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4화. 염탐
*
“그걸 저라고 모르겠습니까! 그러니 진법을 깰 때 일부러 소란을 피우는 것이 좋겠습니다. 아무 짓도 못하더라도 최소한 신경이 쓰여 마음 놓고 천겁에 전념할 수 없도록 말입니다. 삼전 수사만 믿겠습니다.”
“진법에 관한 건 제가 맡겨주시면 됩니다.”
황원자의 말에 오만하게 답한 삼전 도인은 당장 수결을 맺었다. 청년 도사의 발 아래로 하얀 구름이 몰려들어 산골짜기 방향으로 서서히 흘러갔다.
황원자와 거한은 서두르지 않고 그 뒤를 쫓았다. 세 사람이 백여 리를 날아가기 전에 사방에서 콰르릉 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풍경이 바뀌었다.
부지불식간에 하늘을 찌를 듯 뻗은 거목들이 빼곡히 그들을 둘러쌌다. 거목들은 하나같이 산만한 크기에 새까만 강철로 되어 있었다.
“이런 비루한 진법으로 본 좌를 막으려 들다니 가소롭구나!”
삼전도인이 호전적으로 소리쳤다. 다른 보물을 동원할 것도 없이 소매 속에서 노란 기운이 날아가 흩어졌다.
스스스스.
놀랍게도 노란 기운이 닿자 강철 거목들이 잡초처럼 쓰러져 전부 흙먼지로 변했다. 주변 풍경이 원래대로 돌아갔고 삼전도인이 거침없이 전방으로 쏘아져나갔다.
황원자와 불멸천존이 피식 웃으며 그 뒤를 쫓았다.
콰쾅!
그들이 십여 리를 날아가고는 모래 언덕 세 개가 불쑥 솟아올라 주술문자로 이루어진 진법을 만들었다. 그리고 진법 안에서 불구슬들이 잔뜩 날아들었다.
이에 삼전도인이 입 꼬리를 끌어올리며 손끝에서 세 줄기의 청록색 빛의 실을 쏘아 보내 세 사람에게 날아드는 불구슬들을 전부 쳐냈다.
빛의 실은 굵직한 빛기둥으로 변해 불구슬을 토해내는 진법들마저 공격했다. 삼전도인은 속도도 줄이지 않고 그대로 언덕을 통과했다.
그 모습에 황원자와 거한이 시선을 마주치고 희색을 드러냈다. 청원자가 수많은 금제를 준비했지만 위력이 평범해서 그들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산골짜기에 가깝게 펼쳐진 진법이 아마 대승기 수사를 겨냥한 핵심 금제일 것이다.
* * *
산골짜기 입구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연려의 귓가에 청원자의 전음이 들려왔다.
“연려, 조심 하거라. 바깥쪽에서 강적이 진법을 뚫고 들어오고 있으니 내가 미리 내어준 보물들로 십팔천살진(十八天煞陣)을 유지해야 한다.”
“예, 스승님!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스승의 심각한 말투에 연려가 흠칫 놀라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산골짜기의 모든 금제 진법이 발동되어 있었다.
오색찬란한 보호막들이 층층이 쳐져 있고 그 밖으로 검은 강풍이 몰아쳐 바깥에서는 산골짜기 내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었다.
“걱정할 것 없다. 조종하는 사람이 있으면 십팔천살진의 위력은 훨씬 높아진다. 며칠은 침입자를 막아낼 수 있을 것이야. 내 도겁을 마치는 대로 직접 상대하겠다.”
청원자가 제자의 불안한 마음을 예상한 듯 인자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 말에 연려도 마음을 놓았다
‘스승님께서 천겁을 겪으시면서 전음을 보내실 때는 아직 여유가 있다는 거겠지.’
연려가 더는 주저 않고 노란 둔광을 일으켜 산골짜기 입구를 떠났다.
잠시 후, 작은 산 위에 오른 그녀는 깃발이 잔뜩 꽂힌 원반 모양의 거대 법기를 타고 신중한 얼굴로 청동 거울을 들고 있었다.
