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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1356화 (1,113/2,000)

1356화. 곡외대전(谷外大戰) (2)

*

다시 두 팔을 떨치고 모든 금제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거원은 남은 깃발들을 전부 부러트려 진법을 없앴다.

이때 황원자 발아래의 패루가 오색 광채로 물들고 수정 고리는 그 안으로 들어가 자취를 감추었다. 동시에 거원의 머리 위로 오색광채가 나타나 적홍색 불구름으로 변했다.

화르륵!

불구름 속의 거대 수정 고리가 순간이동을 하듯 거원의 허리를 감싸고 나타나 이글이글 거리는 화염을 분출했다.

이에 황원자는 득의양양한 얼굴이었다. 수정 고리는 상고수사의 동부에서 얻은 현천잔보였다.

크기를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고 품고 있는 화염은 여러 종류의 불길이 합쳐진 것이라 평범한 수사들은 닿기만 해도 재가 되어 목숨을 잃었다.

그런 수정 고리를 구환여의문의 신통으로 순간이동 시켜 치명적인 공격을 가한 것이다. 이 공격으로 상대방이 죽지는 않아도 반드시 중상을 입을 것이라 의심치 않았다.

콰콰쾅!

하지만 화염 속에서 예기치 않은 굉음이 들려왔다. 번쩍번쩍 거리는 화염 속에서 고리 조각이 사방으로 튀어나가고 금털 거원이 멀쩡한 모습으로 빠져나왔다.

거대 패루 위의 황원자는 놀라 어안이 벙벙해졌다. 삼전도인도 놀란 눈치였으나 바로 냉소하며 황원자를 향해 말했다.

“걱정할 것 없습니다, 황 수사!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화혈연사(化血煉蛇)에 물렸으니 자기도 모르는 사이 혈독(血毒)에 중독되었을 겁니다. 조금만 시간이 흐르면 온몸의 정혈이 굳어 전혀 법력을 사용할 수 없게 되지요. 법력을 끌어올리지 못하면 제 아무리 실력이 대단해도 어쩌겠습니까!”

“확실한 것입니까?”

“이런 상황에 함부로 단언하겠습니까? 믿지 못하시겠다면 빈도가 열을 세겠습니다. 그 후로는 저 자도 힘을 쓰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 둘, 셋…….”

황원자의 물음에 삼전도인이 자신 있게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그러나 거원은 개의치 않고 커다란 손바닥을 뒤집어 내쳤다.

쿠쿵!

괴력의 파랑이 떨어져 내렸다.

이에 막 몸을 회복해 몸을 일으키던 불멸천존이 변한 거인이 엄청난 압력에 엎어지고 말았다. 거인은 얼굴이 핏빛으로 달아올라 괴성을 지르고 검은 광채를 일으켰다.

전신의 근육이 퍽퍽 터져나가며 하얗고 날카로운 뼈 가시들이 피부를 뚫고 나왔다. 섬뜩한 모습으로 변신을 마친 거인은 두 주먹으로 바닥을 내리쳤다.

쿠쾅!

땅이 좌우로 갈라지며 두 개의 검은 균열이 생겨났다. 거인은 그 반동으로 흙 속에서 빠져나와 검은 바람으로 변해 거원을 향해 쇄도했다.

그것을 본 한립은 내심 혀를 찼다.

크앙!

거원이 두 주먹으로 가슴을 두들기자 팔뚝 크기의 소인을 품은 금빛 덩어리가 날아올랐다.

눈은 반짝이되 코도 눈썹도 없는 자금색 소인은 서금충왕, 금동이었다.

소인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부릅뜬 두 눈에서 반짝이는 검기를 분출했다. 검기가 검은 바람을 가르고 거인에게 날아들자 참혹한 비명과 함께 핏물이 흩날렸다.

서금충왕이 변한 소인이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열 손가락을 빠르게 튕기자 음산한 빛들이 몰려갔다.

검은 바람 속에서 열 받은 거인의 포효소리와 함께 남색의 거대 칼날이 튀어나왔다.

