를 탄 병사들이 바삐 드나드는 중이었다.

미간을 좁힌 한립은 괴이한 금제 파동을 감지하고 어찌된 일인지 대충 파악했다.

안내를 하던 병사가 거대 매의 고삐를 잡아 멈추고 거대 선박 쪽으로 다가왔다.

“이곳 현천문(玄天門)을 지나시면 금지 구역으로 진입하실 수 있습니다. 상부에서 이 안으로는 비행보물을 엄히 금지한다는 명이 내려와 있으니, 죄송하지만 선배님들도 선박을 거두시고 직접 들어가셔야 할 듯싶습니다. 저는 여기까지 밖에는 갈 수 없으니 여기까지만 안내를 해드리겠습니다.”

“알겠네. 물러나게.”

거대 선박 안에서 혈혼의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어서 무수히 많은 주술문자들과 빛이 흘러나온 선박이 소실되었다.

한립이 주과아, 혈혼, 화석노조를 데리고 당당히 거대 문 안으로 날아들자 인근의 병사들이 호기심 어린 눈초리로 쳐다볼 뿐 막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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