거울에는 삼전도인이 하얀 비도를 아래위로 휘둘러 주위의 금빛 진법을 깨부수는 모습이 떠올라 있었다.
삼전도인의 모습이 잠시 반짝거리다 화면에서 사라졌다. 깜짝 놀라 헛바람을 들이킨 연려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청원자가 강적이라 일컫는 자면 당연히 대승기 수사일 거라 예상했지만 진법에 이렇게 능한 자일 줄은 몰랐다. 그것은 금제를 아무리 많이 펼쳐 두었어도 그들을 오래 막지는 못할 거란 뜻이었다.
스승에게 충분한 시간을 벌어줄 것은 십팔천살대진 뿐이었다. 연려는 곧장 아래쪽의 깃발을 가리키고 푸른 연기로 사라졌다.
쿠르르릉!
일다경 후, 산골짜기 주변으로 모래 바람이 일고 갈라진 땅에서 핏빛 안개가 피어올랐다. 핏빛 안개 속에서 날카로운 울음소리와 귀곡성이 가득했다.
이에 흐릿하게 거대한 검은 그림자가 어른거리며 흉흉한 기운을 발산해 허공의 먹구름을 절반 정도 흩어버렸다.
연려가 단시간에 산골짜기 둘레의 현묘한 진법 18개를 모두 발동한 것이다.
각각의 진법은 대승기 수사에게 통하지는 않았지만, 십팔천살진은 연환진법으로 서로 능력을 증폭시켜 하나의 진법을 건드려도 동시에 18개 금제와 싸워야 했다.
그리고 십팔천살진을 파훼하는 법은 인내심을 갖고 하나씩 제거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바로 청원자가 침입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평정을 유지하는 이유였다.
이에 반나절 만에 산골짜기 인근에 도착한 삼전도인과 황원자, 불멸천존도 십팔천살진을 보고 표정이 구겨졌다.
“그러니까 시간을 들여 천천히 하나씩 제거해야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단 말입니까?”
황원자가 열을 받아 이를 갈았다.
“그렇습니다. 다행히 연환진은 첫 번째 진법을 파훼하는 것이 가장 어렵고 갈수록 위력이 줄어 뒤로 갈수록 빨리 제거할 수 있습니다.”
삼전도인이 잠시 생각하다 답했다.
“청원자 이 교활한 놈! 허나 겨우 이정도로 나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삼전 수사, 이 진법을 뚫는데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수사의 구환여의문을 사용하면 대략 4일이면 될 겁니다.”
“그건 안 됩니다. 그 전에 청원자가 천겁을 마칠지도 모를 일 아닙니까? 이렇게 합시다. 중요한 시점에 자모시음뢰(子母尸陰雷)로 도울 테니 3일 내로 진법을 없애지요.”
“자모시음뢰도 준비해온 것입니까? 그렇다면 3일내로 십팔천살진을 파훼하는 것도 가능할 겁니다.”
삼전도인은 황원자가 말한 보물의 이름에 순간적으로 안색이 달라졌다.
“좋습니다! 불멸 수사께서는 나서지 마시고 원기를 보존하시다가 청원자와 싸울 때 실력을 발휘해 주십시오.”
황원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거한에게 당부했다.
“황 형의 말씀이 아니어도 어찌 해야 할 지 잘 알고 있습니다. 청원자의 몇몇 신통들은 제 공법과 상극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불멸천존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파앗!
음산하게 웃음을 흘린 황원자는 초소형 패루를 불러내 던졌다. 하얀빛 속에서 거대하게 변한 패루가 하강했다.
콰릉!
황원자가 올라선 거대 패루에서 뇌전덩이가 빠져나와 정면의 진법으로 날아갔다. 삼전도인도 한손으로 수결을 맺고 패루의 뒤를 바짝 쫓았다.
* * *
지연 모처의 습지 위.
쿠콰콰콱!