거대한 칼날은 날이 굽어 있고 품고 있는 한기(寒氣)가 매서웠다.

그러나 서금충왕은 무덤덤한 얼굴로 거대 칼날을 보고 열댓 개의 수정 빛을 하나로 융합해 거대한 빛줄기로 만들었다.

남색 칼은 빛줄기와 충돌해 경쾌한 소리를 내며 두 동강이 났다.

수정 검빛의 예리함은 평범한 보물로는 막을 수 없었다. 장애물이 사라지자 빛줄기는 그대로 검은 바람을 가르려 했다.

콰쾅!

검은 바람이 방향을 틀어 위로 솟구치려다 빛줄기를 맞고 튕겨나갔다. 비틀거리며 나타난 거인은 몰골이 처참했다.

전신에 상처가 가득한 것은 물론 한쪽 다리가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언제 부터인가 손에 들고 있던 검은색 뼈 방패도 절반이 부서져 있었다.

거인은 멀리 떨어진 소인을 두려움이 담긴 눈빛으로 주시했다.

큰 부상을 당했음에도 거인은 고개를 쳐들고 포효하며 상처들을 빠른 속도로 회복시키기 시작했다. 심지어 잘려나간 한쪽 다리도 핏빛 실들을 뭉쳐 다시 만들어내는 중이었다.

서금충왕은 눈을 가늘게 뜨고 한 손가락을 펼쳤다.

쉬쉬쉬쉭!

거인 주변에 무수히 많은 무형의 검기가 나타나 사방팔방에서 폭발했고 소인은 가볍게 허공을 박차고 그를 향해 쇄도했다.

거인은 주먹으로 가슴을 내리쳐 검은 기운을 일으키고 하얀 뼈 가시들을 날려 무형의 검기에 대항했다.

그리고 부서진 뼈 방패를 소인에게 투척하고 자신은 흐릿하게 변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수백 장 밖의 허공에서 파동이 일고 거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쿵!

소인이 작은 주먹을 날려 날아드는 뼈 방패를 박살내고 기다란 빛줄기로 변해 직접 거인을 따라갔다. 가슴이 서늘해진 불멸천존은 빠르게 자신의 몸을 살폈다.

잘려나간 다리의 복구가 아직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 이를 악문 거인은 몸을 비틀어 또 다른 곳으로 순간이동을 했다.

그러나 소인이 변한 빛줄기도 끈질기게 방향을 틀어 추격을 계속했다. 거인과 소인이 피하고 따라잡기를 반복하며 대치 상태를 이루었다.

이때 ‘열’까지 센 삼전도인은 아직도 거원이 고공에서 냉랭히 그들을 내려다보자 안색이 확 달라졌다.

“이럴 리가. 불멸체라도 혈독에 당하면 어쩌지 못하는데 어떻게 무사한 거지?”

청년도사가 당황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소리쳤다.

“겨우 혈독으로 절 어찌할 수 있을 듯싶습니까? 허나 그 뱀이 내 피부를 물어뜯은 것만으로도 대단합니다.”

거원은 피식 웃으며 물린 손가락을 털어냈다.

훅!

흐릿한 이빨 자국에서 검붉은 액체가 실처럼 빠져나왔다. 뱀의 혈독을 몸 밖으로 밀어낸 것이다. 이전에 만독불침을 이루게 해준다는 만독혼원신(万毒混元身)을 수련해서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 말에 황원자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다 산골짜기 쪽과 서금충왕에게 정신없이 쫓기는 불멸천존을 번갈아 보고 사납게 거대 패루를 발로 밟았다.

우웅!

모호하게 변한 패루가 사라져 거원의 머리 위에서 나타났다.

함께 순간이동을 한 황원자가 자신의 한쪽 팔을 뽑아 터트렸고, 그 핏빛 안개가 패루 속으로 흡수되었다.

강력한 비술을 펼치려는 게 분명했다. 거원이 흉흉하게 눈을 번득이고 고공의 패루 방향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후우웅!

털이 북슬북슬한 주먹이 허공을 가르고 하늘이 어두컴컴해지며 무형의 압력 폭풍이 패루와 황원자를 덮쳤다.

이때 황원자는 날카롭게 고함을 지르며 핏빛 실들을 피부에서 분출하고 그림자처럼 패루 속으로 스며들었다.

쿠쿵!

패루가 위치한 공간은 쉼 없이 요동쳤고 압력 폭풍은 그것을 그대로 관통했다.

“환술!”

놀란 눈빛을 하던 거원이 냉소를 흘리며 수결을 맺었다. 환술을 깨트릴 다른 비술을 펼칠 셈이었다.

영목신통을 지니고 진선급의 의식의 힘을 지닌 그 앞에서 환술을 펼치다니 죽고 싶어 환장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그 전에 고공에서 이를 악문 황원자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제 수행으로는 당신의 상대가 안 된다는 것은 이제 알겠습니다. 허나 청원자 그놈을 죽이기 전에는 명하의 땅을 떠나지 않겠다고 심마에 맹세했습니다. 수사가 괜한 일에 참견하지 않고 떠나만 준다면 평생 모은 보물의 절반을 내드리겠습니다. 이래도 물러나지 않겠다면 물고기도 죽고, 어망도 터지는 ‘어사망파(魚死網破)’ 상황을 피할 수 없을 겁니다!”

“어사망파라, 고작 이 환술로 말입니까?”

거원이 광소를 터트리며 두 눈에 남색 빛을 번득이고 금색 거대 손으로 어딘가를 낚아챘다.

서늘한 한기를 띤 다섯 손가락이 허공을 할퀴었다. 그러자 그 자리에 파문이 일고 핏빛 인영이 신음을 흘리며 물러났다.

돌아온 금색 거대 손에는 찢겨져 나간 노란 장포 자락이 들려있었고 손톱에서는 피가 뚝뚝 흘렀다. 비록 황원자를 잡지는 못했어도 곱게 달아나게 두지는 않은 것이다.

의외의 결과에 한립은 미간을 좁혔다.

“스스로 자초한 일이니 원망 마라! 구환여의문의 진정한 위력을 보여 주지!”

악에 받친 황원자가 중얼중얼 주문을 외웠다.

팟! 팟! 팟! 팟!

한립 주위로 아홉 개의 광채가 생겨나 똑같이 생긴 패루 아홉 개로 변했다. 웅웅거리며 핏빛 주술문자를 불러낸 패루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회백색 구슬을 만들어냈다.

핏빛 실선이 그어진 구슬들에 한립도 가슴이 철렁했다.

“자모시음뢰?”

놀란 거원이 수결을 맺어 푸른 실들을 빼곡하게 불러내 날렸다. 훼멸(毁滅)의 힘을 함유한 자모시음뢰가 이렇게 많으면 그라도 함부로 맞부딪히기 어려웠다.

완전히 발동하기 전에 검사(劍絲)로 베어내는 것이 상책이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거원의 동공이 수축했다.

“환술!”

푸른 실들이 구슬들을 허상처럼 꿰뚫었다. 검사를 방출하기 전 의식과 영목으로 구슬의 진위를 확인할 때는 분명 문제가 없었다.

재빨리 머리를 굴린 거원은 손을 뻗어 회백색 구슬 하나를 끌어와 손에 쥐었다.

“실체가 있다! 환영이 아니야.”

거원은 구슬이 손에 닿은 순간 열기를 느끼고 표정이 급변했다.

쾅!

회색 광채의 폭발이 일어나 엄청난 위력으로 거원을 휘감았다.

크아앙!

포효소리가 크게 들리고 자금색 거대 손 두 개가 광채를 뚫고 나왔다.

찌이익!

광채로 이루어진 장막이 거대 손에 의해 찢겨나갔다. 그때 전신을 자금색으로 물들인 거원이 성큼 빠져나왔는데 털끝이 조금 탄 것을 제외하면 아무렇지도 않았다.

“진짜 자모시음뢰가 아니었습니다! 위력이 진짜에 비해 10분의 1밖에 안 되더군요? 거기에 말로만 듣던 분화응진술(分化凝眞術)이라 점점 재미있어 지는군요.”