허공이 왜곡되고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암녹색 검빛이 하늘을 가르고 빠져나왔다. 습지 상공에 생긴 갈라진 틈으로 산만한 검은 거대 선박이 빠져나왔다.
선박의 갑판 위에 푸른 장포를 걸친 청년이 뒷짐을 쥐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한 선배님, 이곳이 가까운 벗이 은거하신다는 곳인지요?”
청년 뒤에서 흑포를 입은 여인이 나타나 입을 열었다.
“맞네. 이상하기라도 한 것인가, 혈혼 수사?”
그들은 비령족 영역에서 넘어온 한립과 혈혼이었다.
* * *
한립은 십여 일 동안 비령족 대승기 수사인 월륭에게 힘을 보태 금속과 나무 속성의 극원정을 제련하는 것을 도왔다.
월륭은 일이 성사되자 약속한 극원정 하나씩을 내주었다. 게다가 조금 더 자신의 동부에 머물다 가라고 열성적으로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립은 이를 거절하고 지연공간에서 계면의 힘이 가장 약해진 부분을 발견해 현천참령검으로 공간장벽을 갈라 진입했다.
“공간이 굉장히 신기하기는 합니다. 선배님의 친우께서도 합체기 선배님이십니까?”
혈혼은 빙긋 웃음 지었다.
“틀렸네! 수행이 낮지는 않지만 마지막으로 봤을 때만해도 아직 연허기 수사였으니 아직 대승기에는 이르지 못했겠지. 허나 대승기 수사의 문하에 들어갔으니 합체기 경지에는 이르렀을지 모르겠군.”
한립이 차분하게 답해주었다.
“대승기 수사의 문하요? 정말 부러운 일입니다. 제 본체는 합체기에 이르고 더 높은 경지에 이르기 위해 얼마나 고생했는데요. 심지어 본체는 다른 대륙에서 누군가에 의해 봉인이 되고 말았고요.”
“하하, 부러워할 것 없네. 본체만 되찾을 수 있다면 더 높은 경지로 올라가는 일이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야.”
“그러기를 바라고는 있습니다.”
한립의 말에 혈혼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미소를 머금고 품에서 검은 옥간을 꺼내 이마에 가져다 댔다. 예전에 청원자에게 받은 지연 지도였다.
의식으로 빠르게 습지를 훑어 현재 위치를 파악하니 청원자의 동부와 꽤 가까운 곳이었다. 그는 기쁜 마음으로 옥간을 거두고 검은 선박을 출발시켜 어딘가로 쏜살같이 날아갔다.
하루 뒤, 거대 선박이 청원자의 동부 인근에 이르자 선실에 앉아 있던 한립이 이상하다는 얼굴로 눈을 떴다.
“이렇게 강한 파동은 분명 대천겁의 파동일 텐데. 누군가 이 근처에서 도겁을 하고 있단 말인가? 설마 청원자 수사가…….”
그가 한 손으로 수결을 맺자 선박이 웅! 하고 멈추었다. 거대 선박에서 푸른 빛줄기가 날아오르고 맑은 목소리가 울렸다.
“잠시 살펴보고 올 것이니, 너희는 남아서 선박을 지키고 있거라.”
주과아와 혈혼이 급히 갑판으로 나와 한립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았다.
한립은 전속력으로 파동이 느껴지는 방향으로 날아가고 일다경 후에는 멀리 먹구름으로 둘러싸인 곳을 보고 미간을 좁혔다.
‘이런, 다른 대승기 수사가 있다고?’
한립은 둔광을 거두고 생각이 많은 얼굴로 안력을 돋우었다.
“한 명, 두 명, 세 명! 이렇게 많은 대승기 수사들이 기운도 숨기지 않고 저기서 뭘 한단 말인가. 도겁 중인 이가 청원자인지 알아야 끼어들지 말지 결정할 텐데.”
눈을 빛낸 한립이 입에서 푸른 수정 구슬을 뿜었다. 그의 미간이 갈라지고 제3 요목이 나타나 허공으로 가느다란 검은 실을 발사했다.
파앗!