거원이 큰 입으로 소리쳤다.

“한 알로 안 된다면, 10개, 100개는 어떠냐!”

표정이 어두워진 황원자는 거원의 육체 강도에 얼떨떨해 하면서도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어리석기는. 분화응진술이라는 것을 알아보았으면 손쉽게 제거할 수 있으리란 것도 모르십니까?”

거원의 몸에서 수많은 주술문자가 떠올랐고 동시에 곤붕, 진룡, 천봉, 공작 등의 진령허상들이 나타났다 거원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파아앗!

강력한 자금색 빛을 일으킨 거원은 몸이 불어나고 머리가 셋, 팔이 여섯 개로 늘어났다. 또한 피부가 금색 비늘로 뒤덮이고 머리에 짧은 뿔이 자라났다. 거원의 몸으로 삼열변신을 한 것이다.

변신 후의 거원은 오금이 저릴 만큼 무시무시한 기운을 발산했고 팔에서 비취색 광채가 흘러나와 암녹색 목검으로 변했다.

현천참령검의 등장이었다.

현천참령검은 부르르 떨며 무수히 많은 오색 주술문자를 분출했고, 거원의 몸에서 암녹색 빛의 고리가 폭발적으로 일어나 강대한 법칙의 힘을 주변으로 퍼트렸다.

암녹색 빛의 고리가 주변의 구슬들과 격돌했다.

파파팟! 팟! 파팟!

놀랍게도 구슬들은 저항도 못하고 재가 되었다.

“훼멸의 힘! 현천의 보물! 아, 안 돼…….”

고공의 황원자는 갈라진 목소리로 다급히 소리쳤다. 이에 거원은 흉악한 미소를 머금고 세 머리에서 제3요목을 떴다.

새까만 요목들이 데구루루 눈알을 굴려 아홉 개의 패루들을 훑자 목검이 그 중 하나를 향해 녹색 검빛을 뿜었다.

또한 거원은 팔을 뻗어 나머지 패루들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이에 열댓 개의 금빛 덩이가 쏘아져나가 녹색 검빛보다 먼저 패루들을 공격했다.

콰르릉!

폭발로 인해 금빛 파랑이 패루와 주변 허공을 휩쓸었다.

패루들은 금빛 파랑의 엄청난 위력을 막지 못하고 조각조각 쪼개졌고 잔해 속에서 여덟 개의 허상이 나타났다가 금빛에 휩쓸려 가루가 되었다.

이제 녹색 검빛이 마지막 패루를 두 동강내려 하고 있었다.

팟!

노란 허상이 허둥지둥 패루를 빠져나와 순간이동을 했다.

“도와주십시오, 삼전 형! 분신들이 전부 당했습니다. 이러다 정말…….”

마지막 노란 허상은 황원자의 본체였다. 그러나 겁에 질린 그의 머리 위로 자금색 거대 손이 허공을 찢고 나타나 전광석화처럼 떨어져 내렸다.

황원자는 대경실색해 달아나려 했지만 자금색 거대 손에서 뿜어져 나온 은색 문양 진법이 무형의 힘으로 그를 구속했다.

황원자는 힘이 쭉 빠지고 법력 대부분을 끌어올릴 수 없어 순간이동에 실패했다.

쿠쾅쾅쾅!

혼비백산한 그는 두 팔을 펼쳐 열댓 개의 보물을 마구 날려 폭발시켰다. 그만큼 필사적이었다.

황원자의 외침을 들은 삼전도인은 잠시 망설였지만 도와주러 가지 않고 그 자리에서 수결을 맺었다. 그리고 삼색 둔광을 일으켜 뒤로 돌아보지 않고 산골짜기 바깥으로 날아가 버렸다.

몇 번 번득이던 그의 둔광은 곧 시야에서 사라졌다.

자금빛 거대 손에서 더 많은 은색 문양 진법이 나타나 황원자의 보물들이 폭발한 여파를 잠재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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