광채를 내뿜은 구슬 표면에 무언가 보이기 시작했다.
드넓은 혈홍색 운해 속, 거대한 패루 위에 세 명의 사내가 서있었다. 한립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들이 바로 대승기 기운을 내뿜던 이들임을 알아보았다.
8척 장신의 거한이 팔짱을 끼고 서있는 동안 노란 황포를 입은 사내가 거대 패루를 조종해 핏빛 안개를 뚫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패루에서 오색 주술문자들이 흘러나와 괴이한 안개를 밀어냈다. 게다가 청년 도사의 등 뒤로는 머리가 셋 달린 거대 구렁이 허상이 떠있었다.
구렁이들은 붉은색, 노란색, 푸른색의 기운을 분출해 핏빛 안개를 녹였다. 그때 거한이 퍼뜩 무언가를 눈치 채고 고개를 홱 돌렸다.
“누가 몰래 본 좌를 염탐하는 것이냐!”
말이 떨어지자마자 거한의 손이 움직였다. 새까만 거대 손이 허공 어딘가를 내려치고 쾅! 하는 굉음이 터졌다!
검은 기운이 뜨거운 바람을 타고 퍼져나가 핏빛 안개를 갈랐다. 그의 돌발행동에 황원자와 삼전도인이 뒤를 돌아보았다.
“불멸 수사, 무슨 일입니까?”
황원자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패루를 멈추고 물었다. 이틀 동안 잠도 자지 않고 진법을 파훼해 이제 거의 막바지에 이르러 있었다.
“누군가 우리를 엿보고 있기에 주먹을 날려주었습니다!”
“진법을 조종하는 그 계집애 입니까?”
“아닙니다. 연허기 수행 밖에 안 되는 계집이 무슨 수로요? 게다가 일전에 공간을 넘어 일장을 날려 보냈으니 중상을 입은 상태일 겁니다.”
“그렇다면 새로운 인물이란 뜻이군요. 상대의 수행은 어떤 것 같습니까?”
“상대의 술법을 깨버리기 급급했는데 어찌 수행을 파악했겠습니까. 그저 염탐하는데 이용한 비술이 고명한 것으로 보면 수행이 그리 낮은 자는 아닐 겁니다.”
“큰일입니다, 또 다른 대승기 수사라니요? 청원자가 미리 도움이라도 청한 것일까요?”
듣고 있던 삼전수사가 끼어들었다.
“그럴 리가요.”
황원자는 미미하게 안색이 굳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어떻게 그리 확신하십니까?”
삼전도인이 눈썹을 끌어올리고 캐물었다.
“그거야 간단한 이치가 아닙니까. 만약 청원자가 불러온 조력자였다면 이제야 나섰겠습니까?”
“맞는 말이긴 합니다! 조력자가 있었으면 처음부터 그 자가 십팔천살진을 조종해 우리와 맞서든지 아니면 끝까지 기다렸다 방심한 순간 습격했어야 맞습니다.”
황원자의 말에 삼전도인도 납득했다.
“그렇다면 지연 공간에 은거하는 다른 대승기 수사 중 한 명이겠군요.”
“허허, 지연의 다른 수사들은 청원자가 진작 여러 구실을 만들어 멀리 보낸 지 오랩니다. 그래야 안심하고 대천겁을 치를 수 있지 않겠습니까? 1, 2년 내로 돌아올 리가 없습니다.”
“우릴 염탐하던 자가 적인지 아닌지 아직 알 수 없단 말입니까? 지금 우리는 진법 안에 갇혀 있는데 이대로 시간을 끌면 위험해 질 수도 있습니다.”
거한이 무표정하게 말했다.
“원래는 이틀 정도 더 진법을 깨트려 보다 자모시음뢰를 사용할 생각이었는데, 아무래도 당장 써야겠습니다. 삼전수사 당장 이 금제를 깨버릴 준비를 하십시다. 새로 나타난 인물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때가 되면 알 수 있겠지요.”
황원자가 한숨을 내쉬며 결연히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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